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277
277화. 편지를 잃어버리다
안락당 안은 아주 떠들썩했다. 임 노부인은 축하하러 온 친지들을 양쪽에 차례로 앉히고 주름진 얼굴로 활짝 웃고 있었다. 올해 임씨 가문에서 연달아 세 번의 경사를 치렀고 또 아무런 문제가 없이 다 무사히 잘 치러냈으니 그녀가 기뻐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라씨는 경사의 의미를 담은 대추색 상의를 입고 기쁨에 겨운 얼굴로 친지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문씨는 옅은 미소를 띠고 몇몇 시녀들을 데리고 손님들을 세심하게 챙기고 있었다. 그녀들이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은 하던 말을 멈추고 그녀들에게 인사를 했다.
임근용은 자리에 앉아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라씨 가문 대부인 옆자리에 앉아 있는 금씨 고부를 살펴보았다. 과부인 금 부인은 대략 50세가 넘어 보였고, 차림새는 아주 수수했다. 그녀는 하늘색 좁은 소매 상의에 파란 치마를 입고 있었고, 머리는 둥글게 감아 올려 금비녀를 하나 꽂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수척했고 피부는 핏기가 없을 정도로 하얬다. 코 양쪽으로는 팔자주름이 깊게 파여 있었고 입꼬리는 약간 처져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다소 냉혹하고 매서워 보였다.
금 대소부인은 서른 남짓한 나이였는데 금 부인보다 조금 더 화려하게 꾸미고 있었다. 그녀는 지분을 전혀 바르지 않았는데도 용모가 수려했고, 허리와 등을 곧게 펴고 두 손을 단정하게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금 대소부인은 옆에 있는 금 부인이 무언가 요구하는 게 있는지 살펴보는 것 외에는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는 등의 다른 짓은 전혀 하지 않고 눈을 내리깐 채 순종적인 표정만 짓고 있었다.
임근용은 도씨의 사람 보는 눈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금 대소부인이 용모가 단정하고 성품이 온화해 보인다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대체 저 금 부인이 어딜 봐서 선량해 보인다는 말인가. 임근용의 눈에는 냉혹한 성격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싫어하는 노부인으로 보였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오랫동안 과부로 수절하면서 고생스럽게 두 아들을 키워 인재로 만들어 낸 사람이니 분명 강단 있는 성격일 것이고 그런 성격이 얼굴에 드러난다 해도 별로 이상할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석에서 만났을 때는 유순하고 선량한 사람일지 누가 알겠는가.
임근용이 한창 이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임옥진은 벌써 그 금 부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녀는 공손한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아주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임근용은 임옥진이 낯선 사람에게 이렇게 행동하는 건 난생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역시 이 지경까지 오니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모양이었다. 임근용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육운을 바라보았다. 저쪽에 앉아 있는 육운은 단정한 태도로 사람들의 질문에 작게 대답하고 있었는데 금씨 고부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임근용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 거만한 성격인 육운은 절대 사람들 앞에서 창피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임근용 역시 고개를 돌리고 도씨와 양씨, 오 대소부인, 문씨 등과 작은 목소리로 담소를 나누었다.
그런데 갑자기 육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새언니, 같이 일곱째한테 가 봐요.”
임근용은 고개를 돌리다 마침 육운을 훑어보고 있던 금 부인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는 육운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어보더니 곧장 육운의 발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마도 육운이 예쁜 발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려는 것 같았는데 그런 의도를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벌써 약간 눈치를 채고 다소 난감해했다. 임근용이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하자 오 대소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가봐, 오릉 아가씨도 거기 있어. 벌써 한참 전부터 널 찾더라.”
육운은 문밖의 찬란한 햇빛을 보고 눈물이 다 나올 것 같았지만 애써 눌러 참았다. 그녀는 정원의 인적이 드문 곳에 이르러서야 멈춰 서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아침에 새언니가 집안일을 처리하러 갔을 때, 오라버니가 할 말이 있다면서 절 청설각으로 불렀었어요.”
