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258
258화. 편애 (1)
육 노부인은 다소 짜증스러운 듯 이마를 문질렀고 육운은 얼른 임옥진을 잡아당기며 이제 그만하라고 눈치를 줬다. 하지만 임옥진은 여전히 그만둘 생각이 없는지 고개를 돌리고 여씨에게 물었다.
“셋째 동서, 저것이 일전에 동서한테 가서 하루 종일 아부하고 이간질 했다던데 동서도 저것이 이렇게까지 못되고 악랄한 물건인지 몰랐지? 동서는 뭐 묻고 싶은 것 없어? 화풀이하고 싶지 않아?”
여씨는 지금 옷이 망가진 일을 가장 증오하고 있었다. 그런데 임옥진이 사람들 앞에서 옛일을 들먹이자 얼굴이 붉어졌다 창백해졌다 했고 몹시 괴로웠다. 그녀는 짜증이 일었지만 대답하지 않을 수는 없어 담담하게 말했다.
“어머님께서 잘 판단해 주시겠지요.”
“아용, 너는?”
임옥진은 시시해하며 또 임근용에게 물었다.
육 노부인이 입을 열었다.
“진실이 밝혀졌으니 더 이상 소란 피울 필요는 없다. 저것을 데려가 그동안 무슨 나쁜 짓들을 했는지 빈틈없이 조사해라. 회수해야 할 재물들은 회수하고, 처벌해야 한다면 처벌하고, 때려야 한다면 때리고, 팔아야 한다면 팔고, 관아에 고발할 것이 있다면 고발해라.”
범포가 앞으로 나와 대답하고 절을 올린 뒤 사람들을 전부 압송해 갔다.
임옥진은 한껏 치솟은 분노를 다 발산하기도 전에 일이 이렇게 끝나 버리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가 말로 송씨 고부를 공격하려 하자 이미 기력이 다한 육 노부인이 말했다.
“됐다, 반나절 동안이나 시달렸더니 피곤해서 귀가 다 윙윙거리는구나. 이제 그만 가보거라.”
그러더니 또 말을 덧붙였다.
“이건 좋은 일이 아니니 소문이 나면 괜히 체면만 상하게 될 게다. 다들 입 다물어라.”
모두들 알겠다고 대답한 뒤 육 노부인을 방으로 모셨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가득찬 분노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 아무도 먼저 자리를 뜨려 하지 않았다. 임옥진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아용, 이게 다 네가 운이 좋은 덕분이구나. 안 그랬으면 저런 잡것들 때문에 누명을 쓰고 고생이 말도 못 했을 거야. 저 천한 것의 마음이 저리 시커멓고 삐뚤 줄 누가 알았겠니. 둘째 동서는 그리 오랫동안 데리고 있었으면서 저렇게 악랄한 인간인 줄 전혀 몰랐던 거야?”
송씨가 차갑게 말했다.
“형님께서는 비웃으실지 몰라도, 세상 사람들이 전부 근용이처럼 유능하고 총명한 건 아니에요. 근용이는 창고를 인계받고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모든 걸 빈틈없이 파악하고 극악무도한 노비까지 잡아냈잖아요. 저는 그런 재주가 없어요. 맹 마마가 그렇게 오랫동안 창고를 관리해 왔지만 이런 일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맹 마마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여태껏 나나 다른 사람을 해친 적도 없으니까요. 그러니 그 여자가 이런 사람인지 알 기회도 없었죠.”
그녀의 이 말에는 맹 마마가 그녀의 수하에 있을 때는 좋은 사람이었는데 임근용의 수하로 들어간 지 겨우 열흘 남짓한 시간 만에 아주 나쁜 사람으로 변한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렇다면 이게 누구 탓이겠는가? 맹 마마는 핍박을 받아 이렇게 변한 것이고 임근용이 너무 냉혹하고 사납게 굴어 그렇게 짧은 시간에 사람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인 거라는 뜻이었다.
임근용이 담담하게 말했다.
“둘째 숙모님께서 잘못 아셨어요. 전 사실 총명하지도 않고 유능하지도 않아요. 정말로 그랬다면 숙모님 밑에 있을 때는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저한테 와서 성격이 변했겠어요? 이건 조카며느리가 숙모님보다 훨씬 못하다는 뜻이지요.”
