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250
250화. 이유
눈치 빠른 려씨는 그의 상의에 묻은 진흙을 보고 절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이게 웬일이야, 둘째 서방님은 어디 진흙탕에서 구르다 오셨어요? 장수 이 녀석 상전을 이렇게 모시다니 좀 맞아야겠네요.”
육함이 얼른 말했다.
“장수는 오늘 같이 안 왔어요. 쟁기와 앙마가 잘 만들어지고 있는지 확인하라고 보냈거든요. 방금 전에 제방에 잠시 앉아 있었는데 그때 옷이 더러워졌나 보네요.”
려씨가 웃으며 말했다.
“넘어져 놓고 부끄러워서 말씀 안 하시는 건 아니고요?”
육함은 눈을 내리깔고 담담하게 웃으며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았다. 육운이 얼른 자리를 양보하며 손수건을 꺼내 자리에 깔았다.
“오라버니, 얼른 올라와요. 그렇게 지저분한 꼴로 어떻게 말을 타고 가겠어요. 남들이 보면 웃어요.”
육함이 말했다.
“괜찮아. 마차를 더럽히면 안 되잖아.”
그러더니 려씨에게 절을 하며 말했다.
“형수님, 어서 마차에 타세요.”
려씨도 다른 말 없이 시녀의 부축을 받으며 자기 마차에 올랐다.
임근용이 그제야 육함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육함이 말했다.
“돌아가면 얘기하겠소.”
임근용은 그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은 걸 보고 더는 묻지 않고 마차에 올랐다. 자리에 앉자마자 육소가 쫓아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둘째야, 왜 안 간다는 거야? 정말로 셋째랑 육적이한테 화나서 그런 건 아니지? 내가 벌써 그 자식들한테 호되게 한 마디 했어. 가자, 이 형님이랑 같이 회포나 풀자.”
육함이 말했다.
“큰형님, 호의는 정말 감사하지만 제가 오늘 기분이 별로라 가도 사람들한테 폐만 끼칠 거예요. 형님이 좀 이해해 주세요.”
육함이 대충 얼버무리며 둘러댈 줄 알았던 육소는 그가 너무도 명확하게 기분 좋지 않다고 하며 거절하자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강요할 수는 없지. 동생들이 뭔가 잘못한 게 있더라도 둘째 네가 너그럽게 용서해 줘.”
이에 육함이 말했다.
“큰형님, 걱정 마세요.”
육운과 눈이 마주친 임근용은 말하지 않아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 * *
마차가 육씨 가문 저택에 들어서자마자 육운이 마차에서 내려 바로 육함에게 물었다.
“오라버니, 무슨 일인데요?”
육함이 담담하게 웃었다.
“나 일단 가서 옷부터 갈아입을게. 수고스럽겠지만 네가 나 대신 어머니께 가서 문안은 조금 이따가 드리러 가겠다고 말씀드려 줘.”
그러더니 임근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용, 우리는 일단 집으로 돌아갑시다.”
육운은 그 자리에 서서 싱겁게 웃었다.
* * *
임근용이 옅은 푸른색 상의를 육함에게 입히고 옷고름을 매 주며 물었다.
“넘어진 거예요? 왜 넘어졌어요?”
육함이 말했다.
“아니오, 오상이 장난치다 그랬소.”
임근용이 절로 탄식했다.
“오공자가 철이 없다고 걱정 했더니, 오공자를 닮은 사람이 또 있었네요.”
육함은 그녀를 힐끗 본 후 고개를 숙이고 허리띠를 매며 천천히 말했다.
“아까 셋째가 나한테 육적한테 당신 땅의 장두 자리를 주라고 하더군.”
임근용이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서요?”
경계하며 긴장하는 그녀를 보고 육함이 절로 한숨을 내쉬었다.
“거절했는데 그것 때문에 약간 다퉈서 서로 기분이 좀 상했소.”
그는 이어서 일의 경과를 간략하게 말해 주었다.
임근용이 그에게 금낭과 옥패를 하나하나 달아주며 말했다.
“그럼 삼공자는 왜 둘째 숙모님이나 큰형님 땅의 마름 자리를 못 주는 건데요?”
