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274
274화. 좋은 팔자
육적은 그 친구들을 사방에 앉히고 육함의 옆에 앉았다. 그는 육함에게 정성스럽게 차를 한 잔 따라 주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지난번에 둘째 형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저는 다른 일을 찾았어요. 지금은 외지에서 온 행상들을 대신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중개인 역할을 해서 돈을 벌고 그걸로 집안 살림을 꾸리고 있는데 그런대로 살만 하답니다. 이 사람들은 다 외지에서 장사를 하러 온 행상들이에요. 그렇지 않아도 방금 거래를 하나 성사시키고 이제 나와서 구경하고 있던 참이었어요. 그러다 형님이 계신 걸 보고 이렇게 인사드리려고 왔죠.”
그 금붕어 눈을 한 사람이 육함의 옆으로 오더니 빙그레 웃으며 육함을 바라보았다.
“형님, 행색을 보아하니 서생이신 것 같습니다? 외모가 아주 준수하시네요.”
육함은 그가 비열한 표정으로 자꾸만 자신의 용모를 칭찬해대는 것에 절로 벌컥 화가 치밀었다. 상황을 보고 있던 육적이 황급히 둘 사이에 끼어들더니 정색하며 말했다.
“만(万) 형(兄), 우리 사촌 형님은 어엿한 거자(举子)이시고 앞으로 진사에 합격하실 분이에요. 우리 대백부께서는 지금 건주(虔州)에서 지주로 부임하고 계세요.”
그 금붕어 눈을 한 사람은 순식간에 얼굴에서 경박한 기색을 거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한 번 육함에게 인사했다.
“제가 보는 눈이 없어 형님을 몰라뵙고 대접을 소홀히 했군요. 형님께서 부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세요.”
육적은 그가 이렇게 육함을 대접하는 걸 보고 절로 의기양양해져 웃으며 말했다.
“둘째 형님, 이 친구들 중에도 향약 장사를 하는 친구가 있어요. 형수님도 향약 가게를 하시잖아요? 마침 이렇게…….”
육함은 예전 그 일로 인한 화가 아직 풀리지도 않았는데 그가 또 이런 사람들 앞에서 임근용을 언급하는 것을 보고 절로 화가 치밀어 그의 말을 끊었다.
“그 가게는 운영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서 난 여태껏 관여해 본 적이 없어.”
그리고 장수에게 계산하고 가자고 말했다.
육적은 그의 말과 표정을 보고 불쾌해한다는 걸 눈치채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저희는 또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더는 둘째 형님을 방해하지 않을게요.”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는 한 마디를 나누는 것도 고역이지 않은가. 육함이 무성의하게 인사하며 말했다.
“조심히 가.”
그들이 밖으로 나가자, 그 금붕어 눈을 한 사람이 육적을 잡아당겨 한쪽으로 데리고 가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런 사람이라면 분명히 앞으로 출세할걸세. 저 친구랑 안면을 좀 트고 싶은데 날 귀찮게 생각하고 무시할 것 같아 걱정이구먼. 자네가 가서 나 대신 자리를 좀 만들어 주게. 내가 행화루에서 한턱내고 금노아를 불러 술을 따르게 하겠네.”
육적은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저 형님은 저랑은 달라요. 유명한 수재에 집안도 부유하고 관료 집안 출신이라 가정교육도 엄하게 받고 자라서 얼마나 고고한지 몰라요. 감히 그런 말은 꺼내지도 못해요.”
“난 그냥 진심으로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거지 전혀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네. 명사풍류(*名士风流: 문인 학사들이 예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풍모나 행위를 하는 것을 가리킴)라 하지 않던가. 남자들 중에 예쁜 여자 싫어하고 기생과 노는 걸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 아직 젊어서 낯가죽이 두껍지 못해 그런 것뿐이지. 자네가 가서 잘 구슬러 보면 될 걸세.”
금붕어 눈을 한 사람이 육경에게 다섯 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자네가 이 일을 성사시키면 내가 이만큼 주겠네.”
육적은 순간 마음이 동했지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될 거예요. 방금 전에 보니까 이미 화가 난 것 같았어요.”
금붕어 눈을 한 사람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럼 내가 가서 사과하면 되지 않나. 저 친구 신분과 내 신분을 뻔히 다 아는데 내가 어찌 감히 불경한 마음을 품겠어?”
육적은 그를 안달 나게 하려고 일부러 말했다.
“세상에 거자가 한둘도 아닌데 왜 하필 육함 형님하고 사귀겠다는 건데요? 솔직히 말해 보세요, 대체 뭘 노리는 거예요?”
