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타이르다
육함은 이 문제에 대해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작은 병이에요.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송씨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됐어.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때라 자칫 잘못하면 감기에 걸릴 수 있어. 방금 네 셋째 숙모한테 다녀 왔는데, 숙모도 병이 나서 약을 한 사발을 먹고 있더라. 불쌍하기도 하지. 평소엔 나도 소란을 피우는 게 귀찮았는데 막상 네 셋째 숙부랑 숙모 두 내외만 외롭게 집에 덩그러니 남아 있으니까 차라리 소란을 피우는 게 더 나은 것 같더라.”
육함이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또 웃으며 말했다.
“내가 다른 뜻이 있어서 이런 말은 하는 건 아니고, 그냥 둘째 네가 할아버지께 좀 말씀을 드려보는 게 어떨까 해서 그래.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법이잖니. 여섯째를 관리할 필요는 있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만날 수 있게 해 줘야지. 나도 어머니로서 그런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가. 네 셋째 숙모는……. 에휴…….”
육륜이 얼른 말을 끊었다.
“어머니, 여섯째는 잘 있어요.”
송씨는 육함의 표정을 살피더니 더는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안 그래도 둘째 조카며느리를 한 번 보러 가려던 참인데 언제가 편하겠니?”
육함이 담담하게 말했다.
“둘째 숙모, 번거로우실 텐데 굳이 그러실 필요 없어요. 그냥 조금 몸이 불편한 정도라 잘 쉬기만 하면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아용이도 어른들께서 놀란 걸 알면 더 불안해할 거예요.”
송씨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안 가는 게 낫겠구나. 이제 부부가 되었으니, 서로 좀 더 배려하고 작은 일로 서먹서먹해지지 않게 조심하렴. 둘째야, 네가 아용이한테 잘해야 한다. 나도 시간이 있을 때 잘 타일러 볼게.”
그러더니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참, 네 할머니께서 많이 놀라셨다고 하더라. 너무 걱정하시지 않게 네가 시간 될 때 할머니 댁에 잠깐 들러서 말씀드려.”
육함이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알겠어요.”
송씨가 부드러운 말투로 육륜에게 당부했다.
“다섯째야, 둘째 형님을 잘 대접해. 너무 장난치지 말고, 난 이만 가마.”
송씨가 멀어지자 육륜이 육함의 어깨를 붙잡아 그를 안으로 밀며 말했다.
“이쪽이에요, 가요, 계속 걸어요, 얼른요.”
그는 육함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절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가 와서 한 번 휘저으면 꼭 이렇게 난장판이 된다니까요. 에이, 짜증 나! 이것 봐요. 둘째 형님도 지금 심란해서 책도 못 볼 지경이 됐잖아요. 이대로 가다간 영웅의 기개 같은 건 다 사라질 거예요. 내가 형님이라면 여자들끼리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내버려두고 그냥 가버릴 거예요.”
육함은 그의 젊고 앳된 얼굴을 보며 절로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너였으면 처음부터 이럴 일이 없었을 거야.”
육륜이 잠시 생각해보더니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그래서 형님은 어떻게 할 생각인데요? 차라리 제 선생 문하로 얼른 가 버리는 게 낫지 않겠어요. 돌아올 때쯤이면 다 해결되어 있겠죠.”
“피하면 안 돼.”
육함이 그의 손을 잡아뗐다.
“난 이만 돌아가 볼게. 환대해 줘서 고마워.”
육륜이 말했다.
“술 안 마시고요?”
육함이 웃었다.
“다음에.”
* * *
임근용이 여지에게 약방문을 건넸다.
“장수한테 가져다주고 두 첩 지어오라고 해. 심부름 값은 두둑하게 챙겨 주고.”
여지가 알겠다고 한 뒤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이 약방문이?”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그냥 소화제일 뿐이야, 어쨌든 먹긴 해야지.”
다들 내심 짐작하고 있겠지만 그래도 감춰야 할 건 감추고 피차 한 발짝 물러날 여지는 남겨두는 것이 좋았다.
갑자기 밖에서 앵두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안녕하세요?”
