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270
270화. 방계 친척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고 난 후 육씨 가문은 마침내 안정을 되찾았다. 임근용은 스스로 기초를 갈고 닦을 수 있는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안정적이면서도 신중하게 한 발짝씩 나아갔고 교만을 떨거나 성급하게 굴지 않았다. 집안일은 날로 손에 익었다. 가끔씩 여씨나 임옥진과 작은 충돌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일은 임근용이 계획한 대로 진행됐고 전혀 실수도 없었다. 그녀의 생활은 바쁘면서도 충실했고, 마음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찻집도 순조롭게 개업해 어느덧 평주성에서 풍아한 곳으로 손에 꼽힐 만큼 유명해져 있었다. 오상을 필두로 한 여러 서생들은 그녀의 찻집을 찾아와 시를 짓고 읊으며 노는 걸 좋아했고 강남에서 장사를 하러 이 동네로 넘어온 장사치들 역시 이곳에 와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염지에 심었던 수수 또한 풍년이 들어 소작인들도 모두 만족했다. 임세전은 일을 하면 할수록 더 노련해졌다. 그는 임근용과 오상의 도움을 받아 만들고 있는 호적이 완성되면 강남에 향약 가게의 분점을 차리기로 약속했다.
도봉당은 강남에 아주 아름다운 집을 하나 장만했다. 임근용은 임근음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녀를 부추겨 도봉당이 강남 쪽에 더 많은 땅이나 건물을 사도록 유도했다. 그러면서 임근음에게 은근히 강남은 정말 가 볼 만한 곳이라고 암시하며 집을 옮기지는 않더라도 가서 몇 년 동안 사는 건 아주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설득했다. 임근음도 살짝 마음이 흔들린 것 같았지만 아직 마음을 정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임근용 역시 서두르지 않았다. 그녀는 외로워하는 도순흠을 위해 매달 한 통씩 보내는 안부 편지에 무심한 듯 강남의 정취를 조금씩 내비쳤다.
바쁜 나날들 속에서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순식간에 여름이 가고 겨울이 돌아와 어느새 훌쩍 반년이나 지나 있었다.
동지가 가까워지자 며칠 동안 흐리기만 했던 하늘이 드디어 맑은 얼굴을 드러냈다. 임근용은 임세전과 장부를 대조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또 집안의 관리인들과 만나 집안일을 처리했다. 결국 그녀는 너무 지친 나머지 남은 일들은 여지와 방죽에게 넘겼다. 임근용이 이제 막 침상에 누워 잠시 햇볕을 쬐고 있는데 계원이 들어와 말했다.
“아가씨, 대부인께서 부르세요.”
임근용이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무슨 일 때문인지 알아?”
“모르겠어요.”
계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방금 대소부인께서 임신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계원은 이렇게 말하고 조용히 임근용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가씨께서도 시집온 지 벌써 반년이 넘었는데 아직 아무런 기척이 없으니 겉으로는 티를 안 내셔도 속으로는 마음이 급하시겠지? 이런 소식을 들으면 아마 별로 기분이 좋지 않으실 거야. 계원은 이런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고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계원의 밑바닥까지 훤히 꿰뚫어 보고 있는 임근용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바로 알아챘다. 임근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담담하게 지시했다.
“오늘 이소야가 집에 온다고 했으니까 주방에다 저녁밥을 좀 늦게 갖다 달라 하고 양고기찜도 추가해 달라고 해. 술도 미리 한 주전자 준비해 두었다가 따뜻하게 데워 놓는 것 잊지 말고.”
계원은 대답하고 시킨 일을 하러 나갔다.
임근용은 몸단장을 마치고 문 앞에 서서 복도에서 시녀들에게 일을 지시하고 있는 계원을 살펴보았다. 계원은 이미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까마귀처럼 새까만 머리에 예쁜 매화유리비녀를 꽂고 있었는데 유난히 검은 머리 때문에 새하얀 목이 한층 돋보였다. 그녀는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였고, 아리따운 곡선을 그리는 어깨와 잘록한 허리를 가지고 있었다. 겨울이라 옷을 두껍게 입은 데다, 입은 옷도 소박했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만큼은 숨겨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여자로서 가장 아름다운 나이를 지나는 중이었다.
