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369
369화. 용납할 수 없는
임근용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참 동안 침묵했다. 그녀가 침상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나갈 준비하자. 밖에다가는 외출할 거니까 마차를 준비하라고 해.”
늦가을이라 겹옷을 입어도 추위가 느껴질 정도였지만, 두아는 오히려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었다. 그녀는 바늘에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흠칫 놀라며 황급히 임근용을 말렸다.
“아가씨, 늦가을이라 날이 춥고 밖에 비도 오고 있어요. 홑몸도 아니신데 이런 날 외출하시는 건 좋지 않을 거예요. 꼭 가셔야겠다면 이소야께서 돌아오신 다음에 다시 말씀해 보세요, 네?”
앵두가 문발 안으로 고개를 빼꼼 디밀더니 곧 목을 움츠리고 사 마마를 부르러 쏜살같이 뛰어갔다. 이걸 본 임근용이 냉소했다.
“지금 너희들은 내 사람이 아니구나.”
두아가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아가씨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임근용이 짜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너희가 정말로 내 사람이라면 어찌 내 말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나더러 너희 말을 들으라고 하는 것이냐. 지금 난 너희들이 해 주는 대로 해야 하고 너희들이 날 속여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느냐.”
두아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지만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는 정말 억울했다. 이 일은 전부 육함이 육량 부부를 시켜서 한 짓이었다. 또 하엽 부부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윽박을 지른 것도 육함이었다. 만약 하엽이 육함이 곧 그 물건들을 팔아치울 걸 알고 나중에 이 일이 발각되면 크게 난처해질까 봐 그녀에게 달려와 어떻게 해야 할지 묻지 않았다면 그녀도 아마 전혀 몰랐을 것이다.
임근용은 두아가 착실하고 본분을 지키는 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마음이 상해 눈물을 흘리면서도 감히 크게 소리도 내지 못하고 변명조차 하지 않는 두아를 보고 마음이 좀 누그러졌다. 임근용은 환생한 이후로 모든 일을 최대한 스스로 주도적으로 결정하려 했다. 그들 입장에서는 호의였을지 몰라도 임근용은 절대 이런 식의 기만을 용납할 수 없었다.
“됐어, 이게 네 잘못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너도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지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봐.”
그녀는 두아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지시했다.
“가서 쌍전이한테 하엽이를 불러오라고 하고, 쌍복이한테는 외원에다 마차를 준비하라고 전하라고 해. 그러고 나서 씻을 물을 가져와. 나머지는 나랑 이소야가 알아서 할 거니까 너희는 신경 쓸 필요 없어.”
두아가 꾸물거리자 임근용이 눈으로 그녀를 훑으며 말했다.
“더 이상 날 실망시키지 마. 네 진짜 주인은 나야.”
이건 무게감이 상당한 말이었지만 임근용은 지금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전부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이 방 안의 사람들이 이렇게 한순간에 육함의 명령을 따르며 그녀의 생각과 의견을 무시할 줄은 정말 몰랐다.
두아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발등에 불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쌍전과 쌍복에게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임근용의 외출 준비를 도왔다.
임근용이 단장을 마치자 문발 밖에서 누군가의 헐떡이는 숨소리가 들리더니 사 마마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머리와 어깨가 다 젖어 있었고 얼굴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소부인, 외출하시려고요?”
“마마는 나이도 많은 사람이 밖에 비도 오는데 왜 그렇게 뛰어다녀? 감기에 걸리거나 미끄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난 사 마마가 오래오래 우리 집을 돌봐주길 바라.”
임근용도 사 마마를 따돌리고 몰래 외출할 생각은 없었다. 그녀가 앵두를 살짝 흘겨보자 앵두는 몸을 움츠리며 벽에 딱 붙더니 천천히 한쪽 구석으로 움직이며 숨었다.
사 마마는 원래 주방에서 찬모가 임근용의 보양식을 만드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앵두가 비를 맞으며 황급히 달려와 임근용이 외출하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사 마마는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몰랐지만 덜컥 겁이 나 황급히 달려왔다. 그녀는 임근용의 태도와 말투를 보고 반쯤 마음을 놓고 웃으며 말했다.
