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24
24화. 화복 (1)
임근용은 방으로 돌아와 여지의 시중을 받으며 오래된 비취색 치마로 갈아입었다. 그녀가 침상에 앉아 발을 드니 여지가 그녀의 신발을 집에서 신는 부드러운 신발로 갈아 신겨 주었다.
여지는 빨간색 바탕에 백매화(白梅)를 수놓은 비단신 한 켤레를 꺼냈다. 그러고는 임근용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녀가 신고 있는 보라색 바탕에 백목련을 수놓은 비단 구두를 벗겼다.
그녀는 임근용의 발을 손으로 만져보고 저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너비를 한 번 재보았다. 역시 예전과 좀 달랐다.
여지는 어려서부터 아가씨의 곁에서 시중을 들었기 때문에 아가씨의 몸 어디에 점이 있는지까지 전부 알고 있었다. 이런 미세한 변화를 그녀보다 더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계 마마보다도 더 정확했다.
왜 이렇게 변한 거지? 여지는 한 편으로 깊은 생각에 잠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집에서 신는 붉은 비단신 한 켤레를 임근용에게 재빠르게 신겼다. 이건 집에서 신는 신발로 비교적 헐렁해서 신으면 편했다.
여지는 잠시 망설이다 갈아 신은 보라색 비단 구두를 정리했다. 그리고 눈을 들자 임근용과 눈이 마주쳤다.
임근용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에는 웃음기가 하나도 없었다.
“너 방금 내 발을 재던데, 뭐 이상한 거라도 있어?”
이건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여지는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눈에는 아가씨 발이 엊그제 보다 좀 통통해진 것 같아요.”
임근용은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있는 찻상에서 찻잔을 꺼내 냉차를 아무렇게나 따라 가볍게 마셨다.
“그래서 뭐?”
그녀의 목소리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서늘한 기운이 배어 있었다. 여지는 어쩔 줄을 몰라 하며 한참을 머뭇대다 말했다.
“아가씨께서 직접 푸신 거예요?”
임근용은 여지를 쳐다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응. 불편해서.”
어려서 전족을 했을 때는 아직 근육과 뼈를 다치지 않았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별로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점 아파왔다.
그녀가 아파서 눈물을 흘리자 도씨와 계 마마가 타이르며 말했다.
“이렇게 해야 예쁜 거야. 봐라, 대갓집 여자들 중에 이렇게 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니? 조금만 참으렴. 설마 시녀들처럼 큰 발 아가씨가 되고 싶어서 그래?”
또 옆에서 구경하는 계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봐라, 저 아이들은 하고 싶어도 못해!”
임근용은 어머니가 결코 자신을 해칠 리 없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모두들 그래야 한다고 하니 그녀는 십 수 년을 참고 또 참았다.
그녀의 발은 정말 예뻤다. 작고 깜찍했으며 곧게 뻗어있어 보기 좋았다. 하지만 길을 걸을 때 종종걸음으로 걸을 수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많이 걸으면 아팠다. 도망가는 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는 후에 외지에서 온 그녀와 신분이 비슷한 대갓집 아가씨들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녀들은 전족을 하지 않아 잘 걷고 잘 뛰어다녔다. 임근용은 그 아가씨들이 부러웠다. 그녀가 왜 별 볼 일 없는 남자들 보기 좋으라고 이런 고생을 해야 한단 말인가?
누구 보라고 발을 이리 곱고 가냘프게 만든단 말인가? 그런 이유로 그녀가 다시 태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발을 풀어 놓은 것이었다.
계 마마와 계원에게는 당연히 숨길 수 있었지만 여지에게는 그럴 수 없었다. 이런 변화를 다른 사람은 모를 수 있어도 여지만은 모를 수가 없었다.
노비라 전족을 해본 적은 없지만, 밤낮으로 발이 묶여 있으면 얼마나 불편할까?
그러나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그런 행동을 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여지는 한숨을 쉬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가씨도 정말 제멋대로세요. 부인께서 아시면…….”
임근용은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끊고 교활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가 늘 곁에서 날 모시고 있잖아. 내 신발도 네가 만드는데 네가 말하지 않으면 누가 알겠어?”
