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
송씨가 웃으며 말했다.
“다들 괜찮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으니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죠.”
그러더니 지시해야 할 것이 있으니 맹 마마를 불러오라 시켰다.
“잠시만요.”
임근용이 웃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하얗고 마른 체격에 눈을 가늘게 뜨고 한쪽에 서서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있는 마마를 가리키며 말했다.
“침방을 관리하는 서 마마(嬷嬷) 맞지?”
그 여자가 말했다.
“예.”
임근용이 고개를 돌려 송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전 능력이 부족해 다른 큰 일은 맡을 수 없으니 우선 여길 관리해 볼게요.”
서 마마는 육씨 가문 노비에게서 태어난 자식으로 오래 전부터 노부인을 모신 사람이었다. 그녀는 바느질에 뛰어나 노부인은 그녀가 만든 속옷과 신발만 입었고 노태야도 그녀가 만든 신발만 신었다. 서 마마는 오랜 시간 동안 집안을 관리하는 일이 임옥진의 손에 넘어가든 송씨의 손에 넘어가든 언제나 그 자리에 끄떡없이 버티고 서 있었다. 이 집에서 연륜이 높은 원로를 찾는다면 이 사람이 딱이었다.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전부 깜짝 놀랐다. 심지어 서 마마마저도 화들짝 놀랐다. 침방은 정말 한가로운 곳이었다. 주인이 관리하긴 했지만 거의 모든 일을 서 마마가 알아서 처리했다. 그녀는 명절이나 계절이 바뀔 때 온 가족이 몇 벌의 옷을 만들어야 할지 묻고, 얼마나 많은 휘장이나 침구 등을 바꿔야 하는지 확인했다. 그러고 나서 얼마가 필요한지 계산해 필요한 재료를 구입해 만들고, 다 만든 이후에는 낭비가 없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모든 일에 정해진 관례가 있어 누가 도와줄 필요도 없었다. 송씨가 제안한 두 자리와 여길 비교하면 정말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이건 정말 뜻밖이었다. 송씨는 잠시 넋이 나갔다가 탐색하듯 임옥진을 바라보았다.
“큰형님, 형님 생각은 어떠세요?”
임옥진은 열불이 나서 말이 다 안 나왔다. 그녀는 화를 꾹 참으며 말했다.
“네가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려는 게로구나. 할아버님께서 실망하실 건 생각도 안 하니?”
임근용이 말했다.
“할아버님께서는 그저 둘째 숙모를 도우라 하셨을 뿐이에요. 이게 바로 제가 돕는 방법이고요.”
송씨가 임근용에게 호의를 베풀 리가 있겠는가? 이렇게 오랫동안 혼자서 집안을 관리해 왔는데 손에 쥐고 있던 가장 중요한 권력을 쉽게 내려놓을 리가 없지 않은가? 뭔가 이상한 사건이 생겨 일이 잘못될 것이 분명했다. 임근용은 믿고 쓸 수 있는 사람을 구하기 전까지는 다른 일을 맡아 봤자 스스로를 들들 볶는 일밖에 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능력도 없이 무턱대고 뛰어들었다가는 괜히 보기 흉하게 넘어질 수 있었다. 차라리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하게 내딛는 편이 훨씬 마음 편하지 않겠는가?
려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송씨는 좀 전까지의 미소를 거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임근용에게 물었다.
“정말 그렇게 결정 한 거니?”
송씨는 지금 상황이 마치 주먹으로 솜더미를 친 것처럼 아주 의외이면서도 영 재미가 없었다.
임근용이 미소 지었다.
“정말이에요. 둘째 숙모님 생각에 제가 너무 한가한 거 같으면 다른 작은 일을 더 주셔도 괜찮아요. 그런 큰 결정은 숙모님께서 하세요. 저는 그저 최선을 다해서 따를게요.”
송씨가 웃으며 다정하게 임근용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럼 자주 놀러 오렴. 절대 널 홀대할 일은 없을 거야.”
임근용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럼요.”
* * *
날이 저물며 마지막 햇빛이 담장 아래로 미끄러져 내리자 임옥진의 분노는 거의 폭발할 지경이 되었다.
“너 바보니? 내가 전에 너한테 뭐라고 했어? 그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데 거절을 해?”
임근용이 침착하게 그녀에게 차를 한 잔 건넸다.