“이소부인 말씀이 맞아요. 지금 밖에 비가 와서 습하고 미끄러운 것이 솔직히 외출하기 좋은 날씨는 아니에요. 집에만 계시는 것이 답답해서 그러신 거면 신시(*申时: 오후 3~5시)쯤 되면 이소야께서 돌아오실 테니 기다렸다 이소야와 함께 나가시는 건 어떠세요?”
임근용이 말했다.
“이소야는 아주 바쁘잖아. 일 끝나고 집에 오면 또 집안일을 돌봐야 하는데 나까지 폐를 끼치면 안 되지. 마마가 시간이 괜찮으면 나랑 같이 가자. 아니면 집에 남아 있다가 이소야가 돌아오면 내가 외출했다고 전해도 상관없고.”
사 마마는 자기가 막을 수 있을지 가늠하려는 듯 임근용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임근용이 가볍게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마마는 바쁜가 보네.”
이건 막을 수 없었다. 도저히 그녀가 말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사 마마는 하늘을 힐끗 쳐다보고 순간 결심을 굳혔다.
“이소부인,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노비가 얼른 옷을 갈아입고 와서 모실게요.”
임근용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앵두가 가서 마마가 옷 갈아입는 걸 도와줘.”
사 마마는 밖으로 나가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일부러 시간을 끄는 방법도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임근용은 문발 옆에 꿇어앉아 있는 하엽을 싸늘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길게 말하지 않을게. 이제 곧 외출할 거야.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누굴 찾아야 할지는 너랑 송붕이 제일 잘 알 거라고 생각해.”
하엽은 감히 토를 달지 못하고,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조용히 세 번 절을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바로 가서 준비할게요.”
임근용은 손을 흔든 뒤 두아의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 고여 있는 물을 밟으며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 사 마마도 반대편에서 앵두의 부축을 받으며 황급히 달려왔다.
“이소부인, 좀 천천히 가세요. 노비를 기다려 주세요.”
그녀들이 중문 앞에 도착하자 육량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이소부인, 어디 가세요? 비가 와서 날이 습하고 길도 미끄러워요. 이소야께서 곧 돌아오실 텐데 돌아오시면 같이 나가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임근용이 마차 앞을 지키며 눈을 내리깔고 있는 송붕을 쳐다보고 살짝 냉소하며 말했다.
“내가 마음대로 외출도 못 하는 사람인 줄은 몰랐구나. 노비 주제에 감히 내 앞을 가로막다니!”
육량은 매우 난처했지만 그녀가 이러는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절로 묻는 듯한 눈길로 사 마마를 쳐다보았다. 사 마마가 그에게 눈짓하자 눈치를 챈 그가 얼른 말했다.
“이소부인, 용서해 주십시오. 소인이 무례하게 굴었습니다.”
임근용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의 곁을 지나쳐 마차에 올랐다. 그녀는 사 마마, 하엽, 두아가 모두 마차에 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큰 소리로 명령했다.
“가자.”
앞장선 송붕의 안내에 따라 마차는 골목 어귀를 지나 동쪽에서 남쪽으로 꺾어 첨수항(甜水巷)에 있는 청풍루(清风楼) 객잔을 향해 갔다.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려 길에는 행인이 적었다. 사람들의 말소리조차 하나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사방은 아주 고요했다. 마차 안에 앉아 있는 세 명의 시녀들은 모두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임근용의 표정만을 살피고 있었다. 물론 육함이 임근용을 속인 건 잘못이었지만,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건 다 임근용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도대체 왜 저렇게 고집을 부린단 말인가?
반면 임근용은 속으로 그 물건들을 걱정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녀가 지금 시녀들 표정 따위를 살필 겨를이 어디에 있겠는가? 마침내 마차가 청풍루에 도착해 길가에 멈춰 섰다. 송붕이 말했다.
“이소부인, 소인이 가서 사람을 찾아올게요.”
임근용이 다급하게 말했다.
“얼른 가. 빨리 데려와.”
잠시 후 우산을 든 송붕이 40세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하나를 데리고 나왔다. 그는 마차 앞에 서서 문발을 사이에 두고 임근용에게 절을 하려 했다.
“소인 요탁(姚琢)이 주인마님께 인사 올립니다.”
임근용은 그가 자신을 주인마님이라고 부르는 걸 듣고 마음이 놓였다.
