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344
344화. 충성심
계 마마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아가씨, 얼마 전까지는 계원이보다 나이가 더 많은 여지가 아직 시집을 가지 않고 있어서 노비도 감히 말을 꺼낼 수가 없었어요. 이제는 그 아이도 시집을 가서 노비도 용기를 내 방죽이한테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어요. 듣자 하니 호씨네 집에 조카가 하나 있는데 그 아이가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범 대집사 밑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꽤 유능하다고 해요. 그래서 노비가 감히 아가씨께 이 혼인을 성사시켜 달라고 부탁드리려고요. 계씨 성을 이어받아 향불을 올릴 사람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야 저도 먼저 간 계원이 아버지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있을 거예요……. ”
순식간에 계원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그녀가 비통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머니……. 어머니, 저는 아직 나이가 어려요. 여지 언니도 21살이 되어서야 시집을 갔잖아요……. ”
그녀는 주체할 수 없이 몸을 떨며 임근용의 앞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아가씨, 노비는 시집가고 싶지 않고, 아가씨 곁에서 아가씨를 계속 모시고 싶어요.”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설마 이 어미가 너한테 안 좋은 일을 하겠니?”
계 마마가 눈을 크게 뜨고 매섭게 계원을 노려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노비가 젖을 먹여 아가씨를 키우고, 또 몇 년 동안 성심성의껏 아가씨를 모신 걸 생각해서 이 노비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바닥에 머리를 찧을 정도로 조아렸다.
계원은 입을 쩍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얼굴을 가리고 흑흑 울었다.
“울긴 왜 울어?”
계 마마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가득했다. 그녀는 당장 달려가 계원의 입을 막고 싶었지만 감히 그렇게까지 소란을 피울 수는 없었다. 계 마마는 초조한 마음에 얼굴 가득 땀을 흘리며 어쩔 수 없이 애처로운 눈길로 임근용을 바라보고는 작은 목소리로 간청했다.
“아가씨?”
임근용은 말없이 두 모녀를 바라보았다.
비록 그녀가 줄곧 부정하며 계속 스스로에게 계 유모는 그녀에게 정이 있으니 그걸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상기시켰지만, 임근용은 자신이 늘 마음 깊은 곳에서 두 모녀를 원망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계원이 자신의 믿음과 총애를 저버린 것을 원망하고, 계 마마가 그녀를 버리고 떠난 것을 원망하고, 두 모녀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녀를 배신한 것을 원망했다. 그래서 환생한 이후로는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그녀들과 일부러 거리를 두며 대비했다.
임근용은 그런 이후에야 계원을 육씨 가문에 데려올 수 있었고, 또 이 모든 일들을 냉정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이낭으로 사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통방으로 사는 건 더더욱 쉽지 않았다. 하지만 임근용은 계원이 굳이 그렇게 하고 싶어 한다면 그 소원을 들어줄 생각이었다.
전생에서도 그랬지만 현생도 마찬가지였다. 임근용은 처음부터 계원에 대해 어떠한 연민이나 믿음이 없어서 계원의 생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계 마마가 지금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계원에게 좋은 길을 열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그 길도 제시했다.
“일어나서 말해.”
한참 후에 임근용이 손을 뻗어 계 마마를 부축했다.
“내가 방금 말했듯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해 줄게. 하지만 인연이라는 이 두 글자는 서로가 다 원해야 이뤄지는 것이라 계원이 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강요할 수는 없어.”
“아가씨,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가씨 노비에게 이틀만 시간을 주세요. 노비가 계원이에게 도리를 제대로 가르칠게요.”
계 마마는 임근용의 말뜻을 이해했다. 그녀가 계원을 설득해야지만 도와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임근용이 손을 흔들며 그녀들에게 이만 물러가라는 뜻을 내비쳤다.
계원은 극도로 절망해 계 마마에게 잡혀 문 앞까지 끌려갔다가 갑자기 뒤돌아 크게 소리쳤다.