이어서 육운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이소부인은? 좀 나아지셨어?”
여지는 약방문을 소매에 쑤셔 넣고 임근용을 부축해 침상에 눕혔다. 임근용은 침상에 반쯤 누워 육운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아가씨가 어떻게 왔어요?”
육운이 웃으며 말했다.
“새언니가 아프다고 해서 일부러 보러 왔죠. 어째, 몸은 좀 나아졌어요?”
그녀는 예쁜 눈으로 임근용의 몸을 한 바퀴 훑었다.
“의원이 벌써 왔다 갔다고 하던데, 무슨 병이래요?”
임근용이 솔직하게 말했다.
“별말은 안 하고 약방문만 하나 써 줬는데, 나도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육운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안 물어봤다고요?”
임근용이 말했다.
“안 물어봤어요. 이소야가 집에서 자주 부르는 의원이라며 믿고 맡기랬어요. 그냥 작은 병이니 이틀 정도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아가씨가 괜한 걸음을 하게 했네요.”
육운이 웃으며 말했다.
“나야 새언니가 걱정돼서 온 거 아니겠어요? 저녁도 안 먹었다던데 뭘 좀 먹었어요? 내가 가서 준비하라고 할게요.”
임근용이 눈을 내리깔고 담담하게 웃었다.
“아가씨, 신경 써 줘서 고마워요. 난 먹었어요. 아가씨 오라버니가 장수를 시켜서 오장루의 소면과 죽을 사다 줬어요.”
“오라버니가 말수는 적어도 늘 그렇게 세심하다니까요. 제가 어렸을 때도 오라버니는 외출할 때마다 항상 제가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간식들을 사 오는 걸 잊지 않았어요. 오라버니가 사 오는 물건들은 마음에 안 들었던 적이 없어요. 친오라버니는 아니지만 정말로 친오라버니보다 나아요.”
육운은 잠시 아름다운 추억에 잠겼다가 고개를 돌리며 임근용에게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오후에 혜 마마가 왔다 갔다고 들었는데, 왜 온 거예요?”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셋째 숙모께서 나한테 악의가 있었던 건 아니라는 말을 전하러 왔었어요.”
“악의가 있는 건 아니라니 다행이네요.”
육운이 잠시 침묵했다 작은 소리로 말했다.
“새언니, 부탁할 게 한 가지 있어요. 이 말을 하는 게 좋을지 안 하는 게 좋을지 좀 고민이 되네요. 언니가 들으면 기분 나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다른 마음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고 그냥 다들 잘 지냈으면 해서 하는 말이에요.”
임근용이 찻잔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말했다.
“아가씨, 그렇게까지 예의 차릴 필요 없어요.”
육운이 그녀를 주시하며 아주 간절하게 말했다.
“새언니, 우리 어머니께서 화를 잘 내시는 성격인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잖아요. 내가 이렇게 부탁 좀 할게요. 앞으로는 어머니 성질을 건드리지 말고 새언니가 많이 양보해 줘요. 언니의 공로는 제가 다 기억해 둘게요. 우리 어머니께서도 분명 언젠가는 새언니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주실 거예요. 우리 어머니가 남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해 줘요.”
임근용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잘하고 싶은데 가끔 화가 나서 제어가 안 될 때가 있어요. 내 생각에 이런 면은 고모를 좀 닮은 게 아닌가 싶어요.”
임옥진을 닮았다는 말에 육운의 눈에 번쩍하고 분노가 스쳐 지나갔다. 육운이 좀 더 무거운 말투로 말했다.
“제어해야 돼요. 새언니, 내가 이런 말 한다고 미워하지 마요. 이렇게 시비를 따지는 것도 다 언니를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 언니는 모르고 있겠지만 밖에 벌써 소문이 다 났어요. 자식과 며느리 된 도리로서 어른인 시부모께 순종해야지 어른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를 용서 못 한다고 하면 어떡하겠어요?”
육윤은 잠시 말을 멈추고 노파심에 거듭 말했다.
“새언니, 내가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에요.”
임근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가 수고가 많아요.”
임근용은 누가 자신의 험담을 했는지 묻지 않았다.
