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260
260화. 내가 있잖아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주씨는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더니 쪼그리고 앉아 상자를 열고 상자 안의 파편을 보며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 일을 어쩌면 좋아. 바꿔 주기 싫으면 그만이지, 왜 꽃병을 깨뜨리고 그래? 이거 어쩌지? 이거 전 왕조부터 내려온 골동품이야! 내 전 재산을 팔아도 배상 못 한다고.”
왕씨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내가 깬 게 아니에요. 언니가 스스로 떨어뜨렸잖아요.”
황씨가 냉소했다.
“사람을 이렇게까지 괴롭힌다고? 네가 미는 걸 내가 똑똑히 봤어. 내가 스스로 떨어뜨렸다니, 미치지 않고서야 내가 왜 그런 짓을 해?”
“하!”
주씨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왕씨를 향해 돌진했다.
“이 꽃병 물어내, 물어낼 돈이 없으면 네 목숨이라도 내놔!”
“할 말이 있으면 좋게 말로 하면 되지 왜 사람을 때려요?”
호씨가 상황을 보고 있다가 얼른 앞으로 나가 사람을 끌어당겼다. 황씨가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말했다.
“창고 사람들이 물건을 부수고 배상도 안 해 주면서 이제는 사람까지 때리는구나!”
황씨는 두 손으로 자기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더니 맹렬하게 달려들며 싸움에 합류했다. 호씨는 뺨을 한 대 얻어맞고 눈앞에 별이 다 보였다. 그녀는 참을 수 없어 황씨의 몸을 발로 걷어찼다.
창고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은 괜히 성가신 일에 휘말릴까 봐 안에 숨어서 나오려 하지 않았다. 바깥에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평소에 호씨와 친한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내밀며 가서 도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 조금이라도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이 두 사람이 일부러 와서 소란을 피운 것이고 그 배후에는 이부인이 버티고 있다는 걸 다 알고 있었다. 그녀들은 자신들이 누구에게 의지해야 할지, 누구를 믿어야 할지 판단할 수 없었다.
호씨의 얼굴에 아주 큰 생채기가 생겼지만 그녀 역시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 황씨의 머리카락을 힘껏 잡아당기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너희가 그렇게 뒤에 숨어서 모른 척 하는 건 상관없는데, 무슨 일이 생기면 너희들도 책임을 면치 못할 거라는 건 알아 둬!”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누구는 임근용을 찾으러 가고 또 다른 누구는 밖으로 나와 말리기 시작했다. 차라리 말리지 않았을 때가 더 나았다. 누군가가 말리기 시작하자 주씨가 처참하게 비명을 지르며 말리는 사람의 가슴에 머리를 대고 배를 세게 튕겼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두 명을 집단으로 때리다니, 꽃병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이부인,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사람 죽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자기에게 실제로 닥치지 않았을 때는 본능적으로 될 수 있으면 피하려 했다. 하지만 자기가 손해를 보게 되면 쉽게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누군가 주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자 창고 밖은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했다.
* * *
창고는 화재 예방을 위해 한쪽에 단독으로 지어져 있었다. 주변에는 큰 나무나 꽃이 없어 멀리에서도 그쪽 상황이 한눈에 다 들어왔다.
“아가씨, 이제 갈까요?”
여지는 임근용과 함께 한쪽에 멀찌감치 서 있었다. 임근용은 미동도 없이 서서 그 난장판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지가 참지 못하고 그녀를 재촉했다.
“더 이상 소란을 피우다가는 큰일 날 거예요.”
임근용이 말했다.
“서두를 필요 없어. 조금만 더 기다려. 상대가 둘밖에 안 되는데 설마 저 많은 사람들이 둘을 못 당해내겠니?”
