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349
349화. 단호함 (1)
임근용은 절로 얼굴이 달아올라서 해장국을 놓아두고 돌아섰다. 그녀가 겨우 반걸음도 내딛지 못했는데 육함이 그녀의 소매를 낚아챘다. 그러더니 두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잡아 힘차게 그녀를 안았다. 임근용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어느새 침상 위에 누워 있었다. 육함이 위에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호흡이 전부 임근용의 얼굴로 떨어졌고, 그녀의 피부에 오소소 닭살이 돋았다. 그녀의 심장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임근용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육함의 그 새까만 눈을 마주 보고 있으니 아주 낯선 것 같으면서도 또 완전히 낯설지만은 않은 감정이 엄습해 왔다. 마치 두려운 것 같다가도 순간 아닌 것 같았고, 고통스러운 것 같다가도 괜찮아 보였다. 그녀는 그런 감정을 뭐라고 설명할 수도 없고 정확하게 알 수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꼼짝도 하지 않고 육함을 똑바로 바라보며 숨 쉬는 것조차 잊었다.
육함의 눈동자가 점점 더 짙어지더니 손을 들어 그녀의 눈썹에서 입술까지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임근용은 멍하니 눈만 뜬 채 손가락도 까딱하지 못하고 발가락 끝이 긴장으로 굳는 걸 느꼈다.
육함이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입술을 가볍게 머금었지만 임근용은 움직이지 않았다. 서로 입술이 닿자 마치 봇물이 터져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다. 임근용은 그녀의 어깨 위에 얹은 그의 손이 자신의 어깨를 으스러뜨리는 줄 알았다. 육함이 그녀를 있는 힘껏 끌어안아 그녀는 숨도 쉬기 힘들 지경이었다. 얇은 비단옷 사이로 임근용은 육함의 가슴이 몹시 두근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고 육함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육함은 그녀를 놓아주었다.
임근용은 이내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육함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녀는 방금 전의 상황을 밖의 시녀들도 보았는지 알 수 없었다.
“밖에서는 여기가 안 보이고, 소리만 들릴 거요.”
육함은 마치 그녀의 속마음을 읽은 듯이 이렇게 말하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해장국을 마셨다.
“당신 그렇게 많이 취하지도 않았으면서 왜 취한 척해요?”
임근용은 그를 등진 채 일어나 앉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에요?”
육함은 변명도 하지 않고 낮게 물었다.
“어떤 일을 묻는 거요?”
임근용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 또 있어요?”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얼굴을 돌리자마자 육함과 눈이 마주친 임근용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내리깔고 마치 무언가가 얼굴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아주 부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세 가지 일이 있었소.”
육함이 시선을 돌려 맞은편에 있는 화조 병풍을 바라보며 말했다.
“첫 번째는 내가 반쯤 취해서 들어오자마자 책상 위에서 이 망가진 책을 발견한 일이고, 두 번째는 계원이 나한테 채홍이 이 책을 말리려다가 망가뜨렸다고 말한 것이고, 세 번째는 내가 채홍이 여기서 시중드는 걸 원치 않는다는 거요. 저 아이는 늦어도 내일까지는 돌려보낼 생각이오.”
임근용이 이 기세를 몰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내가 이 책이 왜 여기에 있는지, 정말로 채홍이가 망가뜨린 것이 맞는지 확인해 보죠.”
육함이 말했다.
“난 저 아이가 여기서 시중드는 것이 싫고 눈에 거슬려요. 만약 오늘이 명절만 아니었다면, 바로 돌려보냈을 거요.”
그의 목소리는 안팎에서 전부 또렷하게 들릴 정도로 컸다.
임근용은 잠시 침묵했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요.”
채홍이 정말로 잘못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중요한 건 육함이 그녀가 잘못했다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오늘 이런 빌미가 생기지 않았더라도 그는 며칠 안에 또 다른 빌미를 찾아낼 것이 분명했다.
육함이 다시 자리에 누웠다.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가 머리가 어지럽군. 이만 자야겠소.”
임근용은 밖으로 나가서 복도에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에게 지시했다.
“다들 가 보거라.”
채홍이 눈물을 글썽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소부인…….”
임근용이 온화하고 부드럽게 말했다.
