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317
317화. 눈사태
육함은 그녀의 말에 웃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감히 웃지는 못하고 침상에 뛰어들어 그녀를 껴안았다.
“올해 수익으로 부족하면 내년도 있고, 내후년도 있지 않소. 전부 당신 것인데 그래도 부족하오?”
임근용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할아버님이 당신한테 주신 거잖아요. 더 많이는 필요 없어요. 당신은 내 혼수에서 나간 돈만 채워 주고, 집에서 쓰는 생활비만 주면 충분해요.”
육함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내게 당신 건 아닌가 보오?”
임근용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럼요, 그리고 내 것도 당신 건 아니에요.”
그녀는 육함이 눈썹을 들어 올리는 걸 보고 덧붙였다.
“내 혼수는 나중에 우리 자식들한테 남겨 줄 거예요.”
육함이 또 웃었다.
“맞소, 당신 돈은 당신 거지. 아직 밖에 연회가 끝나지 않았으니 난 가 봐야겠소. 차남가의 두 사람이 안 보이는데 나까지 안 보이면 괜히 날 의심할지도 모르오.”
임근용은 그를 집 밖까지 배웅하고 조심스럽게 은자를 정리했다. 그녀는 여지와 방죽을 비롯한 몇몇 사람을 들어오라고 한 뒤 작은 목소리로 일을 지시했다.
* * *
찬비와 눈이 뒤섞여 내리는 진눈깨비에 눈썹이 젖어 하얗게 얼어붙었다. 육소가 말을 타고 새로 만든 모직 공방으로 뛰어 들어갔을 때, 육소 수하에서 모직 장사에 관여하고 있는 관리인들은 붉게 타오르는 두 개의 큰 숯화로를 에워싸고 귓속말을 하듯 소곤거리고 있었다.
“방 대집사가 며칠을 여기서 안 가고 버티고 있다가 지금 이렇게 갑자기 가다니, 설마 비밀리에 도씨 가문과 무슨 약속이라도 한 건 아니겠지?”
“그 사람이 떠날 때, 정통 청주의 모직을 한 무더기 가져갔다고 하던데. 그게 도씨 가문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
“척하면 척이지, 도씨 가문 물건이 아니면 어디 거겠어?”
“방금 들은 소식인데, 도씨 가문에서 이틀 전에 대영 쪽으로 갈 상인하고 거래를 했는데 협상한 가격이 우리가 제시한 가격보다 3할이나 낮았다고 하더라고. 대영 쪽의 가격이 벌써 떨어지고 있대.”
육소는 가슴이 떨렸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는 밝은 표정으로 사람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뭘 그리 걱정하느냐, 내가 집에 재산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있는 돈을 다 털어 넣어서 물건을 못 팔면 밥도 못 먹을 정도인 것도 아니지 않느냐. 사람이라면 옷을 안 입고 살 수는 없으니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팔 사람은 또 있겠지. 일단 대영 쪽을 알아보고, 안 되면 기다렸다가 내년 가을에 다시 북방에 가져가 팔면 그만이다. 그때가 되면 성수기이니 분명히 가격이 또 오르겠지. 걱정할 게 뭐가 있느냐!”
그가 자신감 있게 말하자, 수하의 관리인들도 마음을 놓았다.
“대소야 말씀이 맞습니다. 청주와 평주의 모직이 품질이 좋은 걸 누가 모르겠습니까? 이미 명성이 자자한데요. 당분간은 문제가 될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다 팔릴 겁니다.”
또 누군가는 방 대집사를 욕했다.
“늙은 여우 같으니라고, 거래는 안 하더라도 인의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물건을 싸게 못 사서 약이 올랐는지, 떠나면서 우리가 모직 때문에 은자를 뿌리고 있다고 비웃었답니다. 그러는 바람에 모직을 사러 온 손님들도 가격을 부를 생각은 않고 집요하게 깎으려 들기만 합니다.”
또 정신을 차린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충고했다.
“대소야, 도씨 가문이 우리와 적이 될까 걱정스럽습니다. 우리 집이 밑천이 두둑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많은 모직을 쌓아 두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만약 저쪽에서 몇 번 더 이런 식으로 던지면 가격이 더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대노야, 빨리 손을 쓰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육소가 말했다.
