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224
224화. 헛물켜다
시녀들이 줄지어 들어와 모두 숨을 죽이고 공손히 손을 모은 채 서 있었다. 그들은 앞에 있는 세 명의 부인을 감히 바라보지 못하고 혹여 무슨 실수라도 해서 재수 없는 일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여기에 들어와 있을 정도의 사람이라면 절대 멍청할 리가 없었다. 아무리 상황을 모르더라도 밖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이야기를 들었으니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눈치챘을 것이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 중에는 이런 걱정에 휘말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불안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심 흥분해서 이 사건에서 결국 누가 이기고 지게 될지를 생각해 보며 미리 계획을 세우는 사람도 있었다. 또 어떤 사람은 그저 침착하게 송씨 고부와 뜻을 같이했다.
송씨가 오랜 시간 집안일을 맡아서 하는 동안, 일을 질서정연하고 적절하게 배분해 놓은 덕에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일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전에는 해야 할 업무와 목패를 받은 사람은 순서대로 나갔지만, 오늘은 업무와 목패를 받은 사람도 하지절 준비에 대해 상의해야 하니 가지 말고 남아있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임근용은 송씨가 일부러 사람들을 이곳에 남긴 건 곧 발생할 일을 목격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임근용의 추측이 맞다면 아마 그녀들은 사전에 이 일을 계획했을 것이다. 초 마마의 조사는 절대 한 시진을 넘기지 않을 것이고, 잡아야 할 사람은 모두 잡고, 연루시킬 사람도 전부 연루시킬 것이다. 사실 이것 또한 눈속임일 뿐이어서 그것만 아니면 이 조사는 채 반 시진도 걸리지 않아 모두 끝날 것이다. 하지만 초 마마는 이번에 헛물을 켜고 돌아오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초 마마가 돌아왔다. 그녀는 침착한 표정이었지만 걸음걸이는 아주 다급했다. 초 마마는 들어오자마자 곧장 위로 달려가 기회가 생기자마자 바로 송씨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임근용은 약간 지루해하며 찻잔을 가볍게 돌렸다. 찻잔과 찻잔 받침이 부딪치는 맑고 깨끗한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울려 퍼지며 귀를 찔렀다. 송씨는 눈을 들어 매서운 눈길로 임근용을 훑어보았고 이에 임근용은 송씨를 쳐다보며 빙긋 웃었다. 근원부터 원천 봉쇄되었는데 어디 소란을 피울 수 있으면 피워 보시든지? 사람이 내쫓겼으니 너희들도 머리가 있으면 그 소식이 어디까지 전달됐는지는 알 거 아니야?
송씨는 범포가 이렇게 빠르게 움직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고 그 소식 역시 한발 늦게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일을 어찌 한 사람과 단판 승부만으로 완성하길 바라겠는가? 송씨는 낮은 목소리로 초 마마에게 몇 마디 지시하고 손을 흔들어 그녀를 내보냈다. 그녀는 임근용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미소를 지어 보이고 얼른 시선을 거두며 침착하게 계속 다른 일들을 처리했다.
려씨는 송씨와 초 마마가 무슨 말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왠지 일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이렇게 오랫동안 계획했던 일이 성공을 눈앞에 두고 실패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려씨는 밖에 나가 뭔가 다시 계획을 꾸며볼 심산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어머님, 호랑이를 한 번 보러 다녀와야겠어요.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송씨가 담담하게 말했다.
“유모와 시녀들이 보고 있는데 뭐 하러 너까지 가니? 울면 우는 거지, 운다고 바로 쪼르르 달려가서 달래 주면 나쁜 버릇만 들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부터 제대로 챙겨야지.”
“어머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려씨는 송씨가 이미 마음속으로 계산을 끝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하고 편안하게 앉아 수시로 임근용의 표정과 행동을 살폈다.