금붕어 눈을 한 사람은 말하지 않으면 육적이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닫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건주 출신일세. 그 친구 아버지가 거기에 부임해 계신다면서, 자고로 큰 나무 밑이 더 시원한 법이지,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육적이 손을 내밀며 돈을 요구했다.
“먼저 돈부터 주고 다시 얘기해요. 괜히 가서 욕만 먹고 형님이 돈도 안 주면 나만 손해잖아요.”
금붕어 눈을 한 사람이 육적을 힐끔 쳐다보더니 주머니에서 은자 한 개를 꺼내 그의 손에 쑤셔 넣고 그를 세게 밀었다.
“빨리 가게! 초대 못 하면 그 돈 다시 회수할 걸세.”
육적은 표정을 가다듬고 옷을 정리한 뒤 육함에게 다가가 깊이 허리를 숙이며 예를 올렸다.
“둘째 형님.”
육함은 해장국을 들고 마시다가 그가 다시 돌아온 걸 보고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또 무슨 일이야?”
육적은 하는 수 없이 얼굴에 철판을 깔고 웃으며 말했다.
“제 친구들이 둘째 형님의 명성을 흠모해서 저한테 형님하고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해서요. 제 체면을 봐서 행화루에서 술 한잔만 같이 해 주세요. 지난번에 오상 형님께서 금노아를 불러 술을 마시자고 했잖아요? 오늘 불러서 같이 놀면 좋을 것 같아요.”
육함이 고개를 돌려보니 금붕어 눈을 한 자가 저쪽에서 그를 향해 아첨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내심 혐오감이 일어 체면 불고하고 말했다.
“너무 오랫동안 나와 있어서 집안 어르신들이 걱정하실 거야. 이만 돌아가 봐야겠어.”
상황을 보고 있던 장수가 밥을 다 먹지도 않고 급하게 돈을 탁자에 던지며 가게 주인에게 치우라고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데리러 갔다. 장수가 말고삐를 쥐자마자 육적이 달려들어 고삐를 바짝 당기고 그를 쫓아냈다.
“저리 가, 이 새끼야, 내가 아직 이소야께 말을 다 끝내지도 않았는데 네가 뭔데 설쳐?”
장수는 주인의 권세를 믿고 남을 괴롭히는 못된 하인은 아니었지만 자기 주인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어서 아무 말 없이 굳은 표정으로 육적이 쥐고 있던 고삐를 빼앗았다. 육적은 힘껏 몸을 부딪쳐 장수를 밀어 버리고 술기운을 빌어 뻔뻔스럽게 육함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둘째 형님, 이렇게 야박하게 굴지 마세요. 누구든 밖으로 나오면 오며 가며 친구들도 사귀게 되고 그런 거 아니겠어요? 형님이 이렇게 제 체면을 안 세워 주시면 저라고 형님 체면을 세워주고 싶은 마음이 들겠어요? 제가 비록 가난뱅이긴 하지만 상대를 존중하는 게 뭔지 정도는 알아요.”
주위에서 밥을 먹고 있던 손님들이 전부 고개를 돌려 육함을 바라보았다. 화가 난 육함은 이 사촌 동생이 정말 꼴도 보기 싫어 어두운 표정으로 육적의 앞에 서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놔!”
육적은 고삐를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여전히 웃고 있었다.
“형님, 설마 아직도 지난번 일 때문에 화가 나 계신 거예요? 따지고 보면 인정머리 없게 군 건 형님이잖아요.”
육함이 냉랭하게 말했다.
“난 인정머리 없게 굴면 안 되나? 이거 안 놔?”
장수가 맹렬히 달려들어 육적의 손에서 고삐를 빼앗았다. 육적 역시 화가 나 고삐를 세차게 내동댕이치고 육함을 바라보며 말했다.
“됐어요, 잘 알겠어요. 형님 같은 성인군자께서는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이 아주 우스워 보이겠지요. 뭣도 모르고 설친 제가 아주 실례가 많았네요. 이렇게 사과드릴게요!”
육적은 이렇게 말하며 육함에게 깊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는 일어나서 주위 사람들에게 화를 냈다.
“뭘 봐? 사과하는 거 처음 봐?”
육함은 내심 분노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돌아 말에 올랐다. 그가 채찍을 휘두르자 장수가 황급히 뒤를 따랐다.
그 금붕어 눈을 한 자가 다가와 육적에게 손을 내밀었고 육적은 그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온갖 망신을 다 당했는데 뭘 돌려달라는 거예요?”
“이놈이!”
금붕어 눈을 한 자가 크게 화를 내자 육적이 냉소했다.