“아무리 싸게 판대도 밑지는 장사를 할 리는 없지 않느냐.”
이때, 문발이 걷히고 누군가가 말했다.
“이노야께서 오셨습니다.”
그러자 집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일어나 육건중에게 인사를 올렸다.
육건중이 하하 웃었다.
“장사를 하면서 서로 속이는 건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지. 매씨 가문은 우리와 또 직금 제화 모직 거래도 하고 있지 않느냐. 도씨 가문도 우리와 친척지간이니 우리가 죽을 때까지 몰아붙이지는 않을 게다. 아마 너희들이 요즘 너무 철모르고 나대는 것 같으니 도 대노야께서 젊은 것들에게 교훈을 좀 주려 하시는 거겠지.”
사람들이 전부 그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한바탕 웃었다. 육건중이 육소에게 말했다.
“넌 날 따라와.”
두 부자는 방에서 나와 사람이 없는 탁 트인 곳을 찾아가서 멈춰 섰다. 육건중이 하얀 입김을 토해내며 말했다.
“어쩔 생각이냐, 설마 지금껏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있었던 게냐?”
“벌써 섣달 25일인데, 방 대집사가 이런 시점에 떠날 줄은 전혀 예상도 못 했어요. 더구나 어제 또 누군가와 협상을 해서 200필을 비싼 가격에 팔았는걸요. 그래서 이럴 줄은 정말 생각도 못 했어요.”
육소는 비록 충격을 받긴 했지만, 아직 정신줄은 부여잡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가 이 장사를 하게 됐을 때, 도순흠이 이 기회를 빌려 매보청과 짜고 자기 조카사위를 위해 절 없애려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건 절대 좋은 의도로 벌인 일이 아닐 거예요. 만약 제가 그들을 따라 투매(*抛售: 손해를 무릅쓰고 싼값에 팔아버리는 일) 하면, 가격은 더 빠르고 급하게 떨어질 거예요. 하지만 지금 팔지 않으면 이 모직이 끝까지 남아서 결국엔 손해를 보게 될 거예요. 이러나저러나 전 할아버지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게 되겠죠.”
그는 입술을 들썩이며 잠시 망설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며칠 전에 자금이 좀 부족했는데, 할아버지께서 제가 도씨 가문과 다투는 걸 허락하지 않으셨어요. 감히 남한테 큰돈을 빌릴 수는 없어서 사당을 수리하려고 빼놓은 가문의 공금을 가져다가 썼어요.”
“간도 크구나!”
육건중이 숨을 헉하고 들이마셨다. 그는 육소를 가리키며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 고비만 넘기고 나서 메워 놓으려고 했어요. 사당의 수리는 봄이 되어야 시작할 수 있으니까 그때까지 이 돈은 그냥 놀고 있는 돈이잖아요. 이걸 활용해서 돈을 벌면 다 우리 것이 될 거라 생각해서……. ”
육소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지금은 그를 탓하거나 잘잘못을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육건중이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다 널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내 탓이지. 그 돈은 내가 대신 채워 주마. 심보가 못된 인간이 널 노리고 있으니 조심하거라. 절대 남한테 꼬리를 잡히지 말거라. 손해를 봐야 한다면 보면 된다. 어차피 이 일을 숨길 수는 없을 게야. 하지만 사당을 수리하려고 빼놓았던 공금을 손댄 일만큼은 절대 너희 할아버지 귀에 들어가게 하면 안 된다.”
육건중은 성큼성큼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가 관리인들에게 말했다.
“일단 모직을 가져다 도씨 가문에서 파는 가격에 맞춰 팔아라. 그 집에서 얼마를 팔든 우리도 그만큼 팔아. 당장 전서구를 보내 대영 쪽과 연락해 최대한 많이 팔도록 해라. 하지만 절대 대량으로 투매해서 시장의 질서를 무너뜨리면 안 된다. 이까짓 모직이 뭐 그리 대수란 말이냐, 우리 육씨 가문에서는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
* * *
밤이 되자 집현각에는 등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육 노태야는 홀로 침상에 앉아 기보를 보며 바둑을 두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허리와 등을 곧게 펴고 있었지만, 여러 가지 감정을 드러내던 그의 짙은 눈썹이 갑자기 생기를 잃은 것처럼 침울하게 눈 위에 축 늘어져 그의 눈을 더욱더 깊게 가렸다. 육함과 범포는 굳은 표정으로 한쪽 옆에 서서, 그를 방해할까 봐 감히 소리도 내지 못했다.