“아가씨, 아가씨에 대한 노비의 충성심은 진심이에요.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면 아가씨께서도 알게 되실 거예요!”
임근용은 아무 말도 못 들은 것처럼 계원을 등지고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계 마마가 계원의 팔을 세게 비틀며 확 잡아당겼다.
진심으로 충성한다라, 어떤 면에서는 확실히 충성스럽긴 했네! 그게 무슨 충성심이야! 임근용은 갑자기 우스워졌다. 그녀가 이런 인간과 이런 일 때문에 괜한 힘을 낭비할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인가? 전생의 그녀는 정말로 하등 가치가 없는 일에 연연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가씨, 시간이 늦었으니 이제 그만 쉬세요.”
두아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안신차(*安神茶: 정신을 진정시키는 차) 한 잔을 임근용 앞에 내려놓았다.
임근용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 들었지?”
“네.”
이렇게 큰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렸다. 두아가 가볍게 대답했다.
임근용이 안신차를 단숨에 들이켜고 말했다.
“넌 어떻게 생각해?”
이 초 여름날 밤, 임근용은 오랫동안 짊어지고 있던 짐 하나를 내려놓은 듯한 홀가분함이 느껴져 유난히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두아는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노비가 볼 때는 계 마마는 진심으로 하는 말 같아요.”
두아는 속으로 계 마마가 모처럼 똑똑한 짓을 했다고 생각했다. 임근용의 유모인 계 마마는 임근용과 쌓아둔 그간의 정만 계속 잘 유지하면 임근용이 살아있는 한 힘들게 살게 될 일은 없었다. 하지만 만약 계원을 정말 통방으로 만든다면, 그녀가 총애를 받든 안 받든 임근용과의 정이 얼마나 남겠는가? 더구나 지금 이소야의 마음에 임근용밖에 없다는 걸 뻔히 알지 않은가. 그건 계원 스스로 비천한 인간이 되길 자초하는 거였다. 그러니 눈치가 있으면 계 마마가 말한 길로 가야했다.
“내 생각에도 진심인 것 같아.”
계 마마가 무슨 생각에서, 무슨 이유로 이제 와서 이런 말을 꺼냈든지 간에, 임근용은 그래도 십 몇 년간의 정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계 마마를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두아는 임근용의 침착한 표정을 보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가씨, 그런데, 아가씨께서 또 신경을 쓰셔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아요. 아마 며칠 안에 노부인이나 대부인께서 아가씨를 찾으실 거예요.”
다른 건 몰라도, 계원이 통방으로 들이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인 건 분명했다. 지금 임근용이 계 마마에게 계원을 보내 주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임근용은 앞으로 육 노부인과 임옥진이 통방으로 누구를 지목하든 그저 따를 수밖에 없었다.
“넌 올해 몇 살이지? 네가 계원이보다 어렸던 것 같은데.”
임근용은 웃으며 두아를 힐끗 쳐다보았다. 이 계집애는 평소에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고 있었지만, 사실 총명한 아이라 모든 일을 다 눈에 담고 마음에 새겼다.
임근용은 사실 아무 의미 없이 물어본 것이었는데, 두아는 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해 안색이 확 변하며 말을 더듬거렸다.
“아가씨, 노비는 아직 어려요……. 또 그렇게 많이 어린 건 아니고, 16살이요…….”
그녀는 잠깐 참는 듯하다가 또 쭈뼛대며 말했다.
“노비는 비록 여지 언니만큼 유능하진 않지만, 그래도 앞으로 여지 언니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 아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설마 내가 계원이를 버리고 자기를 밀어 넣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임근용은 답답했던 마음이 싹 사라지는 것 같아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두아가 보면 볼수록 귀여워서 참지 못하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잘 기억해 둘게. 우리 두아는 앞으로 유능한 대집사한테 시집을 보내야겠구나.”
