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295
295화. 만족스러운 상황
연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났고 주씨는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말했다. 육함은 아직 저녁밥을 먹지 못한 것도 개의치 않고 바로 말을 준비하라고 지시한 뒤, 직접 그녀들을 집까지 바래다주고 오겠다고 말했다. 그는 떠나기 전에 임근용에게 돌아와서 자세히 말해 주겠다는 의미를 담은 눈빛을 보냈다.
임근용은 그런 육함을 보고 일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걸 눈치채고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설령 차남가에서 손을 썼다 할지라도 앞뒤 상황을 전부 고려해 벌인 짓일 테니 판을 깨기는 쉬워도 그 증거를 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모든 일이 어찌 뜻대로만 풀리겠는가, 과부 손씨가 죽지 않았으니 그 시체를 가져와 소동을 피우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 일은 차남가가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은 셈이고 이것만 해도 그녀는 이미 목적을 반 이상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임근용은 이 일을 잠시 내려놓고, 사람들에게 육함의 저녁 식사를 준비하라 지시하고, 집으로 돌아와 친정에 갔을 때 쓸 물건들을 챙기라 지시했다.
* * *
육함은 묘시(*卯时: 오전 5~7시) 무렵이 되어서야 서둘러 돌아왔다.
임근용이 얼른 그를 마중하며 큰 털이 달린 피풍을 벗겨 주고 시녀들에게는 그가 씻을 물과 따뜻한 음식을 가져오라 지시했다. 육함은 일단 따뜻한 닭고기 탕을 한 그릇 마시고 몸을 녹인 뒤 밥을 대충 먹었다. 그는 그릇을 다 치우고 나서야 자신의 옆자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용, 이리 와서 앉아 보시오.”
임근용은 여지가 올린 다과를 받아들고 사람들을 내보냈다. 그녀는 여지에게 문을 지키라 지시하고 그의 곁에 앉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됐어요?”
육함은 하나도 숨기지 않고 그녀에게 자세히 말했다.
“이 사건은 전반적으로 봤을 때 시기를 잘 잡았을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재물을 탐하는 마음과 당신의 선량함을 믿는 과부 손씨의 마음을 잘 이용했다고 볼 수 있소. 정말 정교한 계획이 아닐 수 없지. 그런데 이런 정교한 계획에 한가지 아주 명백한 오류가 있소. 계 마마가 오랫동안 내원 안에서만 살긴 했지만, 알아낼 마음만 있었다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을 거요.
일반적인 상황에서라면 쓸데없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성을 계씨라고 했어야하지. 그런데 그놈은 자기를 맹씨라고 했소. 내 생각에 이건 사람들이 그저 평범한 건달이 돈을 노려 사기를 친 걸로 믿게 만들려고 일부러 그런 게 아닐까 싶소. 과부 하나를 상대하는 데 이렇게까지 세심하게 계획을 짤 필요가 뭐가 있겠소. 앞으로 우리가 더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 같소.”
육함은 아무 말도 안했지만 임근용은 그가 이 판을 짜느라 며칠 동안 고생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차남가가 이 일에 관여했다는 증거를 잡지는 못했지만 그가 차남가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는 건 확실했다. 다만 그는 아주 신중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쉽게 꺼내지 않는 것뿐이었다. 임근용은 그가 쉴 수 있게 자리를 펴 주었다.
“며칠 동안 고생했는데 어서 쉬어요. 아마 내일이면 또 소식이 있겠지요.”
육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가서 공부를 좀 해야겠소.”
육 노태야는 절대적인 실력 앞에서는 모든 음모와 계략은 아무 소용없다고 말했다. 그는 반드시 과거에 합격해야 했고 또 좋은 성적으로 붙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날이 갈수록 더 힘들어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 * *
바람이 점차 불기 시작하고 그믐달도 마지못해 두꺼운 구름 뒤로 사라지자 하늘과 땅에 결국 어둠이 드리워졌다. 집현각에는 아직도 등불이 켜져 있었고, 창호지 밖으로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육 노태야는 양지백옥 파건(*把件: 손에 쥐고 만지거나 감상하는 물건으로 주로 옥이나 열매의 씨, 돌 등으로 만듦)을 만지작거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그저 불난 틈을 타서 물건을 훔친 평범한 강도 사건이란 말이냐?”