육운도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친근하게 임근용의 손을 잡고 불안해하면서도 애교를 섞어 말했다.
“새언니, 제가 괜한 참견했다고 싫어하면 안 돼요. 마음이 조급해져서 그랬어요. 제가 말은 예쁘게 못 해도 마음만은 진심이에요. 전 그냥 우리 가족이 화목하길 바랄 뿐이에요. 우리끼리 싸워 봤자 적들한테만 좋은 거잖아요. 혹시 제가 새언니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지금 사과할게요.”
육운은 이렇게 말하고 정말로 임근용에게 절을 하려 했다.
임근용이 한 손으로 그녀를 붙잡으며 말했다.
“이럴 필요 없어요.”
이때 육함이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운이 왔어?”
육운이 활짝 웃는 얼굴로 일어나며 말했다.
“예, 새언니를 보러 왔어요. 괜찮은 걸 보니 마음이 좀 놓이네요. 이만 가 볼게요.”
임근용이 일부러 얼른 침상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내가 배웅해 줄게요.”
육운이 다급하게 그녀를 저지했다.
“무슨 소리예요? 새언니 병이 심해지면 오라버니가 마음 아파서 죽을지도 몰라요. 내가 무슨 원망을 들으라고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육함을 보고 웃었고, 육함 역시 담담하게 웃었다.
“그럼 내가 배웅해 줄게.”
두 남매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밖으로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육운의 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육함은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서 있다가 돌아왔다.
여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육운 아가씨는 정말 수완이 보통이 아니네요.”
임근용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은꼬챙이를 들어 촛불의 심지를 가볍게 골랐다. 그녀는 더 이상 이런 일에 끊임없이 끌려다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건 괜한 힘을 낭비하는 짓일 뿐이었으므로 반드시 적극적으로 나서서 끊어내야 했다.
육함이 들어오자마자 밖에서 또 사 마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소부인께서 아프시다면서요. 노부인께서 저한테 가서 확인해보라 하셨어요. 의원은 불렀나요? 약은 드셨어요? 저녁 식사는요?”
이렇게 말하며 사 마마가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임근용은 얼른 침상에서 나와 앵두의 부축을 받고 서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냥 작은 병이라 좀 쉬면 나을 거야. 할머님을 놀라게 했다니 죄송스러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네. 수고스럽겠지만 마마가 나 대신 할머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몸이 괜찮아지는 대로 어르신께 인사를 드리러 가겠다고 전해 줘.”
사 마마가 뒤에 있는 어린 시녀에게 약재 봉지를 건네주라고 지시했다. 그녀는 웃는 얼굴로 임근용을 훑어보며 다시 한 번 병세가 어떤지 물었다.
“죄송하실 거 없어요. 아프면 당연히 가족들한테 알려야죠. 노부인께서 편안하게 쉬면서 회복에만 전념하라 하셨어요. 필요한 게 있으시면 사람을 보내 말씀만 하세요. 절대 서운하게 대접하시지 않을 거예요.”
이건 아주 은근한 위로였다. 노부인이 이런 태도를 보이면 임근용은 편안하게 쉴 수 있었고 괜히 누가 와서 싸움을 걸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임근용이 감사 인사를 하자 사 마마도 오래 머물지 않고 작별을 고했다.
방에 두 부부만 남자 육함이 말했다.
“이제 좀 괜찮아졌소?”
임근용이 정색하며 말했다.
“많이 좋아졌어요. 약을 먹고 하루 이틀 쉬면 될 것 같아요.”
육함은 잠시 침묵했다 두아에게 지시했다.
“세수하게 뜨거운 물 좀 가져와.”
임근용이 그에게 물었다.
“내가 아파서 밤에 뒤척거릴 수도 있어요. 옆방에서 자는 건 어때요? 벌써 당신 침상을 깔아 놓고 화로도 피워 놓으라고 말해놨어요.”
육함이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그럴 필요 없소.”
임근용도 더는 권하지 않고 조용히 씻고 자리에 누웠다. 육함은 세수를 다 하고 침상에 올라가 침상 머리에 기대 한참을 조용히 앉아 있다가 불을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