하지만 언젠가는 결국 들통이 날 것이다. 여지가 두려워하며 말했다.
“하지만 아까 황 이낭한테 신발 만들어 달라고 하셨잖아요.”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신발 모양은 네가 줄 거잖아, 어떻게 본을 뜨고 어떻게 자를 건지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아? 더구나 이낭이 내 발 크기가 얼마인지 어찌 알겠어? 나중 일은 뭐 나중에 생각하면 되고.”
‘내 나이가 적지 않은데 지금 발을 풀어놓으면 얼마나 더 자라려나? 어쨌든 못 뛰게 되는 것보다는 낫지!’
여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앞으로……”
앞으로 혼인을 하게 되면 아가씨의 부군이 될 사람에게 예쁘지 않은 큰 발을 보여 주어야 했다.
임근용이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그냥 발이잖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 안 해도 돼. 더구나 너는 전족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아마 그 불편함을 모를 거야. 전족은 자기만 해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해칠 수도 있어…….”
만약 그녀가 그렇게 느리지 않았다면, 그녀와 여지가 도망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여지에게 이걸 말해 뭘 하겠는가! 여지는 일찍이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아마 영원히 모를 것이다.
임근용은 아예 대놓고 말했다.
“우리 어머니랑 황 이낭 중에 누가 더 예뻐?”
여지가 하찮다는 듯이 말했다.
“그 여자는 부인의 발끝도 못 따라가지요.”
황 이낭은 시녀 출신이라 당연히 발이 컸다. 그런데도 임 삼노야는 그녀를 좋아해 자주 그녀의 방에서 묵었고 삼부인은 좋아하지 않았다.
임근용이 웃었다.
“그럼 얘기 끝난 거지? 네가 나를 도와줄지 말지, 내 말을 들을지 다른 사람 말을 들을지는 잘 고민해 봐.”
여지는 신발을 들고 한참 동안 묵묵히 서 있다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잠깐 누워 계세요. 노비는 가서 신발 모양 본을 떠 올게요. 오늘부터 새 신발을 만들기 시작해야 해요.”
임근용은 그녀가 이런 대답을 하리란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임근용은 여지가 조용히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또 그녀를 불렀다.
“여지야!”
여지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가씨, 또 시키실 거라도 있으세요?”
임근용은 그저 그녀에게 생긋 웃어 보이고는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밤 새지 마. 눈 상해. 지금 이 신발도 그렇게 작지는 않아. 평소에 외출할 일도 없는데 급하게 할 것 없어.”
여지가 유쾌하게 대답했다.
“알겠어요!”
임근용은 나른하게 침상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오늘 받은 선물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임옥진이 선물한 순금 팔찌, 오씨가 선물한 옥류소금보(*玉流苏禁步: 옥 노리개와 유사한 장신구), 도봉당이 선물한 파옥석으로 눈을 박은 은제 십이지신 장식품 등등이 있었다.
전부 값나가는 것들이라 이 물건들이 앞으로 그녀가 돈을 버는 밑천이 되어 줄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임근용은 조심스럽게 그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해서 자신의 작은 금모란 상자에 넣고 잠갔다. 열쇠는 부용을 수놓은 남색 수건으로 꽁꽁 싸맨 뒤 소매 속에 잘 넣어 두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턱을 괴고 창가에 활짝 핀 담황색 황촉규(黃蜀葵)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가씨!”
계원이 재빨리 걸어 들어오더니 친근하게 임근용에게 다가서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노부인께서 아가씨를 부르시지는 않으셨죠?”
임근용의 속눈썹이 날개처럼 가볍게 바람에 날렸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아니. 왜? 너 위층에서 어머니 만나지 않았어?”
계원은 임근용의 표정을 훔쳐보며 애써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까는 저도 정말 조마조마하면서 위층으로 올라갔는데 삼부인과 노부인이 전부 돌아와 있으신 걸 보니 너무 기뻐서 웃음이 다 나오더라고요.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손님들이 가고 나면 이부인이 아가씨를 괴롭히지는 않을지…….”