임근용은 얼른 눈길을 거두고 앵두를 불렀다. 그녀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 집 밖으로 나갔다. 벌써 한겨울이 코앞이라 하늘이 맑아도 햇빛이 비치지 않는 곳은 어둡고 추웠다. 임근용은 피부가 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햇빛이 밝게 비추는 곳만 찾아서 걸었다. 그녀는 따뜻한 햇빛을 받으니 온몸이 노곤 노곤하게 풀리는 것 같아서 그저 누워서 한잠 푹 자고 싶었다.
앵두는 기분이 좋은 듯 임근용의 뒤를 따르며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아가씨, 햇볕을 쬐니까 정말 좋네요. 매일 이렇게 맑고 눈도 오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럼 집안의 숯도 아낄 수 있을 텐데요.”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이 바보야, 매일 이렇게 맑고 눈도 안 오면 내년에 넌 먹을 게 없어서 손가락을 빨아야 해.”
앵두는 빼꼼 혀를 내밀더니 좀 전처럼 아무 근심 걱정 없는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은 일부러 밖에서 한 바퀴 더 돌며 햇볕에 몸을 충분히 데운 다음 임옥진의 집으로 들어갔다.
육운은 훈롱에 기대 멍하니 있다가 임근용이 들어오는 걸 보고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가 버렸다. 눈치가 빠른 임근용은 육운의 살짝 충혈된 눈과 임옥진의 별로 좋지 않은 표정을 보고 말을 아끼며 조용히 인사를 올린 뒤 한쪽에 앉아 임옥진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임옥진은 귤을 까더니 껍질을 손에 든 채로 임근용에게 훈롱을 열라고 눈짓했다. 그녀가 귤 껍질을 숯화로에 던지며 무심한 듯 말했다.
“내일 모레가 근옥이 혼례구나.”
숯불에 타들어 가는 귤껍질이 푸른 연기를 내뿜으며 점차 말랐다. 그렇게 쪼그라들고 검고 붉게 변하며 은은한 향을 내뿜었다. 임근용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말했다.
“축하 선물은 다 준비했어요. 혹시 고모께서 따로 뭐 분부하실 게 있으세요?”
임옥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둘째 올케네 방계 친척이 축하하러 온다는데 성은 금(金)이고 이름이 진우(趁于)라 하더구나. 너도 기억이 나는지 모르겠다. 따져 보면 둘째 올케의 오촌 조카쯤 되지. 전에 평주에 왔을 때 보름 정도 임씨 가문 저택에서 묵었었어.”
임근용은 그녀가 려씨의 임신에 관해 말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 이런 말을 꺼내자 얼른 정신을 가다듬었다. 임옥진이 확실하게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집안은 장차 육운의 시댁이 될 집안이었다. 하지만 전생에서 임옥진은 임근용에게 이 일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일이 완전히 확정된 이후에야 그녀에게 알렸다. 그래서 임근용은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고, 그저 이 혼사가 몇 번이나 엎어졌다 재개됐다를 반복하다 결국 성사되었던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알고 있다는 걸 티 낼 수 없는 임근용은 그저 희미하게 기억을 떠올리는 척하며 말했다.
“그때는 제가 너무 어렸잖아요. 잘 기억이 안 나요.”
임옥진은 임근용이 기억을 하든 못하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그저 비교적 믿을 만한 사람과 이 일에 대해 상의하고 싶은 것뿐이었다.
“나도 어렴풋하게 기억은 나지만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 아이 얼굴은 잘 기억이 안 나는구나. 게다가 그때는 그 아이도 아직 어린 나이였으니 크면서 얼굴이 변했겠지. 둘째 올케 말로는 아주 훌륭한 인재라고 하던데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
임근용이 신중하게 말했다.
“작은어머니께서 오랫동안 친정에 가지 못하셨고, 평소에 금씨 가문과 왕래도 드물었잖아요. 작은어머니께서도 아마 다른 사람한테 들은 말일 테니 전부 사실이라고 믿긴 힘들죠. 근데 갑자기 그 사람은 왜요?”
임옥진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 아이가 지금은 익주(益州) 경현(庆县)의 지현(*知县: 명청(明淸)대의 현의 일급 행정 수장)이 되었다더구나.”
