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231
231화. 중임 (2)
사람들은 순식간에 사라져 방 안에는 노부부 둘만 남았다. 육 노부인은 육 노태야의 근심 어린 표정을 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했다.
“자식들은 각자 자기 복을 갖고 태어난다 했으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육 노태야가 탄식했다.
“말이야 그렇지만 어디 죽을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있겠소.”
그의 시선이 앞에 있는 청석 벽돌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에 정과가 몇 개 떨어져 있었다. 아까 원랑, 호랑 두 형제가 울고 소란을 피우며 떨어뜨린 것인데 시녀들이 미처 치우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는 그쪽으로 걸어가 허리를 굽혀 정과를 줍더니 낮은 소리로 말했다.
“사람의 마음은 천천히 길러지는 것이오. 둘째 며느리를 좀 보시오. 나쁜 것만 기억하고 좋은 건 전혀 기억을 못 하지 않소. 우리 집에서 누가 가장 이익을 많이 챙기고 있는 줄 아시오? 당연히 차남가 아니겠소! 원래 원현(苑县)에서 중호에 불과 했던 송씨 가문이 지금은 부호가 되었소. 둘째 며느리 혼수도 집안 살림을 경영하는 몇 년 동안 처음 가지고 왔을 때의 몇 배나 늘었지. 그 아이들이 지금 고생을 좀 한다 해도 내가 뭘 얼마나 더 오래 살며 그 아이들을 힘들게 하겠소? 집안의 가업이 잘 되는 것도 다 장남의 기세를 등에 업은 것이고 요 몇 년 동안 장남이 집으로 보낸 물건들도 꽤 많소. 더구나 육함도 이렇게 인재로 성장하고 있으니 둘째 내외도 그 아이들 덕을 보고 있는 것 아니오. 그런데도 내가 둘째 내외한테 가혹하게 군다고 할 수 있소?”
육 노부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둘째 손자도 장가를 가서 손자며느리도 들였으니 이제 때가 되긴 했지요.”
육 노태야는 어쩔 수 없이 정과를 한쪽에 던져 놓고 수건을 들어 손을 닦았다.
“둘째 손자며느리가 빨리 증손자를 낳아 주었으면 좋겠구려. 큰 손자며느리가 무슨 일만 있으면 원랑이와 호랑이를 안고 울어대는 수작질에 아주 진절머리가 난다오.”
육 노부인이 말했다.
“당신 둘째 손자는 집에 없는 날이 더 많은데 낳고 싶어도 힘들지 않겠어요.”
육 노태야가 웃었다.
“혹시 둘째 손자며느리가 당신한테 뭐라 불평했소? 그럼 내가 둘째한테 집에 자주 좀 오라고 한 번 말을 해야겠구먼.”
육 노부인이 자기도 모르게 따라 웃기 시작했다.
“근용이가 그런 말을 할 줄 아는 아이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 아이도 어찌나 꿀 먹은 벙어리 같은지 몰라요. 하지만 말은 안 해도 매일 이렇게 나한테 오는 걸 보면 혼자 있기 심심해서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 꿀 먹은 벙어리가 입을 열기만 하면 사람을 물어뜯는다오.”
육 노태야는 임근용이 아침에 송씨 고부 앞에서 했던 수작이 떠올라 더 환하게 웃었다.
* * *
임옥진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무거운 마음으로 침상에 앉아 한참 동안 긴장을 풀지 못했다. 그녀는 한쪽에서 찻물을 준비하는 임근용과 조용히 앉아 책을 뒤적거리는 육함을 바라보며 떨떠름하면서도 마음이 쓰렸다.
육운은 감탄하며 말했다.
“오늘 큰 새언니가 정말 목숨을 건 것 같더라고요. 큰 새언니가 둘째 숙모랑 그렇게 사이가 좋은 줄은 몰랐네요. 할아버지께서 노여워하실 걸 뻔히 알면서 그렇게 나서다니.”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다른 한 편으로 임근용을 훑어보았다.
임근용은 육운의 이 눈빛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육운은 다른 집 고부는 이렇게나 사이가 좋은데 그녀도 임옥진에게 그렇게 대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눈치를 주고 있었다. 임근용은 그런 육운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웃으며 사람들에게 차를 가져다주었다.