“고모, 목 좀 축이세요.”
“안 마셔!”
임옥진은 그녀를 보자마자 화를 내며 꾸짖었다.
“네가 밖에서는 찍소리도 못 하고 집 안에서만 큰소리치는 바보라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다만, 이렇게까지 보는 눈이 없다니, 너 아직도 뭐가……!”
육운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다독였다.
“어머니, 일단 새언니 말도 들어보세요. 언니도 틀림없이 뭔가 생각이 있을 거예요.”
그러고 나서 임옥진에게 이미 엎질러진 물은 돌이킬 수 없으니 우선 방죽에 관한 이야기를 한 다음 다시 말을 하는 편이 낫겠다는 눈빛을 보냈다.
갑자기 방 마마가 입구에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부인, 노부인을 모시는 소심이가 와서 노태야께서 이소부인을 영경거로 부르신답니다.”
임옥진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가서 할아버님께 창고 관리를 할 거라고 말씀드려. 내가 다 알아서 관리할 테니까 다른 건 네가 신경 쓸 필요 없어. 알겠어?”
임근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인사를 올린 뒤 밖으로 나갔다. 문 밖으로 나가자 옅은 녹색 상의에 담청색 치마를 입고 연지와 분도 바르지 않은 한 젊은 여자가 고개를 숙인 채 복도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임근용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인사했다.
“이소부인, 안녕하세요.”
또 올 것이 왔구나. 임근용은 걸음을 멈추고 진지하게 그녀를 한 번 훑어보았다.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려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냉소하며 아무 말 없이 여지의 손을 붙잡고 자리를 떴다.
육운이 급히 안에서 나와 그 여자를 향해 손짓했다.
“방죽 언니, 들어와 봐. 어머니께서 당부할 말이 있으시대.”
* * *
영경거 안에서는 육 노태야가 육 노부인과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이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임근용은 조용히 한쪽 옆에 서서 가끔씩 그들에게 물이나 손수건 등을 건네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육 노부인이 피곤하다 했고 육 노태야도 그쯤에서 그만두었다. 그는 불필요한 사람들을 내보내고 여의무늬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앉아라.”
임근용이 조심스럽게 앉았다.
“할아버님께서 손자며느리에게 무슨 분부하실 것이라도 있으신지요?”
육 노태야가 말했다.
“오늘 둘째 며느리가 널 괴롭혔다면서?”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저 둘째 숙모께서 너무 바쁘셨던 것뿐입니다.”
육 노태야는 이미 그녀가 이런 대답을 할 거라고 예상했다는 듯 전혀 놀라지 않았다.
“왜 침방을 골랐느냐? 창고를 맡아도 되고, 구매도 잘 할 것 같은데. 처음에는 좀 어려울지 모르지만 일단 시작만 하면 금새 안팎의 사정을 파악하고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게야.”
임근용이 진지하게 말했다.
“할아버님께서 뿌리가 튼튼하지 않으면 단단히 뿌리 내릴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손자며느리는 지금 뿌리를 내리는 중입니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데 뛰려고 하면 크게 넘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임근용이 환생한 이후로 어떤 일들은 이미 원래의 궤도를 벗어나 있었다. 큰일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다시 태어난 이점을 누릴 수 있는 건 그녀가 죽기 전 그 시점까지였다. 만약 요행으로 그 이후까지 살아남게 된다면 임근용은 지금 이렇게 열심히 배워 놓은 능력을 쓰며 살아가야 했다.
육 노태야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침방은 한산하다 못해 무료할 정도인데 네가 거기서 무슨 기초를 닦는다는 말이냐?”
임근용이 조용히 말했다.
“의식주에는 침방의 일도 포함되지 않습니까. 거긴 주방 못지않은 곳입니다.”
온 집안 식구의 옷, 방에서 쓰는 휘장이나 침구 등은 모두 침방에서 나왔다. 육 노태야는 잘 모르겠지만 임근용은 많은 하인들, 특히 시녀들이 침방에 가서 쓰고 남은 천과 자수품을 얻는 걸 아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런 하급 시녀들은 평소에는 소리 없이 존재했지만 육씨 가문 전체에 그들의 발과 귀가 닿지 않는 곳은 없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서 마마가 뒤에서 무슨 짓을 꾸밀까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 당분간은 송씨 고부가 나쁜 일을 벌일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임근용은 지금 비교적 편안한 환경이 필요했다. 지금 그녀에게는 자신의 혼수를 관리하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 * *
임근용은 영경거에서 나오자마자 또 임옥진의 집으로 불려갔다.