육 노태야가 문득 고개를 들고 육함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둘째 숙부와 큰 형은 아직 안 돌아왔느냐?”
육함이 얼른 대답했다.
“사람을 보내 대문에서 지키고 있으라 했는데,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아요.”
육 노태야는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힐끗 보더니 다시 바둑을 두었다.
육함과 범포는 계속 한쪽에 서 있었다. 그들은 노태야가 지금 화가 났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만약 육건중과 육소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이 화는 당연히 두 사람을 향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두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육함과 범포가 그 화를 감당해야 했다.
육함은 범포보다 훨씬 마음이 복잡했다. 그는 육 노태야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하지만 그렇대도 어쩔 수 없었다. 이런 큰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매보청과 임세전의 친구 몇몇의 도움만으로는 어림도 없었기 때문에 도순흠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도순흠이 끼어들면 육 노태야의 의심을 사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도순흠이 자기 외조카를 아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다고 또 뭘 어쩌겠는가? 임근용의 말대로 차남가가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남을 괴롭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이 덫에 걸려들 리가 있었겠는가?
육함은 육 노태야가 언제까지나 자신의 억울함을 대신 풀어줄 거라는 헛된 희망에 기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는 허리를 곧게 펴고 좀 더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밖에서 한바탕 바람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망설이듯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육 노태야가 냉소하며 말했다.
“내가 친히 안으로 모시기라도 해야하는 게냐?”
이에 문이 열리고 육건중이 새파랗게 질린 육소를 끌고 들어와 앞으로 밀었다. 그는 긴말하지 않고 바로 육 노태야에게 빌었다.
“아버지, 큰 손자가 실수를 했으니 부디 아버지께서 아이를 좀 도와주십시오.”
육 노태야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나더러 뭘 어떻게 더 도우란 말이냐? 사당을 수리할 돈도 가져다가 썼는데 뭘 더 주란 말이냐? 내 관을 만들 돈마저 빌려달라는 소리냐?”
방 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육소가 두 손을 앞으로 뻗고 힘껏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그와 육건중의 뒤에서 불어온 찬바람에 방 안의 촛불이 흔들렸다. 육 노태야는 마치 추위 때문인 듯 어깨를 살짝 움츠리고 입가에 비웃음을 흘렸다.
“절 한다고 어디서 돈이 나오느냐? 그런 절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이에 잠시 멈췄던 육소는 다시 계속 절을 했다. 고요한 방 안에 그가 절을 하며 내는 탁탁 소리가 울려 퍼져 사람들은 소름이 다 끼쳤다.
육건중이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다 제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입니다. 하지만 이 아이도 다 가문을 위하는 마음에 잘 하려다가 그리된 겁니다……. ”
육 노태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바둑만 두었다. 누군가가 중간에서 끊어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육건중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거침없이 찬바람이 불어와 두 사람은 머리카락마저 얼어 뻣뻣해질 지경이었다. 청석이 깔린 돌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가 마치 무수한 철 바늘처럼 육건중의 무릎을 찔러대 그는 참지 못하고 몸서리를 쳤다. 육건중은 일부러 재채기를 하고 이를 덜덜 떨며 말했다.
“아버지, 큰아들이 얼른 공을 세우고 싶은 마음에 도가 지나친 행동을 하다가 도씨 가문과 매보청의 미움을 산 것 같습니다. 이번 손실은 저희가 배상하겠습니다.”
“당연히 너희가 배상해야지. 어차피 너희들은 돈이 많지 않느냐. 돈을 손해 본 건 작은 일이야, 우리 육씨 가문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는 것이야말로 큰일이지, 그건 대체 어찌 배상할 게냐.”
육 노태야는 고개를 들어 차가운 눈빛으로 두 부자를 바라보았다.
“큰 손자야, 일전에 내가 네게 뭐라고 했느냐?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은 게로구나? 어쨌든 이 일은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해. 안 그러면 앞으로 아무도 내 말을 안 듣겠지. 너희 부자가 알아서 결정하거라. 누가 책임질 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