차를 받은 임옥진이 차갑게 말했다.
“넌 그걸 진짜로 믿니? 큰 며느리가 어떤 아이인데? 그 아이가 자기 시어머니를 감싸려 그런 거라고 착각하지 마. 그냥 남들한테 보여 주려고 그러는 거야. 아마 지금 네 둘째 숙모는 자기 며느리가 예뻐 죽겠지. 하지만 그런다고 뭐 얼마나 대단한 정이 있겠어? 친혈육도 아니고, 남은 그냥 남일 뿐인 거지. 며느리가 어디 친딸에 비교나 되겠니?”
육운은 잠시 멍해졌다가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게 나았을 거라 생각하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임근용은 임옥진이 한 이 진심 어린 말에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며느리는 그저 며느리일 뿐이고 시어머니의 마음속에서는 남이기 때문에 친자식과는 영원히 비교될 수 없었다. 친자식은 아무리 어머니에게 말대꾸하고 화를 내도 결국 한 가족이니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다시 처음처럼 화해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며느리와 사위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그건 절대 불가능했다. 그들은 단 한 번이라도 말대꾸하거나 화를 내면 바로 감정이 상해 사이가 틀어져 버릴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친자식들과 똑같은 일을 할 때도 남을 대하듯 마음을 아주 너그럽게 가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육함은 임근용과 임옥진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어머니,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 마음이 좀 안 좋네요.”
임옥진이 눈썹을 치켜들었다.
“응?”
육함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 비록 어머니의 친혈육이 아니지만, 아용은 어머니의 친조카딸이잖아요. 저희가 어머니께 아운이보다 더 자상하고 세심하게 하지 못할지는 몰라도 그렇다고 저희가 어머니를 가식적으로 대하는 건 아니에요.”
임옥진은 얼굴색이 확 변하며 온몸에 가시를 세웠다.
“내가 너희들한테 가식적으로 대한다고 한 적 있니?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는 게야?”
육운이 얼른 끼어들었다.
“아이고, 됐어요, 왜 또 이러세요.”
육함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듯 입술을 꿈틀거렸지만 육운의 애원하는 눈빛을 보고 말을 참았다. 그는 얼굴을 돌리고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았다. 말주변이 없는 사람은 말을 해 봤자 괜한 오해만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차라리 입을 열지 않는 편이 나았다.
임옥진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불평을 몇 마디 더 했지만 임근용과 육함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 보고 말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그녀는 뱃속 가득 화가 가득 찬 것 같아 너무 괴로운 나머지 씩씩거리며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육함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 임근용도 그 뒤를 따랐다. 그녀가 한 발자국을 떼는데 육운이 그녀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낮은 소리로 애원했다.
“새언니, 언니가 오라버니를 잘 좀 다독여 줘요. 어머니께서 요즘 들어 성격이 더 이상해지셨어요. 언니도 오늘 봤잖아요. 어머니 혼자 아무 일도 못 맡으셨으니 어머니도 나름 이런저런 생각이 들지 않으시겠어요. 괜히 우리 같은 자식들만 중간에서 고생이네요.”
임근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잘 다독여 볼게요.”
육운이 그녀에게 진지하게 인사했다.
“새언니, 앞으로 잘 부탁해요.”
임근용은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 나왔다. 대문 밖으로 나오니 밖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육함이 보였다. 그는 그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더니 가볍게 웃었다.
“갑시다.”
임근용이 주변을 훑어보았지만 방죽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뒤 방죽이 황급히 뒤에서 뛰어와 미안한 듯 웃으며 말했다.
“방금 방 마마한테 끌려가서 바늘에 실을 꿰는 걸 좀 도와줬어요. 이소야와 이소부인께서 가시는 것도 몰랐네요.”
임근용은 담담한 눈빛으로 방죽을 힐끗 쳐다보고 뒤돌아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방죽이 서둘러 그 뒤를 쫓으며 걸음을 내딛는데 계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실을 그렇게 오래 꿰요. 이소부인께서 그 말을 믿는다고 착각하는 건 아니죠?”