그래야만 창고에 남아 있는 사람들 중에서 누구를 믿을 수 있고 누구에게 중임을 맡길 수 있는지를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방죽은 이 말을 듣고 겁에 질린 눈으로 임근용을 바라보았다. 이소부인은 정말로 무서운 사람이었다. 이건 분명 양쪽이 모두 다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서서 파국을 수습해 쉽게 창고 사람들의 인심을 얻으려는 속셈이었다. 임근용은 방죽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눈치챈 듯 고개를 돌려 방죽을 바라보았다. 임근용이 방죽을 보며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는데 마치 눈으로 우리 사이에 아직 다 계산하지 않은 빚이 남아 있지 않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방죽은 제 발이 저려 얼른 눈을 내리깔았고 다행히 임근용도 곧 시선을 돌렸다.
시녀 하나가 황급히 달려오다가 그녀들을 발견하고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두 손을 합장하더니 서글픈 말투로 임근용에게 보고했다.
“이소부인, 큰일 났어요.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고 있어요.”
임근용이 평온하게 말했다.
“걱정 마, 내가 있잖아.”
이 한 마디가 시녀의 모든 걱정과 긴장을 풀어 주는 것 같았다. 그 시녀는 뒤돌아 뛰어가며 소리쳤다.
“이소부인께서 오셨어요!”
주씨와 황씨는 눈을 마주치고, 죽을힘을 다해 상대방을 몇 대 더 때리고는 더 이상 반격하지 않고 호씨와 다른 사람들이 두 사람을 밀치도록 내버려두며 처절하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이소부인, 살려주세요! 맞아 죽겠어요!”
방죽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앞으로 나서며 호통 쳤다.
“다들 그만두지 못 해! 이소부인 앞에서 방자하구나!”
이에 사람들은 전부 손을 놓고 앞다투어 나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시녀 주씨와 황씨는 임근용을 향해 맹렬히 달려와 그녀의 다리를 안고 울며 하소연할 준비를 했다.
“이소부인, 이소부인께서는 공명정대하신 분이니 저희의 억울함을 밝혀 주십시오.”
임근용은 말없이 그녀들이 다리를 끌어안게 내버려두었다가 그녀들이 붙들고 놓아주지 않자 냉담한 표정으로 화를 내며 꾸짖었다.
“노비 주제에 건방지구나, 누가 내 몸에 손대라 했느냐? 이렇게 법도도 모르다니, 어서 이것들을 떼어 내라!”
호씨가 제일 먼저 반응해 사람들을 불러와 두 사람을 떼어 놓았다. 방죽이 앞잡이처럼 굴며 얼른 의자를 가져오자 임근용은 단정하게 의자에 앉았다. 또 계원이 올린 차를 받아들고 일단 한 모금 마신 뒤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너희들은 내게 불경죄를 저질렀으니 각자 따귀 두 대의 벌을 내리겠다.”
임근용이 방죽을 응시했다.
방죽은 이를 악물더니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가 황씨와 주씨의 뺨을 있는 힘껏 두 대씩 때렸다. 시녀 황씨가 억울함을 호소하려 하자 임근용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더 때려라!”
방죽이 또 연달아 따귀를 두 대씩 때렸다.
똑똑한 사람이라면 눈에 뻔히 보이는 손해는 당하지 않는 법이다. 두 사람은 마침내 입을 다물었다. 창고에 속한 사람들의 마음도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이소부인은 이부인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임근용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나한테는 감히 이렇게 무례하게 굴어도 노부인이나 부인들, 대소부인, 큰아가씨 앞에서는 감히 이렇게 무례하게 굴지 못하겠지. 둘째 숙모께서 안 계시니 나라도 이렇게 너희를 가르치는 수밖에. 자, 누가 나와서 무슨 일인지 말해 볼래?”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서며 각자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며 싸워대는 통에 시비를 가리기 어려웠다. 임근용이 담담하게 말했다.
“누가 먼저 때렸느냐?”
꽃병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이거야말로 중요했다.
