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222
222화. 오해
육함이 공부하러 청설각으로 가자 여지가 들어와 임근용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아가씨, 이소야께서 어젯밤 일은 말씀 안 하셨어요?”
여지는 그 일이 어떻게 된 일인지, 뭔가 알아낸 것이 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등등을 묻는 것이었다.
임근용이 미소 지었다.
“친어머니가 못된 짓을 했는데 부끄러워서 어디 내 앞에서 말이나 꺼낼 수 있겠어?”
그녀는 육함이 말하지 않아도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장수가 사람을 시켜 말을 전한 건 분명했다. 그런데 그 전언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차남가가 중간에 가로채 일부러 여씨에게만 알린 것이다. 그러면 차남가에서 따로 뭘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여씨가 나서서 밉상 짓을 하게 되어 있었다. 육함과 그녀가 알고 있는 여씨가 미리 이런 계략을 꾸밀 정도로 똑똑한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그 이후 육함이 했던 행동들은 이 추측이 사실임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임근용은 곧이어 평소처럼 송씨의 집에 갔다가 우연히 여씨와 혜 마마를 마주쳤다. 여씨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두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녀는 기력 없어 보이는 모양새로 가만히 서서 임근용이 다가오는 것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계원은 좌우를 둘러보며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삼부인께서 왜 저러시는 거예요?”
임근용은 아무 말 없이 앵두에게 눈짓했다. 앵두는 그 눈빛의 의미를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 옆으로 갔다. 방죽도 괜한 불똥을 피하려는 듯 조심스럽게 한쪽 옆으로 피했다.
임근용이 웃는 얼굴로 여씨에게 인사했다.
“셋째 숙모님, 일찍 오셨네요.”
여씨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계속 그녀를 주시했다. 임근용은 여씨에게 가까이 다가가서야 그녀가 눈두덩이만 부은 것이 아니라 눈에는 핏발이 서고 입술은 바짝 말라 얼굴이 아주 안 좋다는 걸 알아챘다.
“셋째 숙모님, 왜 이러세요? 또 어디 아프신 거예요?”
임근용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 혜 마마에게 웃으며 말했다.
“마마, 셋째 숙모께서 아프시면 여기서 찬바람을 쐬게 하지 말고 돌아가서 의원을 불러야 하지 않겠어? 병이 났으면 얼른 약을 써서 치료해야지 질질 끌면 안 좋아.”
혜 마마가 긴장한 표정으로 여씨의 소매를 꽉 잡고 웃으며 말했다.
“예, 이소부인, 삼부인께서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셔서 몸이 안 좋으세요.”
“그럼 어서 가서 쉬세요. 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가 볼게요.”
임근용은 고개를 숙이고 여씨를 지나쳐 앞으로 걸어갔다.
“둘째 조카며느리야!”
여씨는 임근용이 뒤돌아 지나쳐가자 작은 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임근용은 몇 걸음 걷다 멈추고 여씨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웃으며 말했다.
“숙모님, 뭐 하실 말씀 있으세요?”
여씨가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너 나한테 무슨 오해라도 있니?”
임근용은 내심 우스웠지만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요, 셋째 숙모님,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여씨가 얼굴을 가리고 서럽게 울며 말했다.
“너 혹시 둘째한테 무슨 말 했어? 어제 둘째가 집에 오자마자 나한테 화를 내며 앞으로 다시는 자기한테 물건을 보내지 말고 관심도 갖지 말라고 하더구나. 난 나름대로 잘해 주려고 그런 건데 그렇게 화를 내니 너무 마음이 아팠어. 다음부터는 물건을 보낼 때 꼭 너한테 먼저 말하마…….”
더 많이 괴로워 하세요. 임근용이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
“셋째 숙모, 제가 이소야한테 무슨 말을 하겠어요? 이소야가 어제 집에 오자마자 저한테 화를 내서 저도 억울해 죽겠어요. 오죽했으면 제가 다른 사람들한테까지 제가 뭘 잘못했는지 물었겠어요? 혹시 셋째 숙모께서 이소야한테 무슨 말씀 하셨나요?”
여씨가 입을 열기도 전에 혜 마마가 얼른 말했다.
