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235
235화. 앵두 (1)
육 노태야는 웃는 얼굴로 육함이 가져온 그 두 장의 도안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다.
“이게 이름이, 쟁기하고 앙마라는 것인데 이걸 써서 농사를 지으면 인력과 물자를 아주 많이 절약할 수 있다더구나. 날씨만 잘 맞아 주면 올해는 풍작을 기대해 볼 수 있겠어.”
송씨는 아주 흥미로워하며 도면을 가져가서 살펴보더니 또 이것저것 묻고 의견을 제시했다.
“아버님, 이렇게 좋은 물건은 만들어서 파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가게를 하나 차려서 이것만 전문적으로 팔면 될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며칠 전에 제가 사람을 시켜 농기구를 사 오라 했었는데 성 북쪽의 진(陈)씨네 가게가 장사가 아주 잘 된다고 합니다.”
정말 부창부수가 따로 없었다. 육건중이 집에 없지만 송씨가 이걸 놓칠 리 없었다. 임근용의 시선이 절로 육함 쪽을 향하자 육함 역시 눈을 돌려 그녀 쪽을 바라보았다. 잠시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이내 시선을 돌렸다.
육 노태야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건 일반적인 다른 물건들과 비교할 수 없는 물건이다. 쓰기만 하면 사람들에게 복을 가져다주는 물건이라 할 수 있지. 이런 물건으로는 돈 벌 생각을 하는 것보다 선행을 해 덕을 쌓는 편이 더 좋을 것 같구나. 그럼 앞으로 우리 육씨 가문 자손들이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더 많이 받게 될 게다.”
육 노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부처 앞에서 끊임없이 경전을 읽어대는 것보다 이런 일을 한 번 하는 게 훨씬 낫지요.”
송씨는 꽤 못마땅했지만 더 이상 토를 달긴 어려워 그저 눈만 내리깔았다. 선행을 해 덕을 쌓겠다는 말은 사실상 육함의 명성을 드높이겠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좋은 명성을 얻으려고 돈을 주고 사기도 한다는데 이런 좋은 기회는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육 노태야가 또 말을 이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염지에 물을 끌어다 댈 게다. 그때가 되면 둘째 손자 너는 다른 동생들과 함께 네 둘째 숙부와 큰형을 따라가서 도와라. 온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생각만 하지 말고 나가서 이런 일들도 배우고 해야 하는 게다. 안 그럼 나중에 너희들에게 그 땅을 나눠준대도 뭘 어찌 심어야 할지조차 모르지 않겠느냐?”
려씨의 눈꺼풀이 부르르 떨렸다. 그녀는 불안한 눈빛으로 송씨를 바라보았다. 집안일뿐만 아니라 바깥일까지 손을 대려는 걸까? 송씨는 려씨에게 분명히 그럴 거라는 눈빛을 보내고 그녀가 놀라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말은 저래도 실제로는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육함은 아직 더 공부를 해야 했다.
* * *
해질녘이 되자 태양은 마치 껍데기가 깨져 강제로 밖으로 나온 노른자처럼 붉게 물든 채 묵직하고 침울한 분위기를 풍기며 하늘 끝자락에 걸렸다.
창가에 서 있던 송씨는 침울한 표정으로 지평선을 바라보며 무의식적으로 왼손에 든 부채를 쥐어뜯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장부가 높게 쌓여 있었는데 전부 확인을 마치고 제출할 것들이었다. 그녀는 앞으로 더 이상 이 장부를 볼 권리도, 지휘할 권리도 없다 생각하니 괴롭고 공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려씨는 한쪽에 숨을 죽이고 서서 송씨가 정교하고 아름다운 부채에 계속 구멍을 내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녀에게 주의를 주려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어머님? 구멍 난 건 저한테 주시겠어요?”
송씨는 그제야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웃으며 부채를 들어 빛에 비춰 보고 계속 부채질을 했다.
“그래서 셋째랑 다섯째는 요 며칠 육함이랑 같이 다닌다고?”
려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또 임씨 가문 일곱째 공자랑, 오씨 가문 오상 공자까지 함께 다닌다고 하네요. 다들 하루 종일 같이 어울려 다닌다고 해요. 가끔씩 밖에 나가서 밥을 먹기도 하고요.”
