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246
246화. 마 장두
임근용이 나지막하게 웃었다.
“오상 오라버니는 늘 과장이 심하다니까요. 그 찻집은 우리 사촌 오라버니가 제안했고 또 우리 외사촌 오라버니가 차를 대준다고 해서 시작하게 된 거예요. 중간에 민행이 가서 가게를 꾸미는 데 이런저런 의견을 내줬고 오상 오라버니도 의견을 제시해 줬어요. 가게 크기랑 돈이 한정적이라 그냥 봐 줄 만한 정도로만 꾸며놨어요. 관심이 있으시면 개업하고 나서 제가 한 번 자리를 마련해 초대할게요.”
오 대소부인이 흔쾌히 승낙했다.
“그래, 잊어버리지 마, 개업하면 내가 꼭 응원하러 갈게.”
육운과 관련된 일이 아주 불쾌하긴 했지만 이미 몇 년이나 지난 데다 오씨 가문에서도 임, 육 두 가문과 잘 지내려 노력하고 있었다. 더구나 임근용의 신분을 생각해 보면 그녀와는 진지하게 교제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오 대소부인은 임근용의 손을 잡고 친근하게 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 도씨 가문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리 바깥사람이 지난번에 청주에 다녀왔거든. 거기서 환랑이를 봤는데 너무 사랑스러웠다고 하더라고. 돌아와서 어르신들한테 말씀드렸더니 다들 어찌나 보고 싶어하셨는지 몰라. 아음이가 환랑이를 데리고 와서 친척들한테도 한 번 보여 줬으면 좋겠어.”
임근용이 탄식했다.
“저랑 저희 어머니도 언니를 못 본 지 오래돼서 보고 싶어 죽겠어요. 환랑이는 아직 외갓집에도 한 번 못 와 봤어요. 외삼촌 댁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언니가 움직이는 게 쉽지는 않겠죠.”
오 대소부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봉거 도련님이 장가를 가야 아음이가 좀 홀가분해질 텐데. 그런데 그러려면 또 한참을 기다려야 하잖아? 남편도 집에 없으니 아음이가 더 힘들겠지.”
“많이 힘들겠죠. 그래도 다행히 외삼촌이 많이 아껴주시는 데다 봉거도 언니를 존중해 주잖아요. 집안에 말썽이나 피워대는 쓸모없는 인간은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지요.”
임근용은 속으로 지금 도봉당이 집을 떠나 먼 곳에 있어 임근음이 독수공방 신세이긴 하지만 미래를 생각해 보았을 때 이건 정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들이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자 다른 사람들은 아예 대화에 끼어들 수 없었다. 사람들은 점점 작은 무리를 형성하며 옷차림이나 화장같이 각자 흥미로운 화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육운은 홀로 중간에 서서 담담하게 임근용과 오 대소부인을 보고 또 임씨 가문 자매들과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쓸쓸히 누런 강물을 응시했다.
이 모습을 본 려씨가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 왜 아무 말도 안 해요?”
육운이 담담하게 말했다.
“큰 새언니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하세요.”
려씨가 눈알을 굴리더니 열심히 임근용을 칭찬했다.
“오 대소부인까지 우리 둘째 동서한테 유능하다고 칭찬을 하는 걸 보니 진짜 유능하긴 한가 봐요. 아가씨도 둘째 동서랑 동업해서 가게를 하나 열어 보는 게 어때요, 동서가 보호해 주면 아가씨는 돈만 벌고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러면 나중에 혼수도 더 두둑하게 챙겨갈 수 있고…….”
육운이 살짝 짜증을 내며 말했다.
“전 그런데 관심 없어요.”
려씨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아가씨도 참 어리숙하네요. 이 세상에 그 모든 것과 원수를 진대도 절대 돈하고만은 원수를 지면 안 되는 거예요. 나였으면 염치 불고하고 동서한테 매달렸을 거예요.”
육운은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뒤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오상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세전 형님, 형님도 구경하러 온 거예요?”
