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미풍
조정에서 37가지 향약의 매매를 허가해 주었지만 오씨가 세상을 떠난 후 도순흠은 예전만큼 장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전부 도봉당에게 맡겼다. 도씨도 더 이상 그를 난처하게 하고 싶지 않아 핑계를 대고 자기 돈을 회수해 왔다. 그녀는 그 돈 중 일부를 임근용의 향약 가게에 투자했지만 아직도 수중에 여윳돈이 꽤 많았다. 도씨는 이미 돈을 놀리는 것에 익숙해져서 쥐고 있던 여윳돈을 투자할 곳을 찾고 있었는데 임근용의 이런 권유를 듣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슨 나무를 심어야 할까? 우리 장원에는 나무 심을 줄 아는 사람이 없는데.”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땅도 있고 돈도 있어서 무슨 나무를 심을까 고민하고 있으면서 설마 나무 심을 사람을 못 구할까 봐 그러세요?”
도씨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 어미가 멍청하구나.”
도씨는 잠시 생각해 보다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들어 말했다.
“근용아, 네가 살래? 아니면 전처럼 너와 신지가 반반 사는 건 어떠니?”
임근용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제 혼수는 이미 충분해요. 염지는 이제 곧 옥토가 될 거예요. 전 향약 가게에서도 돈을 벌고 있잖아요. 신지는 앞으로 돈이 많이 필요할 거예요.”
그는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고 부모의 장례를 책임져야 했다. 이런 일들은 하나 같이 다 돈이 드는 일이었다.
도씨는 그 향약 가게에 돈만 투자한 것이라 나중에 수익을 나누면 그뿐, 따로 전혀 신경 쓸 것이 없었다. 임근용은 지금 또 임신지의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도씨는 절로 감동한 눈빛으로 임근용을 바라보았다.
“아가, 아니면 세전이한테 부탁해서 다른 곳에 또 이런 경사지가 있는지 알아보고 너도 사서 나무를 심는 게 어떠니…….”
임근용은 도씨의 눈빛을 견디기 힘들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됐어요. 적당한 게 있으면 신지한테 사주세요.”
그녀는 정말로 필요가 없었다. 임씨 가문의 근거지는 바로 이곳이었다. 임신지는 미래에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굳이 여기다 돈을 낭비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한쪽 옆에 앉아 있던 임세전은 모녀 두 사람이 앉아 서로 사라며 밀어 주는 것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
“아직 사지도 못했는데 왜 벌써부터 서로 양보를 하고 그러세요. 일단 사고 나서 다시 얘기해요…….”
공 마마도 한마디 농담을 던졌다.
“어째 부인께서 아가씨를 아끼시는 것보다 아가씨께서 부인과 일곱째 공자를 더 아끼시는 것 같은데요?”
임세전의 눈빛이 약간 어두워졌다.
“세전 형님, 류아,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이때 임신지가 들어오더니 임세전 남매를 보며 아주 기뻐했다. 그는 우선 임세전이 선물로 보내준 문방사우(*文房四宝: 종이, 붓, 먹, 벼루)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하고 소매를 더듬어 색실로 자수를 놓은 주머니를 하나 꺼내더니 류아의 손에 쥐여 주었다.
“오라버니가 사탕 사 왔어.”
임신지는 류아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말했다.
“류아야, 건강하고 평안하게 쑥쑥 자라거라!”
모두들 잠시 멍해졌다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임세전의 그 희미한 슬픔도 웃음소리와 함께 희석되어 사라졌다. 도씨는 기쁜 마음에 임신지를 품에 안고 쪽 하고 뽀뽀를 했다.
“우리 일곱째가 책을 읽더니 이렇게 철이 들었구나.”
임신지는 부끄러워하며 손을 뻗어 도씨의 얼굴을 밀고 얼굴을 붉히며 중얼거렸다.
“저도 이제 다 컸으니까 어머니도 어린아이 취급하지 마세요. 제 동창들이 보면 비웃을 거예요.”
이 말로 인해 결국 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그는 부끄러운 마음에 화를 내며 시녀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왜 웃어?”
임근용은 그가 화를 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더 웃으면 울 것 같아서 얼른 끼어들며 말했다.
“신지야 너 어디 갔다 왔어? 늦게 왔네.”
임신지는 아직도 마음이 불편한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말했다.
