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351
351화. 사람을 잘못 찾아왔어요
임근용은 주먹을 꽉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하다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네 충심이 그런 거라면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구나. 가라, 다시는 널 보고 싶지 않아. 네 혼수는 일전에 준비해 뒀고 마마의 노후자금도 다 마련해 놨어. 이따가 사람을 보내 가져다줄 테니 내일 아침이 되면 이 집에서 나가. 만약 몸값을 받고 노비 신분에서 풀어 주길 원한다면 그렇게 해 주마. 묵을 곳이 없다면 사람을 시켜 작은 방 하나 정도는 얻어 줄 수 있어.”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계원이 갑자기 웃었다.
“이럴 거였으면 아가씨께서는 애초에 노비를 왜 데려오셨어요? 노비도 어렸을 때는 철이 없었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서 세상 물정을 다 알아요. 그해 겨울에 노비를 불러들인 건 아가씨였잖아요? 왜 이제 와서 아닌 척하세요? 노비가 비록 천한 노비 신분이긴 해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에요. 사람을 쓸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이렇게 쓰기 싫어졌다고 헌신짝 버리듯 버리시다니요. 아주 천하에 둘도 없이 어질고 선량한 부인이시네요.”
임근용은 잠자코 계원을 응시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급살을 맞을 계집애야! 네가 기어코 나까지 죽이려는 게냐!”
계 마마가 계원의 뺨을 후려치고 고개를 들어보니 임근용의 표정이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깜짝 놀란 계 마마는 얼른 임근용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손을 잡고 흔들며 울부짖었다.
“아가씨, 이 계집애가 정신이 나가서 지금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
두아가 앵두를 데리고 달려와 계 마마를 떼어냈다.
“그만 해요, 아가씨께서 선량한 분이시라 그나마 두 사람한테 죄를 묻지 않으시는 거예요. 더는 소란을 피우지 말아요.”
임근용이 담담하게 말했다.
“넌 가서 짐 싸는 걸 도와주고 당장 내보내.”
그 말을 듣자 계원은 마치 꿈에서 깬 것처럼 맹렬하게 달려들어 임근용의 다리를 껴안고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아가씨, 노비가 미쳐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했어요. 제발 노비를 용서해 주세요. 노비는 아가씨 곁을 떠나고 싶지 않고 그저 곁에서 모시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제발 노비를 내쫓지 말아 주세요!”
“네 말이 맞아. 다 내 잘못이야.”
임근용은 거칠게 계원의 손을 잡아뗐다. 그녀는 아직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었지만 입술은 창백해져 있었다.
두아가 소리쳤다.
“장 언니, 들어와서 사람들을 끌어내요!”
거의 초주검이 될 지경으로 울고 있는 계 마마가 계원을 말릴 힘이 어디에 있겠는가! 문지기 장씨와 방죽이 얼른 안으로 들어와 계원의 입에 손수건을 쑤셔 넣고 그녀를 들어 끌고 나갔다. 계 마마도 얼른 그 뒤를 쫓아 나갔다.
방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두아는 임근용이 아까와는 다르게 안색이 아주 안 좋은 상태로 꼼짝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걸 보고 절로 걱정스럽게 말했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저런 미친 소리는 마음에 담아 두지 마세요. 계원 언니가 정신이 나가서 헛소리를 하면서 아무렇게나 막 물어뜯은 거예요.”
그럼 전생에서 육씨 가문에서 육함에게 통방을 들이려 할 때 임근용이 계원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계원이 아무런 불만도 제기하지 않았던 걸까? 만약 두아나 여지 같은 아이들을 계원처럼 불러들였다면, 전혀 이런 방면으로는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임근용이 그녀들에게 따로 시킬 일이 있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계원은 처음부터 그런 삐뚤어진 마음을 품고 비천한 신분이 되기를 자처하고 있다가 그게 안 될 것 같으니 모든 잘못을 임근용에게 돌리며 이렇게 미친 듯이 물어뜯는 것이다. 도대체 마음이 어떻게 생겨 먹은 인간인지 가늠도 하기 힘들었다.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고, 계원이 말도 맞아. 내가 그때 그 아이를 다시 불러오는 게 아니었어. 신경 안 써.”