임근용은 육운이 눈살을 찌푸리며 가련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말했다.
“이소야가 요즘 좀 바빴어요.”
그녀는 방금 전에 육운이 육함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것은 필시 이 혼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기분이 상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운이 살짝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그러게요, 오라버니는 어째 점점 바빠지는 것 같아요. 전에는 아무리 바빠도 자주 나한테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최근 몇 년 동안은 어쩌다가 만나도 두세 마디 섞는 게 다예요. 어른이 되더니 참 많이 변했어요.”
그녀는 임근용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또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어쨌든 오라버니가 나한테 관심이 없지는 않았나 봐요. 저 금씨 가문 말이에요, 새언니가 볼 때는 어떤 것 같아요?”
전생에서 한 번 겪어 본 일이긴 했지만, 사실 임근용은 육운의 이 혼사에 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그 당시 임근용은 육운의 약혼 직전에야 이 금씨 가문에 대해 알았다. 육운이 시집가고 나서는 임근용은 자신의 처지가 완전 절망적으로 변하는 바람에 세상사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육운은 멀리 시집을 가서 만나기 어려웠기도 했고 무슨 일이 있다고 해도 임옥진이 임근용에게 말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정말로 육운이 어떻게 살았는지 몰랐다. 비록 임근용이 육운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런 일로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 거듭 생각해본 끝에 태연하게 말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요. 금 부인 성격이 좀 엄격해 보이긴 하더라고요.”
육운은 잠시 말없이 서 있다가 꿋꿋한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난 승낙하지 않을 거예요. 언니가 오라버니한테 전해줘요. 누구든 또 다시 날 설득하려 들면 정말로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요. 그건 새언니도 마찬가지고요.”
마치 물건을 살 때처럼 자기 입맛에 맞는 물건인지 이리저리 살펴대는 금씨 노인네를 육운이 어찌 참겠는가?
임근용은 육운이 마치 이 혼사를 임근용과 육함이 추진한 것처럼 말하면서 그들이 그녀의 불행을 바라기라도 한다는 듯이 말하자 좋게 생각해 주려다 약간 화가 났다. 임근용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 착각하지 말아요. 지금 급한 건 우리가 아니에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소매를 뿌리치며 앞으로 걸어갔다. 임근옥의 집 앞에 도착하자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앵두가 뒤를 돌아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육운 아가씨가 따라왔어요.”
임근용은 피식 웃고 육운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반갑게 마중 나온 오릉과 악수를 하고 친척 자매들 몇몇과 인사를 나눴다. 그녀의 뒤를 바짝 따라 들어온 육운은 억지로 웃으며 임근옥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이제 곧 시집을 가야 하는 임근옥은 예전의 제멋대로인 성격을 감추고 살짝 부끄럽고 두려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임근옥이 사탕을 들고 와 그녀들에게 대접하며 감상적으로 말했다.
“왜 이제야 왔어요? 내가 아침부터 얼마나 기다렸다고요. 집안 자매들 중에 한참 어린 여덟째 동생을 제외하면 날 배웅해줄 사람이 둘밖에 없단 말이에요. 우리 근주 언니도 못 오고요. 이제 앞으로 우리 자매들을 언제 또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사람들은 모두 교묘한 말로 임근옥을 위로했지만 임근용과 육운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임근용은 전생에서 그녀가 살아 있는 동안 자매들이 각자 왕래를 하긴 했어도 오늘 이후로 이렇게 다 같이 모이는 일은 없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육운은 지금 누구에게 입에 발린 말을 해줄 만한 기분이 아니었다.
영리한 오릉은 이 모습을 지켜보다가 두 사람 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걸 알아챘다. 그녀는 임근용에게 슬쩍 눈짓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고 곧 임근용도 핑계를 대고 따라 나갔다. 이걸 본 육운은 또 다시 눈빛이 어두워졌고, 이를 악물며 고개를 숙였다.