범포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형구(*刑具: 형을 집행하거나 고문하는 데 쓰는 도구)를 다 써 보았지만 그 건달도 추노칠이라는 놈의 사주를 받은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 추노칠이란 자의 본명은 유신(刘信)인데 늘 어디서 났는지 모를 돈은 가지고 다니며 동네의 건달들과 어울렸다 합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사기를 쳐서 돈을 강탈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벌써 소문을 듣고 달아났다고 합니다. 여러 명의 피해자가 나타나 그자를 사기죄로 고소했습니다.”
육 노태야가 반쯤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그럼 그 가게 부지를 산 자는 누구냐?”
사기를 쳤으면 그 부지를 산 자가 있지 않겠는가?
범포가 탄식하며 말했다.
“그걸 모르겠습니다. 그 건달은 심부름만 한 것 같고 나머지는 다 그 유신이라는 자가 쥐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범포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 가문 사람들과 관계가 있다는 말은 전혀 들은 바가 없습니다.”
육 노태야는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며 들고 있던 어깨를 천천히 내려놓고는 손을 흔들었다.
“그만 가서 쉬어라.”
“예.”
범포가 대답하고 또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소야께서 오늘 아침 일찍 또 관아로 가셨었는데 아주 의욕이 넘치시는 것 같습니다. 또 왕씨와 서류를 쓸 때, 관리인 하나가 실수를 했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크게 화를 내셨다고 합니다.”
한 가문을 이끌 가주는 강해야 할 땐 강한 모습을 보일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었다. 이건 아주 좋은 일이었다. 육 노태야가 여유로운 말투로 말했다.
“그 아이가 알아서 하게 놔두거라. 그리고 한근(韩根)이에게 내일 들어오라고 해라.”
* * *
한줄기 노을빛이 하늘을 뚫고 나와 천지 만물을 아름다운 빛깔로 물들였다. 임근용이 중문 밖에 서서 기분 좋게 숨을 내쉬자 하얀 입김이 나왔다. 그녀는 결국 육함이 집을 떠나기 전에 친정에 갈 수 있었다. 그녀는 수중에 있던 수많은 잡다한 일들을 다 내팽개쳐 두고 나온 상태였다. 마침 날씨도 이렇게 맑고, 앞으로 며칠 동안 홀가분하게 지낼 걸 생각하니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육함은 임근용을 데리러 온 임역지와 몇 마디 주고받은 뒤 사람을 시켜 임근용을 마차에 태웠다. 그리고 임역지와 나란히 말을 타고 임근용을 친정까지 바래다주었다. 대문을 나서자마자 회색 면옷을 입은 한 남자가 보였다. 그는 키가 작았지만 다부져 보였고 짧은 콧수염을 기르고 있는 것이 대략 30세 전후로 보였다. 관리인 같은 행색의 그가 길 한쪽에 서서 육함을 향해 절을 하며 인사했다.
“소인 한근, 이소야를 뵙고 인사올립니다.”
육함이 기억하기로 이 한근이라는 사람은 육씨 가문의 여러 관리인들 중 하나였고 특별히 신임을 받는 자는 아니었다. 육함은 그에 대해 잘 몰랐으며, 그는 일개 소관리인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전혀 거드름을 피우는 기색 없이 웃으며 인사하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한근은 대문 앞에 서서 한참 동안 육함을 눈으로 전송하고 뒤돌아 육씨 가문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 * *
임근용은 구리 손난로를 품에 안고 말발굽이 땅을 밟으며 내는 타닥타닥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마차의 흔들림에 따라 그녀의 몸도 절로 흔들렸다. 계원이 다급하게 다가와 솜이불 한 채를 그녀의 등 뒤로 쑤셔 넣더니 아첨하듯 말했다.
