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237
237화. 깊이 생각하다
여지가 신중하게 대답하고 앵두를 불러들여 임근용의 명령대로 지시했다. 그녀는 깨끗이 씻은 앵두를 내오더니 임근용을 향해 육함에게 직접 가져다주라며 눈치를 줬다.
“이소야께서는 공부하실 때 저희가 방해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세요, 아가씨께서 가져가 보시겠어요?”
임근용은 손을 깨끗이 씻고 과일 쟁반을 든 채 옆방으로 갔다.
그녀가 방문을 열었지만 육함은 고개도 들지 않았다.
“손님은 갔소?”
의외로 그는 그녀가 온 걸 알고 있었다.
“갔어요.”
임근용은 과일 쟁반을 탁자 한쪽에 놓고 대야에 가서 물수건을 가지고 와 손을 닦으라며 그에게 건넸다.
“시끄러워서 정신이 흐트러졌으면 일단 좀 먹고 다시 시작해요.”
육함이 수건을 받으며 말했다.
“마마는 왜 온 거요? 아주 까마귀처럼 쉴 새 없이 떠들어대더군!”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시끄러웠죠? 앞으로는 여기 오는 사람이 더 많아질 수도 있어요. 아니면 앞으로 밤에는 청설각에 가서 공부할래요?”
육함은 대답없이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 수건을 건넸다. 그는 앵두 한 알을 집어 입에 넣으며 다시 물었다.
“마마가 뭐 하러 온 거요?”
임근용은 하는 수 없이 방금 전에 여지에게 했던 말을 그에게 다시 한 번 해 주었다.
“나도 마마가 대체 뭐 때문에 이러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좀 전에 앵두한테 나가서 소식을 알아 오라고 시켰어요.”
육함이 눈살을 찌푸리며 과일 쟁반을 그녀 앞에 밀었다.
“말만 하지 말고 당신도 좀 먹어 보시오. 맛있소.”
두 사람이 서로 권하며 앵두 한 접시를 다 먹고 나니 앵두가 돌아왔다. 임근용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가서 뭘 알아왔는지 좀 들어 볼게요.”
육함이 말했다.
“들어와서 이야기하라고 하시오.”
임근용은 뜻밖에 그가 이런 자질구레한 일에 흥미 있어 하자 그에게 물었다.
“당신 공부하는 데 방해되는 거 아니에요? 요 며칠 쟁기 만들러 다니느라 공부도 많이 못 했잖아요?”
육함이 말했다.
“그런 건 내가 다 알아서 할 거요.”
앵두가 안으로 들어와 말했다.
“오늘 오후에 앵두를 총 네 바구니 가져 왔는데 이부인께 두 바구니, 대부인께 한 바구니, 우리한테 한 바구니를 보냈어요. 이부인 댁에서 차를 한 잔 마셨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런 사례도 못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대부인께 가서는 큰절을 올리고 사탕을 한 상자 사례로 받아갔다고 해요.”
겉으로는 누구도 빠뜨리지 않고 다 챙긴 것 같아 보였지만 맹 마마는 아주 주도면밀하게 움직여 여씨에게 제일 먼저 앵두를 보냈다. 게다가 그 이후에 맹 마마의 수하들이 다들 한 번씩 여씨를 찾아갔다. 임근용은 여기에다 요 며칠 동안 하인들 사이에서 퍼진 은밀한 소문까지 더해서 깊이 생각해 본 뒤 마침내 대체적인 사건의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만약 여씨가 전부터 창고 관리 직무를 얻길 원하고 있었다면 맹 마마의 이런 행동과 암시로 그 일이 분명히 자기에게 맡겨질 거라고 확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일에 갑작스럽게 어떤 변고라도 생긴다면 여씨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교활한 음모라고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 밤 맹 마마가 이렇게 또 다시 한 바퀴 돈 건 겉으로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눠 주어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함인 것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임근용과 임옥진의 환심을 사서 앞으로 있을 인사이동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사실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여씨의 희망이 깨지고 난 다음 그녀를 최대한 자극해 여씨가 임근용을 증오하게 만드는 동시에 맹 마마가 이런 짓을 했다는 걸 은폐하기 위해서였다. 맹 마마는 그냥 앵두를 가져다준 것뿐이지 않은가? 모든 사람한테 다 가져다줬는데 삼부인이 그걸 가지고 오해했다고 한들 어찌 그녀 탓을 할 수 있겠는가? 맹 마마 수하의 사람들이 한 짓은 사실상 송씨나 맹 마마와는 전혀 상관없었다. 그녀들이 바라는 건 임근용과 여씨 사이에 영원히 풀 수 없는 원한을 만드는 것이었다.