임근용이 기쁜 척했다.
“그것 참 잘됐네요. 젊은 사람이 그러기도 쉽지 않은데 말이죠. 근데 그 사람은 지금 관리로 일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익주는 여기서 거의 몇 천 리나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축하를 하러 와요?”
임옥진이 어색해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아이가 아니라 그 아이의 어머니랑 큰형수가 온다더구나. 그 아이도 이제 나이가 적지 않아서 벌써 27~8살쯤 되었대. 어렸을 때부터 공부만 하느라 장가갈 생각을 못 해 좀 늦어졌다는구나. 집안에는 홀어머니와 형수 한 명밖에 없고, 집안 형편도 괜찮아서 먹고 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을 거라 하더라.”
요즘 적지 않은 집안의 자제들이 앞날을 도모하기 위해 혼사를 늦추고 있었다. 그는 나이가 좀 많긴 했지만 어쨌든 벼슬길에 올랐으니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임옥진의 의중을 파악한 임근용이 말했다.
“사람이 성실하고 인품이 좋다면 괜찮지요. 다만 나이가 좀 많고 너무 멀리 사는 게 살짝 마음에 걸리네요.”
“나이 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는 편도 아니잖아, 또 사람이 나이가 좀 있어야 부인을 아낄 줄도 아는 법이야……. 멀리 사는 건 맞다만, 가까이 사는 사람한테 시집간다 해도 나중에 관리가 되어서 꼭 가까운 곳에 부임 받으리라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어쩌면 더 멀리 가게 될 수도 있지…….”
임옥진은 끊임없이 가능한 이유를 갖다 붙였다. 그녀는 육건신이 보낸 편지와 육 노태야의 경고가 떠올라 마음이 초조해졌다. 임옥진은 괴로운 마음에 손에 쥐고 있던 귤 조각을 수정 쟁반 위로 던졌다.
“내 생각에는 괜찮을 것 같구나. 어쨌든 아운이도 이제 정말로 적지 않은 나이잖니. 그런데 아운이가 싫다고 하더구나. 나이가 그렇게 많으면 벌써 곁에 첩을 두고 있을 게 분명하다면서 내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아. 그래서 내가 첩이 무슨 대수냐고 닭이나 개처럼 싫어지면 내다 팔면 되는 존재라고 말했는데 한사코 들으려고 하질 않는구나. 아운이는 자매가 없으니 네가 가서 나 대신 가서 좀 설득해 보려무나.”
시집가기 싫어하고 눈도 높은 사람에게 시집가라고 권하라니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임근용은 내심 힘들 걸 알면서도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말했다.
“저도 아가씨랑 이런 방면에 대한 이야기는 해본 적이 없어서 아가씨가 제 말을 들으려고 할지 모르겠네요.”
그는 육운보다 10살 가까이 더 많았고 유명한 수재도 아니었으며 그 나이 때까지 중하급현의 지현밖에 되지 못한 사람이었다. 생김새와 성품이 어떠한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객관적으로 봐도 오상보다 훨씬 못했다. 임옥진은 현실을 받아들였지만 육운은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육운도 현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아직까지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더더욱 임옥진의 말에 굴복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니 임근용이 간다고 별 수 있겠는가?
임옥진은 골치가 너무 아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했다.
“일단 가서 한 번 말이라도 해 보렴. 이럴 줄 알았으면 아운이한테는 말하지 말 걸 그랬다. 이제는 근옥이 혼례에도 안 가겠다고 하더구나.”
안 가면 선을 어찌 보겠는가? 앞으로 이런 괜찮은 혼사를 또 어디 가서 찾을 수 있을까? 이렇게 질질 끌다가는 정말로 평생 본가에 살면서 남들의 비웃음이나 사게 되지 않겠는가? 그게 아니면 결국 육건신이나 육 노태야가 맺어준 사람에게 시집가게 될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모녀 둘 다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남자가 문제를 보는 눈과 여자가 문제를 보는 눈은 확연히 달랐다. 그들이 어떤 사람과 짝을 지어줄지 누가 안단 말인가? 어쩌면 이 혼사보다 못할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