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332
332화. 억수같이 쏟아지다
그녀의 어깨를 잡고 있던 육함의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육함의 목소리는 마치 성대를 사포에 문지르기라도 한 것처럼 거칠고 듣기 싫었으며 어떤 광기마저 느껴졌다.
“당신이 말하기 싫다면, 내가 대신 말해 주지. 처음부터 당신 마음속에는 내가 없었소. 그래서 당신이 시집오기 싫어한 거고…….”
“맞아요!”
이다음에는 육함이 그녀에게 오명을 뒤집어씌우는 것밖에 더 있겠는가? 임근용은 그의 압박에 못 이겨 더 이상 물러설 길이 없어지자 방금 전까지 느껴졌던 약간의 양심의 가책도 잊어버리고 아예 큰 소리로 말했다.
“난 시집오고 싶지 않았어요! 당신도 내가 시집와서 어떻게 살았는지 뻔히 다 봤잖아요? 당신네 가족들은 좋은 인간이 하나도 없어! 그 사람들이 남을 모함하고, 괴롭히고, 재물을 탐하고, 이기적으로 구는 것 말고 할 줄 아는 게 뭐 있는데? 당신이 뭔데 나더러 아무런 원망도 하지 말고 당신 가족들 시녀 노릇이나 하라는 건데요? 혼신의 힘을 다해 죽을 때까지 그 사람들 시중이나 들라고? 당신 가족들이 나한테 잘하기나 해요? 어디 할 말 있으면 해 봐요!
그래, 아이를 낳는다고 쳐요, 늑대랑 호랑이 같은 이런 악랄한 인간들 사이에서 당신이 아이를 지킬 수나 있겠어요? 그리고 당신, 당신이 계속 나와 오상 사이를 의심하고 있다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요? 지금 이 순간에도 의심하고 있잖아요? 아니라고 할 생각하지 마요! 당신이 정말 남자라면 부정하면 안 되지, 감히 아니라고 거짓말하면 당신을 경멸할 거야!”
그녀의 말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육함의 가슴에 맹렬하게 꽂혀 들어갔다. 이 말은 육함이 가슴 깊은 곳에 숨겨 놓았던 가장 추악한 마음을 단번에 끄집어냈다.
육함은 심호흡을 하고 손에 힘을 풀었다. 임근용은 손바닥으로 그의 손을 뿌리쳤다.
“남보다 못하면, 남을 넘어서기 위해 더 노력할 생각을 해야지, 하루 종일 남을 시기 질투하고 의심이나 하고 있다니! 하! 아무 짓도 안 했다고 변명할 생각 말아요. 겉으로는 떳떳할지 몰라도, 당신 마음속은 이미 비열하기 짝이 없으니까!”
임근용은 아무 기척도 없는 육함을 보고,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육함이 계속 여기에 서 있을 생각이라면, 굳이 그와 함께 여기 있어 줄 생각은 없었다!
문을 열자마자 엄청난 폭우가 바람에 휩쓸려 들어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처음에는 용기가 넘쳤던 임근용도 오히려 지금은 이 빗속으로 뛰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임근용은 다시 물러나서 부싯돌을 찾으러 사방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이곳은 그녀에게 익숙한 곳이 아닌지라 한참을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의자에 종아리뼈까지 부딪쳐 아픔에 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더욱더 화가 나 얼굴을 찡그리고 발로 의자를 걷어차 버렸다.
육함은 냉담한 눈빛으로 그 모습을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임근용은 숨을 헐떡이다가 의자를 집어다 앉았다.
비가 조금 잦아들자 밖에서 여지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이소야? 아직 안에 계세요? 노비가 우산과 우의를 가져왔어요.”
“여지야, 나 여기 있어!”
임근용은 마치 구원병이라도 만난 것처럼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다듬었다. 밖으로 나가려 두 발짝쯤 떼던 그녀는 문득 오른팔이 허전하고 서늘한 걸 느끼고 육함에게 물었다.
“내 소매는?”
육함은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임근용은 잠시 숨을 참았다가 또 말했다.
“내 소매 어디 있냐고 묻잖아요?”
