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182
182화. 말문이 막히다
육함은 조용히 밥 먹는 데 집중하며 매화전병을 집어 임근용의 그릇에 놓아 주더니 말했다.
“이거 맛있소.”
임근용도 숯불에 구운 모란전병을 그릇에 놓아 주며 말했다.
“이거 먹어봐요.”
한쪽에서 지켜보던 계 마마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두 사람이 서로 음식을 챙겨 주는 모습을 보니 정말로 상대를 손님처럼 존경하는 것 같아 아주 좋은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함이 갑자기 젓가락을 놓고 일어서며 말했다.
“당신은 천천히 먹어요. 난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먼저 처가로 출발해야겠소.”
임근용도 그를 따라 젓가락을 놓고 옷걸이 쪽으로 가 그의 겉옷을 꺼내 걸쳐 주며 말했다.
“조심히 다녀와요.”
육함이 갑자기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임근용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무슨 할 말 있어요?”
“아니오. 한동안은 별일 없을 테니 당신은 한숨 더 자 둬요.”
육함이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갔다 오겠소.”
입구까지 걸어간 그는 잠시 멈춰 섰다가 다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임근용은 다시 식탁으로 돌아와 그가 건네준 뱅어와 매화전병을 접시 한쪽으로 밀어 버리고 다른 음식을 골라 먹었다. 그녀는 밥을 다 먹고 나서 여지와 다른 시녀들에게 남은 것을 나눠 먹으라고 한 뒤 옆에 앉아서 책을 보며 소화를 시켰다.
그녀가 이제 막 책을 두 장 정도 읽었는데 여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조심하세요. 그 육 삼부인이 정말 보통이 아니시네요. 아까 일부러 아가씨를 떠본 거잖아요. 아가씨께서 그분을 완전히 무시하긴 힘들겠지만 그분도 대부인의 안색을 살펴야 하니 마음대로 하시진 못 할 거예요. 이러나저러나 그분이 이소야께 아가씨에 대해 안 좋게 말을 하면 아가씨한테도 좋을 게 없잖아요.”
임근용은 그녀의 걱정 가득한 얼굴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괜찮아. 이불이나 좀 깔아 줘.”
* * *
임근용은 한잠 자고 일어나 이때쯤이면 임옥진도 낮잠을 자고 일어났겠다 싶어 잠시 몸단장을 하고 임옥진에게 얼굴을 비추러 갔다. 그녀가 육운의 집 앞을 지나쳐 가는데 계 마마가 그녀에게 물었다.
“육운 아가씨를 불러서 같이 가시는 게 어때요?”
이때야말로 시누이와 친분을 쌓을 좋은 기회이지 않은가.
임근용이 담담하게 말했다.
“됐어.”
그녀는 계 마마가 다시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곧장 앞으로 걸어갔다.
* * *
방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임옥진은 임근용이 왔다는 말을 듣고 방 마마에게 눈짓해 머리를 정돈하고 비녀를 바로 꽂았다. 그녀는 병풍 앞에 있는 자개 의자에 앉아 허세를 부리며 말했다.
“들어오라 해라.”
임근용이 방에 들어가니 임옥진은 아침보다 훨씬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머리에 진주를 꽂고 금박을 입힌 치마를 입고 있었다. 임옥진은 단정한 자세로 자개 의자에 앉아 한 손을 자개 탁자에 내려놓고 형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임근용은 갑자기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 임옥진은 이 방에 있는 자개 탁자와 의자를 가리키며 그녀에게 이런 걸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의 말투에는 과시뿐만 아니라 임근용을 무시하며 깔아뭉개려는 의도도 깔려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임옥진이 아침저녁으로 두 벌의 옷을 갈아입고 갈수록 더 화려하게 꾸미는 걸 보니 그녀를 깔아뭉개려는 의도는 여전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임근용에게 돈 많다고 잘난 척할 생각 마라, 돈은 나도 많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자개 탁자와 의자는 이런 것도 본 적 없는 촌뜨기라며 임근용을 비웃기 위해 내놓은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오늘 임근용은 그녀의 안하무인식 자랑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아 먼저 선수를 쳤다.
“고모, 이 자개 탁자와 의자는 강남에서 가져온 거죠? 정말 멋지네요.”
임옥진은 역시나 약간 의아해했다.
“본 적 있니?”
임근용은 반쯤은 거짓말을 섞어 말했다.
