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혼례 날짜
육운은 역시 괴로워하며 난처한 듯 작은 소리로 말했다.
“넷째 언니, 근지 언니가 나한테 오해가 있어요. 내가 가면 싫어할 거예요. 춘절인데…….”
임근용이 열정적으로 그녀를 잡아당겼다.
“오해가 있는 거면 가서 풀어야지. 같이 가자, 얼른.”
육운이 손을 잡아 빼며 가식적으로 웃었다.
“아니에요, 난 근주 언니한테 가 볼게요.”
임근용이 아쉬워하며 말했다.
“정말 안 갈래? 내가 너희 둘 사이를 중재해서 화해하게 해 주고 싶었는데. 우리는 한 집안 자매들이잖아. 풀지 못할 오해가 어디 있겠어. 다들 한 발짝씩만 뒤로 물러서면 되잖아.”
육운이 담담하게 말했다.
“전 한 번도 언니들하고 싸우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근주 언니랑 근옥 언니는 그나마 시간이 지나서 화가 풀리고 괜찮아졌는데 근지 언니는 도무지 화를 풀 생각을 안 하네요.”
그녀는 좀 슬퍼졌는지 촉촉해진 눈으로 임근용을 바라보았다.
“넷째 언니, 솔직히 말할게요. 그게 다 이 혼사 때문에…….”
육운은 말을 하다 정신이 들었는지 입을 다물고 후회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요, 이런 말을 해서 뭘 하겠어요? 언니, 신경 쓰지 마요. 나 먼저 가 볼게요.”
그러더니 시녀를 데리고 황급히 다른 길로 갔다.
임근용은 웃음을 거두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여지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저 사촌 아가씨가 뭐 하는 거예요?”
임근용이 반문했다.
“네 생각엔 뭐 하는 거 같아?”
여지가 말했다.
“노비는 늘 저 아가씨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여섯째랑 일곱째 아가씨가 모두 그렇게나 미워했는데, 보세요, 우리가 청주에 다녀오는 동안 전처럼 또 사이가 좋아졌잖아요. 정말 어쩜 이럴까요.”
임근용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야 자기들끼리 알아서 할 문제지.”
지난해 가을, 청주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임옥진의 주선으로 임근주와 대주(代州)의 맹(孟)씨 가문 공자가 약혼을 했다. 그 이후로 육운과 쌍둥이의 사이는 다시 좋아졌다. 육운이 정말로 수완이 대단한 사람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 * *
임근용과 여지가 임근지의 방에 도착하니 임근지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그녀는 옷을 입고 침상에 기대 멍하니 있다가 그녀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화락당에서 왔어요? 육운이도 왔죠? 나도 화락당으로 가려고 했는데 사람이 많다고 해서 안 갔어요.”
“응.”
임근용은 대답하고 화로 덮개 옆에 앉았다. 그녀는 옆에 있는 도자기 접시에서 귤을 가져와 손수건으로 감싸서 껍질을 벗겼다.
껍질을 다 벗기자마자 임근지가 절반을 뺏어갔다.
“아주 부자가 납셨어요. 육운이 그것이 오자마자 우리 큰 조카한테 두 냥이나 되는 금목걸이를 선물했다더라고요. 우리 큰 새언니가 계속 어머니한테 육운이 칭찬을 하는 바람에 어머니께서 또 한바탕 날 꾸짖었어요. 정말 걔보다 더 음흉한 사람도 없을 거예요.”
임근용은 아무 말 없이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임근지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 계속 말하는데 언니는 어째서 대답도 한 마디 안 해요?”
임근용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길 바라? 너랑 같이 욕이라도 할까?”
임근지가 토라진 듯 몸을 돌렸다.
“그래요, 내가 멀리 시집가게 된 건 혼인이 어그러졌기 때문이잖아요. 내가 험담을 하면 좀 어때서요? 걘 욕먹어도 싸요.”
임근용은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입구에서 하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아가씨 여기 있나요?”
임근용은 얼른 일어나며 임근지에게 말했다.
“난 이만 가 볼게.”
