Sehon RAW novel - Chapter 166
166화. 결심
“날 따라다니면 결국 드센 아가씨가 되고 말 거야, 류아는 너랑 여기 있는 게 더 마음이 놓여.”
임근용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나무 아래에 있는 돌 탁자와 의자를 가리켰다.
“셋째 오라버니, 오라버니랑 상의할 게 좀 있어요. 내가 평주에 향약 가게를 하나 차릴 생각이에요. 물건은 외숙부한테 들여와 달라고 부탁할 거고요…….”
임세전은 그녀의 말을 다 듣고 약간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그건 도 대노야께서 지금 하시는 장사가 아니라 아무래도 좀 위험할 것 같은데.”
임근용이 미소 지었다.
“그건 걱정할 거 없어요. 솔직히 평주성 안에 있는 향약 가게 중에서 깨끗한 곳이 있긴 해요? 다른 사람이 할 수 있으면 우리도 할 수 있는 거죠. 더구나 시기로 보나 인맥으로 보나 우리가 남들보다 훨씬 유리해요.”
그녀의 진짜 계획은 향약의 매매 금지가 풀리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향약을 정식 경로를 거쳐 사들이면서 거기에 밀수한 제품까지 몰래 끼워 넣어 들여오는 것이었다. 이런 구실을 붙이면 어느 정도 물건을 사서 보관해 둘 수 있었다. 관청에서 37종의 향약 매매를 정식으로 허가한 다음에는 도순흠 등으로부터 질 좋고 가격이 싼 물건을 공급받아 여기서 팔 생각이었다. 그러면 청주까지 가서 향약을 사와 파는 장사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될 것이다! 같은 가격과 품질의 제품을 평주에서도 살 수 있는데 굳이 청주까지 가서 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더구나 관청에서 향약의 매매 금지를 풀게 되면 향약을 밀수하는 일은 금세 아무런 이점이 없어질 것이고 그 전에 이 가게를 열어두면 모두에게 득이 될 것이 분명했다.
임세전은 그녀의 진짜 의도를 모르고 이 계획을 통해 과연 돈을 벌 수 있을지, 그리고 이 일이 그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는 잠시 흥분했다가 또 문득 걱정이 밀려와 돌탁자 위에서 주먹을 쥐었다 풀었다 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이런 행동으로 기분을 드러냈다는 것을 깨닫고 잔을 들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임세전은 별로 자신이 없었지만 솔직히 해 보고 싶었다! 그 역시 독자적으로 움직여 보고 싶은 마음이 임근용 못지않았다. 임근용이 하던 말을 깔끔하게 정리하며 물었다.
“셋째 오라버니 생각은 어때요?”
임세전이 약간 난처해하며 말했다.
“생각 좀 해 볼게.”
임근용은 가늘고 하얀 손가락으로 파란 찻잔을 살며시 돌리며 평온하고 고요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라버니가 자신이 없으면 경험 있는 관리인을 들여도 돼요. 오라버니가 나 대신 옆에서 지켜봐 주기만 하면 돼요. 천천히 하면 되고 서두를 필요 없어요.”
임근용이 그에게 물은 이유는 사실 어떤 의견을 구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그에게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려는 것에 불과했다. 어느 누구도 그녀의 이런 결심을 막을 수는 없었다.
임세전은 한참을 침묵하다 나지막이 말했다.
“경험 많은 회계원하고 관리인을 구해야 할 것 같아.”
이 일은 아마 그에게 좋은 연습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남의 일을 하면서 돈과 권력을 모두 손에 쥘 수는 없다. 그녀가 시키는 일만 하는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에겐 아주 좋은 기회였다. 임근용이 그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회계원은 괜찮은 사람으로 잘 골라야 할 거예요. 오라버니, 먼 길 오느라 피곤할 텐데 이제 좀 쉬어요. 난 이만 가 볼게요. 이따 어머니가 오라버니를 부르실 거예요. 오라버니도 어머니한테 어떻게 말할지 생각해 둬요.”
그러더니 신중한 말투로 말했다.
“이 가게에 셋째 오라버니 지분도 챙겨 줄게요.”
