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최장(催妆)
“넷째 언니, 대체 왜 이렇게 변했어요?”
임근용은 웃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섯째야, 내가 뭐가 어떻게 됐다는 건데? 지금 내가 가만히 앉아서 너한테 손가락질당하며 욕먹고 있지 않는다고 뭔가 잘못됐다고 말하는 거야? 근주야, 이제 우리도 다 컸어. 어렸을 때처럼 그렇게 철없이 굴면 안 되지.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 줄게. 앞으로 우리는 각자 시집을 갈 거고 그러면 서로 의지하고 도와야 해. 누가 언제 누구한테 도움을 청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갑자기 방을 지키고 있던 시녀들의 시선이 전부 이쪽으로 집중됐다. 그녀들은 각기 다른 의미를 담은 눈빛으로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임근주는 몹시 분했지만 감히 반박할 수 없었다. 이건 계략이었다. 정의라는 명분을 가진 계략이라 임근주가 조금만 말실수를 해도 바로 트집을 잡혀 안 좋은 사건으로 번질 수 있었다. 서생은 3일만 안 봐도 괄목상대하게 된다 했던가. 그녀들이 임근용과 소원해졌던 이 2, 3년 동안 임근용은 이미 범접하기 힘든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더 이상 예전의 그 다루기 쉽고 울분을 참으며 아무 말도 못 하고 급하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던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각자 다른 마음을 품고 의심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자 임근주는 엄청난 좌절감과 분노가 밀려 왔지만 꾹 눌러 참을 수밖에 없었다. 임근주는 벌써 자리에서 일어난 임근옥에게 다시 앉으라고 손짓하고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
“넷째 언니, 오해예요. 난 언니가 오해할까 봐 말을 꺼냈던 건데…….”
임근용이 미소를 지으며 더없이 진지하게 말했다.
“오해 안 해.”
오해를 안 했다고? 임근주는 분노를 참으며 임근옥의 곁으로 돌아와 앉았다. 두 사람은 굳은 표정으로 잠시 앉아 있다가 있어 봤자 아무 의미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을 고했다. 임근용은 아까의 일을 잊은 듯 빙그레 웃으며 그녀들에게 잠시 더 있다 가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임근용의 가식적인 웃음을 보고 마음속에 혐오감이 일었다. 그러니 어찌 더 머물겠는가? 그녀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임근용도 그녀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책을 보며 조용히 수줍은 척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하고 차분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방 안에 있던 시녀들도 시선을 거뒀다.
방금 그 일은 사실이 반쯤 어렴풋이 가려져 있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농후했다. 입을 놀리기 좋아하는 누군가가 이 일을 바로 임 노부인에게 전달했다. 중요한 순간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고 생각한 임 노부인은 청리를 보내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묻고 질서를 어지럽히지 말라고 경고했다. 임근용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 일도 없었어. 잘못 봤나 봐.”
청리가 웃으며 말했다.
“예, 아가씨는 너그러운 분이시니까요.”
임근용은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청리에게 주머니를 찔러 주었다.
“청리 언니, 전부터 언니가 날 많이 보살펴 준 거 잘 알아.”
청리는 고개를 숙이고 웃으며 사양하지 않았다.
“아가씨 축하드려요. 만사형통하시길 기원할게요.”
그날, 육씨 가문에서 보내온 최장 물품 중에는 금박을 입힌 붉은 면사, 5남 2녀 꽃부채, 화채전과(画彩钱果), 목욕 용품, 화장품 등이 포함되어 있었고 물건의 종류가 아주 많고 풍성했다. 도씨와 임 삼노야는 체면이 산다며 좋아했고 임 노부인 역시 얼굴을 당당하게 들 수 있겠다며 기뻐했다.
그들 중에서 가장 평온한 사람은 임근용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가족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싶을 때는 대답하고 대답하고 싶지 않을 때는 수줍은 척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녀는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저녁 무렵이 되자 누군가가 밖에서 작은 나무상자를 하나 가지고 왔다. 안에는 소박하고 꾸밈없는 작은 금여의 하나가 들어 있었다. 어떤 보석도 박혀 있지 않았고 약 한 냥 정도 무게가 나갔는데 예쁜 매듭을 지으면 치마에 장식으로 달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임세전이 보낸 결혼 선물이었다. 그는 벌써 한참 전에 선물을 사두었지만 평제사에 보내 개광을 하느라 얼마 전에야 찾아온 것이었다.
