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249
249화. 너그러워진 도씨
누런 저강의 물이 끊임없이 제방에 부딪치며 얼룩을 만들어 냈고, 풀이 뒤섞인 거품에서는 은은한 백반 비린내가 났다. 새하얀 깃털 하나가 물 위에 떠서 물결을 따라 위아래로 흔들리며 마음대로 흘러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육함이 상의를 걷고 쪼그려 앉았다. 그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깃털을 향해 열심히 손을 뻗었지만 깃털은 몇 번이나 손끝에 닿기만 하고 잡히지 않았다. 육함이 막대기라도 찾아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누르며 앞으로 홱 밀었다. 놀란 육함은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그 자리에 주저 않았다. 육함은 어깨를 누른 두 손을 꽉 잡으며 몸의 중심을 잡은 뒤 정색을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오상이 한 대 때려 주고 싶을 정도로 얄밉게 웃으며 말했다.
“놀랐지? 반응 빠르네. 뭐하고 있었어? 물에 빠지는 게 무섭지도 않냐.”
육함이 언짢은 기색으로 그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보면 몰라?”
육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덧붙였다.
“이 정도 깊이에서는 빠져도 안 죽어.”
그는 도씨의 장원에서 겪은 일 덕분에 수영을 할 줄 알았다.
오상이 상의를 걷어들고 그의 곁에 앉더니 들고 있던 깃털 부채를 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깃털이 필요한 거야? 그럼 내가 줄게. 원하는 만큼 뽑아가.”
육함은 잠시 침묵했다가 그의 농담에 웃으며 말했다.
“작작 좀 해! 내가 무슨 어린 애도 아니고.”
육함이 손을 물에 넣어 휘휘 젓자 그 새 깃털은 물 위에 둥실둥실 떠서 먼 곳으로 밀려갔다.
오상이 잠시 육함의 곁에 앉아 있다가 말했다.
“너처럼 매사에 심각한 건 좋지 않아. 뭔가 불쾌한 일이 있으면 말을 하는 게 좋아. 날 봐, 스스로를 안 괴롭히니까 얼마나 편하고 좋아.”
육함이 먼 곳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웃었다.
“너랑 나는 태생부터 다른 사람이야.”
오상도 더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가만히 그의 곁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하하 웃으며 말했다.
“아우가 찾기 편하라고 두 형님이 이렇게 함께 계셨군요. 사방으로 찾아다니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네요.”
육적이 빙그레 웃으며 두 사람의 뒤에 서 있었다.
육함이 일어서려 하자 오상이 그를 눌러 앉혔다. 오상은 고개를 들고 육적을 바라보더니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육적이었구나, 날 왜 찾았는데?”
그는 깃털 부채로 자기 옆의 땅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이리와 앉아, 앉아서 얘기해.”
육적은 주저하며 그곳을 바라보았다. 땅 위는 온통 먼지와 물때로 가득해 아주 더러웠고 앉으면 옷이 망가질 것이 분명했다. 그는 옆으로 살짝 비키고 웃으며 말했다.
“두 형님께서는 왜 이렇게 젖은 바닥에 앉아 계세요? 감기 걸리시면 어쩌려고요.”
그는 오상이 또 권할까 봐 얼른 육함의 곁으로 가 쪼그리고 앉더니 조심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둘째 형님, 저한테 화나신 거죠? 다 제가 세상 물정을 잘 몰라서 그런 거니까 형님께서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
육함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일을 찾아서 가족을 부양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나도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우리 집에는 당분간 너한테 맡길 만한 일이 없을 것 같아.”
육함이 이렇게 분명하게 거절했음에도 육적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전처럼 밝게 웃었다.
“그 일은 이제 그만 접어두고, 제 체면을 봐서 둘째 형님께서 자리를 채워 주세요.”
육적은 육함이 거절할까 봐 말로 그를 자극했다.
“둘째 형님이 안 오시면 전 오늘 사람들 앞에서 완전히 망신을 당할 거예요.”
그러더니 또 오상에게 부탁했다.
“오상 형님, 시원하게 말해 주세요. 오실 거예요, 말 거예요?”