육함은 그 도면을 가져온 후부터 매일 장인을 찾아가 반나절 이상 무슨 쟁기와 앙마인가를 만드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서 육륜과 육경 또한 이걸 핑계 삼아 매일 육함을 따라 밖으로 쏘다녔다. 육 노태야도 어찌된 일인지 평소와는 다르게 그 두 사람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그들이 육함을 따라 밖으로 돌아다니게 그냥 내버려두었다.
송씨가 말했다.
“여섯째는 이번에도 안 따라갔어?”
려씨는 이에 대해 말하며 아주 의아해했다.
“안 따라갔어요. 솔직히 말해서 둘째 공자 친동생인데 왜 셋째나 다섯째 공자처럼 둘째 공자와 친하게 지내려 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바보 같지 않나요?”
송씨가 엷게 웃으며 말했다.
“누구든 부모가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대며 그 사람보다 못나서 쓸모없다고 말하면 아무리 그게 친형제라도 친하게 지낼 수가 있겠니. 게다가 그 아이 눈에 둘째 형이 얼마나 배은망덕해 보이겠어. 자기들을 내팽개치고 기대를 저버린 사람하고 어떻게 친하게 지내겠니? 너희 셋째 숙모란 사람이 그 두 아이를 반 병신으로 키운 거지.”
려씨는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자기 남편이 육함의 반만 따라갔어도 자기가 이렇게까지 힘이 없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감히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송씨가 다 웃고 나서 또 말을 이었다.
“시킨 일은 다 했니?”
려씨가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다 했어요. 지금 집안사람들 대부분이 암암리에 셋째 숙모님이 창고 관리를 맡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오늘 아침에 맹 마마가 새로 들어온 앵두 한 광주리를 삼남가에 보냈어요. 맹 마마가 이렇게 앞장을 서니까 그 밑에 있는 사람들도 앞다퉈서 환심을 사러 달려갔다고 하더라고요. 셋째 숙모께서도 일일이 다 만나서 접대했다고 들었어요.”
송씨가 웃으며 부채로 입을 가렸다.
“맹 마마도 수완이 보통이 아니네.”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부인, 앵두 한 바구니 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노비가 부인 드릴 건 따로 두 바구니를 챙겨 왔어요. 다 노비 집 정원에서 딴 건데 크기가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하고 꿀처럼 달답니다.”
문발이 들리고 살이 쪄서 눈이 실눈처럼 가는 맹 마마가 한 손에 대바구니를 들고 빙그레 웃으며 들어왔다. 소금이 급히 앞으로 나가 바구니를 받아 송씨에게 건네주었다. 대바구니 안에 있는 앵두는 정말로 아주 붉고 크기가 컸으며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통통했다. 꼭지에는 앵두 잎이 붙어 있었는데 청록색 잎사귀가 아주 신선해 보이는 것이 나무에서 딴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송씨가 만족스러워하며 말했다.
“가져가서 좀 씻어 오너라. 맹 마마가 준 거긴 하지만 맹 마마한테도 대접은 해야지.”
맹 마마가 겸손을 떨며 말했다.
“아이고, 부인, 무슨 그런 황송한 말씀을 하시고 그러세요. 부인께서는 노비의 은인이세요. 부인이 없었다면 노비가 오늘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두 손을 모으고 송씨에게 인사했다.
“입만 산 능글맞은 늙은이 같으니라고!”
송씨는 화난 척 나무라며 손에 들고 있던 찢어진 부채로 그녀의 머리를 살짝 때리더니 시녀에게 의자를 가져다주라고 눈짓했다.
맹 마마는 의자에 앉지 않고 사양했다.
“부인 앞에서 노비가 어찌 감히 앉겠어요?”
“흥! 안 앉을 거면 썩 꺼지거라!”
송씨는 오랜만에 평소에는 잘 보여 주지 않던 심술부리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려씨는 송씨의 이런 면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맹 마마가 비스듬히 몸을 기울이고 앉아 시녀가 건네주는 차를 받고 웃으며 말했다.
“그분께서 노비가 드린 앵두를 드시고 연거푸 달다고 칭찬하시더니, 다음에 노비의 앵두 밭에 한번 놀러 오시겠다고 하시더군요. 또 노비한테 은비녀도 하나 선물로 주셨답니다.”