곧 문발이 열리더니 방죽이 조용히 들어와 임근용 뒤에 서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이소부인, 이소야께서 오늘 점심은 대부인 댁에서 먹자고 하셨어요.”
임근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이 말은 임옥진 쪽도 이미 준비가 다 되었고 육함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제 송씨 고부는 이 일로 더 이상 수작을 부릴 수 없을 것이다. 임근용은 여유롭고 즐겁게 송씨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따금씩 의견도 제시했다.
세 사람은 평온한 가운데 서로 의논하며 집안일을 잘 처리하고 배분했다. 초 마마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더 이상 시녀들을 여기에 남겨 둘 이유가 없었다. 임근용도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을 고했다.
“이소야가 막 돌아온 터라 어머님 댁에서 함께 점심을 먹자고 하니 저는 먼저 가 봐야겠어요. 둘째 숙모님과 큰형님도 어서 식사하세요. 큰일만 생각하시느라 스스로를 못 돌보시고 입맛까지 잃으시면 곤란하잖아요.”
려씨가 어찌 그녀의 말 속에 숨겨진 뜻을 모를 수 있겠는가? 그녀가 거짓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둘째 동서는 참 친절하고 배려심도 깊네. 걱정하지 마. 우리가 입맛을 잃을 일이 뭐가 있겠어.”
송씨가 웃으며 말했다.
“식사 시간이 되었으니 이만 해산하자.”
그러더니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돌려 임근용에게 관심을 표했다.
“아용, 너희는 젊은 부부잖니, 감정적으로 굴지 말고 둘째랑 사이 좋게 잘 지내. 사소한 일로 서로 감정 상하게 하지 말고.”
임근용은 송씨에게 깍듯하게 인사했다.
“둘째 숙모님, 염려해 주셔서 감사해요. 저나 이소야나 전부 예의와 도리를 아는 사람들이라 소인배들이 훼방 놓지만 않으면 서로 존중하며 화목하고 행복하게 잘 지낼 수 있을 거예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가며 함께 나가던 시녀들과 한번씩 농담을 주고받았다.
려씨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어쩜 저렇게 건방을 떨까요!”
송씨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담담하게 말했다.
“넌 뭘 그리 조급해하니? 왜 화를 내? 넌 저 아이보다 나이도 많고 두 아이의 어미이기도 하면서 아직도 저 아이보다 감정 조절이 서툴구나.”
초 마마가 빠른 걸음으로 들어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인, 저쪽은 벌써 준비가 끝났어요. 그런데 그분이 화를 내시기 시작하자 큰 아가씨께서 바로 문을 막아서셨어요. 뒤이어 이소야께서 온 이후로는 더 이상 아무 기척도 없어요. 부인, 어떻게 할까요?”
송씨의 표정이 아주 안 좋아졌다. 그녀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사람을 때려서 내쫓은 건 범포지만 그래도 어쨌든 설명은 해 줘야 해.”
설명을 해 줘야 한다고? 뭘 어떻게 설명을 하라고? 송씨가 집안일을 주관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일을 임근용에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면 그건 곧 육 노부인의 앞에 가서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려씨가 불평하며 말했다.
“그냥 둘째 동서한테 그 사람이 쫓겨났다고만 알려 주면 되지 않을까요. 동서도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요?”
송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그 아이가 정말로 멍청해서 내 앞에서 울고불고 한 거라고 생각하니? 그 아이가 날 몰아붙이려고 일부러 그런 거 모르겠어? 그 아이는 벌써 계획을 세우고 여기 온 거야. 내가 그 아이를 너무 얕잡아 봤어.”
이게 그녀들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고 해서 그냥 넘어갈 일이겠는가? 하인 신분인 범포가 누군가의 허락 없이 감히 마음대로 하인을 내보낼 수 있었을까? 여씨가 마음에 울분을 품고 있고 임옥진이 도끼눈을 뜨고 지키고 있는 한 분명히 다음번에 또 기회가 있을 것이다.