“너도 그만 일어나거라. 일단 방으로 돌아가 있어. 이소야께서 술에 취하셔서 말씀을 격하게 하시는구나. 무슨 일이든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 두아야, 네가 이 아이를 좀 보살펴 주렴.”
채홍이 육함을 보자마자 이렇게 잘못을 저질러 퇴짜를 맞고 돌아가게 되면 면목이 없는 건 둘째 치고 조금만 생각을 잘못하면 죽네 사네 하며 소란을 피울 수도 있었다.
이걸 깨달은 두아는 얼른 채홍을 부축해 주며 하룻밤 동안 잘 보살펴야겠다고 생각했다.
“앵두랑 너희들은 가서 뜨거운 물을 좀 가지고 와.”
임근용은 다른 사람들을 다 보내고 말없이 계원을 쳐다보다가 방 안으로 들어갔다.
계원은 복도에 서서 천천히 긴장된 몸을 풀었다. 그녀는 복도 기둥에 몸을 기대고 입꼬리를 살짝 들어올리며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 * *
임근용은 고개를 숙이고 책상에 앉아 봉선화를 조금씩 찧고 있었다. 새빨간 봉선화가 짓이겨져 붉은 꽃 덩어리로 변해 백자 사발 안에 놓여 있는 모습은 등불 아래서 유달리 화려해 보였다.
육함은 침상 한쪽에 비스듬히 누워 임근용이 끝도 없이 계속 꽃잎을 찧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여자가 스스로를 가꾸고 싶어 하는 건 본능이라지만, 당신은 지금 마음이 너무 급한 게 아닌가 싶소.”
지금 날 희롱하는 건가? 임근용은 잠시 멍해졌다가 눈을 들어 육함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육함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임근용은 그녀가 육함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서 물들이려는 것이 아니라 마침 지나가는 길에 신선하고 예쁜 꽃을 만나 갑자기 그런 충동이 들었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육함은 또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은 손이 아주 예쁘니 손톱을 물들여도 물론 예쁠 거요. 하지만 내 생각에는 물들이지 않는 게 더 예쁜 것 같소. 난 고훈을 들고 있거나 차를 내릴 때의 당신 손이 제일 좋소. 마치 백목련처럼 청아하지. 보아하니 집안에 있는 시녀들이 하나같이 희든 검든 가리지 않고 손톱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던데 당신도 그 아이들과 똑같아지고 싶은 거요?”
임근용은 이 말에 오기가 생겨 계속 꽃잎을 찧어서 물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눈을 내리깔고 이미 찧어놓은 봉선화 꽃 뭉치를 보니 갑자기 흥미가 뚝 떨어졌다. 임근용은 자신의 손을 응시하며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그녀는 자기가 보기에도 자기 손은 예쁜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 육함이 이번에 경성에 갔다 온 이후로 아주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확실히 전보다 성격이 명랑해졌고 담력도 더 세졌다. 혹은 오상처럼 자신감에 가득 차 의기양양해진 탓에 저력이 생겼다고 할 수도 있었다.
육함은 그녀가 더 이상 꽃잎을 찧지 않고 거기에 앉아 손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다 살짝 미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침상으로 올라가 먼저 잠을 잤다.
잠시 멍하게 앉아 있던 임근용은 육함에게서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뒤돌아보았다. 그는 이미 눈을 감고 깊게 잠들어 있었다. 임근용은 조용히 창문을 닫고 휘장을 내린 뒤 촛불을 불어 끄고 조심스럽게 침상 안으로 들어가 그의 곁에 뻣뻣하게 누웠다.
그녀는 한참 동안 긴장하고 있었지만, 육함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고 아주 조용했다. 전에 술을 많이 마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 기척도 없는 것이 확실히 잠이 든 것 같았다. 임근용은 그제야 손발을 펴고 온몸에 긴장을 풀며 천천히 잠을 청했다.
* * *
새벽이 되자 창밖에서 맑은 새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임근용은 어수선한 꿈을 꾸다 깨어났다. 그녀가 아직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는데 곁에서 따스한 촉감이 느껴졌다. 육함이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일어났소?”
임근용이 눈을 감고 말했다.
“일어났어요.”
“어젯밤에는 잘 잤소?”
육함은 기분이 아주 좋은지 손발을 움직이며 일부러 그러는 건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허리를 건드렸다.