오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최상급 요리에 금노아(金奴儿)가 술을 따라 준다면 갈게.”
최상급 요리는 일반 요리보다 몇 배나 비쌌다. 또 금노아는 평주성에서 가장 유명한 기생이라 부르기 쉽지 않았다. 오상은 육적이 그렇게까지 돈을 쓰길 고집한다면 그를 대신해 돈을 아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육적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금노아는 부르기 쉽지 않아요.”
육적은 속으로 이 두 사람이 같이 가지 않으리라는 걸 짐작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이 가지 않아 두 사람 몫의 돈이 절약되는 건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두 사람이 자신을 업신여긴다고 생각하며 내심 분노했다. 그는 특히 오상이 자신을 무시해 일부러 괴롭히는 거라고 생각했다.
* * *
임근용 모녀는 사람들을 뒤로 한 채 마차 안에 숨어 속삭이고 있었다. 도씨가 애처로운 손길로 임근용의 귀밑머리를 정리해 주며 말했다.
“아용, 보아하니 살이 좀 빠진 거 같구나. 많이 힘드니?”
임옥진 한 사람만 해도 감당하기 벅찬데 노상 눈물을 짜대는 여씨까지 더해졌으니 도씨는 상상만 해도 머리가 다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임근용이 뺨을 어루만지고 웃으며 말했다.
“사실 키가 좀 컸어요. 그래서 어머니 눈에 살이 빠진 걸로 보이나 봐요.”
도씨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요즘 너희 집안이 편치가 않다고 하던데.”
임근용은 그녀가 또 걱정하자 웃으며 말했다.
“할아버님께서 절 많이 아껴 주시고 할머님께서도 잘해 주세요. 다만 집안일을 이제 막 시작해서 일이 좀 많아요. 지금 바짝 열심히 하면 나중에는 좀 편해질 거예요. 아직까지는 저 혼자 감당할 수 있어요. 전 오히려 어머니가 더 걱정인걸요.”
도씨는 잠시 생각해 보다 그녀에게 말했다.
“난 아주 잘 지내. 일곱째가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고 말도 잘 듣는단다. 평소에는 류아랑 같이 지내. 큰 형님도 잘 지내고 계시고. 지금처럼 한가할 때는 경서를 읽거나 큰 형님한테 가서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낸단다. 어미는 전보다 많이 안정돼서 이제는 너희 남매들만 잘살면 아무 걱정이 없어. 그러니까 우리 걱정은 할 필요 없어.”
도씨가 참지 못하고 임근용의 아랫배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아직 소식 없니?”
임근용이 말했다.
“뭘 그리 서두르세요,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잖아요.”
도씨가 동의했다.
“그래, 조급해하면 더 안 되더라. 건강에 각별히 신경 쓰렴. 여자한테는 아들보다 더 든든한 건 없는 거야. 아들이 없으면 아무리 혼수가 많아도 지키기 힘들고, 아무리 날고 기는 친정이 있어도 보호해 줄 수 없을 때가 많아. 네 고모가 겉으로 볼 땐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여도 사실 속이 말이 아닐 거야.”
요즘 들어 마음이 많이 안정된 도씨는 오히려 임옥진을 동정하고 있었다.
“알았어요. 저도 알고 있어요.”
임근용은 고개를 숙이고 도씨의 허리춤에 달린 주머니를 정리해 주며 그녀의 주의를 돌렸다.
“요즘 일곱째 공부는 어때요?”
도씨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주사를 가까이하면 붉어지고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더니 육함을 따라 다니며 열심히 공부하더구나. 그런데 제 선생께서 신지 하인을 통해 네 할아버지께 어린 나이에 눈이 나빠지지 않게 주의를 주라고 전하셨어. 내가 따로 신지를 불러다 한참을 잔소리하고 나서야 결국 밤을 새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단다. 어쨌든 신지가 요즘 네 할아버지의 시험을 매번 통과해서 그런지 할아버지께서 얼마나 예뻐하시는지 몰라. 신지가 집에 있을 때 중요한 손님이 오면 늘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인사를 시키고 견문을 넓혀 주신다니까.”
