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361
361화. 알아보다
육함은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침상으로 다가가 휘장을 걷은 그는 임근용과 눈이 마주치자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분명 잠들었다고 했는데? 왜 아직도 깨어 있는 거요?”
임근용이 안쪽으로 자리를 옮기며 말했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깊게 못 자는 사람도 있잖아요. 당신하고 두아가 밖에서 이야기하는 소리에 깼어요.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밖에 무슨 일 있어요?”
육함이 침상에 걸터앉으며 그녀의 손을 끌어다 잡고 말했다.
“그런 건 아니고, 방금 아래층에서 우연히 누군가를 만났소. 어떤 남자가 가슴에 칼을 맞고 거의 초주검이 되어 있더군. 상처는 이미 짓무르고 구더기까지 생겨서 목숨만 겨우 붙어있는 상태로 객잔 문 앞에 쓰러져 있었소. 사람들이 구경만 하고 아무도 나서려고 하지 않길래 차마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서 후원에 있는 시방(*柴房: 땔나무를 쌓아두는 창고)에 데려다 놓고 의원을 불러 주라고 했소.”
임근용이 절로 의아해하며 물었다.
“어쩌다 그렇게 됐을까요? 혹시 어쩌다가 그렇게 다친 건지 물어봤어요?”
“의식이 없었소. 지금 봐서는 살 수 있을지 없을지도 잘 모르겠소.”
육함이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말했다.
“근데 그 사람, 당신이랑 내가 아는 사람이오.”
임근용이 더욱더 의아해하며 물었다.
“누군데요? 아는 지인이면 왜 시방(*柴房: 땔나무를 쌓아두는 창고) 같은 데다 데려다 놓으라고 했어요? 객잔 주인한테 말해서 방을 하나 달라고 하지 않고요?”
육함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지인이라고까지 할 만한 사람은 아니오. 당신 예전에 청주에서 각장을 구경하러 갔을 때, 칼 같이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 사람들을 노려보던 왕립춘이란 자를 기억하오? 왜 그 사납고 악독한 성격이라 관리의 다리를 부러뜨려 곤장을 맞아 죽을 뻔한 걸 당신 외숙부께서 돈으로 배상해 주고 사정해서 살려냈다고 했던 사람 말이오.”
육함이 손으로 이마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도(*盗: 도둑, 강도)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서 남들은 다 부끄러워하며 머리카락을 풀어 가리는데 유일하게 머리를 번들번들하게 묶고 글자를 훤히 내놓고 있던 자 말이오. 혹시 기억나오?”
그제야 생각이 난 임근용이 절로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 사람은 사람을 죽여서 얼굴에 문신을 새기고 군대에 끌려간 거 아니었어요? 근데 어째서 여기까지 와 있는 거예요? 또 어쩌다 그런 꼴이 됐대요? 설마 또 사람을 죽인 거예요?”
육함이 탄식하며 말했다.
“모르겠소. 근데 그 이마에 새겨져 있던 ‘도’자는 이미 없어졌더군. 이마에 화상을 입은 걸 보니 인두로 지져서 없앤 것 같소. 틀림없이 몰래 도망친 걸 거요. 어쨌거나 당신 외숙부께서 처음에 그자를 구하려고 했던 데는 분명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소. 더구나 사람이 그 지경인데 낯선 사람이라도 일단 살리고 봐야지 그렇게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소. 만약 그자가 무슨 나쁜 짓을 저질렀다면, 분명 관리들이 조사하러 올 거요. 그럼 그 때가서 그냥 모른 척하면 되오.”
임근용이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겠네요. 그래도 조심하는 거 잊지 말아요.”
“명심하겠소.”
육함이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만지며 말했다.
“감기 든 건 아니오?”
임근용이 눈을 살짝 감고 말했다.
“아니에요, 생강탕을 먹고 이불 속에서 땀을 뺐더니 이제 괜찮아요.”
“이소야, 의원이 왔는데, 진찰을 하지 않겠다고 하네요. 이소야께서 한 번 가보시겠어요?”