“이소부인 오해하지 마세요. 삼부인께서 이소야께 무슨 말씀을 하시겠어요?”
임근용이 냉소했다.
“그래요, 숙모께서 이소야한테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면 저 역시 이소야에게 숙모님에 대해 무슨 말을 할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거짓은 진실이 될 수 없고 진실도 거짓이 될 수 없는 거예요. 계속 이렇게 소란을 피우셔 봤자 사람들 앞에서 망신이나 더 당하시는 거예요. 전 상관없어요. 그럴수록 힘들어지는 건 이소야일 테니까요.”
임근용은 여씨의 대답도 듣지 않고 계원과 방죽을 데리고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여씨는 임근용이 뒤도 안 돌아보고 가 버리는 것을 보고 혜 마마의 어깨에 기대 울음을 터뜨렸다.
“둘째 그 바보 같은 것이 어찌 저런 모질고 몹쓸 것을 부인으로 들였단 말이냐. 쟤 하는 짓 좀 봐, 어른을 존중하는 모습이 눈곱만큼도 안 보이지 않느냐?”
임근용은 임옥진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사람인데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겠는가? 혜 마마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위로했다.
“부인 울지 마세요. 남들이 보면 비웃지 않겠어요? 일단 돌아가세요.”
여씨는 마치 임근용에게 괴롭힘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거기 서서 울기만 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오솔길에서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빼고 이 모습을 훔쳐보다가 얼른 고개를 움츠리고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임근용이 한참 걷고 있는데 앵두가 헐레벌떡 달려와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가씨, 오늘 아침에 범 집사가 대문을 지키는 순자를 두들겨 패서 내쫓았대요. 곤장을 열 대 때리고 두 달 치 월급을 깎았다고 하더라고요.”
범포가 이렇게 빠르게 움직인 것을 보면 아마도 노태야의 지시가 있었던 것 같았다. 여씨가 아침부터 달려와서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그녀가 처음에 계획했던 것처럼 이 일을 그냥 조용히 덮고 지나가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기다려 주고 참으면 결국 남한테 끌려다니는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임근용은 잠시 이런 생각을 하다가 한쪽에서 뭔가 묻고 싶은데 감히 묻지 못하고 있는 방죽을 보며 미소 지었다.
“어제 넌 집에 없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구나. 오늘 아침에는 이소야가 옆에 있어서 나도 말해 주기 곤란했어. 그냥 이참에 말해 줄게. 방금 너도 셋째 숙모께서 나한테 어떻게 하는지 봤지?”
방죽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예.”
그러더니 해명하듯 말했다.
“이소부인, 아까는 두 분께서 따로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 같아 노비가 일부러 자리를 피했던 거예요.”
방죽의 총명함이 바로 이런 데서 드러났다. 임근용의 곁에 오래 붙어있으려면 거머리처럼 들러붙어서 짜증 나게 하면 안 되고 눈치를 봐야 할 때는 보고 필요할 때는 그녀를 도울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임근용이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알아, 넌 나한테 온 이후로 줄곧 일을 참 잘했어. 그래서 내가 널 좋아하는 거고 또 많이 의지가 되기도 해. 어제 이소야한테 네가 왔다고 했더니 아주 잘 됐다고 하시더라. 내가 솔직하게 말해 줄 테니까 너도 날 좀 도와줘.”
그리고 육함이 병이 나서 다른 사람을 통해 전갈을 보냈는데 그녀는 전혀 받지 못했던 일을 말했다. 다만 여씨가 한 못된 짓만은 애써 숨겼다.
“누가 중간에서 장난을 치고 있어. 셋째 숙모를 부추겨서 내가 셋째 숙모를 싫어한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 같아. 아마 그다음은 나랑 어머니 사이를 이간질 하려 하겠지. 이런 일로 소란을 피워 봤자 어머님과 이소야 사이의 감정만 안 좋아질 거야. 그럼 이 일을 획책한 사람만 이득을 보고 아랫사람들한테는 괜히 불똥이 튀겠지.”
방죽이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소부인 말씀이 맞아요. 절대 이 일로 소란을 피우면 안 될 것 같아요.”