방죽은 즉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계원을 쳐다보았다. 계원이 그녀를 흘겨보고 있었다. 그녀는 ‘잘 숨겼다고 착각하지 마라, 이미 다 알고 있다’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죽은 헉하고 숨을 들이마시고 미소를 지었다.
“실을 꿰면서 잡담도 좀 하긴 했지.”
계원은 콧방귀를 뀌고 빠른 걸음으로 임근용의 뒤를 따라갔다.
방죽은 잠시 입술에 힘을 줬다가 다시 예전처럼 웃으며 그들의 뒤를 쫓았다.
* * *
방 마마가 문 앞에 서서 낮은 목소리로 어린 시녀를 꾸짖었다.
“얼른 따뜻한 물 안 가져 오고 뭐해?”
육운이 밖으로 나와 그녀의 곁에 서더니 말했다.
“뭐라고 해?”
방 마마는 마치 파리를 쫓는 것처럼 손을 흔들어 시녀를 쫓아 보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찻집에 갔다가 마침 오상 공자를 만났다고 하더라고요. 찻집을 어떻게 경영하고 꾸밀지 이야기했다고 해요. 오상 공자께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골동품들을 빌려 줄테니 내부 장식에 쓰라고 이소부인께 강권하셨는데 이소야께서 거절하셨대요. 그러고 나서는 이소부인께서 방죽이한테 오장루에 가서 음식을 사 오라고 하는 바람에 아무것도 못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후에는 다른 데로 새지 않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대요.”
육운은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 마마는 잠시 한쪽에 서 있다가 그녀가 다른 지시를 하지 않자 조용히 인사하고 물러났다. 육운은 복도 기둥에 기대서서 어두운 정원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 * *
여지는 조심스럽게 새하얀 향료 재를 떼어내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옅은 청색의 연기를 바라보았다. 온 방 안이 순식간에 달콤하고 향기로운 향기로 가득 찼다. 그녀는 그제야 만족하고 황금으로 도금된 청동 향로 뚜껑을 덮은 뒤 한쪽으로 가서 임근용에게 물었다.
“아가씨, 오늘 밖에서 비파가 많이 들어왔어요. 달고 싱싱한데 좀 드셔보시겠어요?”
임근용이 보고 있던 기보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네가 서재에 가서 이소야도 먹을 건지 한 번 물어볼래?”
여지가 얼른 대답하고 문발을 걷으며 밖으로 나갔다. 계원이 재빨리 손을 깨끗이 씻고 비파를 까서 임근용에게 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방죽 언니는 실을 꿰는 걸 도와주러 방 마마한테 간 게 아니에요. 다 거짓말이에요.”
“응.”
임근용은 눈을 내리깔고 천천히 은꼬챙이로 비파를 한 조각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계원은 그녀가 기분 나빠하지 않는 걸 보고 용기내 말했다.
“아가씨, 노비가 두 사람이 마치 도둑질하듯이 복도에 서서 한참 동안 얘기하는 걸 봤어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주변에 사람도 있어서 아쉽게도 무슨 말을 하는지까지는 못 들었지만요. 하지만 분명히 우리 집에서 있었던 일을 전부 보고했을 거예요. 안 그러면 왜 그 어두컴컴한 복도에 서서 실을 꿰겠어요? 분명 누가 보고 들을까 무서워서 그랬겠죠.”
임근용이 미소를 지었다.
“너도 머리를 쓸 줄 아는구나.”
비파 껍질을 벗기던 계원의 손가락이 잠시 굳었다. 그녀는 눈을 들어 임근용의 얼굴을 바라보며 필사적으로 말했다.
“아가씨, 정말이에요. 노비가 계속 쳐다보니까 자꾸 이리저리 자리를 옮겼어요. 그 언니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에요. 조심하세요.”
임근용이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네 말을 믿게 만들려면 증거를 가져와야지. 네 생각이나 추측은 아무 소용없어. 이런 이치는 누구에게든 어떤 일이든 다 똑같이 적용되는 거야. 알겠니?”
계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예, 아가씨, 명심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