임근용은 일단 책을 읽기 시작하면 밤낮을 가리지 않는 육함의 성정을 떠올리며 절로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이소야한테도 한 마디 해야겠네요. 그 사람은 어른이지만 일곱째는 아직 한창 자라나는 아이인데 그 사람하고 똑같이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임근용의 말에서 뭔가를 눈치챈 도씨가 눈살을 찌푸리며 잠시 그녀를 응시했다. 도씨가 절로 낮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일곱째는 그리 걱정하면서 네 남편 몸 상하는 건 걱정도 안 하니? 그 아이는 네가 평생 의지해야 할 사람이야.”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언제 그 사람 걱정 안 한다고 했어요? 그냥 그 사람은 어른이니까 어린아이랑은 다르게 밤새는 게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니라는 거죠.”
도씨가 그녀의 손을 잡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아가, 운명은 받아들여야 해. 우리 같은 여자들은 자기 운명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어. 게다가 육함이는 아주 괜찮은 아이잖아. 그 아이가 성가시게 울어대는 친어머니를 상대해 준다고 해서 미워하지 마. 그 아이도 어디 마음이 편하겠니. 그것도 다 육함이가 양심이 있는 아이라 그런 거야.”
임근용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어머니, 정말로 전보다 많이 너그러워지셨네요. 예전 같았으면 분명 고모와 셋째 숙모를 한바탕 욕하셨을 텐데요.”
친딸만큼 어머니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임근용은 도씨가 마음속으로 임옥진과 여씨를 욕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도씨가 임근용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건 그저 그녀의 마음을 달래 주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하지만 예전의 도씨에게서는 이런 것조차 기대할 수 없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그녀의 마음이 예전보다 훨씬 너그러워진 건 사실이었다.
도씨가 그녀의 얼굴을 꼬집었다.
“요것이, 오냐 오냐 했더니 아주 어미를 갖고 놀려고 하네. 넌 어미가 뭘 하든 다 널 위해서 그런다는 거 하나만 기억하면 돼.”
임근용이 응석을 부리듯 그녀의 품에 파고들더니 나직하게 웃으며 말했다.
“알아요. 어머니가 절 사랑해 주시는 만큼 저도 어머니를 사랑해요.”
도씨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그녀의 볼을 어루만지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귀염둥이는 어쩜 이리 예쁜 짓만 골라서 하니.”
공 마마가 마차 밖에서 말했다.
“부인, 대노야께서 이제 그만 돌아가자고 하세요.”
곧이어 임신지가 마차에 올라탔다.
“넷째 누나, 매형이 이제 돌아가자고 하던데.”
도씨가 아쉬워하며 임근용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아용, 몸 잘 챙겨, 빨리 아이를 낳아야 친정에 드나드는 것도 편해질 거야.”
정말 말끝마다 아이 이야기가 끊이지를 않았다. 임근용이 농담하듯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건강이나 잘 챙기세요. 자식은 다 때가 있는 법이니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하시고요.”
임근용은 그러고 나서 또 임신지에게 몇 마디 당부하고 밖으로 나왔다. 임근용이 자기 집 마차에 오르며 마차 발을 걷자 육운이 비스듬히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침울한 표정으로 무슨 생각에 빠져 있는지 임근용이 온 것도 몰랐다.
임근용이 마차 벽을 가볍게 두드렸다.
“아가씨, 곧 돌아 갈 거라 하던데 오라버니 못 봤어요?”
육운이 그제야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아, 새언니, 못 봤어요.”
임근용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한테는 곧 갈 거라고 오라더니 본인은 왜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야?”
려씨가 시녀의 부축을 받으며 다가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둘째 서방님도 안 왔니? 남자들이 자기들은 오장루에 가서 먹고 마실 거라고 우리를 버리고 가 버렸어. 우리는 알아서 돌아가라나. 금노아인가 뭔가 하는 기생을 불러다 술을 따르게 하겠다지 뭐야. 나이 어린 공자들도 데리고 가면서 정말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어.”
임근용이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육운도 말없이 한숨만 내쉬자 려씨가 탄식하며 말했다.
“됐어, 우리끼리 집으로 돌아가자.”
그때 육함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말했다.
“저랑 같이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