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196
196화. 난처함
온몸이 아픈데 어디가 아픈지 잘 모르겠다는 말은 마음이 아프다는 뜻이었다. 육함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저녁은 뭘 먹고 싶소? 주방에다 준비하라 전하겠소.”
임근용이 말했다.
“이소야, 난 신경 쓰지 말고 먼저 가서 식사해요. 어머니께서 기다리실 거예요.”
그녀가 또 자신을 이소야라고 부르고 있었다. 육함은 잠시 서 있다가 답답한 말투로 말했다.
“그럼 당신은 일단 쉬고 있어요. 곧 사람을 보내 의원을 부르라고 하겠소.”
밖에서 듣고 있던 여지는 마음이 아주 안 좋았다. 아가씨는 기분이 안 좋으신 거잖아. 이소야도 정말 어지간하시지, 당신이 억울한 걸 내가 다 알고 있소, 고생 많았소, 당신이 힘들었겠구려, 뭐 이런 말들을 좀 해 주면 어디 덧나나? 저렇게 기를 쓰고 아무 말도 안 하다니. 아가씨께서 답답해하시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네. 하지만 그녀는 한낱 시녀일 뿐이었다. 임근용에게는 그나마 말을 붙여볼 수 있었지만 육함에게는 그럴 수 없었기 때문에 그저 속만 끓일 수밖에 없었다.
계 마마는 혼자서 생각해보다가 육함이 집을 나서자마자 임근용에게 물었다.
“아가씨, 혹시 체하셨어요? 노비가 산사탕을 끓였는데 한 그릇 드시면 싹 내려갈 거예요. 대부인께서 아가씨가 아픈 걸 아시면 의원을 불러 주실 테니 아마 곧 오지 않겠어요?”
이 말은 이제 막 시집온 새 신부이니 참을 수 있으면 좀 참고 함부로 의원을 부르지 말라는 뜻이었다. 사람들은 평소와는 다르게 신혼 기간에는 의원을 청하는 걸 꺼렸다. 또 지금 몇몇 사건들이 있었는데 의원까지 부르게 되면 잘못하면 그 두 사람과 결판을 내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니 별로 좋지 않을 거라는 의미였다.
육씨 가문 같은 곳에서는 참지 못하고 반격하는 사람이 손해를 보기 마련이었다. 임근용은 계 마마에게 뭐라 할 말이 없어 한숨을 내쉬고 눈을 감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지가 얼른 말했다.
“마마 산사탕을 좀 가져다주세요, 제가 아가씨께서 드시게 할게요.”
“꼭 드시게 해. 안 그러면 우리가 제대로 시중을 못 든다고 뒷말이 나올 거야.”
계 마마는 여지에게 재삼 당부하고 계속 머뭇거리며 뒤돌아보다 밖으로 나갔다.
여지가 임근용에게 다가가 위로했다.
“아가씨, 이소야께서 말씀은 안 하시지만 속으로는 다 알고 계실 거예요. 지금 같은 때에 아가씨께서 이소야를 용서해 주신다면 분명 아주 감동하실 거예요.”
임근용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지야, 나는 참을 만큼 참았고 용서할 만큼 했어. 더는 참을 수도 용서할 수도 없어. 그 사람도 최소한 내가 중간에서 얼마나 힘든지는 알아야지. 이 집 아들인 그 사람도 이렇게 힘든데 나처럼 이제 막 시집온 새댁이 얼마나 더 잘할 수 있겠어? 더구나 그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 사람은 내가 아니야. 계속 복종하기만 하면 결국엔 나만 힘들어질 거야.”
육함을 힘들게 하는 첫 번째 사람은 여씨였고, 그다음은 임옥진이었다. 임근용은 그가 이러한 핍박과 시달림을 맛보고 안팎으로 돼먹지 못한 인간들에게 둘러싸여 힘들어도 하소연 할 곳이 없는 기분을 느끼게 해보고 싶었다.
여지는 임근용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챘다. 그건 그녀가 남의 집 마마에게 무언가 부탁하러 간 상황과도 비슷했다. 사소한 부탁임에도 일부러 힘든 척하며 반나절을 고생하며 부탁하게 만들어 겨우 도와주며, 그녀가 여지를 도와준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걸 각인시키는 것이다. 상황은 달라도 이치는 똑같았다.
무슨 일이든 어려운 점을 모르면 좋은 점도 모르는 법이다. 만약 육함이 중간에 낀 사람이 겪는 여러 가지 난처함을 모른다면 앞으로 잘잘못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거나 혹여 머리로는 힘든 줄 알면서도 실제로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 제대로 공감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상대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여지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럼 이 일만 지나가고 나면 더는 고집 부리시지 마세요. 아가씨께서도 용서해야 할 때는 용서해 주셔야 해요.”