두 명은 왕씨를 지목했고,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은 주씨를 지목했다. 다수의 의견이 좀 더 신빙성이 있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임근용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꽃병 하나 깨진 것이 뭐가 그리 대수란 말이냐? 그건 내가 너희들 대신 배상하마. 하지만 창고로 달려와 소란을 피우고 사람은 때리는 건 옳지 않은 행동이지. 너희는 둘째 숙모님 사람이라 내가 숙모님 대신 너희들에게 벌을 주기는 곤란하니 직접 너희를 데리고 숙모님께 가 봐야겠다.”
호씨의 눈빛이 밝아졌다. 그녀는 자기가 옳았다는 걸 깨달았다.
임근용이 사람들을 둘러보며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못한 게 없다면 두려워할 필요도 없어. 너희들이 도리에 맞게 행동하고, 실수하지 않고 열심히 일한다면, 그 외의 것들은 다 내가 책임질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과 비교하면 이 골동품 꽃병 하나는 얼마나 하찮은가? 임근용은 작은 손해를 보고 큰 이익을 얻은 것이다. 송씨는 임근용이 소위 어질고 온화하다는 명성에 집착해, 어린 마음에 화를 참지 못하고 괜한 손해를 보며 꽃병 값을 배상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임근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질고 온화하다고 해서 나약한 건 아니지 않은가!
* * *
송씨는 침상에 비스듬히 누워 눈을 반쯤 감은 채 침착한 표정으로 창고 쪽의 일을 보고받았다.
“……이소부인께서 지금 사람들을 데리고 오고 있습니다.”
송씨가 손을 흔들자 보고하던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갔다. 려씨가 얼른 말을 이었다.
“어머님, 동서가 정말 그냥 안 넘어가고 그 두 하인들에게 따지고 들 생각인가 봐요. 이다음에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송씨는 이상야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고모와 조카가 맞구나. 따귀 때리는 걸 좋아하는 걸 보니 자기 고모를 똑 닮았어. 어떡하긴 뭘 어떡해? 문을 활짝 열고 손님을 맞아야지.”
려씨는 뭔가 말을 하려다가 멈췄다. 그녀는 송씨가 도대체 뭘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임근용을 괴롭히려고 했다고 보기에는 수법이 너무 치졸했다. 임근용이 무릎을 꿇기는커녕 오히려 차남가가 망신만 당하게 생기지 않았는가. 지금 이렇게 찾아오면 우리한테 좋을 게 뭐란 있단 말인가.
송씨도 그녀에게 따로 설명해 줄 마음은 없는지 느릿느릿 침상에서 일어나 태연하게 비녀를 다시 똑바로 꽂고 치맛자락을 다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임근용의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째 숙모님, 조카며느리가 숙모님께 사과드리러 왔어요.”
려씨가 문발을 걷고 나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둘째 동서, 들어와서 말해. 아니,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아?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시녀 황씨와 주씨가 눈물을 훔치며 무릎을 꿇었다.
“대소부인, 노비들을 위해 진실을 밝혀 주십시오. 사람을 너무 심하게 괴롭힙니다.”
려씨가 놀란 척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가서 꽃병을 바꿔 오라 했는데 어쩌다 이 꼴이 됐어?”
임근용이 호씨에게 눈짓했다. 그 의미를 알아챈 호씨가 왕씨를 잡아당겨 같이 무릎을 꿇고 애처롭게 울부짖었다.
“대소부인, 노비들을 위해 진상을 밝혀 주십시오. 노비들은 억울합니다. 저 언니들이 이부인의 이름을 내세우며 소란을 피웠습니다.”
임근용은 그녀들이 말을 마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이것 보세요, 옛말에 집안일은 너무 복잡해서 아무리 공정한 관리라도 시비를 가리기 쉽지 않다더니, 오늘 맹 마마 일이 생기자마자 곧바로 또 이런 일이 생겼네요. 어찌나 생각들이 없는지, 그까짓 꽃병 하나 가지고 이렇게 대판 싸워서 망신살이 뻗치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옆에 있는 상자를 가리켰다.
“꽃병은 누가 깨뜨렸든 간에 제가 배상할게요.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