임근용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송씨의 행동과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이미 전생과는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생에 있었던 많은 일들을 그녀가 이제 와서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어쨌든 지금 이 순간 이 일 만큼은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임근용은 차남가가 그녀의 전생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또 어느 정도 활약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현생에서는 그녀들이 온갖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임근용은 고개를 돌려 육함을 바라보았다. 이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알고 있는 그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제대로 보고 있을까?
육함은 다른 말은 전혀 하지 않고 그저 앵두에게 물러가라며 손을 흔들었다.
임근용은 잠시 기다렸다가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맹 마마가 저렇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게 단순히 앵두를 선물하기 위해서일 리가 없어요. 설마 온 가족에게 앵두가 맛있다는 소리나 듣고 싶어서 저러겠어요?”
육함은 동문서답했다.
“난 앞으로 며칠 동안은 외출하지 않을 거요. 당신도 별일 없으면 쓸데없이 다른 데 나가지 마시오.”
그는 책상에 앉아 편지를 한 통 쓰더니 임근용에게 건네주었다.
“사람을 시켜 오상에게 보내시오, 오상한테 내 대신 거기 가서 쟁기와 앙마를 만드는 걸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소.”
임근용은 문밖으로 나가 두아를 불렀다.
“이 편지를 장수한테 갖다주고 오씨 가문 둘째 공자한테 보내라고 해.”
이때 육운이 아리따운 자태를 뽐내며 대문 안으로 들어와 두아의 손에 있는 편지를 힐끗 훑어보더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새언니, 오라버니 집에 있어요?”
임근용이 서재를 가리켰다.
“안에 있어요.”
육운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언니, 시간 있으면 잠깐 밖에 나가서 걸을래요?”
임근용이 막 대답하려고 하는데 육함이 문을 열고 나와 웃으며 말했다.
“아운이 왔구나, 어서 들어와.”
그러더니 임근용에게 말했다.
“아용, 수고스럽겠지만 차를 좀 내려 줄 수 있소?”
육운은 하는 수 없이 그를 따라 서재로 들어갔다.
임근용은 사람을 불러 다구를 가져오라 하고 그날 받은 밀운용(密云龙) 단차를 꺼내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물이 별로인데 어쩌죠?”
육운이 재빠르게 간아에게 지시했다.
“작년에 내가 묻어놓은 눈 녹은 물을 한 항아리 꺼내서 가져와.”
그러더니 고개를 돌리고 웃는 얼굴로 육함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라버니와 새언니는 어쩜 이리 금슬이 좋을까요.”
육함이 눈을 내리깔고 살짝 웃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 녹은 물이 도착했다. 임근용이 차를 내리려 하자 육운이 다정하게 곁으로 다가왔다.
“새언니, 내가 도와줄게요.”
그러더니 또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오라버니는 참 복도 많네요, 우리 둘이 같이 내린 차도 맛보고.”
육함이 웃으며 말했다.
“이틀 후에 염지에 강물을 끌어다 댈 거야. 네 새언니랑 같이 구경 가려고 하는데 아운이 넌 시간 있어?”
육운의 눈이 밝아졌다.
“구경 가는 사람들이 많겠죠?”
육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은 아마 거리가 텅텅 빌걸.”
육운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가야죠, 꼭 가서 봐야죠.”
임근용은 옆에서 조용히 차를 우리며 두 남매의 잡담을 듣다가 이따금씩 대수롭지 않은 화제에 끼어들며 분위기를 맞췄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한 시진이 지났고 육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을 고했다.
“밤이 깊었으니 전 이만 가 볼게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임근용에게 눈짓했다.