두아가 밖에서 가볍게 문을 두드리더니 말했다. 육함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임근용에게 말했다.
“우연히 곤경에 처한 사람을 만났고, 기왕에 돕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끝까지 돕는 게 도리 아니겠소. 난 잠깐 보러 갔다 오겠소. 당신은 먼저 자도 괜찮소.”
육함은 임근용이 순순히 눈을 감는 걸 보고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나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가 후원의 시방(*柴房: 땔나무를 쌓아두는 창고)에 도착하니 왕립춘은 나름대로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객잔 주인이 어디선가 광목옷을 가져와 그의 옷을 갈아입히고 간이 침상을 만들어 가슴을 훤히 드러낸 채 똑바로 눕혀 둔 상태였다. 그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는데 칼에 찔린 가슴의 상처가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심각했다. 한 번도 치료한 적이 없어 보이는 상처 안에 하얀 구더기가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마흔이 넘어 보이는 의원은 한쪽에 서서 수수방관하며 손조차 대려 하지 않았다. 그는 육함이 들어오는 걸 보고 그자를 흘겨보며 말했다.
“살릴 수 없으니, 뒷일을 준비하십시오.”
이 말을 들은 객잔 주인이 즉시 육함에게 애원했다.
“육 대인, 어쨌든 사람으로서 도리는 다한 것 아닙니까. 이 자를 소인의 객잔에서 죽게 할 수는 없습니다. 소인이 이자의 관을 만들어 줄 것이니 여기서 죽게 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객잔 주인의 부인도 그와 함께 울부짖으며 사람들을 불러 왕립춘을 끌어내려 했다. 육함의 명령을 받은 장수를 비롯한 하인들이 막아서자 순식간에 안이 아주 소란스러워졌다. 왕립춘의 눈동자가 눈꺼풀 아래에서 가볍게 씰룩거렸고 그를 따라 손끝도 미세하게 두어 번 움직였다.
이를 본 육함이 얼른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누가 이리 시끄럽게 떠드는 게냐? 사람이 아직 살아있지 않느냐. 지나가던 행인이 병이 나도 객잔 주인은 관청에 보고하고 사람을 잘 돌볼 의무가 있거늘 이미 객잔에 들어와 있는 사람도 돌보지 않겠단 말이냐? 이 객잔을 계속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로구나?”
그러고 나서 의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구하려 하지 않는다면, 자넨 의원으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일세!”
육함은 아직 젊었지만, 본래 타고난 기백이 있고 또 이미 관직에 오른 사람이기도 했기 때문에 사람들 눈에는 아주 위엄이 넘쳐 보였다. 사람들이 전부 입을 다물자 의원도 감히 거역할 수 없어 말했다.
“대인께서 소인에게 치료를 하라고 명하셨는데 소인이 어찌 감히 거역하겠습니까. 다만 말씀드렸다시피 거의 가망이 없으니 혹여 잘못되더라도 소인을 탓하지는 마십시오.”
“당연한 소릴. 이 자의 천명이 다한 걸 가지고 어찌 자네 탓을 하겠나.”
육함이 육량에게 눈짓하자, 육량이 얼른 돈 뭉치를 꺼내 주며 말했다.
“이건 선불로 드리는 진료비예요.”
그는 또 돈 뭉치를 꺼내 객잔 주인의 부인에게 찔러주며 말했다.
“이건 저 사람의 숙박비일세. 빨리 가서 약을 좀 달이게.”
그제야 다들 입을 다물고, 각자 해야 할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의원은 왕립춘의 상처를 씻고 썩은 살을 도려내야 하니 장수와 육량에게 그를 잘 잡고 있으라 말했다. 의원이 불로 지진 작은 은칼을 왕립춘의 상처에 대고 베어내자 왕립춘이 “아!” 하고 소리를 지르며 눈을 번쩍 떴다.
의원이 깜짝 놀라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꽉 잡아!”
의원은 분홍빛 살점이 드러날 때까지 그의 썩은 고름과 살을 쉬지 않고 파냈다. 보고 있던 사람들은 전부 구역질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육량과 장수라고 어디에서 이런 걸 봤겠는가, 그들은 가까이 있어 더 토할 것 같았지만 필사적으로 얼굴을 돌리고 왕립춘을 꽉 누르며 소리 질렀다.