육운이 고개를 돌리니 임세전이 4, 5살 난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얼굴이 수려한 시녀 하나와 검고 마른 남자 한 명을 데리고 군중들 틈에 서 있었다. 사람들이 잇따라 인사하자 임세전은 여자아이의 손을 놓고 웃는 얼굴로 사람들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안부를 물었다. 여자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보다가 재빠르게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그녀는 임근용의 곁으로 가 임근용의 다리를 껴안았다.
“넷째 언니.”
임근용은 허리를 굽혀 고개를 숙이고 여자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류아야, 입에 뭘 물고 있어?”
류아가 고개를 들고 입을 벌려 사탕을 보여 주었다.
“넷째 언니도 먹을래요?”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침 범벅 된 건 싫은데.”
류아가 말했다.
“나 그렇게 더러운 사람 아니에요. 유계한테 따로 있어요.”
그녀가 손을 뻗자 시녀 유계가 자수 주머니를 풀어 건네주었다. 류아는 한 사람도 빼먹지 않고 귀여운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사탕을 나눠주었다.
오 대소부인이 류아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이 아이가 어머니께서 키우고 계신다는 그 먼 친척 동생이야?”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면 누구겠어요?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이만큼이나 컸다니까요.”
류아가 손을 뻗어 바깥쪽을 가리키더니 웃으며 말했다.
“넷째 언니, 우리 오라버니가 언니를 찾아요.”
임근용이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임세전과 육함이 그 검고 마른 남자를 곁에 두고 서서 그녀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임근용이 오 대소부인에게 사과했다.
“일전에 장두(*庄头: 지주의 농장 관리인)를 좀 찾아 달라 부탁했었는데 지금 데려왔나 봐요. 가서 만나봐야겠어요.”
오 대소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가서 일 봐.”
임근용이 류아의 손을 잡고 가려 하자 육운이 말했다.
“새언니, 나도 언니랑 같이 가서 볼래요.”
임근용은 육운이 이 자리를 불편해하는 걸 눈치채고 따라오라고 눈짓했다. 그들이 곁으로 다가가니 임세전은 군말 없이 바로 그 검고 마른 남자를 임근용에게 소개했다.
“넷째야, 이쪽이 바로 내가 전에 너한테 말했던 장두(庄头) 마(马)씨야.”
“이소부인, 안녕하십니까.”
까맣고 마른 남자가 앞으로 나오며 임근용에게 절을 했고 임근용은 인사를 받으며 그 남자를 자세히 훑어보았다.
이 마 장두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이미 두 달여 전에 임세전이 그녀에게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다. 이 사람은 고생을 잘 참고 견디며 농사의 고수라고 했다. 전에는 다른 집에서 장두 역할을 하며 장원의 농지를 관리하고, 농경 용수를 끌어오고, 소작인들 간의 갈등과 분쟁을 조정하는 등의 일을 했는데 아주 유능하다고 했다. 다만 원하는 금액이 아주 높아서 땅 넓이에 비례해 임금을 요구했고 한 번 고용할 때 계약 기간을 2년으로 해야 했다. 임금은 한꺼번에 선지불해 주어야 했고 일체 분할로 받지 않았으며 만약 지주와 분쟁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일체 반환하지 않는다고 했다.
세가에는 전부 가노(家奴)가 있어서 기본적으로 생계와 관련된 토지는 함부로 외부인에게 경작하라고 내주지 않았기 때문에 마 장두의 이 조건은 조금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높은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를 고용하겠다는 사람은 적었다. 다른 방법이 없을 때는 어쩔 수 없이 그를 고용했지만 기한이 만료되고 상황이 호전되면 바로 계약을 해지했다.
임근용은 당연히 건장한 남자가 올 거라 생각했지 이렇게 검고 마른 남자가 올 거라고는 생각도 해 보지 않았다. 그녀는 절로 자신의 생각을 비웃었다. 농사가 힘든 일이긴 했지만 꼭 몸집이 크다고 잘 하는 건 아니었다. 그녀가 마 장두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여기 오기 전에 분명 이 땅을 미리 보러 왔었을 거 같은데?”