송씨의 눈에 약간의 경멸이 비쳤다.
“확실히 믿는 눈치지, 그렇지?”
맹 마마가 머리 위에 꽂혀있는 은비녀를 만지고 허허 웃으며 말했다.
“벌써 노비에게 평소에는 어떻게 관리하느냐고 묻고 염탐하시던걸요.”
송씨는 비웃음을 참지 못했다.
“마음이 급해서 기다리기 얼마나 힘들겠느냐. 자기 주제도 모르고 나이를 대체 어디로 먹은 건지 모르겠구나.”
맹 마마는 들고 있던 차를 털어 마시고 일어나 작별을 고했다.
“부인, 저는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앵두를 두 바구니 더 배달해야 해요.”
송씨가 또 물었다.
“내가 말했던 그 물건은 준비했느냐?”
맹 마마가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목소리를 낮추고 손을 나팔 모양으로 만들어 송씨에 귓가에 갖다대며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 잡았어요. 전부 열 마리예요. 지금 저희 아들이 키우고 있어요, 때가 되면 들여보낼게요.”
송씨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가 보거라, 들키지 않게 조심하고.”
맹 마마가 웃으며 말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맹 마마가 나가자 송씨는 두껍게 쌓여 있는 장부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내일 이 장부를 넘길 거란다.”
려씨가 근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님, 할아버님께서 우리 예상대로 움직여 주시지 않으면 어떡하실 거예요?”
송씨가 단호하게 말했다.
“절대 그럴 리 없어. 어쨌든 내가 오랜 시간 이 집의 살림을 전부 관장했지 않느냐. 하나는 내 동서고 하나는 갓 시집온 며느리야. 설령 둘이 손을 잡는다 해도 나를 넘어서긴 힘들어. 더구나 아버님께서도 이노야와 대소야의 눈치를 안 보실 수는 없으실 게다. 이건 그저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야.”
“오.”
려씨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버님과 대소야는 언제 돌아올지 아직 모르시는 거죠?”
송씨가 말했다.
“아마 곧 올 거야, 지금 서신을 보내면 며칠 걸리지 않겠니.”
그녀가 이런 말을 하기 무섭게 초 마마의 기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부인, 대노야와 대소야께서 돌아오셨어요. 일단 노태야께 인사드린다고 집현각으로 가셨어요. 목욕을 할 것이니 뜨거운 물을 준비하라 하셨어요.”
일단 남편들의 시중을 드는 게 가장 우선이라 두 고부는 하던 일을 내려놓고 각자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맹 마마는 어린 시녀에게 앵두 두 바구니를 들려 임옥진의 처소로 향했다. 그녀는 집에 도착해서 바로 들어가지 않고 하급 시녀 하나를 불러내 물었다.
“대부인께 드릴 말씀이 좀 있는데 대부인 방에 혹시 다른 사람이 있니?”
하급 시녀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이소야와 이소부인께서 방금 문안을 드리고 가셨어요. 지금은 큰아가씨만 안에 계세요.”
맹 마마는 어린 시녀에게서 앵두 한 바구니를 건네받아 육중한 몸을 흔들며 안으로 들어갔다.
“넌 가서 우리 집에서 앵두를 땄는데 대부인께서 맛보실 수 있게 한 바구니 가져다드리러 왔다고 말씀드려.”
정원에서 꽃에 물을 주고 있던 방 마마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하던 일을 멈췄다. 그녀는 얼른 앞으로 나가 가로막고 서서 웃으며 말했다.
“어머, 이게 무슨 일이야? 무슨 바람이 불어서 바쁜 사람이 여기까지 다 왔어?”
맹 마마는 그 말 속에 담긴 비아냥거림을 모른 척하며 뻔뻔스럽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우리 같은 하인들은 대부인과 친해지고 싶어도 그럴 기회가 별로 없잖아요? 이런 물건이 있을 때 대부인께 갖다 드리고 얼굴 도장이라도 찍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언니, 수고스럽겠지만 나 대신 대부인께 말씀 좀 전해 주세요.”
방 마마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잠깐 기다려, 가서 부인께 고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