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359
359화. 이야기 (2)
“아용, 무슨 일이오?”
육함은 그녀가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혹시 무슨 사고라도 날까 걱정하며 얼른 그녀를 쫓아왔다. 그는 가까이 다가오고 나서야 임근용이 뭔가 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육함은 절로 긴장하며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는 신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혹시라도 임근용이 무슨 귀신 같은 걸 보고 충격을 받은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임근용은 황혼의 노을빛 아래 서서 조용히 강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 반은 노을빛에 드러나고 반은 어둠 속에 숨겨져 있었다. 임근용은 슬프고 처량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육함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어둡고 암담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육함은 그녀의 심정을 전부 헤아릴 수 있었다. 그는 너무나 두렵고 또 마음이 아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걱정스러웠다. 육함은 한 걸음 더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단단히 부축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요? 왜 우는 거요? 얼른 말해 보시오.”
“민행, 이런 풍경을 보고 있었더니 문득 어떤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그 이야기 속의 여자가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났어요.”
임근용이 그를 보며 눈을 깜빡이자 눈물 두 방울이 또르륵 굴러떨어졌다. 수정같이 맑은 눈물방울에 저녁 노을빛이 스며들어 아주 쓸쓸하고도 애달파 보였다.
“대체 무슨 이야긴데 이렇게 우는 거요? 이야기는 그냥 이야기일 뿐이오. 대부분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울리려고 지어낸 것 아니겠소. 그렇다고 이렇게 울다니, 깜짝 놀랐잖소. 당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소.”
육함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이게 뭐 울 일이라고, 울지 말아요.”
임근용이 그의 손을 꽉 잡았다. 그녀는 이미 마음 깊은 곳에 묻어 두어 긴 풀이 자라날 정도로 황폐해졌지만, 다시 폭발할 것처럼 발작하고 있는 이 이야기를 육함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사실 그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고 실화예요. 한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는 시집을 가서 아들만 낳으면 늙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 줄 알았대요. 그런데 사람들 인심이 어찌나 험악한지 남들에게 모함을 당해 남편의 믿음과 사랑을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하는 아들도 죽어 버린 거예요. 그 여자는 남은 평생을 그렇게 외롭게 홀로 살다 죽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비적 떼가 쳐들어 왔대요. 그런데 시댁 식구들이 그 여자만 혼자 내버려두고 다 도망을 가버린 거예요. 그 여자의 충복 한 명만 남아 그녀를 부축해 비적 떼를 피해 달아나는데 그 전족 때문에……. 그 여자가 너무 불쌍하잖아요.”
육함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인간이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이오? 간사한 자의 계략에 넘어간 건 그렇다 치더라도 연약한 여자에게 어찌 그리 매정한 짓을 할 수 있소?”
강바람이 불어오자 임근용은 눈물 때문에 눈앞이 흐려졌다. 강물이 바람에 밀려왔다 멀어지며 그녀의 치맛자락과 육함의 겉옷을 적셨다. 그녀는 여전히 미소 지으며 육함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일이 그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어찌저찌 구사일생으로 도망을 쳐서 도망가다 그 여자의 남편을 만났나 봐요. 그 남편은 여자를 데리고 강가까지 도망을 와서 그 여자를 한 집에 맡기고, 그녀에게 돈을 남겨 준 뒤 사람들에게 보살펴 달라고 부탁을 했대요. 그 남편이 여자에게 돌아가서 부모님을 구해 와야 하니 잠깐 기다리라고, 돌아오면 같이 배를 타고 떠나자고 했나 봐요. 그 여자는 며칠 밤낮을 계속 기다렸지만 다른 피난민들이 계속 왔다가 떠나는데도 끝내 남편은 오지 않았대요. 그때 먼 친척 하나를 우연히 만났는데 그 여자의 남편이 그녀를 버리고 시부모만 데리고 다른 길로 떠나는 걸 봤다고 했대요.”
임근용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그 여자가 누구를 믿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편이 정말 그 여자를 속이고 버린 걸까요?”