육적에 대한 임근용의 감정은 아주 복잡해서 뭐라고 정의내리기 어려웠다. 어쨌든 그녀는 자신의 모든 희망을 깨 버린 사람을 육적이라고 생각했다. 임근용 또한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육적을 만나는 게 싫었고 진심으로 그가 싫었다.
임근용은 잠시 감정을 추스르고 작은 목소리로 육경에 대해 말했다.
“삼공자는 심성이 별로 착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당신도 삼공자가 평소에 늘 웃고 있다고 그게 진심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요.”
육함이 눈을 빛내더니 살짝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그걸 어찌 알았소?”
임근용이 얼버무리며 말했다.
“직감이죠. 삼공자가 오공자한테 하는 걸 좀 봐요. 친형제고 벌써 이렇게 컸는데도 아직까지 오공자를 눈엣가시처럼 여기잖아요. 오공자처럼 도량이 넓고 배려심 깊은 좋은 사람을 눈에 거슬려하는 사람이 어찌 좋은 사람일 수 있겠어요. 마음이 아주 모진 사람이죠.”
이건 그녀가 억지로 갖다 붙인 이유에 불과했지만 육함은 이 말을 듣고 아주 기뻐했다.
“됐소, 우리가 그 둘 사이까지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고, 당신은 이거 하나만 기억하면 되오. 둘째 숙모께서 추천하는 사람은 절대로 함부로 들이지 마시오.”
육함이 굳이 알려 주지 않더라도 임근용 역시 절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알았어요.”
임근용이 육함을 떠보려 입을 열었다.
“민행, 둘째 숙모님 쪽에서 너무 몰아붙이는 것 같지 않아요?”
임근용은 이제 입장을 분명히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육적의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그녀도 조금 더 기다려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임근용의 혼수를 건드리려 하거나, 그녀를 그들 사이의 분쟁에 끌어들이려 하지 말라는 걸 분명하게 경고할 필요가 있었다. 거듭되는 후퇴는 상대가 자신을 얕잡아보게 만들고 더 날뛰게 만들 뿐이었다. 공격을 받으면 반드시 반격해야 하고 또 이겨야 한다. 하지만 그녀 혼자만의 힘으로는 그럴 수 없었다. 임근용은 육함의 지지를 얻어내야만 했다.
육함은 눈을 내리깔고 자신보다 머리 하나쯤은 작은 임근용을 내려다보았다. 임근용이 고개를 살짝 들자 그녀의 짙은 갈색 눈동자에 자주 보이지는 않지만 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어떤 빛이 번쩍하고 스쳐 지나갔다.
오래전 청량강에서 임근용이 그를 기슭으로 끌어올렸을 때, 육함이 그녀의 눈에서 보았던 건 초록빛이었다. 이번에는 초록빛은 아니었지만 느낌은 그때와 비슷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탐색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고집도 엿보였다. 시집온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은 새 신부인 그녀는 자식이 있을 리도 만무하고 이 집에 무슨 공헌을 했다고 내세울 만한 것도 없었다. 뒤에서 어른의 잘못을 이야기하는 건 두 집 간의 분쟁을 초래할 수도 있는 큰 잘못이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서 그런 말을 꺼내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자칫 잘못하면 입방정을 떨어 가족들 사이의 시비를 부추겼다고 뒤집어쓸 수도 있었다.
육함은 문득 자신의 다음 대답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두 사람이 꾸린 이 작은 가정의 재정적인 이익은 제쳐두고 그와 임근용 사이의 이런 미온적인 관계가 과연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퇴보할 것인지와 관련된 아주 중요한 대답이었다. 그는 신중하게 생각하며 즉답을 피하고, 침상으로 걸어가 앉은 다음 자신과 임근용의 차를 각각 한 잔씩 따랐다.
임근용은 나이답지 않게 침착하고 냉정했다. 그녀는 결코 그를 재촉하거나, 몰아붙이지 않았고, 그의 침묵에 움츠러들지도 않았다. 그저 자연스럽게 그의 곁에 가서 앉았다. 임근용은 찻잔을 집어 들며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지 말고 먼저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피력하고 그를 설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건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예요. 나도 당신한테만 하는 말이고요. 남들이 엿듣는대도 어쩔 수 없어요. 민행, 일단 내가 하는 말 다 듣고 내 말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지적해요.”