“저희 외삼촌 댁에 있어요. 어머니께서 사촌 오라버니한테 두 벌(*두 개 또는 여러 개 모여 갖추는 덩어리를 세는 단위, 세트의 순화어)을 구해 보라고 하셨었는데 제가 너무 비싼 걸 쓰면 어른들 보시기에 좋지 않을 것 같아 싫다고 했어요.”
임옥진은 잠시 침묵했다 귀한 자개 탁자를 두어 번 두드리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젊은 부부가 뭐 하러 이렇게 호화로운 걸 쓰니? 나도 나이가 이 정도 되고 나서야 쓰기 시작한 건데. 거기 앉거라.”
임옥진은 순간 흥미가 떨어진 표정이었다.
“고모 말씀이 맞아요.”
임근용은 영리하게 대답하고 말석에 앉았다. 그녀는 방 마마가 건네주는 차를 받아 고개를 숙이고 차를 마셨다.
임옥진은 임근용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자 하는 수 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용, 우리는 친고모와 조카 사이이고 또 고부지간이야. 무슨 어려운 일이나 다른 사람에게 하기 힘든 말이 있으면 나한테 하렴. 이 집안에서 널 가장 아끼는 사람은 바로 나고 널 가장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은 육운이라는 걸 명심해. 육함이는 너한테 잘 해 주니?”
임근용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예, 시집오기 전에 어머니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이소야도 저한테 아주 잘 해 주고요.”
“다행이구나. 네 어머니 말씀이 맞아…….”
이런 대화를 몇 마디 나눈 뒤 임옥진은 아까의 단정하고 위엄 있던 모습은 싹 사라지고 아침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며 냉소했다.
“아침의 그 일은 처음에는 잘 처신했다만 나중에 네가 대신 그 물건을 감출 필요는 없었잖니. 그걸 방 한복판으로 보내서 그 여자가 한 짓을 사람들한테 제대로 보여 줬어야지! 그 여자는 어쩜 그리 주제도 모르고 염치도 없단 말이냐!”
임근용은 처음부터 그녀가 여씨 이야기를 꺼낼 거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사실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일이 그렇게 된 것뿐이에요. 전 거기에 물건이 숨겨져 있을 줄은 몰랐어요.”
그리고 잠시 말을 멈췄다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제가 덮어 주지 않으면 어쩌겠어요? 어쨌든 이소야의 친어머니시잖아요. 거기서 소란을 피우면 사람들 앞에서 모양새가 안 좋아질 텐데 그걸로 이소야가 절 미워하면 어떡하겠어요?”
“너…… 너 그 말은 그 여자를 시어머니로 대접하기라도 하겠다는 뜻이니?”
임옥진은 분노해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남들이 자기 면전에서 여씨가 육함의 친모라고 말하는 걸 제일 싫어했다.
임근용은 전혀 사죄할 뜻이 없는 듯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
“제 진짜 시어머니는 당연히 고모이시지요. 그분이 제 시어머니는 아니시지만 그래도 숙모시잖아요. 게다가 관계가 또 이러니 제 입장에서는 반드시 어른으로 대우해드려야 해요. 안 그러면 어쩌겠어요? 남들한테 제가 불효하고 현명하지 않다고 손가락질할 빌미를 만들어 주면 안 되잖아요. 그럼 사람들은 분명 저와 고모를 연관시키고, 아운이까지 끌어들일 거예요. 결국 우리 임씨 가문의 명성에도 먹칠을 하게 될 테고 이건 할아버지의 가르침에도 어긋나는 일이에요. 이래선 좋을 게 하나도 없어요. 이소야와 마음이 멀어지는 것도 좋지 않고요.”
임옥진은 화가 나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 되어 임근용을 꾸짖으려 했다. 그녀는 앞으로를 생각해 도리니 예의니 따지지 않고 화풀이를 하려 했다. 하지만 임근용이 빙긋 웃으며 부드러운 말투로 또 다시 말을 이었다.
“전 말도 잘 못 하고, 멍청한 데다 남의 호감을 살 줄도 몰라서 그냥 옳다고 생각하는 걸 그대로 말하는 사람이에요. 고모께서 기분 나쁘셨다면 꾸짖으셔도 괜찮아요. 말대꾸하지 않을게요.”
이렇게 말하는데 임옥진이 뭐라 꾸짖는단 말인가? 임옥진이 숨을 크게 내쉬고 말했다.