임근용이 그녀를 배웅하려 자리에서 일어나자, 육함도 같이 일어나 임근용과 나란히 밖으로 나갔다.
“동생을 바래다 주고 오겠소.”
육운이 어쩔 수 없이 말했다.
“됐어요, 내가 외부인도 아니고, 우리 집이랑 얼마 멀지도 않잖아요. 배웅 안 해 줘도 돼요. 다들 들어가요.”
육운은 처음부터 끝까지 임근용과 단둘이 이야기할 기회를 한 번도 잡을 수 없었다.
임근용은 육함의 행동을 눈여겨보고 담담하게 웃으며 뒤돌아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정리하고 잘 준비를 했다.
육함은 깨끗한 온수를 퍼서 얼굴에 한 움큼 끼얹으며 눈을 감고 말했다.
“앞으로 이틀 동안은 아운이랑 둘이서 대화하지 마시오.”
임근용이 잠시 침묵했다가 대답했다.
“알았어요.”
육운이 그녀를 찾아온 건 여씨와 집안일을 분담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임옥진 모녀의 생각과 요구는 임근용과는 완전히 달라서 결국 서로 감정만 상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육함은 말없이 수건을 꺼내 얼굴의 물방울을 닦으며 나왔다. 임근용은 세수를 마치고 화장대 앞에 앉아 비녀와 장신구를 뺐다. 갑자기 침상 쪽에서 육함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께서 말을 꺼내시면 셋째 숙모는 분명 당신을 탓하고 원망할 거요. 부탁인데……. 내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셋째 숙모와 똑같이 맞서지 마시오.”
임근용은 의아해하며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육함을 바라보았다. 육함이 여씨에 대해 그녀에게 이렇게까지 명확하게 말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자기 체면을 봐서 여씨와 똑같이 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육함은 침상 머리에 기대앉아 고개를 숙인 채 손에 든 책을 집중해서 읽고 있었다. 마치 방금 그 말은 다른 사람이 한 것 같았다.
임근용이 얼른 대답했다.
“난 소란을 피우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가능하면 하루하루 조용하고 평화롭게 지내고 싶어요. 하지만 고모께서 어떻게 나오실지 모르겠네요. 내가 말릴 수도 없고요.”
임근용이야 여씨를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임옥진은 그리 선량한 사람이 아니라 여씨의 머리채를 흔들며 들들 볶으려 할 수도 있었다.
육함이 차락 하고 책을 한 장 넘기더니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건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오.”
임근용은 머리를 풀고 열심히 빗으며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한테 따로 생각이 있는 거라면 다행이고요.”
육함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그녀를 응시했다.
향이 반 정도 탈 시간이 흐른 후 그는 책을 덮고 침상에서 나와 임근용의 손에 있는 빗을 가져갔다. 손의 온기 때문에 백양목 빗은 따뜻했지만 손에 닿는 그녀의 머리카락은 차가웠다. 육함은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깔며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임근용을 응시했다. 육함은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가볍게 어루만지고 그녀를 품에 안았다.
임근용이 눈을 감았지만 불빛은 그녀의 눈꺼풀을 통과해 눈앞에 희미한 붉은 잔상을 남겼다. 순간, 그녀의 몸이 가벼워지는가 싶더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임근용은 어둠 속에서 육함의 낮은 목소리를 들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앞으로 집에 자주 들르라고 말씀하시더군.”
“뭐라고요?”
임근용이 힘겹게 물었다.
육함은 그녀의 등에 손을 갖다 대고 임근용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아무것도 아니오.”
임근용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두 개의 손가락이 그녀의 입술에 닿는가 싶더니 입술을 살짝 어루만졌다. 그리고 입 안으로 들어가며 그녀의 입술을 벌렸다. 임근용은 긴장하며 살짝 입을 벌리고 손가락 두 개를 한입에 물었다.
육함은 숨을 들이마시고 손을 빼지 않은 채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힘껏 눌러 자신에게 한층 더 가까이 밀착시켰다. 임근용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육함이 그녀의 어깨를 한 입 베어 물더니 곧 힘껏 빨아들였다. 임근용은 통증에 약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육함을 밀어내 보았지만 밀리지 않자 화가 나 그의 어깨를 끌어안고 세게 깨물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