육함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해요. 듣고 있소.”
그는 잠시 생각해 보다가 한 마디 더 덧붙였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 난 항상 들어줄 거요.”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시집온 다음 날, 셋째 숙모께서 영경거에서 펑펑 우셨잖아요. 둘째 숙모님이 말릴수록 더 크게 우셨죠. 그때 전 마음이 아주 불편했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막 시집온 새 신부는 꺼려지는 게 많으니까요.”
육함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난…….”
임근용이 그를 저지했다.
“민행, 그때 당신도 마음이 불편했죠?”
육함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그냥 불편하다 뿐이었으랴, 그는 정말 곤란해 죽을 지경이었다. 신혼 이튿날부터 친어머니가 울음을 그치지 않고 집안에서 소란을 피워대는데 마음이 편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가 이걸 인정했으니 그다음 말은 더 하기 쉬웠다. 임근용이 계속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둘째 숙모께서 말주변이 없으신 분인 줄 알았는데 막상 지내다 보니 말솜씨가 정말 뛰어나고 유능한 분이시더라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셋째 숙모님을 만나기만 하면 갑자기 말이 어눌해지시더라고요. 그것도 아주 심하게요. 그 이후로 난 둘째 숙모께서 할머님, 셋째 숙모님, 우리 어머님을 대하는 태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의식적으로 지켜봤어요.”
임근용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민행은 혹시 그 차이를 눈치챘어요? 총명한 사람이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다니 정말 재앙이 아닐 수 없죠. 둘째 숙모께서 당신이 아팠던 일 같은 걸로 다음에 또 다시 어리석은 짓을 한다면 또 얼마나 큰 파문이 일어날지 상상도 하기 힘드네요. 그때도 내가 옷을 잘라 버리는 걸로 그칠까요? 내가 사람들 앞에서 한 번 더 우는 걸로 끝날까요? 아운이가 힘들게 시어머니를 설득하면 지나갈까요? 아니면 당신이 또 셋째 숙모님을 찾아가 위로하고 셋째 숙모님께서 한바탕 울고 말면 그만일까요?”
임근용은 말솜씨가 좋은 사람이라 송씨가 한 짓을 직접 꼬집거나 그녀의 죄를 단정하지 않고 다만 송씨 같은 총명한 사람이 끔찍하게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다고 돌려서 표현했다. 하지만 육함은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의 가슴에 날아와 박히는 것 같았다. 그는 찻잔을 들고 있었지만 마시는 걸 잊어버렸다. 전부터 임근용이 총명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이렇게 완곡하면서도 명료한 말로 자신의 생각을 완벽하게 전달할 수 있는 줄은 몰랐다. 육함은 계속 이런 그녀를 보고 또 그녀의 말을 듣고 싶었다. 그는 그녀가 다음에 또 무슨 말을 할지, 어떻게 하려는지 보려고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일은 나도 정말 화가 났었소.”
육함은 분위기가 너무 무거운 것 같아 좀 경쾌하게 바꾸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여태껏 새 옷도 못 얻어 입은 거 아니오.”
“거의 다 만들었어요.”
기왕 협력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성의를 보여야 했다. 그 옷은 반나절 정도면 다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임근용이 입술을 오므리고 웃었다.
“그럼 이제 맹 마마의 앵두 이야기로 넘어갈게요.”
이때 여씨는 여전히 침상에 누워 있었다. 그녀는 병을 핑계로 자리에 누워 침방에 대한 인수인계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노태야는 일절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노부인도 사람을 시켜 약을 한 번 보냈을 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도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여씨가 무리하게 소란을 피우다 본전도 못 찾은 걸 온 집안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낯부끄러워 연극을 그만두지도 못하고 있었다. 육함은 임근용이 앞으로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절로 마음이 불안해졌다. 하지만 임근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도리어 웃으며 그의 의견을 물었다.
“그 일에 대해서는 민행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고 있잖아요. 당신 생각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