“이만 돌아가거라.”
임근용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깜짝 놀라서 두려운 척하며 말했다.
“고모, 화나셨어요? 그래서 절 보기 싫으세요?”
임옥진은 말이 통하지 않자 힘없이 손을 내저었다.
“아니, 피곤해서 그래.”
임옥진은 정말로 피곤했고 가슴이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그녀는 아랫사람에게 지적을 받고 말문이 막혀 버린 것이 기가 막혔다.
임근용이 더없이 진지하게 말했다.
“고모, 그럼 푹 쉬세요. 저녁에 이소야와 함께 인사드리러 올게요.”
임옥진이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됐다, 둘째는 날이 어두워져서야 돌아올 거야. 오늘은 그냥 푹 쉬거라.”
이에 임근용이 인사를 올렸다.
“이렇게까지 조카를 배려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드려요. 그럼 내일 아침에 문안 인사를 드리러 올게요.”
임근용이 밖으로 나가자 방 마마가 얼른 나서서 임옥진을 달랬다.
“부인, 너무 걱정 마세요. 이소부인께서 세심하시고 매사에 정도를 지키는 분이니 그분이 꼬드길 수 없을 거예요.”
사실 임근용의 말은 정말로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임옥진이 어떤 성격이던가? 그녀는 아주 변덕스러운 성격이라 어떤 때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가 금세 그 사람과는 같이 지낼 수 없다 하며 모든 걸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고 바른 말은 듣지 않으려 했다. 오직 육 노태야만이 그녀를 억누를 수 있었고 육운만이 그녀를 달랠 수 있었다.
임옥진이 흉악한 말투로 말했다.
“저 아이한테 뭘 기대한단 말이냐? 내가 한 마디 하면 저 아이는 열 마디를 대들어! 그 어미에 그 딸이라고 역시 지 어미가 저렇게 가르친 거지. 조카딸만 아니었으면 뺨을 후려쳐 법도와 효도가 무엇인지 똑똑하게 가르쳤을 텐데.”
임옥진이 어찌 감히 임근용의 뺨을 때리겠는가? 때리는 거야 어려울 것 없지만,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으면 뭐라 대답한단 말인가? 방 마마는 이것이 그저 임옥진의 허세에 불과하다는 걸 눈치채고 거짓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친고모와 조카 사이 아닙니까? 이소부인께서 말을 예쁘게 못 하시긴 했지만 정말로 부인을 위해서 하신 말씀 같아요.”
임옥진이 화를 내며 말했다.
“날 위해서 그랬다고? 저 아이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런 거야! 육함이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저러는 거지! 잠시 저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잊고 있었구나! 지금 나한테 이치를 따져대며 찍어 누르려고 하는 것 아니냐?”
“무슨 일이에요?”
육운은 살며시 안으로 들어와 임옥진이 또 화를 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골치가 아프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앞으로 다가와 임옥진을 붙잡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누가 어머니를 찍어 누른다고 그러세요? 새언니가 어머니한테 무슨 불경한 짓을 했어요?”
임옥진은 정색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육운이 방 마마를 쳐다보자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작은 목소리로 아까의 일을 이야기했다.
“불경하지는 않았지만 이소부인께서 말을 듣기 좋게 하지는 않으셨어요.”
육운은 이야기를 듣고 미간을 찡그리며 한참 침묵한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새언니 말이 맞아요. 제가 볼 땐 앞으로 그 둘 사이 일은 어머니께서 상관하시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머니 자리는 누구도 뺏을 수 없어요. 어머니가 그분을 그렇게 신경 쓰시면 새언니랑 어떻게 잘 지낼 수 있겠어요? 언젠가는 둘째 오라버니와 새언니가 어머니를 모시게 될 거예요.
새언니는 시집올 때 데려온 사람도 많지 않고 그마저도 거의 밖의 장원을 관리하고 있어요. 여기는 계 마마와 4명의 시녀밖에 없으니 큰 새언니처럼 주변에 사람이 많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어머니께서 새언니한테 사람을 하나 선물로 보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새언니를 도와주면서 동시에 또 뭔가 일이 있을 때 그 아이를 통해 주의를 주실 수도 있을 거예요.”
임옥진이 잠시 생각해보다 말했다.
“누굴 보내라고?”
육운이 그녀에게 바짝 다가가 앉았다.
“이런 사람은 신중하게 골라야 해요. 안 그러면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괜한 부작용만 생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