임근용이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 설마 내가 평생 아프다고 하면서 이 방에 갇혀 있겠니? 적당할 때 그만둬야 한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어.”
* * *
육함은 자기 집 대문을 나서며 우선 장수를 불러 몇 마디 지시한 뒤 임옥진에게로 갔다. 그는 임옥진의 대문 앞에서 잠시 서 있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임옥진과 육운은 이미 식탁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육함이 들어오는 것을 본 임옥진은 담담하게 그를 한 번 힐끗 쳐다보고 바로 고개를 돌렸다. 임옥진은 그가 인사하자 냉담하게 “응” 한 마디만 하며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육운이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말했다.
“새언니는요?”
육함이 말했다.
“몸이 좀 안 좋대. 감기에 걸린 것 같아.”
이렇게 공교롭게? 육운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지만 관심을 보이는 척하며 말했다.
“의원은 불렀어요?”
“장수한테 불러오라고 했어.”
임옥진은 어두운 얼굴로 콧방귀를 뀌었다. 육운이 그녀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웃는 얼굴로 말했다.
“좀 이따 내가 새언니한테 한 번 들를게요. 주방에다가 아픈 사람이 먹을 테니 좀 담백하게 만들라고 말해둬야겠네요. 막 시집온 사람이 이런저런 요구를 하긴 곤란할 테니까요.”
임옥진은 한없는 짜증과 분노가 몰려왔다. 그녀는 임근용이 자신을 도와 육함을 자기 곁에 묶어두고 다른 사람들을 상대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임근용은 시집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와 싸우고 나서 아픈 척을 하고 있었다. 이런 못된 습성을 절대 용납해 줄 수는 없었다! 임옥진이 육운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일단 밥부터 먹자. 먹고 나서 다시 얘기하자꾸나. 한참 기다렸더니 음식이 다 식었어.”
육함은 눈을 내리깔고 잠시 묵묵히 있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어머니, 먼저 드세요. 운아 너도 이번에는 올 필요 없어. 넌 어머니를 잘 모셔.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그는 말을 마치고 작별 인사를 한 뒤 물러 나왔다. 육함이 문지방에 발을 내딛자마자 뒤에서 젓가락을 내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잠시 멈칫했지만 끝내 고개도 한 번 돌리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임옥진은 화가 나서 몸을 떨었다.
“너도 봤지, 내 체면도 생각해 주지 않고 저리 뻔뻔스럽게 구는구나.”
“그래도 오라버니가 직접 왔잖아요? 그건 여전히 어머니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예요.”
육운은 생각에 잠겼다.
“새언니가 정말로 아픈 게 아니라면 분명 그분과 관계가 있었을 거예요. 오후에 혜 마마가 가서 또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네요. 며칠 동안 생각해 봤는데 방죽(芳竹)이를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오라버니가 제 선생 문하로 가고 나서 보내세요.”
임근용에게 붙일 사람은 아주 중요했다. 그리고 이 사람을 보낼 때 어떤 이유와 핑계를 댈지도 중요했다. 만약 나이가 많은 시녀를 보내면 주인을 오래 모신 다른 시녀들이 그걸 방패 삼아 이래라저래라 할 것이고 신뢰를 얻지 못하고 반감만 사기 쉬웠다. 기존의 시녀들이 옆에서 부추겨 육함과 임근용이 전부 그녀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괜한 분쟁이 생길 수도 있었다. 또 너무 나이가 어린 시녀를 보내면 너무 어려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다른 이상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신임을 얻기 힘든 건 둘째 치고 안방에조차 들어가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더구나 임근용 쪽에서 그녀를 처리해 버리기도 아주 쉬웠다. 임씨 가문이 임옥진의 편에 서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잘못했다가는 괜히 일만 그르칠 수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일에는 방죽이 제일 적합했다. 방죽은 올해 스물다섯 살이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임옥진을 모신 사람이었다. 그녀는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했고 성격도 대범했다. 강남에 있을 때 그녀는 육함을 돌봤지만 육함이 철이 들고 난 이후에는 임옥진이 직무를 소집사로 바꿨다. 방죽과 육함 사이에는 주인과 하인으로서의 정이 남아 있어 육함 역시 그녀를 존중했다. 그녀는 됨됨이가 괜찮은 사람이었고 시집을 가서 아이도 있었다. 방죽은 육씨 가문의 모든 사람들과 친숙했고 사이도 나쁘지 않았다. 임근용에게 보내 내외원을 왕래하며 물건과 소식을 전하는 시녀로 쓰기에 적합했다. 가장 중요한 건 방죽이 임옥진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한다는 점이었다.