임근옥의 집 정원에는 자두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잎이 다 떨어지고 벌거벗은 나뭇가지만 남아 있었다. 오릉이 나무 밑에 서서 나뭇가지를 잡아당기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또 무슨 미움 살 짓 했어?”
임근용이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오릉이 위로하며 말했다.
“원래 다 그래, 육운이는 시누이이고 또 동생이잖아. 너 같은 새언니한테 화풀이 하는 것도 당연하지. 나도 집에 있을 땐 종종 우리 새언니한테 짜증 내고 그래. 네가 마음을 좀 넓게 가져.”
임근용이 탄식하며 말했다.
“알았어.”
그녀는 마음이 아주 넓어졌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그래도 전보다는 반 이상 넓어졌다고 할 수 있었다. 안 그랬으면 그녀는 벌써 숨이 막혀 죽었을 것이다.
마음이 통한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오릉이 절로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너도 사는 게 참 쉽지 않겠다.”
좋은 소문은 문밖으로도 못 나가지만 나쁜 소문은 천 리를 간다고 육씨 가문의 일도 많든 적든 밖으로 소문이 새나갔다. 특히 임근용의 남편은 아주 난감한 신분이라 오릉은 상상만 해도 그녀가 얼마나 힘들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많은 말들은 그저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을 뿐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임근용은 눈을 내리깔고 자두나무 아래의 얼룩덜룩한 빛과 그림자를 바라보며 전생과 현생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감상적인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넌 내년에 가지? 게으름 피우지 말고 집안 어르신들한테 처세술이랑 집안일 하는 법 같은 걸 열심히 배워. 배워두면 다 너한테 도움이 될 거야.”
“얼씨구, 그새 기고만장해져서 날 가르치려 드네.”
오릉의 수려한 얼굴에 살짝 부끄러운 기색이 어렸다. 하지만 그녀는 임근용이 진심으로 자신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임근용의 팔을 잡아당기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 전에 양미한테서 편지가 왔었어. 너한테도 편지하고 물건을 보내서 우리 큰어머니께서 사람을 시켜서 너한테 보냈는데 혹시 받았어?”
임근용은 절로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녀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못 받았어. 언제 보냈는데?”
오릉도 깜짝 놀랐다.
“벌써 보름 가까이 됐어. 혹시……?”
오릉은 혹시 육씨 가문 사람이 중간에서 가로챈 건 아닐까 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말을 삼키고 다시 말을 고쳤다.
“우리 집 하인이 잊어버렸을지도 몰라, 일단 내가 돌아가서 한 번 확인해 볼게.”
임근용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물건들은 둘째 치고 그 편지는 양미에게 호적을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했던 편지였다. 비록 오상이 중간에서 뜯어보고 양미가 그런 일을 하긴 힘드니 자기가 대신 처리해 주겠다고 했지만 어쨌든 그 편지는 양미에게 부쳐졌다. 그 이후 양미가 거의 반년 만에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으니 편지에 그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임근용은 편지가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갈 것을 대비해 미리 대책을 세워 두긴 했지만 그렇게 되면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변명을 해대야 했다.
두 사람은 뭔가 일이 잘못된 것 같아 마음이 뒤숭숭해진 데다가 밖에 너무 오래 있는 것도 좋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그만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살짝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사뿐사뿐 계단을 내려오는 육운이 보였다.
“둘이서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해요. 나도 끼워 줘요.”
오릉이 웃으며 말했다.
“그냥 쓸데없는 잡담 좀 했어, 안 그래도 이제 들어갈 참이야. 근옥이가 뭐라 하겠다.”
그러더니 팔을 어루만지고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이상하게 날이 춥네, 날씨가 맑아 보이는데 햇빛은 하나도 안 따뜻한 것 같아.”
육운은 눈을 내리깔고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비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