불빛이 점점 밝아지고 여지의 발자국 소리 또한 점점 가까워지자 육함이 차갑게 말했다.
“감히 그런 약을 먹어 스스로를 해치고, 또 나한테 당신을 버리라고까지 말한 사람이 그 소매 따위가 무슨 대수란 말이오? 무서울 게 뭐가 있소? 당신이 이런 꼴로 나가야 다른 사람들도 당신이 무서워하는 것도 없고, 못할 짓도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될 것 아니오. 어차피 버릴 사람인데 당신이 망신을 당하든 말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겠소?”
임근용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는데, 그의 목을 졸라 죽여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가씨?”
여지가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데도 육함이 꼼짝도 하지 않아 임근용이 굳은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여지와 두아가 입구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임근용을 보고 놀라서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입을 꾹 다물고 비명을 삼켰다. 그녀들은 깜짝 놀라 두려움에 벌벌 떨며 육함을 바라보았다. 그녀들의 눈빛에는 의심과 공포가 가득했다.
어두운 얼굴의 육함은 앞으로 나가 두아의 손에 들려 있는 우의를 받아들었다. 그는 그녀들을 기다리지도, 등롱을 들지도 않고 성큼성큼 빗속을 향해 걸어 나갔다.
여지는 그가 멀리 가기도 전에 임근용의 손을 잡고 다급하게 물었다.
“아가씨, 무슨 일이에요?”
“간단히 설명하기 힘들어.”
임근용은 머리를 더듬다가 머리에 꽂혀 있던 비녀 두 개가 사라진 걸 깨달았다.
“등롱을 들고 밖에 나가서 찾아보자, 아마 어디 떨어졌을 거야.”
여지는 두아에게 등롱을 들고 밖으로 나가자며 눈짓한 뒤 가볍게 임근용의 팔을 부축하며 눈물 섞인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가씨, 혹시 이소야께서 때리셨어요?”
임근용이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여기를 좀 찾아봐. 남의 손에 들어가게 하면 안 돼.”
* * *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랑비로 변할 때쯤 임근용은 비녀들을 다 찾았지만 여전히 찢어진 소매 반쪽은 찾지 못했다. 주인과 시녀 세 사람이 한참 동안 안팎을 다 뒤졌는데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여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이소야께서 가지고 계신 거 아닐까요?”
임근용은 확신할 수 없었다. 육함이 그때 막 뜯어진 소매를 쥐고 있다가 곧바로 그녀를 끌어안고 안으로 끌고 들어갔으니 아마도 소매까지 챙길 겨를은 없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소매는 보이지 않았고, 그녀 역시 언제까지 청설각에 계속 있을 수는 없었다. 임근용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피로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자. 일단 돌아가서 생각해 보자.”
여지와 두아가 좌우에서 그녀를 부축했다. 둘 다 말이 많은 성격이 아니어서 그저 등롱을 잘 비추고 우산을 열심히 받치며 길이 미끄러울 때면 적절히 손을 뻗어 그녀를 잡아 주었다. 임근용은 그녀들의 이런 배려가 정말 고마워 내심 감동했다. 그녀는 지금 온몸이 쑤시고 걷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고 그녀들의 추궁에 대답하는 건 더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대문 앞에 도착하니 임근용의 자수 신발은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문지기 장씨가 대답하며 문을 열어주더니 호기심과 의문 가득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이소부인, 비가 정말 많이 왔어요. 신발도 다 젖으셨죠?”
임근용은 기분 나쁜 듯이 문지기 장씨를 한 번 노려보고, 절로 육함의 작은 서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안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니 육함은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임근용은 그제야 문지기 장씨의 의아한 표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이 나가서, 날이 이렇게 어두운데 육함 혼자 먼저 돌아오고 그녀는 나중에 혼자 왔으니 이상하지 않겠는가?
문지기 장씨는 그녀가 이렇게 살기등등하게 노려보는 걸 보고 아까 전에 이소야가 돌아왔을 때도 똑같이 굴었던 것이 떠올라 심장이 떨렸다. 그녀는 얼른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돌아서서 문을 닫았다.