임옥진이 잠시 생각해보고 말했다.
“그럼 그 아이로 하자, 할 말이 있으니 잠깐 나한테 오라고 해.”
육운이 임옥진에게 반찬을 집어 주었다.
“어머니, 일단 식사부터 하세요. 어쨌든 식사는 거르시면 안 되잖아요. 화난다고 내 몸을 상하게 하면 괜히 남들 좋은 일만 시키는 거예요.”
육운은 임옥진이 음식을 먹는 걸 지켜보다가 다시 임옥진을 설득했다.
“지금은 어쨌든 새언니를 보러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언니가 정말로 아픈 거든 아픈 척하는 거든 어머니께서 언니한테 힘을 실어 주셔야지 남들 앞에서 비웃음을 당하게 만드시면 안 되는 거예요.”
임옥진이 냉소했다.
“아주 대단한 분이셔서 이렇게 안하무인으로 구는 거 아니었어? 그런 아이한테 내 힘이 필요나 하겠어?”
육운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새언니 혼자라면 당연히 걱정할 필요가 없죠. 그런데 오라버니는 왜 여기에서 같이 밥을 안 먹었을까요? 돌아가서 새언니를 돌보려는 거 아니겠어요?”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그건 바로 육함이 임근용을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나는 임옥진의 친조카 딸이고 다른 하나는 후계자였다. 병이 났으면 당연히 위로를 해야하는 것이지 화를 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안 그러면 서로 완전히 정이 떨어져 버릴 것이다.
임옥진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육운은 어찌 되었든 이번에는 자기가 한 번 가서 들여다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 * *
임옥진 모녀 두 사람이 이 일에 대해 안에서 뭐라고 이야기하는지와는 관계없이 밖으로 나온 육함은 마음이 아주 답답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우연히 육륜을 만났다. 육륜은 같이 저녁을 먹자며 들러붙어 졸라댔고 육함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네 둘째 형수가 병이 나서 지금 의원을 기다리고 있어. 다음에 같이 먹자.”
육륜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특별한 일도 없는데 갑자기 왜 아파요?”
잠시 생각해 본 육륜이 알겠다는 듯 말했다.
“둘째 형님, 왜 할아버지께 가서 말씀 안 드려요?”
육 노태야가 손을 쓰기 시작하면 틀림없이 모든 일이 조용해질 것이다.
육함이 고개를 저었다.
“이건 내 개인적인 일이야, 별것도 아닌 일로 할아버지께 말씀드리는 건 도리가 아니지.”
육륜이 다시 권하려 하는 것 같아 육함이 웃으며 말을 돌렸다.
“육선이는 어때?”
육륜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 아침에도 밥을 먹으려 하지 않아서 제비집 죽을 먹어보라 했더니 싫다고 하더라고요. 차조차 마시려 하지 않아서 인삼차를 줘봤는데 그것도 안 먹었어요. 사실 할아버지께서 아침밥을 아주 맛있는 걸로 차려 주셨거든요. 할아버지께서 세 번이나 물었는데 육선이 계속 안 먹겠다고 해서 어린 하인 녀석을 불러서 육선이 앞에서 밥과 차를 몽땅 다 먹어 치우라고 명령하셨어요. 그러더니 저한테 육선이가 계속 안 먹으면 그냥 굶어 죽게 내버려두라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육선이가 정말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봐요. 나올 때 보니까 울면서 죽을 먹고 있더라고요.”
이렇게 밥을 먹었다는 건 이미 항복했다는 뜻이었다. 육선만 괜찮아지면 여씨도 자연히 더는 소란을 피우지 않을 것이다. 육함은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가볍게 육륜의 어깨를 두드렸다.
“육선이는 어릴 때부터 너랑 노는 걸 좋아했으니 네가 좀 잘 이끌어 줘.”
육륜이 어수룩하게 웃었다.
“알았어요, 둘째 형님, 같이 둘째 형수를 보러 가도 돼요? 내가 가서 재미있게 해주면 형수 병이 나을지도 모르잖아요.”
육함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게 어디 쉽겠어?”
사건의 경위를 제일 잘 알고 있는 육함은 누구도 그들을 대신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육륜이 웃으며 말했다.
“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요?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해요. 형님, 가서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두세요. 난 집에 가서 뭘 좀 가지고 갈게요.”
그러더니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