* * *
임근용 일행이 부지런히 걷고 있는데 방죽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소부인, 정말 공교롭게도 노부인께서 육운 아가씨를 부르셔서 아가씨는 아침 일찍부터 영경거에 불려가 경서를 읽고 계셨어요. 노비가 아가씨를 찾아서 데려온 후에 아가씨께서 아침에 삼부인이 소부인께 했던 짓과 이소야께서 아프다고 전갈을 보냈는데 중간에서 가로챈 일, 몰래 물건을 보낸 일들을 전부 대부인께 말씀드렸어요.”
그러더니 아직도 무서워하는 기색으로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대부인께서 바로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하셨는데 방 마마는 도저히 못 막았고 다행히 육운 아가씨께서 대문을 막고 못 나가게 하셨어요. 얼마 안 있어 이소야도 오셨고요. 어쨌든 이래저래 설득해서 겨우 대부인의 화를 누그러뜨렸어요.”
임근용이 그녀를 칭찬했다.
“아주 잘했어.”
방죽이 웃으며 말했다.
“다 소부인의 빈틈없는 계획 덕분이죠.”
그녀가 목소리를 최대한 누르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소부인, 대부인께서 여전히 화가 많이 나 계신 상태에요. 이소야께서 욕을 먹으면서도 대부인을 말리고 설득하는 건 다 삼부인을 보호하기 위해서예요. 이소부인께서도 들어가시면 조심하세요.”
임근용은 웃으며 방죽을 쓱 보고 아무 말 없이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방죽은 나름대로 용기를 내서 했던 말이었지만 말을 하자마자 약간 후회했다. 그녀는 임근용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마음이 더 불안해졌다. 방금 했던 말들은 임근용의 편에 서서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했던 말이었다. 처음에 방죽은 임근용이 뭔가 반응을 보일 거라 생각했다. 격려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답은 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임근용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잠시 걷고 있던 임근용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앵두야, 넌 따라올 필요 없어. 먼저 가서 밥 먹고 여지한테 가 시키는 일 해.”
앵두는 작은 머리를 열심히 굴리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보고 있던 와중에 임근용의 말을 듣고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다. 임근용의 말은 그녀에게 가서 소식을 알아보라는 뜻이었다. 앵두는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한 뒤 재빠르게 뒤돌아 집으로 달려갔다.
계원도 한 몫 끼고 싶어 안달 난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그럼 노비는 침방 쪽에 한 번 다녀올까요?”
임근용이 계원을 바라보았다. 계원은 오늘 자신이 예전에 그녀에게 주었던 분홍색 옷감으로 만든 짧은 상의를 입고 있었는데 옷감이 많이 낡아 광택이 다 사라져 있었다. 또 밑에는 그녀에게 잘 어울려 자주 입는 푸른색 치마를 받쳐 입고 있었다. 머리는 단정하게 빗어 자귀나무 꽃 한 송이를 꽂았고 지분도 바르지 않아 아주 수수해 보였다. 하지만 계원의 눈만은 눈에 띌 정도로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너희들한테 새 옷을 만들어 주지 않았어? 너희들이 이렇게 몇 년이나 된 옷을 입고 다니면 내가 돈 아까워서 너희들 옷도 잘 안 해 준다고 남들이 욕할 거 아니야. 너도 큰 언니가 되었으면 언니다운 외양을 갖춰야지. 어린 시녀들처럼 이렇게 생기 없게 하고 다니지 마. 주인 체면도 좀 세워 줘야 하지 않겠니?”
계원은 임근용이 자신의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옷을 트집 잡는 걸 보고 가지 말라는 뜻임을 눈치채고 눈을 내리깐 채 공손하게 말했다.
“아가씨 말씀이 맞아요. 돌아가면 바로 갈아입을게요.”
한쪽에서 지켜보던 방죽은 이 일을 기억해 두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