“어떻게, 지금 나랑 한번 해 보자는 거예요?”
다른 두 사람이 황급히 금붕어 눈을 한 사람을 잡아당겼다.
“됐어, 그만해, 저 친구도 얼마나 창피했겠어.”
육적은 육함 일행의 뒷모습을 보며 호되게 침을 뱉었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그저 나보다 좋은 팔자를 타고난 게 다인 주제에!”
* * *
겨울밤의 하늘은 유난히 높고 별들도 평소보다 더 선명하게 보였다. 임근용은 피풍을 단단히 여민 채 고개를 들어 하늘의 별자리를 찾아보고 있었지만 귀로는 육운의 방 안 상황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임옥진이 육운을 훈계하러 왔기 때문에 올케인 임근용도 따라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육운의 집에 도착하니 그녀는 또 한 편으로는 굳이 따라 들어가서 육운의 미움을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임옥진에게 말했다.
“전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아가씨처럼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은 오히려 제가 거기 있는 걸 더 싫어할 거예요. 어머님께서 아가씨를 꾸짖으시기라도 하면…….”
임근용도 이제 듣게 좋게 말을 돌려 할 줄 알았다. 계속 호되게 당하다 보니 절로 말솜씨가 늘었다.
임옥진은 그녀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혼자서 육운의 방으로 들어갔다. 육운은 임옥진 앞에 있을 때와 다른 사람들 앞에 있을 때 태도가 완전히 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말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 육운이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지만 임옥진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방 마마가 작은 목소리로 권유했다.
“이소부인, 들어가서 좀 말려 보시는 게 어떨까요? 여태껏 이렇게 서로 양보하려 하지 않고 팽팽하게 맞섰던 적은 없었어요.”
임근용이 말했다.
“내가 지금 들어가 봤자 좋을 게 없어. 모녀지간에 무슨 큰 원한이 생기겠어. 일단 상황을 좀 더 지켜보고 다시 이야기하자.”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두 모녀가 같이 울고 있었다.
방 마마는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고 임근용은 계속 밖에서 듣고 있었다. 임근용이 아는 별자리를 전부 찾을 때쯤 되니 안에서 들리던 울음소리도 멎고 사방이 조용해져 있었다. 방 안에서는 이따금씩 임옥진의 목소리와 육운의 억눌린 흐느낌이 들려왔다. 임근용은 두 모녀가 화해했다는 것을 눈치채고 앵두에게 방 마마한테 이야기를 전하라 한 뒤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 * *
몸의 한기가 막 가실 무렵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 있던 시녀들이 연달아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고 곧바로 화가 잔뜩 난 육함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임근용은 지주 댁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 줄 알고 얼른 일어나 피풍을 벗겨 주며 물었다.
“왜 그래요?”
육함은 입을 굳게 다물고 경직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장화를 벗고 집에서 신는 방한화로 갈아 신은 다음 훈롱 옆에 앉아 직접 따뜻한 차를 한 잔 따라 반 잔쯤 마시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아주 역겨워 죽겠소.”
임근용은 그가 갈아입은 옷을 계원에게 건네주며 정리하라 지시하고 그의 곁으로 가서 차를 더 따라 주었다. 그녀는 조용히 한쪽 옆에 앉아 육함이 다음 말을 하길 기다렸지만 그는 또 입을 다물어 버렸다. 임근용이 계원에게 지시했다.
“가서 이소야께서 드실 해장국을 준비해 오너라.”
계원이 명을 받들고 물러가자 육함은 한참 동안 찻잔을 움켜쥐고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혹시라도 앞으로 육적이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 멀리 돌아서 가시오. 그 사람 체면은 세워 줄 필요 없으니 말도 섞지 마시오. 동정은 더더욱 할 필요 없소.”
쓸데없이 야박하다며 욕만 먹었으니 육함이 이 일을 어찌 자기 부인에게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임근용은 이 말을 듣고 육적이 대체 그에게 무슨 짓을 했길래 이렇게 미움을 샀는지 궁금해졌다.
“난 또 지주 댁에서 무슨 있었나 했네요. 알고 보니 육적 공자 때문에 화가 난 거였군요.”
육함이 시무룩하게 말했다.
“지주 어르신께서 날 특별히 초대하신 건데 날 화나게 할 이유가 뭐가 있겠소? 내가 그렇게 경박하고 예의 없는 사람도 아니고.”
육함은 속으로 육 노태야에게 가서 앞으로 육적이 집으로 찾아오지 못하게 해달라고 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유유상종이라고 육적 같은 사람과 어울리다가 다른 형제들까지 물들까 봐 걱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