그녀는 오늘 정말로 너무 이상했다. 육함은 초조하고, 불안하고, 의아했지만 여전히 인내심을 발휘하며 말했다.
“당연히 남편을 믿어야 하는 거 아니오. 그 남편이 정말로 부인을 속이고 버리려 했던 거라면 부인이 죽든 말든 그냥 내버려두면 그만 아니었겠소. 쓸데없이 뭐하러 멀리까지 데려가서 다른 사람에게 보살펴 달라고 하고 돈까지 남겨 주고 갔겠소? 아마 그 친척이 사람을 잘못 보았거나 나쁜 마음을 품었던 거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두 사람 사이에 무수히 많은 오해와 상처들이 있지만, 둘 다 나쁜 사람이나 악인은 아니었으니까요.”
임근용이 천천히 말했다.
“그 여자도 친척의 말을 믿지 않고 계속 거기에 남아 남편을 기다리기로 했대요. 하지만 그 여자는 끝까지 기다릴 수 없었어요. 비적 떼가 거기까지 들이닥쳐 그녀의 충복을 죽이고, 그 여자는 결국 강물에 뛰어들어 자결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녀는 가볍게 숨을 들이마시고 강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와서 갑자기 그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그 여자가 너무 불쌍해서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 여자의 남편이 부인을 버리려고 했던 게 아니라면, 그 사람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난세이니 당연히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지 않았겠소. 이미 죽었을 수도 있고 한발 늦었을 수도 있지.”
육함은 한층 더 미간을 찡그리며 소매로 가볍게 임근용의 눈물을 닦았다.
“그런 이야기는 대체 어디서 들은 거요?”
임근용은 대답 없이 그에게 물었다.
“민행,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그녀는 현생의 육함이 전생의 육함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또 전생의 육함이 당시 어떤 심정이었고, 어떤 상황에 처했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지금의 그녀는 이미 육적이 어떤 인간인지 알고 있었다. 임근용은 육함과 떨어져 있는 반년 동안 이 일에 대해 수 없이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며 혼자서 여러 가지 추측을 했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임근용은 여전히 육함에게 묻고 싶었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육함은 이런 비참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고, 두 사람을 이런 이야기에 빗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절로 기분이 나빠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임근용이 유독 진지하면서도 기대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걸 보고 왠지 마음이 약해져 목소리를 살짝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만약 나였으면, 이미 그 여자와 혼인을 한 이상, 설령 부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렇게 신의를 저버리고 도의에 어긋나는 짐승만도 못한 짓을 하진 않았을 거요.”
황혼빛을 받은 육함의 눈은 마치 검은 진주처럼 윤기가 흐르며 밝게 빛났다. 그는 어쩔 수 없어 하면서도 애정 어린 표정으로 부드럽고 자상하게 말했다. 임근용은 이런 그를 바라보며 마음속에 수없이 많은 감정이 뒤섞였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지만 그녀는 결국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육함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당신 말이 맞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역시 운이 나빴던 거겠죠.”
이건 영원히 답을 찾을 수도, 영원히 진상을 파헤칠 수도 없는 문제였다. 이제는 그 전생의 그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아서 더더욱 증명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의 육함은 그녀에게 아주 잘해 주고 있었다. 수 의원은 일찍이 임근용에게 매사를 좋은 쪽으로 생각하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제 선생도 인생은 별로 특별한 것이 아니니 그저 자유롭게 살다 가면 그만이라고 말했고 제 부인은 벌써 좁디좁은 그녀의 작은 집에서 벗어나 세상 밖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임근용은 비록 자신이 그들만큼 지혜롭거나 유능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힘으로 좀 더 의미 있는 일들을 하며 이번 생을 헛되지 않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또 다시 이 강변의 모래나 자갈처럼 물에 휩쓸려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죽음을 맞고 싶지 않았다.
임근용이 육함에게 손을 내밀었다.
“신발이랑 치맛자락이 다 젖어서 정말 찝찝하네요. 당신도 젖었죠?”
“당연히 다 젖었지!”