임옥진이 직설적으로 현재 상황에 대해 꼬집었다.
“네가 집안일을 맡아서 해야 하는데 네가 데리고 있는 사람들은 쓸모가 없어. 계 마마는 널 따라 이 집에 들어온 지 이렇게 한참 지났는데도 너희 집 밖으로 나와 본 적이 없지. 앵두는 너무 어리고 두아는 너무 무던해. 계원이는 답답한 아이이고 그나마 여지만 조금 쓸만해 보이더구나. 하지만 모든 일을 다 그 아이에게만 의지하면 안 돼.
그래서 내가 이리저리 생각을 좀 해 봤는데 방죽이가 널 도우면 좋을 것 같더구나. 넌 아직 방죽이를 모르겠지만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날 모셨고 둘째가 강남에 있을 때는 줄곧 둘째를 돌봤어. 일을 잘하고 유능하고 탕도 잘 끓여. 그 아이 남편도 외원에 있으니 네가 뭔가 전해야 하거나 뭘 알아봐야 할 일이 있을 때 편하게 쓸 수 있을 거야. 네 생각은 어떠니?”
임근용은 한쪽에 서서 눈을 내리깔고 있는 방죽을 보고 담담하게 웃었다.
“어른께서 하사하시는데 어찌 감히 거절하겠어요. 고모께서 이렇게 저를 생각해 주시는데 제가 호의를 무시하면 되나요?”
임옥진은 아주 만족스러워하며 방죽에게 당장 임근용에게 절하고 새로운 주인으로 모시라 지시했다. 그녀는 임근용의 면전에서 방죽을 한바탕 훈계하고 내보낸 뒤 비로소 임근용에게 말했다.
“할아버님께 창고 일을 맡겠다고 말했니?”
임근용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말씀드리려 했는데 제가 들어가자마자 할아버님께서 절 칭찬하시더라고요.”
임근용은 임옥진의 놀란 표정을 보고 은근히 즐거웠다.
“제게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알아 듬직하고 마음이 놓인다고 하시면서 역시 할아버님께서 절 잘못 보지는 않았다고 말씀하셨어요.”
여지는 뒤에서 듣고 있다가 절로 눈을 깜빡였다. 당시 육 노태야는 그저 기왕 결정한 일이니 그렇게 하라고 한 마디 했을 뿐이었다. 그 말이 어찌 지금 이렇게 명백한 칭찬으로 바뀌었단 말인가? 임근용은 이 말을 하면서도 전혀 망설이거나 꺼려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 말이 노태야의 귀에 들어갈까 봐 두렵지도 않은가?
임옥진은 임근용이 감히 멋대로 꾸며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바로 얼굴색이 변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무수히 많은 추측을 하기 시작했다.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안다? 만약 근용이가 내 말을 들었다면, 그 두 가지 일을 선택했을 텐데, 그럼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모르는 거란 말이 되잖아? 아버님께서는 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지? 설마 이 기회를 빌려 나한테 경고를 하시려는 건 아니겠지? 혹시 차남가를 아껴서 그러시는 걸지도 몰라!’
“고모, 또 분부할 게 있으세요?”
임근용은 조심스럽게 임옥진의 표정을 관찰했다. 임옥진의 표정이 놀라움에서 실망으로, 실망에서 깨달음으로, 깨달음에서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걸 보고 임근용은 자신의 말이 효과가 있었다는 걸 알아챘다. 이로써 임옥진 모녀는 당분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임옥진이 고개를 들더니 귀찮다는 듯 그녀에게 손을 내저었다.
“가 보거라. 침방 일에만 매달리지 말고, 별일 없으면 자주 둘째 숙모께 가서 참관하고 따라다니며 기술을 배우거라. 지금 당장은 쓸 일이 없더라도 언젠가는 쓰게 될 거야. 너도 나중에 네 집을 관리해야 하잖니.”
“예. 그럼 고모님도 일찍 주무세요.”
임근용은 자신이 시집온 이래로 임옥진이 했던 말 중 이 말이 가장 옳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