송씨가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용, 네가 말을 그리하니 나도 체면 차리지 않고 솔직히 말하마. 이 일은 네가 잘못한 부분도 있어. 여지는 그때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으면서 왜 너희 셋째 숙모에게 사람을 보내 침방을 확인해 보라고 알리지 않았니? 그때 그렇게만 했으면, 아버님, 어머님 옷과 옷감들을 못 쓰게 될 일은 없었을 거야. 그리고 누군가가 우연히 그 못된 녀석을 잡았다면 왜 당시에 바로 잡아다가 죄를 묻지 않았어? 그랬으면 이런 손실은 피할 수 있었을 거야. 네가 이 일을 빌미로 맹 마마를 치워 버리려 했다는 건 알지만, 집안일을 관장하는 사람은 자기 안위만 생각해선 안 되고 집안 전체를 살펴야 하는 거야.”
여씨는 이 말을 듣고 다시 임근용을 바라보았다. 임근용은 너무 음흉했다. 그녀는 분명 사전에 모든 일을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일부러 모르는 척하고 있다가 모든 일이 벌어진 이후에 거들먹거리며 시녀를 불러다 죄상을 밝히고 없애 버리고 싶은 사람을 전부 처리해 버린 것이다. 이건 덫을 놓고 걸려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고, 여씨는 이 일에서 희생양이 된 것에 불과했다.
허나 미리 제지했다면 어떻게 이 계략이 사실임을 밝혀내고 또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까 또 사람을 공격하고 싶으면 준비를 제대로 하라고 말했지 않은가? 임근용은 오늘의 수확에 매우 만족하며 허허 웃었다.
“둘째 숙모님께서 오해하셨네요. 절 너무 높게 평가하셨어요. 제가 앞일을 내다보고 이런 일을 주도면밀하게 계획할 만한 능력이 어디 있겠어요? 모든 일은 증거가 중요한 법이잖아요. 여지는 천성이 신중한 아이라 증거가 없는 일은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않아요. 그런 말은 유일하게 저한테만 하는데 그때 저는 이미 잠자리에 든 상태였어요. 또 맹 마마의 셋째 아들은 측문 밖에서 다른 사람한테 잡혔는데 그건 정말 공교롭게도 하늘에서 내린 벌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 그때 저희 집 대문은 이미 닫혀 있었는데 제가 그런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저는 날이 밝은 후에 침방에 일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나서 그 일도 알게 됐어요.
그때 범 대집사가 사람을 보내 할머님께 이 일을 보고했는데 저도 우연히 그 말을 듣고 제가 알고 있는 걸 할머님께 말씀드린 다음 여지한테 이 일을 처리하라고 지시한 거예요. 그런데 그 일을 조사하다 보니 뜻밖에도 다른 죄까지 드러난 것뿐이고요.”
어쨌든 이 일은 절대 임근용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노태야의 권력과 힘을 빌려서 이 조사를 진행했던 것이다. 그러니 그녀들이 뭘 어쩌겠는가?
송씨는 임근용을 노려보며 입술을 조금씩 벌리고 입꼬리도 조금씩 치켜올리며 아주 천천히 웃었다. 그녀의 이런 웃음을 보고 여지는 소름이 쫙 끼쳤다. 송씨는 재빠르게 웃음을 거두고 줄곧 침묵하고 있던 려씨를 돌아보며 턱을 치켜들었다.
“가자!”
려씨는 황급히 임근용을 힐끔 보고 얼른 고개를 숙이고 종종걸음으로 송씨의 뒤를 따랐다.
임옥진이 여씨를 보며 가볍게 한마디 내뱉었다.
“멍청하긴!”
여씨는 갑자기 발끈해 손수건을 쥐어뜯으며 임옥진에게 반박하려 했다. 임옥진은 하찮다는 듯이 난새단화 부채를 그녀의 면전에서 흔들더니 경멸하듯 홱 돌아섰다.
여씨가 이를 갈며 임근용에게 물었다.
“넌 왜 미리 나한테 알리지 않았어? 내가 준비할 수 있게 해 줬으면 좋았잖아. 설마 내가 그렇게까지 막무가내겠니?”
임근용이 담담하게 웃었다.
“셋째 숙모님, 제가 무슨 신선도 아닌데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찌 알겠어요.”
그녀는 육함이 곁에 없을 때 여씨가 우는 횟수가 최소한 절반 이상 줄어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씨는 말문이 막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임옥진이 밖에서 임근용을 불렀다.
“아용, 뭘 꾸물거리고 있어? 누가 네 머리에 구정물을 끼얹을 때까지 기다리기라도 하는 거니?”
임근용이 웃으며 무릎을 꿇고 있는 방죽의 발을 살짝 걷어찼다.
“안 일어나고 뭐해?”