계 마마와 앵두가 소리를 듣고 문발을 걷으며 마중을 나왔다. 계 마마는 눈살을 찌푸리며 임근용을 한 번 훑어보더니 얼른 다가와 우비를 벗겨주려 하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날씨가 참 변덕스럽네요.”
“하루 종일 고생했으니, 마마는 그만 가서 쉬고, 여지랑 두아가 남아서 시중들어.”
임근용은 우비를 꽉 틀어잡고 놓지 않았다. 우비가 몸에 달라붙어 축축한 데다 공기도 통하지 않아 아주 불편했지만 우비를 벗어서 남들에게 반쯤 찢어진 소매를 보여줄 수는 없었다.
계 마마는 임근용의 방어적인 태도에 실망해 한숨을 내쉬고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그럼 아가씨께서도 이만 쉬세요, 노비는 먼저 가 볼게요.”
3월 이후로 계원의 처지는 아주 난감해졌다. 그녀는 임근용이 부르지 않는 한 평소에는 감히 방 안에 들어와 있을 수 없었다. 특히 육함이 돌아와 있을 때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더더욱 멀리 숨어야 했기 때문에 계 마마 역시 난처하긴 마찬가지였다. 계 마마는 임근용에게 더 친근하게 굴며 관계를 개선하고 싶었지만, 남들이 그녀가 다른 속셈을 가지고 그런다고 의심할까 봐 두려웠다.
“앵두 너도 그만 가 봐.”
여지는 계 마마가 낙담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계 마마 모녀가 둘 다 임근용을 모시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난감한 일이 생겼으니 그녀들의 입장이 난감해진 건 분명했다. 계원이 자진해서 나가겠다고 하거나 계 마마가 나이를 핑계로 사직하지 않는 한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여지는 앵두와 계 마마가 전부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재빨리 임근용의 우비와 찢어진 옷을 벗겨 주었다. 두아가 모포를 가져와 임근용에게 둘러 준 뒤 옷을 갈아입는 걸 도와주었다.
임근용은 향이 나는 뜨거운 물에 한참을 몸을 담그고 나서야 점차 한기가 가시고 몸 안도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반쯤 눈을 감고 목욕통에 머리를 기대며 오늘 일어난 일들을 자세히 떠올려 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곰곰이 생각했다.
여지는 그녀가 눈을 감은 채 움직이지 않고 있는 걸 보고 그녀가 잠시 물에 몸을 담그고 싶어 한다는 걸 눈치채고 두아를 데리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니 앵두가 복도에 쪼그리고 앉아 생강탕을 끓이고 있었다. 여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소야께서는 돌아오셔서 옷 갈아입으셨어?”
앵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돌아오시자마자 서재로 들어가셨는데 누구하고도 말을 섞으려 하지 않으셨어요. 계 마마가 이소야께 말을 걸었는데도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으셨어요.”
여지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생강탕은 다 됐어?”
“다 됐어요, 계 마마가 아까 이소야께서 돌아오셨을 때부터 끓이기 시작한 거예요.”
앵두가 얼른 작은 화로에서 솥을 내려 뜨거운 생강탕 두 그릇을 따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지금 갖다드려야겠죠? 근데 이소야께는 무서워서 감히 못 가겠어요. 아까 전에는 어찌나 무섭게 구는지 정말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았다니까요.”
사실 임근용이 육함에게 생강탕을 가져다주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지금 임근용의 모습을 보면 택도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이 계속 이렇게 반목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여지는 잠시 생각해 보다가 그릇 하나를 앵두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아가씨께 가져다드리고 따뜻할 때 드시라고 해.”
앵두가 그릇을 들고 가자 여지는 조심스럽게 생강탕을 들고 육함의 서재로 가서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이소야, 이소부인께서 생강탕을 가져다드리라고 하셨어요.”
안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고 그저 종이 넘기는 소리만 들렸다.
여지는 가슴이 조마조마했지만 다시 한 번 말했다.
“이소야, 이소부인께서 노비한테 생강탕을 가져다주라고 하셨어요. 비를 맞으셨는데 감기에 걸리시면 안 되잖아요.”
안은 이제 책 넘기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