임근용은 온몸에 털이 쭈뼛 서는 것 같아 어색해하며 옆으로 비켰다.
“그럭저럭요, 당신은요?”
그녀는 사실 밤새도록 어지러운 꿈을 꾸느라 밤새 잠을 제대로 못 자 엉망진창이었다.
“나도 아주 편안하게 잘 잤소. 아침에 일어나니 기분이 상쾌하고 좋더군. 난 당신이 나 때문에 잠을 잘 못잘까 봐 걱정했었소. 이렇게 잘 잤다고 하는 걸 보니 나도 더 이상 서재에 가서 잘 필요가 없을 것 같소. 남들 보기에도 안 좋고.”
육함은 침상에서 내려가 침상 앞에 서서 태연하게 내의를 벗고 옷걸이에 걸린 깨끗한 내의를 꺼내 들더니 눈을 돌려 임근용을 바라보며 웃었다.
“난 오늘 지주부와 지현부에 가서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해서 저녁도 아마 밖에서 먹고 들어올 거요. 당신이 내 겉옷 좀 골라 주겠소?”
아침 햇살에 비친 그의 몸매는 더욱 반듯하고 건강해 보였다. 그는 긴 다리와 넓은 어깨를 가지고 있었으며 근육도 뚜렷하게 보여서 남자로서 가장 보기 좋을 나이였다.
임근용이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
“당신은 잘 생겨서 뭘 입어도 태가 나잖아요.”
그녀의 이 말은 진심이었다. 임근용은 설령 그를 가장 증오하고 있을 때조차 그가 잘 생겼다는 걸 부정하지 못했다.
육함은 말을 듣고 절로 입꼬리를 치켜들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그런 말 하는 건 처음 듣는 것 같군. 그래도 당신이 나 대신 옷을 골라 주시오. 내 매무새가 당신 체면이기도 하지 않소.”
임근용은 맨발로 머리를 풀어헤친 채 침상에서 조용히 내려왔다. 그녀는 육함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고 손발이 약간 뻣뻣하게 굳었지만 얼른 연푸른색 비단 겉옷을 찾아 건네주었다. 육함은 옷은 받지 않고 오히려 손을 뻗으며 더욱더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 당황한 임근용은 그 겉옷을 아예 그에게 던져 버리고 자신의 깨끗한 내의를 집어 들고 침상 뒤로 뛰어갔다.
육함은 그 겉옷을 안고 잠시 묵묵히 서 있다가 눈 안 깊은 곳에서부터 약간의 빛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입꼬리를 점점 더 높이 들어 올리며 천천히 옷을 입고 웃으며 말했다.
“아용, 오늘부터 짐 싸라고 시켜야 한다는 거 잊으면 안 돼요. 절대 잊어버리지 마시오.”
휘장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임근용은 그에게 대답하지 않았지만 육함도 그다지 개의치 않고 상쾌한 기분으로 방문을 열고 뜨거운 물을 가져오라 지시한 뒤 세수를 했다.
방 안에 사람들이 많아지자 임근용은 그제야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던 피부가 좀 느슨해지고 행동과 표정이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육함은 또 조용하고 담담한 모습으로 가끔씩 그녀에게 집안 상황에 대해 물었다. 그는 임씨 가문 사람들은 다들 무탈한지, 임신지는 공부를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해 물었고, 육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두어 번 한숨을 내쉬었다. 임근용은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아침 식사 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여유를 되찾았다.
금세 밥을 다 먹은 육함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가서 어른들께 문안을 드려야겠소.”
그러더니 임근용에게 말했다.
“채홍이 일은 당신이 신경 쓰지 마시오.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소.”
임근용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아무리 싫어도 이틀 정도는 더 있다가 말씀드려야 해요.”
그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채홍에게 화를 낸 건 말할 것도 없고, 이렇게나 빨리 그녀를 돌려보내면, 그건 정말로 임옥진의 뺨을 대놓고 후려치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임옥진이 육함을 가만둘 리가 있겠는가? 차라리 마지막 날까지 데리고 있다가 다시 이야기해 보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육함이 담담하게 그녀를 힐끗 보며 말했다.
“나도 정도는 아는 사람이오.”
임근용은 씨알도 안 먹힐 것 같이 구는 그의 태도를 보고, 괜히 설득해 봤자 싸움만 될 것 같아서 입을 꾹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