“아가씨, 이렇게 하시면 더 편할 거예요.”
임근용이 그녀를 힐끗 보고 웃으며 칭찬했다.
“넌 갈수록 세심해지는구나.”
계원이 눈을 내리깔고 웃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노비는 방죽 언니처럼 재주가 많은 것도 아니고 여지 언니처럼 유능한 것도 아니잖아요. 아가씨를 모시는 것조차 제대로 못 하면 죽어야지요.”
계원은 임근용이 이번에 그녀에게 계 마마와 함께 집을 지키라 하고 여지를 데리고 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임근용의 계획은 뜻밖에도 그와는 정반대였다. 임근용이 이렇게까지 그녀를 생각해 주는데 그녀가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넌 말이야, 가끔씩 진중하지 못할 때가 있어. 네가 여지의 반만큼만 진중해져도 내가 너한테 안심하고 일을 맡길 수 있을 텐데 말이야.”
계원은 진중하지 못하다는 임근용의 평가에 뭐라 변명할 길이 없어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퍼졌다. 이로 인해 방금 전까지 느꼈던 기쁨은 순식간에 실망감으로 변했다. 그녀는 이 실망감이 지나가고 난 이후 더욱더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행동했다.
마차가 천천히 멈추는 것 같더니 마차 밖에서 임역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넷째야, 도착했어.”
곧이어 시녀가 받침대를 들고 왔고 계원이 얼른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녀는 돌아서서 마차발을 들어 올리고 임근용을 부축해 마차에서 내려주려 했다. 임근용이 계원의 손을 잡으려는데 육함이 옆에서 비스듬하게 손을 뻗으며 웃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부부간의 애정을 드러내는 걸 그다지 꺼리지 않았다. 그래서 육함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옆에서 보고 있던 임역지가 친근하게 굴며 일부러 농담을 던졌다.
“어머니께서 늘 매부가 자상하고 세심하다고 칭찬하셨는데 오늘에서야 왜 그러셨는지 알겠네.”
육함이 미소 지으며 임역지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
“고생 많으셨어요, 다섯째 형님.”
임역지가 황급히 답례했다.
“가족끼리 뭘 이렇게까지 예의를 차리고 그래. 매부, 들어와.”
임근용은 지금의 이 상황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임역지는 전생에서처럼 그렇게 밉살스럽고 음흉한 인간으로 변하지 않았다. 서로 많이 친하지는 않아도 무슨 일이 있을 때는 일을 시킬 수 있었고 평소에도 못된 짓을 저지르지 않아 도씨도 일부러 그들에게 가혹하게 굴지 않았다. 전생의 그 일촉즉발 같았던 관계를 떠올려 보면 이 정도까지 완화된 것만 해도 정말 감지덕지였다. 그래서 임근용은 임역지와 평씨에게 아주 친절하게 대했다. 한눈에 봐도 이렇게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훨씬 보기 좋지 않은가.
임근용은 임씨 가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후 육함에게 돌아가라 말했다.
“당신도 할 일 많잖아요? 얼른 가 봐요.”
육함이 웃으며 말했다.
“서두를 필요 없소. 수 의원께서 뭐라고 하시는지 듣고 갈 거요.”
그 또한 대를 잇는 문제 때문에 조급한 모양인지 수 의원의 의견을 듣고 싶어했다. 임근용은 그가 이러는 것도 이상할 건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고 더 이상 가라고 하지 않았다.
수 의원은 이미 70에 가까운 나이였지만 아직도 아주 정정했다. 그는 환자를 진찰할 때도 들어오자마자 바로 진찰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앉혀 두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환자의 정서와 심장박동이 안정되고 난 이후에야 진맥을 시작했다.
수 의원은 손가락으로 임근용의 왼쪽과 오른쪽 손목을 짚어 보고, 평온한 표정으로 임근용에게 입을 벌려 혀와 입안을 보여 달라고 한 뒤 손을 떼고 가만히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무슨 난치병이라도 발견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