임근용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혼자 있고 싶구나.”
임근용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이게 정말로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의 표정이란 말인가? 계 마마 모녀는 오랫동안 임근용을 지척에서 모신 사람들이었다. 비록 나중에 임근용의 신뢰를 많이 잃긴 했지만 그래도 먹고 사는 게 모자란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 집에서 대체 누가 감히 그녀들을 업신여기겠는가? 계원의 말들은 다 임근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일을 당하고도 슬프지 않다면 오히려 더 이상할 것이다. 두아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말했다.
“그럼 노비는 아무 말 안 하고 그냥 곁에서 모시기만 할게요.”
문득 대문이 가볍게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밖에서 간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 열어요, 육운 아가씨께서 이소부인과 이야기를 나누러 오셨어요.”
이 사람들은 왜 또 하필이면 이런 때 왔단 말인가. 두아는 초조해서 온몸에 식은땀이 다 났다. 그녀는 간절하게 임근용을 바라보며 뭐라고 해야할지 물어보려다가 결국 스스로 마음을 정했다.
“노비가 육운 아가씨께 가서 아가씨께서 지금 몸이 불편하다고 말씀드릴까요?”
임근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아가 앵두에게 눈짓하며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임근용은 창밖의 반쯤 핀 월계화를 멍하니 응시했다. 그녀는 지칠 대로 지쳐서 더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역시 운명은 정해져 있는 걸까. 이번 생에 임근용은 계원이 이런 짓을 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를 데리고 왔다. 처음부터 데리고 오지 말았어야 했다는 계원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새언니,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문발 밖에서 육운의 목소리가 들렸고, 임근용이 어떤지 꼭 봐야겠다고 고집하는 그녀를 두아는 감히 막을 수는 없었다.
임근용은 정말로 그녀를 상대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라 마지못해 뒤돌아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나 혼자 있고 싶어요.”
이 축객령을 듣고 육운은 얼굴이 잠시 굳었지만 곧바로 다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내가 때를 잘못 찾아온 것 같으니 얼른 갈게요. 난 그저 모두의 체면을 생각해서 채홍이를 이렇게 바로 돌려보내지 말라는 말을 하러 온 거예요. 어차피 두 사람은 곧 경성으로 갈 테니까 그 아이를 그냥 이 집에 남겨두고 여길 지키게 하는 건 어때요? 그 아이도 불쌍한 아이예요. 새언니가 돌려보내면 그 아이도 더는 의지할 곳이 없어질 거예요.”
어찌나 오지랖이 넓은지, 이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다 관여하려고 난리네.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똑똑하고 선량한 줄 아는가 보지? 임근용은 짜증이 치밀어 정색하며 말했다.
“아가씨, 그 일이라면 사람을 잘못 찾아왔어요.”
육운은 잠시 멍해졌다가 다시 억지웃음을 지었다.
“새언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사람을 잘못 찾아왔다니요?”
임근용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잖아요? 그 아이는 내가 싫다고 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아가씨 오라버니가 싫다고 한 거예요. 민행이 집에 없을 때라면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있겠지만, 그 사람이 집으로 돌아와서 그렇게 말했고, 어머님께서도 그렇게 하라 하셨는데 여기에 내가 무슨 말을 더 보태겠어요. 그 일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면 아가씨 오라버니나 어머님한테 가서 말씀을 드려야죠.”
육함하고 임옥진을 찾아가라고? 육운이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어머니께서 나한테 이 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또 제가 오라버니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무래도 불편하니까 새언니가 하는 게 제일 좋죠. 채홍이를 여기에 데리고 있는 다고 별로 문제될 것도 없잖아요. 그냥 몇 년 데리고 있다가 시집이나 보내 주면 그만인데요. 새언니도 그런 일로 괜히 포용력이 없다는 오명을 뒤집어쓰면 좋을 거 없잖아요? 그건 득보다 실이 많은 짓이에요.”