임근용에게 이 물건은 다른 어떤 물건들보다 훨씬 귀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정중하게 그 작은 금여의를 상자에 넣고 제대로 잠가 전처럼 열쇠를 챙겼다.
“넷째 누나, 열쇠를 왜 누나가 갖고 있어?”
임신지가 문 발 밑에 서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평씨를 제외하고 임 노부인부터 도씨, 임근음까지 체면을 중시하는 집안의 여자 가족들이 이렇게 열쇠를 스스로 챙겨 다니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평씨가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그녀는 임씨 가문의 며느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평씨가 시녀에게 집에 가서 물건을 찾아오라고 하며 소매에서 손수건을 꺼냈는데, 그 손수건에는 반짝이는 열쇠가 달려 있었다. 그걸 본 임씨 가문 하인들은 다섯째 며느님의 옷은 분명 소매부터 망가질 거라며 몰래 비웃었다. 평씨는 수치스러워하며 웃고 넘어갔지만 그다음날부터 그 열쇠 꾸러미는 그녀의 시녀 목에 걸려 있었다.
이 일은 당연히 그 말 많은 누군가가 임신지에게 알려준 것이었다. 그 당시 임신지는 별로 개의치 않아 하며 평씨가 가난한 집 출신이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오늘 임근용에게서 똑같은 모습을 본 것이다. 열쇠가 두 개뿐이라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열쇠인데 여지 같은 시녀가 관리하는 게 맞지 않은가?
임근용의 미소가 살짝 굳었다.
“이 열쇠는 아주 중요한 거야.”
임근용은 이것들이 없으면 불안해서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었으니 정말로 중요한 물건이라 할 수 있었다.
임신지가 작은 미간을 찌푸리고 어른스러운 척하며 임근용 앞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런 거라면 누나가 가지고 있어도 돼. 하지만 남들이 보고 비웃게 하지는 마. 난 누나가 다섯째 형수님처럼 남들한테 비웃음을 당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
임근용은 임신지의 신중하고 진지한 표정을 보고 갑자기 감동이 밀려왔다. 그녀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어 입꼬리를 치켜들고 말했다.
“신지야, 그럼 만약에 내가 남한테 비웃음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면? 그때 넌 어떻게 할 거야?”
임신지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내가 누나를 도와줄게.”
“에휴, 하지만 넌 아직 어리잖아.”
“난 앞으로 계속 클 거야. 작년보다 키가 엄청 많이 컸어.”
임신지가 얼른 일어나 까치발을 들고 임근용과 키를 비교했다.
“봐봐, 벌써 누나 어깨 정도 돼.”
임근용은 그의 까치발을 못 본 체하며 대답했다.
“그래, 내년이면 나만큼 크겠네.”
임신지가 얼굴을 붉혔다.
“그렇게까지 크려면 아직 몇 년 더 있어야 해.”
그러더니 까치발을 내리며 말했다.
“어쨌든 내가 누나랑 어머니, 그리고 셋째 누나를 보호할 거야.”
임근용이 즐거워하며 계속 그를 놀렸다.
“만약에 네가 다 컸는데 다른 사람들이 너보다 대단하거나 권력이 있으면 어떡할 거야? 예를 들어 육함 형님이 진사에 합격했는데 날 괴롭히면 어떻게 할 건데?”
임신지가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그럴 리 없어! 형님이 안 그럴 거라고 했어. 육함 형님이 나한테 누나한테 잘해 줄 거라고 약속했단 말이야.”
예쁜 것……. 임근용은 더욱 온화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안 그래도 나중에 변하면 어떡할 거야?”
임 삼노야라는 본보기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임신지는 곧 이런 가능성을 떠올리고 난처해하며 머리를 만졌다.
“그래, 선생님께서 가장 변덕스러운 게 사람 마음이라 하셨어.”
그는 육함이 임 삼노야처럼 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초조해졌다.