“발버둥 치지 마, 이렇게 안 하면 죽어.”
뜻밖에도 왕립춘은 딱 한 번 그렇게 소리를 지른 뒤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는 몸을 심하게 떨었지만 몸부림 치지 않고 이를 악물며 두 눈으로 육함만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의 몸에서 배어 나온 식은땀에 곧 옷이 흠뻑 젖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육함도 죽을 만큼 괴로워 목구멍이 다 간질거렸다. 하지만 그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주먹을 꽉 쥐고 몸에 힘을 주며 똑바로 서 있었다. 그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왕립춘을 바라보며 위로했다.
“버텨 내거라. 안 그러면 그저 헛되이 죽는 것이다.”
한참 후에야 손을 뗀 의원이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다.
“자, 이 정도면 됐습니다, 이제 죽고 사는 건 이 자의 명에 달렸습니다. 깨어 있을 때 약을 먹이고 음식도 좀 먹이십시오.”
장수와 육량이 긴 한숨을 내쉬며 왕립춘을 놓았다. 왕립춘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더니 갑자기 육함을 보며 입꼬리를 들어 올리고 쉰 목소리로 뭔가 말을 했다.
만약 그가 살아나지 못한다면 이게 유언인 셈이었다. 육함은 서둘러 그에게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게냐? 남기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보거라. 내가 들어주마.”
왕립춘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고 그마저도 끊어졌다 이어졌다 했다.
“전 공자가 누군지 압니다.”
예상치 못했던 그의 말에 육함은 잠시 침묵했다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게냐?”
왕립춘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기다리던 육함은 그에게서 아무런 기척이 없자 고개를 들었다. 그는 이미 기절해 있었다.
* * *
왕립춘이 기절하긴 했지만, 탕약과 미음을 먹여야만 했다. 육함은 장수와 하인들이 젓가락으로 왕립춘의 입을 벌려 그에게 약을 먹이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가 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만약 내일 그를 그냥 내버려두고 떠난다면, 아무리 많은 돈을 남겨 둔대도 그를 제대로 돌봐줄 사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재물을 탐낸 사람들이 그를 해치려고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일 출발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일정이 여유로운 것도 아니었다. 육함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진퇴양난에 빠져 있었다.
육함은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장수에게 지시했다.
“선행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끝까지 하는 것이 도리지 않겠느냐. 남아서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아무래도 저 자가 살아나기 힘들 것 같다. 네가 여기에 남아 저 자가 좀 괜찮아질 때까지 돌봐주고 나중에 혼자 상경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어쨌든 넌 이 길을 한 번 왕래해 봤으니, 다른 사람들보다는 그래도 네가 나을 것 같구나.”
장수는 영 내키지 않았지만, 육함의 명령이라 즉시 알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역시나 마음이 불안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소야, 사람이 이렇게까지 독한 걸 보면 나쁜 놈 아닐까요? 괜히 구해 줬다가 머리만 아파지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도순흠의 안목을 신뢰하는 육함은 왕립춘이 그렇게 도리도 모르는 인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장수의 눈에는 왕립춘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대답했다.
“저 자는 지금 혼수상태이고, 과거의 일은 우리도 아는 것이 없으니, 너만 조심하면 별문제는 없을 게다. 이 자가 목숨을 건져서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되면 넌 그 즉시 돌아오너라. 괜한 질문은 하지 말고 쓸데없는 말도 하지 말거라.”
육함은 불안해하는 장수를 보고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이렇게 벌건 대낮에 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데 뭘 그리 두려워 하느냐. 내가 이 동네 보장(*保长: 지방 관청에서 부역을 과하거나 세금 징수를 맡아보던 사람)에게 널 좀 돌봐 달라고 당부해 두고 가마.”
그는 이렇게 말한 뒤 방으로 돌아와 편지 한 통을 써서 날이 밝으면 청주의 도순흠에게 보내라고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