마 장두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예.”
임근용이 말했다.
“그럼 이 넓은 땅을 잘 관리할 수 있겠느냐?”
마 장두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이 땅은 너무 넓어서 소인 혼자서는 힘듭니다. 하지만 소인한테는 형제와 조카들이 있지요. 다들 농사의 고수여서 절 도와줄 수 있습니다. 이소부인께서 소인을 믿어 주시기만 한다면 잘 해낼 수 있을 겁니다!”
이건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임근용은 이 사람들이 정말 신뢰할 수 있고 키울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인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임근용이 잠시 머뭇거리는데 갑자기 육함이 입을 열었다.
“마 장두,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왜 한 번 고용할 때 계약 기간을 2년으로 해야한다는 것이냐?”
마 장두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농사는 하루 이틀의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또 1년 가지고 생산량을 높이기는 어렵습니다. 땅을 다지고, 농사 계획을 세우고 하다 보면 적어도 2년은 지나야 성과를 볼 수 있습니다. 저도 남의 돈을 받고 대신 일을 해 주는 사람인데 어느 정도 성과를 내 드려야 제 명성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육함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말했다.
“그럼 왜 돈을 먼저 받고 일을 하겠다는 게냐? 다른 사람들은 전부 일을 먼저 하고 돈을 받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임금을 깎는다. 게다가 농사는 소작인이 하는 것이지 네가 직접 가서 심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그는 명확하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만약 마 장두가 한 일이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는데 장두가 돈도 전혀 돌려주지 않는다면 그건 이쪽에 너무 손해가 아니냐고 묻고 있었다.
마 장두가 웃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전 그 돈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다만 집안이 빈천해 이렇게 사는 것뿐입니다. 농사를 지을 때는 아무거나 함부로 심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제가 수수를 심어야 한다고 하는데 지주께서 조를 심으라 하시고, 제가 점성벼(*占城稻: 인도에서 넘어온 쌀의 한 종류)를 심어 1년에 두 번 재배하겠다고 했는데 지주께서 꼭 국산을 심으라고 고집하신다면 그건 제 잘못이 아닙니다. 지주께서도 이런 이유로 제 임금을 깎으실 수는 없는 겁니다. 키가 작다고 밥을 안 먹고 사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실제로 농사를 짓는 건 소작인들이고 소인이 하는 건 아니지요. 하지만 농사를 위해 얼마나 고심하는지를 따져보면 그들 백 명을 합쳐도 저보다 못할 겁니다. 아무리 상등의 비옥한 땅이라도 토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심어야지 안 그러면 낭비일 뿐입니다. 소인이 소작인들에게 어떻게 심는지 가르치면 5만큼의 수확을 내던 사람이 8을 낼 수 있고 8을 내던 사람은 10까지 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주께서도 더 많이 벌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떠십니까. 이소야 눈에는 제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어 보이십니까?”
육함의 눈빛이 밝아졌다.
“점성벼를 알아?”
마 장두가 웃으며 말했다.
“압니다.”
육함은 고개를 돌려 임근용을 바라보았다. 그는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응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임근용은 한쪽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눈을 들어 임세전을 바라보았다. 임세전 역시 찬성하는 것 같아 임근용이 말했다.
“그럼 장두가 원하는 임금을 생각해 본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지.”
그녀는 잠시 생각해본 뒤 말을 덧붙였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는 사람들과 오래 손발을 맞추는 걸 좋아해.”
그녀의 마지막 말은 잘만 하면 장기 고용도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마 장두는 그녀의 이 말에 별로 기뻐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거만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은 태도로 작별을 고했다.
“소인도 가족들을 데리고 구경하러 온 터라 가족들이 아직 저쪽에서 절 기다리고 있습니다.”
임세전이 그를 배웅하며 말했다.
“생각이 끝나면 향약 가게로 날 찾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