두아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지만, 한 쌍의 버들잎 같은 그녀의 두 눈은 오히려 반짝반짝 빛났다. 그녀는 모처럼 활기찬 표정으로 원망하듯 말했다.
“아가씨, 노비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지금은 나도 수중에 쓸 사람이 없어서 널 2년 정도는 더 붙잡아 놔야 해. 네 마음이 조급해도 어쩔 수 없으니 좀 기다리렴.”
임근용이 웃음을 참으며 그녀에게 눈짓했다.
“씻게 물 좀 가져와. 네가 이 아가씨를 잘 모시면, 나중에 너한테 좋은 짝을 찾아줄게.”
두아는 부끄러움에 발을 동동 구르며 얼굴을 파묻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임근용은 창문을 열고 창밖의 말리화 향기를 맡으며 긴 숨을 내쉬었다.
* * *
이튿날, 계 마마는 임근용에게 계원이 아프다고 고했다. 임근용이 의원의 진찰이 필요하냐고 묻자 계 마마는 그럴 필요는 없고 며칠만 쉬면 좋아질 거라 말했다. 임근용은 그렇게 하라고 한 뒤 더 이상 계원의 일을 신경 쓰지 않았다.
육씨 가문은 7~8일 동안 계속 떠들썩하다가 겨우 조용해졌다. 임근용의 예상대로 집안이 조용해지자마자 바로 자손을 잇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날 오후, 임옥진이 임근용을 불렀다.
“곧 둘째가 돌아올 거야. 어머님께서 나한테 너에게 물어보라고 하셨다. 넌 무슨 계획이 있니?”
임근용이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계획은 당연히 있지요.”
임옥진은 그녀가 무슨 계획을 갖고 있는지 묻지도 않고 말했다.
“내가 볼 땐 계원이가 외모도 나쁘지 않고 성격도 조용한 편이라 괜찮을 것 같구나. 어렸을 때는 좀 날카롭고 강한 것 같더니 지금은 다 커서 그런가 많이 수그러들고 얌전해졌어. 어차피 그 아이 노비 문서도 네가 가지고 있으니 그 아이를 들이려무나. 그렇게 되면 계 마마는 더 이상 네 집에 남아 있기 곤란해질 테니 내보내고 계원이더러 봉양하라고 하면 될 게야.”
임근용이 평온하게 말했다.
“며칠 전에 계 마마가 저한테 계원이를 시집보내서 내보내 달라고 부탁했어요.”
임옥진은 안색이 싹 바뀌며 화를 냈다.
“넌 아직도 내가 널 배려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내가 방금 너한테 했던 말을 잘 생각해 봐. 다 널 생각해서 한 말 아니니? 그런데 넌 나한테 이러는 게냐?”
임근용이 말했다.
“하지만 이미 계 마마한테 그러겠다고 했는걸요. 계 마마는 제 유모잖아요. 저희는 오랫동안 같이 지내서 정이 두터워요. 그런 사람이 제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간곡히 부탁하는데 제가 어떻게 무시하겠어요.”
임옥진은 임근용이 질투 때문에 육함에게 통방을 붙여 주고 싶지 않아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 방해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노발대발했다.
“좋다, 네 시녀가 아깝다면 내가 대신 고르마! 어쨌든 어머님께서 고르게 할 수는 없어! 됐다, 그만 가 보거라. 가서 방이나 치워두고 기다려!”
임근용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임옥진에게 인사하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방문 앞에 다다르니 육운이 혼자 복도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육운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하고 돌아서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육운이 동정 어린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꼭 잡더니 놓아주지 않고 속삭였다.
“새언니, 마음을 크게 가지고 어머니를 탓하지 마세요. 어머니도 어쩔 수 없으셨어요. 아침에 할머니께서 부르셔서 한참을 말씀하셨는데…….”
임근용이 담담하게 웃었다.
“사실 탓할 것도 없어요.”
각자 입장이 다를 뿐인데 누굴 탓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