육운이 또 언제부터 임근용이 포용력이 없다는 오명을 뒤집어 쓸까 봐 걱정했단 말인가? 이건 그저 임옥진의 체면이 상할까 봐 걱정이 되어 하는 말일 뿐이었다. 임근용은 분노가 치솟아 냉소하며 말했다.
“어머님께서 아가씨한테 이런 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한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예요. 어쨌든 이건 아가씨 오라버니네 집안일이에요. 당연히 아가씨가 관여할 수도, 참견해서도 안 되는 일이에요. 난 그런 오명을 뒤집어씌운대도 하나도 안 무서워요. 오히려 아가씨가 남한테 비웃음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새언니…….”
육운은 순식간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새언니를 생각해서 좋은 마음으로 한 말이었어요. 또 무고한 채홍이가 불쌍해서 좀 도와주려던 것뿐이고요. 그런데 새언니가 이렇게 사람 마음을 몰라주고 그렇게 고집을 부린다면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어요!”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계원의 코피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새언니도 적당히 해요. 좋은 명성을 얻는 건 힘들지만 망가지는 건 순식간이에요.”
그녀는 말을 끝내자마자 문발을 홱 걷으며 밖으로 나갔다.
임근용은 열불이 치솟아 물 잔을 집어 들어 단숨에 찬물을 들이켰고 그러고 나서야 조금 진정이 됐다. 두아를 비롯한 그 누구도 감히 그녀에게 말을 붙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숨을 죽인 채 한쪽에 조용히 서 있거나, 방을 청소하며 임근용의 안색을 살폈다. 방죽이 문발을 들고 고개를 내밀더니 임근용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밖으로 나갔다.
방죽도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 이럴 때 말을 걸었다가는 괜한 불똥이 튈 수도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임근용이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무슨 일이야?”
방죽이 재빨리 안으로 들어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소부인, 두 사람은 어디로 보내는 게 좋을까요?”
원래 그녀의 계획은 계원을 시집보낼 때 계 마마도 딸려 보내 계원이 모시게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아직 그녀들의 집까지는 준비해 두지 못한 상황이었다. 변화는 그녀의 생각보다 빨랐다. 갑자기 사람을 내보낸다 해도 어딘가 보낼 곳이 있어야 했다. 두 사람은 그냥 일반적인 시녀들과는 다른 특수한 신분이었기 때문에 절대 함부로 내쫓을 수 없었다. 잘못하면 계원이 마음속에 원한을 품어 나중에 화근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임근용이 말했다.
“일단 두 사람은 내 장원으로 보내. 지금 그 꼴을 해 가지고는 남편감을 찾기도 마땅치 않을 테니 일단 그 아이가 좀 진정된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
방죽은 대답하고 일을 처리하러 나갔다.
두아가 임근용에게 권했다.
“아가씨, 몸이 안 좋으시면 가서 좀 누우세요.”
임근용은 그제야 정말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닫고 비녀와 겉옷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다음 안으로 들어가 누웠다. 정신이 몽롱한 와중에 밖에서 한바탕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계 마마가 와서 우는 것 같았는데 바로 누군가가 저지했는지 밖은 다시 조용해졌다.
계 마마는 나가고 싶지 않을 것이고, 계원도 원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두 사람은 반드시 내보낼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목숨까지 왔다갔다 하는 문제로 비화되게 만들어서는 안 됐다. 임근용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여봐라!”
“뭐 필요한 거 있소?”
육함이 안으로 들어와 휘장을 걷어 올리고 침상 앞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임근용은 그의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분간할 수 없어서 육함이 좀 전에 있었던 일을 알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필요한 게 있는 건 아니고요, 근데 당신은 어떻게 벌써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