임근용은 임근지가 뒤에서 애써 붙잡는 것도 무시하고 서둘러 도씨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집안으로 들어서며 있는 힘껏 억누르려 했지만 도저히 누를 수 없어 살짝 몸이 떨렸다.
“어머니, 어떻게 됐어요?”
도씨가 떠보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내년 가을, 9월 19일로 정해졌어. 네 할아버지와 육 노태야께서 역서를 보고 고른 길일이야. 한참 골랐어.”
임근용은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탁자를 짚고 한참 동안 앉아 있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올해를 넘겼다. 그녀는 치명적인 시기를 비켜 갈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생에 다시는 녕아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도씨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가?”
임근용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며 웃었다.
“내년인데 왜 벌써 와서 말을 하는 거예요?”
“원래 올가을을 생각했었는데 아직 준비가 안 된 게 많다고 내가 거절했어. 처음에는 그쪽에서 반대했는데, 나중에 육함이랑 육 노태야께서 나가서 상의하고 오더니 동의하더라고. 정말 자상한 아이야.”
도씨가 또 한참 동안 이야기를 했지만 임근용은 계속 미소를 짓고 있을 뿐 표정에 전혀 변화가 없었다. 그녀는 절로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얘가 대체 듣고 있긴 한 거야?’
“아가…….”
도씨는 관자놀이를 문지르고 충동적으로 손을 뻗어 계속 올라가 있는 임근용의 입꼬리를 끌어내리려 했다. 그녀는 정확하게 콕 집어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임근용이 요즘 잘 지내는 것 같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게 느껴졌다.
“저도 알아요. 오라버니는 확실히 괜찮은 사람이죠.”
임근용이 고개를 돌리고 창문을 열며 말했다.
“또 눈이 오네요.”
그녀가 잠시 밖을 내다보다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손님이 왔나 봐요. 공 마마가 활짝 웃는 걸 보니 틀림없이 세전 오라버니랑 류아가 왔을 거예요.”
정말로 공 마마가 문 발을 젖히고 웃으며 말했다.
“부인, 세전 공자가 류아 아가씨랑 새해 인사를 드리러 왔어요.”
그러더니 또 말했다.
“세전 공자도 참, 노비한테 좋은 옷감을 하나 선물하시지 뭐예요. 안 받으면 화낼 거라고 하네요.”
도씨가 웃으며 말했다.
“그 아이가 너한테 주는 건데 냉큼 받지 뭘 사양하고 그래? 빨리 들어오라고 해. 그리고 가서 일곱째 공자도 불러와. 며칠 류아를 못 봤더니 얼른 보고 싶네.”
임근용도 재빨리 일어나 사탕, 차, 떡 등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올해 춘절에는 임세전이 류아를 데리고 가서 자기들끼리 명절을 지냈다. 도씨 뿐만 아니라 임근용도 정말로 류아가 보고 싶었다.
잠시 후, 임세전이 빨간색 새 옷을 입은 류아를 안고 들어와 웃으며 도씨에게 세배를 했다. 도씨는 그들에게 각각 묵직한 세뱃돈을 쥐여 주고 류아를 품에 안았다.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으나 임세전은 오늘 평소와는 달리 오사(*乌纱: 고대의 검은색 마포나 면으로 만든 관모)두건을 쓰고 회서(*灰鼠: 친칠라) 가죽으로 장식한 하늘색 상의를 입고 있었다. 허리춤에는 검은 뿔띠를 두르고 발에는 따뜻한 장화를 신었는데 전부 새것이었다. 곧고 큰 키에 점잖고 깨끗해 보이는 그의 모습을 본 도씨는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
“아전, 너도 올해 스무살이 되었지. 무슨 계획이 있니? 숙모가 너 대신 선 자리를 좀 알아볼까?”
임세전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얼굴을 붉혔다.
“숙모께서 이렇게 관심을 가져 주시다니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조카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무일푼입니다. 또 지금은 류아가 있어 납채도 준비할 수 없고 식구를 부양하기도 힘듭니다. 재산을 좀 모으고 나서 몇 년 후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도씨가 말했다.
“걱정할 게 뭐가 있어? 모자란 건 숙모가 채워주면 되지!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살고 부유하면 부유한 대로 살면 돼. 이렇게 가난한 너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나중에 분명 너한테 도움이 될 거야.”