그녀는 말을 하다 말았다.
이때의 계원은 아직까지 임근용에게 총애를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상태라 임근용의 마음에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가 생길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임근용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래도 날 이렇게 걱정해주는 건 계원이 너밖에 없구나. 그래서?”
임근용이 칭찬을 해 주자 계원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녀는 비위를 맞추려는 듯 다시 말을 이었다.
“역시 손님들이 가고 나니 누군가 와서 여섯째 아가씨는 가슴이 아프다 하고 일곱째 아가씨는 발이 아프다고 한다고 보고하더라고요. 근데 노부인께서 의원을 부르라고만 하시고 다른 말씀은 일절 없이 화제를 딴 데로 돌려 버리셨어요. 이부인은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도 부인 앞이라 다른 말은 못 하더라고요. 혹시라도 이부인이 뒤에서 나쁜 짓을 할까 걱정해서 이렇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아주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수고 많았어.”
임근용도 계원에게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건 도 부인, 오씨가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 임 노태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임 노태야는 틀림없이 아래층에서 발생한 일을 전부 알고 있을 것이다. 노태야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데 어느 간 큰 사람이 거기에 말을 보탠단 말인가?
계원은 그녀가 전혀 두려워하거나 걱정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자 오히려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녀가 두려워하며 말했다.
“아가씨?”
“내 돈 상자 열쇠 좀 줘 봐.”
임근용은 갑자기 가늘고 흰 손을 계원에게 내밀었다.
지금까지 임근용의 옷과 장신구는 모두 여지가 관리했고, 재물은 계원이 관리했는데, 앞으로는 중요한 물건들을 자신이 관리할 생각이었다.
계원은 잠시 멍해졌다가 소매 끝을 살짝 잡고 탐색하듯 임근용을 바라보았다.
“아가씨, 왜 그러세요?”
‘아가씨가 하는 행동이 너무 이상하잖아! 차남가에서 트집 잡는 건 전혀 걱정하지 않으면서 갑자기 돈이 필요하다니, 설마 이것마저 여지에게 관리를 넘기려는 건 아니겠지? 그럼 앞으로 시녀들 앞에서 어디 체면이나 서겠어? 정말 감쪽같이 몰랐구나. 여지 저 음흉한 계집애가 의리도 없이 등 뒤에서 나한테 칼을 꽂다니!’
계원은 이런 생각을 하며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임근용은 그녀가 이러는 것이 눈에 거슬려 그녀를 똑바로 보며 다시 한번 나긋나긋 말했다.
“열쇠 달라고.”
그녀의 목소리는 가벼웠지만 말투는 오히려 엄격해 의미가 명확하게 전달됐다.
계원은 부들부들 떨며 품에서 초록색 수건을 꺼내 거기서 작고 정교한 황동 열쇠를 꺼냈다. 그녀는 열쇠를 임근용에게 건네주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가씨, 노비가 뭘 잘못했나요? 왜 갑자기 노비를 미워하세요? 누가 무슨 말을 했나요?”
“내가 널 미워한다고?”
임근용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그녀를 보고 웃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해? 너에 대해 누가 뭐라고 한다고? 난 그냥 오늘 자매들이 비상금을 모아 놨다고 자랑하는 걸 듣고 내 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을 뿐이야. 내가 요 몇 년 동안 명절에 받았던 금과 은을 꽤 많이 모아 두었잖아.”
대갓집 여자들 중에 직접 열쇠 꾸러미를 걸고 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럴듯한 핑계를 대 열쇠를 가져오라고 한 뒤 한 이틀 정도 가지고 있으면서 돌려주지 않으면 누가 감히 그녀에게 돌려달라고 하겠는가?
“금은괴가 적지 않고요. 아가씨 용돈은 별로 안 남았어요. 매달 언니들이나 마마들과 놀면서 쓰는 돈이 적지 않으세요.”
계원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직접 가서 한 자 크기의 네모난 자개칠함 하나를 들고 오더니 단정하게 임근용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른 작은 열쇠를 쥐고 간절한 눈빛으로 임근용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