“육함 형님이랑 넷째 형님한테 가서 놀려고 했는데 넷째 형님이 방에 없었어. 육함 형님이 세전 형님이 왔다는 말을 듣고 나한테 세전 형님이랑 같이 놀자면서 불러오라 했어.”
그러더니 임세전의 손을 끌어당기며 같이 가서 놀자고 말했다.
도씨는 임세전과 육함이 더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공 마마에게 지시했다.
“부엌에 돈을 좀 가져다주고 공자들 술상을 잘 차려 주라고 해.”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밖에서 하엽이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삼노야께서 오셨습니다.”
임 삼노야가 안으로 들어오더니 거짓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멀리서부터 너희들 웃음소리가 들리더구나. 어, 아전이도 있었구나?”
그는 임세전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임신지가 임세전의 손을 꼭 잡고 있는 것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렇게 다 커가지고 아직도 형들 손이나 잡고 다니다니, 정말 체신머리가 없구나.”
임신지는 임세전의 손을 놓지 않고 오히려 더 꽉 쥐며 말했다.
“육함 형님이 세전 형님을 초대해서 같이 놀자고 했어요.”
임 삼노야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옆에 말없이 앉아 있는 도씨와 임근용을 힐끗 훑어보고 말했다.
“모처럼 집에 돌아왔으니 시간 있을 때 다섯째 형님한테 가서 이야기도 나누고 해야지, 그렇게 혼자서만 놀면 되겠느냐.”
임신지는 전혀 개의치 않아 하며 말했다.
“다섯째 형님한테도 가 볼 거예요, 아직 그럴 겨를이 없었을 뿐이에요.”
임 삼노야의 안색이 한결 나아졌다. 그는 형제끼리 우애가 좋아야 한다며 몇 마디 훈계했다. 임신지는 아주 진지하게 그의 말을 들으며 반박하려 하거나 불쾌한 내색을 보이지 않았지만 임세전의 손 역시 놓지 않았다.
도씨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서 류아를 임근용에게 넘겨주고 아이들을 쫓아냈다.
“다들 할 일이 있지 않니? 어서 가 보거라. 사람들이 기다리겠다.”
임근용은 공 마마에게 눈짓을 한 뒤 류아의 손을 잡고 임세전과 임신지에게도 함께 나가자며 손짓했다. 밖으로 나오니 류아를 제외한 사람들의 기분이 다소 가라앉아 있었다. 임근용이 임세전을 위로하려는데 임신지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난 형님이 좋아요.”
임세전이 잠시 멍해졌다 이내 웃으며 말했다.
“나도 일곱째 너 좋아해. 가자, 네 다섯째 형님한테 가 보자.”
그러고 나서 그는 임근용을 향해 활짝 웃고 류아에게 몇 마디 당부하더니 임신지와 함께 갔다.
우리 신지가 많이 컸구나. 임근용은 너무 기쁜 나머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오늘 임세전과 임신지가 보여준 모습은 정말로 그녀를 뿌듯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초봄이 오면 임세전에게 또 다른 임무를 줄 생각이었다.
* * *
이 해는 임근용과 임씨 가문 삼남가, 도씨 가문, 임세전에게 아주 중요한 한 해였다.
봄이 되자 도씨는 넓은 경사지를 매입해 묘목을 심고 책임지고 관리할 관리인도 고용했다. 이와 동시에 도씨 가문에서도 경사지를 대량으로 사들여 묘목을 심었다. 평주와 청주에서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 이 흐름을 따랐고, 소수의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망하는 태도를 취했다. 놀랍게도 이 흐름을 따른 사람들 중에는 육 노태야도 있었다.
하지(夏至)가 되자, 임세전은 도씨 가문, 매씨 성의 상인과 연합하여 대량의 겨울 밀을 북부 국경지대로 운반했다. 이때 2만 전가량 되는 식량을 운반해 10만 전가량의 다인(*茶引: 송나라 때 발급한 차 거래 허가증)을 받았다. 그는 이 다인을 가지고 회남(淮南)의 십삼산(十三山)으로 가 차로 바꿔 태명부로 가져다 팔았다. 이번에는 비밀도 아니었고 누군가가 똑똑해서 먼저 예측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찻집이나 주루, 여관 등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소식을 캐고 다니던 임세전이 뜨거운 열정과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앞세워 과감하게 도전한 덕이었다. 거기에 임근용이 충분한 자금을 지원해주어 일을 성사시킨 것이다.