방죽은 자신에 대한 임근용의 태도가 아침과는 완전히 달라진 걸 느꼈다. 하지만 방죽의 마음가짐 또한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비밀을 다 들켜 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시치미를 뗄 수 없었다. 방죽은 순종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살짝 굽혀 인사한 뒤 안절부절하며 임근용의 뒤를 따라 영경거 밖으로 나갔다.
여씨와 혜 마마는 잠시 멍하게 서 있다가 서로 부축하며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여씨는 채 두 걸음 내딛기도 전에 다시 되돌아갔다.
“어머님, 옷감은 누가 배상해야 하나요?”
육 노부인은 침상에 누워 눈을 반쯤 감고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녀는 이 말을 듣고 절로 눈살을 찌푸리더니 한참 후에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연히 맹 마마가 배상해야지.”
맹 마마네 집은 육씨 가문에서 일하는 노비들 중 비교적 부유한 편에 속했다. 그녀가 창고의 물건들을 탐내고 이런 큰일까지 저질렀으니 분명 적지 않은 돈을 배상해야 할 것이고 아마 집안의 재산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여씨는 눈을 빛내며 혜 마마를 데리고 신나게 배상 목록을 작성하러 갔다.
육 노부인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수십 년 동안 그녀의 시중을 든 사 마마가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고 웃으며 말했다.
“삼부인께서 그동안 친정에 끌려다녀서 그렇지 그래도 양심은 있는 분이네요.”
육 노부인이 말했다.
“세상 물정을 몰라도 저리 모를 수가 없구나. 남이 자기를 괴롭히면 바로 가서 육함이를 괴롭히지 않느냐. 자기가 괴로우면 그만큼 아들도 괴로울 거란 생각을 왜 못 한단 말이냐. 됐다, 침방에는 큰 이득이 될 만한 것이 없고 또 성실한 서 마마가 있으니 무슨 큰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눈을 감았다.
“네가 볼 때 둘째 손자며느리는 어떤 것 같으냐?”
사 마마가 조심스러워하며 웃었다.
육 노부인이 말했다.
“말해 보거라, 널 꾸짖지는 않으마.”
사 마마가 말했다.
“아주 침착하게 말씀을 하시는 걸 보면 이소부인은 이 일과 전혀 무관한 것 같았어요. 저렇게 어린 나이에는 본심을 숨기는 게 쉽지 않잖아요.”
육 노부인이 탄식했다.
“네 눈에는 둘째 며느리가 화가 잔뜩 난 것 같지 않더냐?”
사 마마가 고개를 숙이고 육 노부인의 다리를 안마했다.
“솔직히 별로 달갑지는 않으시겠죠?”
육 노부인이 말했다.
“분명 우리가 편애한다고 생각할 게야.”
하지만 이렇게 처리하지 않으면 달리 또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 * *
송씨는 자기 방 문지방을 넘자마자 안색이 싹 변해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문가에 놓인 큰 꽃병 하나를 들어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려씨는 깜짝 놀라 손수건을 꽉 움켜쥐고 한쪽에 쭈그러들어 전전긍긍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감히 입을 열지는 못했다. 초 마마가 달려들며 송씨를 껴안았다.
“아이고, 부인, 고정하세요, 화낼 가치도 없어요!”
려씨는 그제야 다가가 위로했다.
“어머님, 노여워 마세요. 맹 마마는 그래도 세상 물정을 잘 아는 사람이잖아요. 게다가 둘째 동서는 할아버님의 힘을 등에 업은 것뿐이잖아요.”
송씨가 목소리를 낮추며 꾸짖었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그 아이가 자기 능력에 기대는 거라면 차라리 괜찮아. 하지만 그 아이는 지금 아버님의 힘을 빌리고 있어! 아버님께서 그 아이를 돕고 계신 거라고! 아버님께서 그 아이를 편애하는 거야! 지금 아버님께서 우리한테 경고하고 있는 거라고! 알겠니?”
려씨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어떡해요?”
송씨가 냉소하며 바닥에 있는 깨진 꽃병을 가리켰다.
“이거 치워, 사람을 시켜서 바닥을 치우고 부서진 건 창고에 가져가서 새 꽃병으로 바꿔오라 해. 못 바꿔 올 거면 돌아오지 말라고 해라.”
려씨가 긴장하여 말했다.
“할아버님께서 언짢아하지 않으실까요?”
송씨가 말했다.
“눈치 없는 것! 오랫동안 집안일을 관장한 내가 오늘 그 어린 것한테 체면을 짓밟히고도 아무 말도 못 했으니 앞으로 내 위신이 어찌 되겠어? 시키는 대로 해! 아버님께서도 아무 말 안 하실 게다. 뭐라 하시면 내가 다 책임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