그게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임세전의 코끝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그는 어수룩하게 웃으며 좀체 자리에 앉지 못했다.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본 임근용이 임세전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
“어머니, 셋째 오라버니가 오랜만에 왔는데 놀라서 도망가게 만드실 작정이세요?”
이런 일을 제삼자인 도씨가 어찌 간섭하겠는가? 그녀는 단지 관심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원하지 않는 데 억지로 강요할 필요는 없었다. 도씨는 웃으며 이 화제를 피해 말을 돌렸다.
“너희 남매는 요 며칠 집에서 뭐 했니?”
임세전이 웃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안 했어요. 명절 전에 제가 찻집에서 한가롭게 앉아서 쉬고 있는데 성 북쪽에 사는 한 가족이 장례 비용을 마련하려고 땅을 판다는 말을 들었어요. 1묘에 200문밖에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싼 것 같아서 어제 시간 여유가 좀 있기에 류아를 데리고 성 밖으로 나갔는데 가서 보니 경사지더라고요.”
경사지는 물을 대기 불편해 농사가 힘들고 생산량도 너무 적어 일반적으로 선호하지 않았다. 풍수가 좋은 경우에만 묘지용으로 좋은 값에 팔렸다.
도씨가 말했다.
“비싸지는 않은데 사 봤자 소용이 없겠구나. 나라면 돈을 더 내고서라도 좋은 밭을 사겠어.”
임근용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땅이 몇 묘나 되는데요?”
임세전은 그녀가 흥미를 느끼는 걸 보고 얼른 대답했다.
“대략 100에서 200묘쯤 되는 것 같아.”
임근용이 말했다.
“내 생각에는 셋째 오라버니가 그 땅을 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사서 나무를 심으면 나중에 류아의 혼수를 해 줄 수 있을 거예요.”
작년 가을 청주에 있을 때 임근용은 맹씨 성을 가진 상인 가문의 여자 식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남쪽 지방에서는 딸을 키울 때 나중에 혼수가 부족할 것을 대비해 딸을 낳자마자 묘목을 심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면 딸이 자라면서 나무도 같이 자라 나중에 큰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의 차이로 인해 평주와 청주 쪽에서는 이렇게 하는 사람이 없어 그때는 그녀도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었는데 지금 임세전의 말을 듣고 갑자기 그 말이 떠올랐다. 일리가 있는 방법이고 이렇게 기회가 왔으니 잡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나무를 심는다고? 그런 방법은 정말 생각도 못 했어.”
임세전은 약간 마음이 움직인 듯하다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가 지금 땅을 더 사는 건 위험해. 차라리 숙모와 넷째 네가 사는 게 낫겠어. 내가 대신 심부름을 할게.”
지금 그의 상황은 좀 특수했다. 비록 혈혈단신 맨몸으로 집을 나왔지만 족보상에는 아직 그와 류아의 이름이 남아 있었다. 율법에서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재산을 별도로 나누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너무 눈에 띄는 행동을 하면 그것이 곧 스스로를 옭아매는 덫이 될 수도 있었다. 그는 차라리 계속 임근용을 도와 장사를 하며 돈을 투자하는 것이 숨기기도 쉽고 돈도 빨리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미래의 문제는 나중에 다시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그가 사지 않겠다고 하자 임근용도 괜한 가식을 떨며 사양하지 않고 도씨에게 직접 권했다.
“어머니, 어머니께서 사세요. 나무를 심어두면 나중에 신지가 장가를 가든 아이를 낳든 다 도움이 될 거예요.”
비적의 난이 일어나면 온전히 남을 집이나 가게가 얼마나 될지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경사지를 사서 나무를 심는 건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그때쯤 되면 묘목은 이미 꽤 자라 특별히 사람이 돌볼 필요는 없지만 또 아직 작은 나무라서 남들에게 도둑맞을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비적의 난을 피했다 돌아와 몇 년만 더 기다리면 큰 재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임세전이 말했다.
“내가 다시 가서 가격을 얘기해 볼게. 좀 더 싸게 살 수 있을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