임근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네가 나 대신 빨리 아가씨한테 가서 말 좀 전해 줘. 소인배가 뒤에서 몰래 못된 짓을 꾸미고 있으니 잘 대비하고 괜히 속아 넘어가지 않게 어머님도 잘 설득해 달라고 전해. 잘 할 수 있지? 네가 잘만 해 주면 나와 이소야는 절대 네 공을 잊지 않을 거야.”
방죽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잘 할 수 있어요.”
그러더니 뒤돌아 육운의 집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임근용은 그 자리에 서서 잠시 생각해본 뒤 표정을 굳히며 빠른 걸음으로 송씨의 집으로 들어갔다.
복도에 서서 시녀들에게 일을 지시하던 초 마마가 그녀를 보고 웃는 얼굴로 다가와 맞이했다.
“이소부인, 일찍 오셨네요.”
임근용이 냉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힐끔 보고 입꼬리를 치켜든 뒤 고개를 뻣뻣하게 쳐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소부인이 자신에게 이런 표정을 짓는 것은 처음인지라 초 마마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얼른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송씨는 려씨와 작은 소리로 담소를 나누다가 굳은 표정으로 들어오는 임근용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초 마마가 임근용의 뒤에서 필사적으로 자신에게 눈짓을 하는 걸 보고 무슨 일인지 금방 눈치를 챘다. 송씨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웃는 얼굴로 손짓하며 임근용을 불렀다.
“아유 착한 것, 얼른 이리 와서 앉아. 넌 어쩜 이렇게 성실하니. 둘째가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하루쯤 빠진다고 숙모가 설마 너한테 뭐라 하겠니. 숙모도 벌써 다 겪은 일인데 네 맘 다 알지.”
려씨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둘째 동서, 아침부터 표정이 왜 그래? 설마 이소야하고 무슨 일 있었어?”
임근용은 평소에 자기가 앉던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계원이 건네주는 차를 받고 거짓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떻게 아셨어요, 이소야가 어제 집에 오자마자 저한테 짜증을 내더라고요. 저도 화가 나서 그 사람 주려고 만들었던 옷을 교도(*交刀: 가위)로 잘라 버렸어요.”
다른 사람들이라면 이런 일이 남한테 알려져 괜한 소문이라도 날까 두려워 애써 감추려 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구도 임근용이 자기 입으로 이런 말을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송씨와 려씨는 자신들이 한 짓을 들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눈을 마주쳤다. 려씨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럴 리가? 아용, 설마 우리한테 거짓말하는 건 아니지? 한참 떨어져 있다가 만나면 신혼 때보다 더 불타오르는 법이라고, 지금이 딱 좋을 때잖아. 둘째 공자가 동서한테 잘해 주고 동서를 좋아하는 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인데 그게 무슨 소리야. 오랜만에 집에 와서 왜 동서한테 짜증을 내?”
송씨도 관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너처럼 착한 아이가 그게 다 무슨 일이니? 괜히 옷은 왜 잘랐어? 무슨 일이든 말로 잘 풀어야지. 대체 뭐 때문에 그리 감정이 상한 거야? 둘째 그 아이도 참, 오랜만에 집에 와서 널 아껴 주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마음 상하게 하다니.”
려씨가 말했다.
“뭐가 어찌 되었든, 옷까지 자른 건 동서가 너무 심했어.”
임근용이 말했다.
“두 분께서 잘 모르셔서 그래요. 생각할수록 화가 나 죽겠어요. 글쎄 그 사람이 병이 나서 집으로 전갈을 보냈는데 내가 그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신경도 안 썼다는 거예요. 하지만 전 정말 억울해요. 전 아픈 줄도 전혀 몰랐어요. 그렇다고 이소야가 없었던 일을 있었다고 말할 사람은 아니고 대체 어디서 잘못된 건지 모르겠네요.”
송씨가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진정해, 왜 아침부터 화를 내고 그래? 내가 너 대신 누가 그런 못된 짓을 했는지 알아봐 줄게. 마침 집안 기강도 한 번 잡을 생각이었는데 이참에 범인을 색출해서 엄하게 벌을 줘야겠구나. 그럼 앞으로는 감히 누구도 그런 짓을 못 하지 않겠어?”
그러더니 초 마마를 불렀다.
“네가 가서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조사해 보거라. 만약 못 찾으면 둘째 며느리를 대신해 내가 너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