“어쨌든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진사가 되면 돼. 내가 벼슬을 하면 아무도 우리 가족을 괴롭힐 수 없을 거야.”
임근용은 한쪽 손을 내밀어 그와 손바닥을 마주쳤다.
“너 오늘 했던 말 잊으면 안 돼! 오늘부터 넌 다 큰 남자야. 누나는 시집가야 해. 누나를 바래다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부터 네가 어머니를 잘 보살펴 드려야 한다는 걸 명심해. 열심히 공부해서 꼭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해.”
임신지는 우렁차게 그녀와 손뼉을 치더니 갑자기 눈시울을 붉혔다.
“넷째 누나, 보내기 싫어…….”
하나가 눈물을 참지 못하니 둘 다 눈물이 터졌다.
임근용이 얼른 그의 눈물을 닦아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가 셋째 누나처럼 멀리 시집가는 것도 아니잖아. 공부를 마치고 나면 언제든지 날 보러 와도 돼.”
* * *
2월 9일, 주씨를 비롯한 임씨 가문의 부부들과 자식들이 모두 나와서 일렬로 서 있으니 집안이 아주 꽉 찬 것처럼 느껴졌다. 복을 빌어주는 부인이 사람들을 데리고 임근용의 혼수를 가지고 당당하게 육씨 가문으로 갔다. 그들은 휘장을 치고 금침을 펼치고 신방을 정리했다. 신방의 정리가 끝나자 공 마마와 여지, 계원은 신방을 지키며 다른 사람이 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이날 밤 임근용은 이를 악물고 침상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한밤중이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녀는 여지가 곁에 없고, 앵두가 이부자리를 제대로 깔 줄 몰라 잠자리가 불편한 데다 저녁도 배불리 먹지 못해 잠이 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날씨가 추운데 이불 속의 난로는 또 너무 뜨거웠다. 어쨌든 여러 가지를 불편해하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끊임없이 꿈을 꿨다. 꿈속에서 온갖 기괴한 일들이 있었는데 그녀는 분명 자기가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좀처럼 깨어날 수가 없었다.
계 마마가 살짝 이를 갈며 눈을 감고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임근용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아가씨, 아가씨, 일어나세요. 날이 밝았어요. 목욕하셔야 해요. 지금 안 일어나시면 늦을 거예요.”
임근용은 피곤한 표정으로 눈을 떴다. 마치 마차에 치이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힘이 없고 시큰거렸다. 그녀는 잠시 넋을 놓고 방 안의 밝은 불빛과 침상 앞에 서 있는 계 마마, 앵두, 두아, 도와주러 온 춘아와 하엽 등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체온을 재려 하는 계 마마의 손을 밀치며 말했다.
“나 괜찮아. 준비하자.”
* * *
사시(*巳时: 오전 9~11시)에 임근용은 목욕과 단장을 마치고 가묘(*家庙: 집안에 있는 사당)에 절을 하며 작별을 고했다.
미시(*未时: 오후 1시~3시)가 되자 창밖에서 음악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고 역술가(曆術家)가 미리 골라두었던 길시에 길사를 읽으며 신부에게 가마에 오르라고 재촉했다. 임근용은 한 무리의 사람들에 둘러싸여 정당 앞으로 가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비록 딸이 멀리 시집가는 건 아니었지만 도씨는 똑같이 울며 아쉬워했다. 반면에 임 삼노야는 어깨가 한껏 올라가 의기양양해했다. 그는 강하고 힘 있는 말투로 임근용에게 몇 마디 훈계했다.
임근용은 눈을 내리깔고 듣다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 그녀는 갑자기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눈가는 메말라 전혀 눈물이 나지 않았다. 계 마마가 부모를 떠날 때는 슬퍼하고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마땅하다고 눈치를 주며 남몰래 슬쩍 그녀를 꼬집었다.
임근용도 그녀의 지적이 맞다고 생각해 울어 보려 노력했지만 정말로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주씨가 상황을 보고 희낭(*喜娘: 혼례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여성)에게 얼른 눈짓을 하자 희낭이 달려와 큰 소리로 덕담을 하며 임근용을 꽃가마에 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