임세전은 임근용을 배웅하고 고개를 돌려 담벼락 옆에 있는 벌써 싹이 튼 매화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는 흰나방을 쫓아 온 마당을 뛰어다니는 뚜뚜와 그런 뚜뚜를 쫓아다니며 즐거워하는 류아를 바라보면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임세전은 푸른 하늘을 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고 이건 평생에 다시없을 기회이니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고 절대로 실패해선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 * *
여지가 아주 작은 소리로 임근용에게 물었다.
“아가씨, 방금 세전 공자께서 류아 아가씨에게 해 주려던 일들을 아가씨께서 이렇게 쉽게 허락해 주신 걸 부인께서 알면 기분 나빠하시지 않을까요. 공자께서 정말로 류아 아가씨를 데리고 나간다고 할까 봐 걱정도 안 되세요?”
“걱정되지. 왜 걱정이 안 되겠어.”
임근용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난 전부터 오라버니가 야망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 오라버니 마음이 내키지 않고 또 날 믿지 못 하는데 억지로 잡아두는 건 오히려 역효과만 날 뿐이야. 강요해서 하는 것과 기꺼이 원해서 하는 게 어떻게 같겠어?”
임근용이 임세전이 류아를 위해 보낼 시녀를 받아들이겠다고 한 건 임세전에게 그녀들을 대신해 회계원과 관리원을 뽑으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임근용은 지금 상황에서 임세전이 이곳을 떠날 리가 만무하다고 생각했다.
임근용이 일전에 도씨에게 이 일에 대해 언질을 해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실행을 준비할 때가 되자 난관에 봉착했다.
도씨도 도씨 가문에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따로 회계원을 구해야한다는 임근용의 제안에 동의했지만 도씨는 이 일이 자체가 타당하지 않은 것 같다며 걱정했다.
“우리가 갑자기 향약 가게를 차리면 괜히 남들한테 미움만 사지 않겠니? 장남가와 차남가가 지금 질투에 눈이 멀어 혈안이 되어 있는데 또 무슨 핑계를 갖다 붙이며 방해할지 모르겠구나. 네 할아버지께서 그때 가서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시면 괜히 헛물만 켠 격이 되는 것 아니겠어? 그리고 세전이도 이제 겨우 1, 2년 배웠는데 가게를 관리할 수 있겠니?”
도씨가 어디 남한테 미움 사는 걸 두려워할 사람이던가? 그녀는 그저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을 돌려서 하는 것일 뿐이었다. 임근용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편안하게 잘 살면서 돈도 잘 벌면 언제나 질투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에요. 전 차라리 다른 사람의 질투를 받는 게 낫지 남을 질투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아요. 할아버지께서는 문중의 돈으로 장사를 하지 말라고 하셨을 뿐이에요. 혼수는 자기 거니까 할아버지도 상관하시지 않을 거예요. 셋째 오라버니한테는 외숙부께 부탁드려서 능력 있는 회계원하고 관리인을 뽑아 붙여 주고 월급을 후하게 줄 생각이에요. 그럼 괜찮지 않겠어요? 처음부터 크게 할 필요도 없고 천천히 하면 돼요.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잖아요?”
도씨는 잠시 앉아서 생각해 봤지만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파 왔다.
“생각 좀 해 보마.”
임근용은 망설이는 도씨를 보고 아예 쐐기를 박듯 말했다.
“어머니는 천천히 생각해 보셔도 돼요. 전 일단 수중에 있는 돈으로 가게를 차릴 거예요. 어머니는 생각해 보신 후에 돈을 투자하셔도 상관없어요.”
임근용이 확실하게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 말에는 사실 도씨가 동의를 하든 안 하든 그녀는 무조건 이 가게를 열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도씨가 헛기침을 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임근용을 바라보았다.
“만약 내가 가게를 차리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면?”
임근용이 가볍게 웃었다.
“제가 어머니께 말씀 안 드리면 어머니께서 그걸 어떻게 아시겠어요?”
도씨의 안색이 변하자 임근용이 얼른 덧붙였다.
“물론 전 그럴 생각은 없어요. 제가 어찌 어머니를 속이겠어요? 전 그저 우리가 하루라도 빨리 자립하면 언니랑 신지한테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이러는 거예요. 그렇게 걱정이 되시면 외숙부한테 편지로 한 번 물어보시면 되잖아요?”
* * *
도씨는 이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공 마마에게 말했다.