“비가 많이 오니 절은 됐다, 별일 없느냐?”
요탁이 그녀의 말뜻을 알아채고 말했다.
“예, 소인이 어찌 감히 제멋대로 굴겠습니까. 소인은 이소부인이나 세전 공자의 분부가 있을 때만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정말 충성스럽구나.”
임근용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임세전의 일 처리 방식과 사람 보는 안목은 믿을 만했다.
이때 갑자기 청남색 긴 상의에 금박 허리띠를 두르고 머리에는 두건을 쓴 총명해 보이는 얼굴의 서른 살 남짓 된 남자가 객잔에서 비를 맞으며 걸어 나왔다.
“아니, 요 형, 나한테는 안 판다더니 그새 다른 사람한테 팔려는 거요?”
남자의 말투가 좋지 않았지만, 요탁은 그를 상대하지 않으려는 듯 대충 얼버무렸다.
“아닐세.”
그 남자가 소리쳤다.
“아니긴 뭐가 아니란 말이오?! 날 속일 생각은 마시오!”
임근용이 얇은 차 발을 통해 밖을 내다보니 그 남자도 차 발 너머로 눈을 똑바로 뜨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예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걸 보니 임근용이 정말로 그의 거래를 빼앗았다고 오해한 것인지 곧 싸움을 걸어올 기세였다. 임근용은 이것이 전부 육함의 독단적인 행동에서 비롯된 골칫거리라는 생각이 들어 절로 화가 치밀었다. 그녀는 가슴 속에서 알 수 없는 불길이 치솟아 혈관을 따라 온몸으로 퍼지는 것 같았다. 양쪽 관자놀이도 불끈하고 튀어 올라 이마와 정수리까지 다 지끈거렸다. 임근용은 더 이상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아 그를 외면하고 요탁에게 지시했다.
“물건을 잘 지키고 있거라. 이틀 후에 내가 자리를 마련해 놓고 사람을 보내 널 찾을 테니 그때 물건을 보내라.”
요탁이 주먹을 말아 쥐고 공손하게 인사했다.
“예.”
임근용이 또 물었다.
“지내는 데 불편한 건 없고?”
요탁이 얼른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그 남자는 두 사람이 전부 상대해 주지 않자 벌컥 화를 내며 다짜고짜 앞으로 달려 나왔다. 그는 차창 너머에서 경성 말투로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이런 법이 어디 있소! 분명히 내가 먼저 저자와 흥정을 하고 있었는데, 당신이 뭔데 중간에 와서 가로채는 거요? 내가 제값을 못 주겠다는 것도 아니지 않소, 여자는 집에서 남편 뒷바라지나 할 것이지 어디 밖으로 뛰쳐나와서 설치는 거요? 부녀자의 도리가 뭔지도 모르는 여자구먼!”
임근용도 그의 무례한 행동에 절로 화가 나 한 마디 하려고 막 입을 여는데 송붕이 우산을 집어던지고 그 남자를 힘껏 밀치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미친개가 대체 어디서 나온 거야!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리며 사람을 물어뜯다니! 주둥이 조심해!”
무방비 상태에서 갑자기 밀쳐진 그는 비틀거리다 흙탕물에 넘어졌다. 그는 다시 일어서서 크게 소리 지르며 송붕을 향해 달려들었다.
“감히 이 주(朱) 어르신을 밀치다니, 가만 안 둬!”
작은 소동이 큰 싸움으로 번지려 하자 요탁이 황급히 앞으로 나가 그 주씨 성의 남자를 껴안고 큰 소리로 말했다.
“주 형, 오해일세, 오해야, 이 분은 우리 주인마님일세!”
그 남자는 그 말을 듣고 눈이 커지더니 점점 더 나쁜 태도로 몸부림치며 소리쳤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감히 날 때리다니! 오늘 이 일은 똑바로 사과해야 할 거야! 안 그럼 절대 그냥 안 넘어가!”
그가 고개를 돌리고 청풍루 쪽을 향해 소리쳤다.
“여태 나한테 얻어먹었던 놈들은 양심도 없어? 내가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 숨어서 구경만 할 거야?”
곧 청풍루에서 한 무리의 건달들이 밖으로 나와 팔짱을 끼고 마차를 포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