평주에서 명망이 높은 세 가문 중 하나인 임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은 도둑 같은 심보는 있지만 도둑만큼의 담력은 없어서 그저 꼴깍거리며 침만 삼킬 수밖에 없었다. 오씨 가문은 얼마 전 있었던 오상의 과거 응시 사건에 타격을 받아 지금 집안에 그런 일을 주관할 사람이 없어 스스로 포기했다. 육씨 가문은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관망적인 태도를 취하며 발을 담그지 않았다.
가을이 되자 도씨 명의로 임세전이 운영하는 가게에 잡화점을 하나 더 냈다. 계속 임세전을 따라다니며 일을 거들었던 철이우가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책임감 있게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에 그 잡화점의 관리인으로 발탁되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새 도봉당은 혼자 강남에 가서 가게를 하나 열었다. 도순흠이 후방을 지키며 질 좋고 값싼 향약, 가죽 등의 물건을 구매해 끊임없이 강남의 가게로 보냈고 도봉당은 강남에서 찻잎, 비단, 자수를 사서 임세전과 청주에 있는 도씨 가문의 가게로 보냈다.
동지가 되자 꼬박 일 년여를 거처 저강에 만들었던 제방의 기초 공사가 끝나 내년 4월이 되면 천하수를 염지에 끌어다 댈 수 있게 되었다.
기세가 아주 좋았다.
납매화가 필 때쯤 임근용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눈앞에 놓인 장부를 확인하며 이 일 년 동안의 성과에 매우 만족했다. 그녀는 수중에 점점 많은 돈이 쌓여 전에 없던 든든함과 만족감을 느꼈고 도봉당을 부추기는 것에 성공했다는 사실에도 아주 뿌듯함을 느꼈다. 그녀는 도순흠의 마음을 움직여 강남에 땅을 사서 가게를 개업하게 만들었다. 이건 그야말로 대성공이었고 그 덕택에 그녀는 밤에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납매화의 향기가 그윽해지는 계절에 소문 하나가 미풍처럼 빠르게 평주에 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임씨 가문 삼남가와 도씨 가문에서 최근에 돈을 번 건 모두 임세전 덕분이었는데, 그렇게 많이 벌고도 그에게 조금도 나누어 주지 않고 그를 하찮게 여긴다고 떠들어 댔다. 하지만 곧 또 다른 누군가가 사실 그런 말들은 다 틀렸고 임세전은 임씨 가문 삼남가에서 고용한 총괄 관리자에 불과하며 진짜 이런 일을 지시한 사람은 줄곧 배후에 숨어 있다고 말했다.
세상에는 유언비어와 호기심이 넘쳐났다. 필사적으로 남의 사생활을 염탐하고 특별한 목적도 없이 그저 이런 소문들을 엿듣고 말하기 좋아하는 유형의 사람들이 존재했다. 뒤에 말한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은 문득 깨달았다. 알고 보니 뒤에 숨어 계책을 꾸민 사람은 성질이 급하고 성격이 나쁜 임 삼부인 도씨도, 부유하지만 줄곧 다른 지방에서 저조한 기세로 안전만을 추구하던 도순흠도, 갑자기 시골 구석에서 튀어나온 가진 것 하나 없는 가난한 소년인 임세전도 아닌 바로 임씨 가문의 넷째 아가씨였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깊은 규방 안에서 자랐으면서도 이렇게 대단한 능력을 가진 임씨 가문의 넷째 아가씨에게 무한한 흥미를 느꼈고 그녀에 대해 갖가지 추측을 하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그녀에 대한 수많은 판본의 이야기가 항간에 떠돌았고 임씨 가문 넷째 아가씨의 명예 따위는 알 바 아니라는 듯이 임씨 가문 넷째 아가씨라는 이 칭호가 계속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소문이 너무나 빨리 퍼져서 임 노태야와 임세전 등 주변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했다.
이 소문이 임씨 가문에 전해졌을 때 임근용은 조용히 창가에 앉아 수틀을 앞에 놓고 겨울의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자신의 혼수에 수를 놓고 있었다. 붉은 비단 위에는 원앙이 물장난을 하는 도안이 그려져 있었는데 아주 즐겁고 유쾌해 보였다. 그녀는 아무런 상념 없이 그저 자수를 완벽하게 놓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 후 한동안 그녀는 매일 이 도안을 완성하는 데만 집중했다. 이 자수를 통해 남들에게 그녀가 얼마나 재주 있고 현숙한 여자인지 보여주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