“우리 근용이가 포부가 날로 커지고 성격이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아. 이게 그 아이한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어. 만약에 그 가게를 여는 걸 허락해 주지 않으면 근용이는 분명 무슨 수를 써서든 열려고 할 거야. 그렇게 많은 돈을 세전이 손에 맡기자니 마음이 영 놓이지가 않네.”
도씨는 예전에 임근용의 말을 따르지 않아 후회한 적이 있었다.
공 마마가 말했다.
“부인, 노비가 볼 때 아가씨가 저렇게까지 굳게 결심한 걸 보면 아가씨 말을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부인께서는 아가씨를 대신해 명의만 빌려 주시면 될 거예요. 어린아이가 소꿉장난 하듯 하는 걸로 무슨 큰 문제가 생기겠어요. 더구나 아가씨 기세를 보면 꼭 손해 볼 것 같지도 않고요. 설령 손해를 본다 해도 아주 큰 손해는 아닐 거예요. 혹시라도 잘되면 아가씨가 앞으로 육씨 가문에 시집가게 돼도 그건 혼수와 완전히 별개가 되는 거잖아요.”
이 말인즉, 임근용에게 너무 많은 돈을 주지 말고, 혼수를 건드리게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정말 하고 싶어 한다면 그녀가 수중에 가지고 있는 약간의 비상금을 가지고 운용하게 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임근용이 수중에 도대체 얼마나 쥐고 있는지 몰랐다. 그저 도순흠이 식량과 향약을 매매하고 나서 임근용에게 한 몫을 떼어주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임근용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어떤 것도 놓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봄가을에 두 번 은을 사서 세금을 내야 하는 시기가 오면, 한 량의 은자를 팔아 10문 정도의 이익 밖에 챙기지 못한다 해도 전혀 귀찮아하지 않을 정도였다.
도씨는 그 다음날 눈 밑이 새까매진 채로 임근용을 불러 이것저것 물었지만 그러고 나서도 아무런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다. 임세전은 가슴을 졸였지만 오히려 임근용은 조급해는 기색 없이 그저 혼자 수중의 돈을 계산해 본 후 임세전에게 가게 자리를 알아보라 했다.
이틀 후, 도씨가 임근용을 불렀다.
“내가 송 마마 편에 네 외숙부께 편지를 한 통 보냈어. 외숙부께서 네가 가게를 여는 것에 동의하시면 내가 열어주마.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어, 네 혼수는 건드리지 마. 대신 손해가 나든 이익이 나든 다 네가 마음대로 하게 해줄게.”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저도 외숙부께 편지를 썼는데 그것도 어머니 편지랑 함께 가지고 갔을 거예요.”
임근용은 도씨가 돈을 투자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매우 안타까웠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니 천천히 하면 된다며 마음을 다독였다.
* * *
입하(立夏)가 되자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닷새가 지나자 지렁이가 밖으로 나왔고 또 닷새가 지나자 작은 오이가 열렸다.
여름옷으로 갈아입은 임근용은 창문 앞에 똑바로 앉아 눈앞에 있는 장부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막 개업한 가게에 자신이 얼마나 더 돈을 투자할 수 있는지 조용히 계산하고 있었다. 도순흠은 의심의 여지없이 이 가게를 여는 것을 찬성하고 지지했지만 그럼에도 도씨는 그녀에게 돈을 투자하려 하지 않았고 혼수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임근용은 일반 여자들의 눈으로 봤을 때는 정말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실제로 운용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한 2,805관의 돈으로 가게를 차렸다.
임근용은 새로 개업한 이 가게가 어떤 난관에 봉착하게 될지 잘 알고 있었다. 첫 번째 문제는 향약이 매우 비싸 이 정도 자본금 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두 번째 문제는 이 새 가게는 다른 오래된 가게들에 비해 안정적인 단골손님이 없고 자금 회수 또한 느리다는 점이었다. 마지막 문제는 물건을 사서 저장해 두어야 하는데 이 또한 거액의 돈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가게의 임대료, 세금, 직원들 월급, 내부 수리비용, 관련자들의 접대비까지 어느 하나도 무시할 수 없었다. 향약의 거래금지가 해제되기 전까지 들어갈 돈을 꼼꼼하게 계산을 해 두어야 버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