육함은 평정을 되찾은 것 같은 그녀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손을 꼭 잡고 그녀를 끌어당기며 걸었다.
“난 정말로 당신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소. 그냥 남의 이야기이지 않소. 대체 당신이 이렇게 울 이유가 뭐란 말이오.”
임근용은 발밑의 젖은 모래를 내려다보며 담담하게 웃었다. 그 이야기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아마도 그는 영원히 모를 것이다.
육함은 임근용의 곁에서 계속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말없이 그녀를 꽉 붙잡았다.
* * *
강신묘에서 부두까지는 그리 멀지 않아 마차를 타고 가니 금방 객잔에 도착했다. 부둣가는 오래전부터 번화한 마을이었지만 크고 좋은 객잔은 임근용 일행이 묵고 있는 희희(熙熙) 객잔 하나밖에 없었다.
본 왕조의 규정에 따르면 관원이나 거자가 객잔에 투숙하면, 객잔에서 깨끗한 침구와 상등의 방을 내주어야 했고, 밤에는 주변에 야간 경계근무를 서야 했다. 육함 일행이 객잔에 들어서자 주인이 그들을 직접 2층으로 안내했고, 또 필요한 것이 있는지 정성스럽게 물은 뒤 뜨거운 물과 음식을 올리고 나서 물러갔다.
찬물에 신발과 치맛자락이 흠뻑 젖은 임근용은 이제야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아 앵두에게 뜨거운 물을 한 대야 가져오라 한 뒤 병풍 뒤에 앉아서 족욕을 했다. 육함은 깨끗한 버선과 신발로 갈아 신고 탁자 앞에 앉아 차를 마셨다. 그는 임근용과 함께 식사하려고 그녀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가볍게 두어 번 들리더니 곧바로 육량이 안으로 들어왔다.
“이소야, 짐은 벌써 다 배로 보내서 잘 실어 두었어요. 배도 이미 확인했고 내일 아침 정시에 출발한다 하더라고요. 이소야께서도 가서 확인해 보시겠어요?”
육 노태야는 출발하기 전에 먼 길을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 집 밖을 나가면 언제나 꼼꼼하게 확인하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는 하인들에게 모든 일을 맡겨선 안 되고 특히나 가족들의 생명과 관련된 일에서는 절대로 게으름을 피우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 이런 이유로 짐을 검사하고 배를 확인하는 일은 당연히 육함이 직접 가서 확인을 해야 했다. 육함이 말했다.
“가 봐야지, 저녁 먹고 나서 바로 보러 가야겠구나. 수고 많았다, 넌 일단 내려가서 밥부터 먹고 있어라. 이따 출발할 때 부르마.”
육량이 대답하고 물러갔다.
임근용은 잠시 생각해 본 뒤 얼른 발을 닦고 깨끗한 버선과 신발을 신고 병풍 뒤에서 걸어 나갔다.
“나도 당신하고 같이 갈래요.”
좀 전까지 강가에서 찬바람을 쐬며 이유도 없이 한바탕 운 그녀를 육함이 어찌 데리고 가겠는가? 그가 말했다.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일 텐데 당신이 가서 뭐하려고? 당신은 여기서 쉬시오. 이따가 생강탕을 가져오면 먹고 누워서 땀을 좀 빼는 게 좋겠소. 지금은 절대로 아프면 안 되오, 아직 갈 길이 한참이오.”
임근용은 주변 환경을 한번 둘러보고 싶었다. 육함이 말린다고 가만히 있을 그녀가 아니었다. 임근용이 낮은 목소리로 간청했다.
“혼자 여기 있기 싫단 말이에요, 당신이랑 같이 걷고 싶어서 그래요. 난 그냥 당신 뒤에서 따라만 다니고 방해하지 않을게요.”
육함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전혀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안 되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밤바람이 차서 안 되오. 혼자 있기 싫으면 두아한테 와서 말동무를 해달라고 하시오. 나도 금방 돌아올 거요. 이제 밥 먹읍시다.”
임근용은 그의 단호한 태도에 말문이 막혀 고개를 숙이고 답답해하며 밥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