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372
372화. 동공이곡(同工异曲)
임근용은 오랫동안 탁자를 응시하다가 고개를 들고 육함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화내지 말아요, 난 당신하고 잘 지내고 싶어요. 당신하고 싸우고 싶지 않고 하루하루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이 가게는 꼭 열어야 해요. 예전에 오상 오라버니가 나한테 무슨 소원이 있느냐고 물었던 거 기억나요? 그때는 나도 제대로 생각이 정리가 안 돼서 이 일을 정말로 실현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말하기가 부끄러웠어요. 하지만 지금은 우리 둘밖에 없으니 말해 줄게요. 당신이 비웃는대도 상관없어요. 난 의장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하씨나 금고 같은 가난한 집안의 딸들이 가족들의 냉대와 세상 사람들의 외면 속에서 괴롭게 살지 않도록 돕고 싶어요.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난 건 그 사람들 잘못이 아니니까요.”
육함은 깜짝 놀란 것 같았다. 임근용을 바라보던 그의 눈빛이 변하고 화가 나서 굳게 다물어져 있던 입술도 점차 풀어졌다.
임근용은 그의 안색이 누그러지는 걸 보고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그의 손을 살짝 잡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민행, 당신은 남자라 늘 밖에 나가 돌아다니니까 나보다 식견이 넓고 더 많은 걸 알잖아요. 집이 가난해서 혼수와 납채를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남자들은 그런대로 먹고 살지만 여자들은 얼마나 불쌍한지 몰라요! 내가 가진 힘이 아직은 작다는 것도 알고, 정말 많은 돈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이건 말하자면 내 포부 같은 거예요. 당신 같은 남자들이 공을 세워 업적을 쌓고 천하에 이름을 날리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이에요. 난 당신이 날 좀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요.”
육함은 갑자기 그녀의 손을 잡아당겨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더니 속삭였다. 그가 정중하게 공수했다.
“아용, 당신이 날 부끄럽게 만드는군.”
임근용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육함이 또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의장을 만드는 것 같은 큰일을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소. 지금 당장 서두를 필요 없으니 이번만은 내 말을 듣고 천천히 하시오.”
말이 안 통했다.
이로써 두 사람의 두 번째 소통도 실패했다.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이 일은 잠시 제쳐두고 평소처럼 일상생활을 하며 서로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안의 동정을 살피던 사 마마는 일단 크게 안도하며 빨리 이 난관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이때 하엽 부부에 대한 두 사람의 태도는 아주 흥미로웠다. 육함은 하엽 부부를 윽박질러 임근용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만든 장본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임근용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하엽이 약속을 어기는 바람에 하마터면 큰 문제가 생길 뻔하여 그들을 언짢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는 비록 두 사람에게 시비를 따지며 화를 내거나 쫓아내겠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내심 불쾌한 모양인지 두 사람을 외면하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임근용의 태도는 더욱 분명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그들을 상대하지 않다가 참다못한 하엽이 사방에 부탁을 하고 다니자 그제야 사 마마 등을 대동하고 두 부부와 대면했다. 임근용은 조금도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평주로 보낼 새해 선물을 준비해 줄 테니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평주로 돌아가.”
하엽과 송붕은 기쁨과 희망을 안고 임근용을 따라 평주에서 천 리나 떨어진 이곳 경성으로 온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렇게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양쪽에 다 미움을 샀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울면서 사정할 수밖에 없었다.
임근용은 주변 사람들더러 들으라는 듯이 일부러 말했다.
“울지 마, 이런다고 내 생각이 바뀌지 않아. 너희들의 상황이 난처했다는 건 이해하지만, 너희는 가장 중요한 걸 잊고 본분을 지키지 않았어. 아무리 대단한 이유가 있어도 본분을 지키지 못한 건 큰 잘못이야. 난 더 이상 너희를 믿을 수 없어.”
그들의 본분이 무엇일까? 두 사람은 임근용의 친정에서 그녀에게 준 사람들이니 그들의 본분은 임근용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오직 임근용의 말만 들어야 했다! 그들은 임근용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그녀의 눈과 귀가 되어 그녀 대신 보고 듣고 관리하며 최대한 그녀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육함에게 굴복해 임근용을 배신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연루될까 두려워 육함과의 약속도 어겼다. 큰 잘못을 한 건 아니라 정상을 참작해 줄 여지는 있었지만, 더 이상 그들을 믿고 의지할 수는 없었다. 임근용은 그들이 오늘 이 일을 통해 앞으로 다른 큰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하는지 배우길 바랐다. 신뢰를 쌓는 건 힘들지만, 무너뜨리는 건 아주 쉬운 법이었다.
하엽은 이 말을 듣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가씨,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임근용이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난 상벌이 분명한 사람이야. 이건 내가 너희한테 주는 벌이고, 상도 있어. 그날 그 주씨라는 무뢰한이 나한테 무례하게 굴었을 때 송붕이 용감하게 나서서 주인을 보호한 건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야. 그래서 상금으로 10관을 줄게. 너희가 평주로 돌아갈 때도 집에다가는 아무 말도 안 할 테니 너희는 그냥 이소야가 보낸 신년 선물을 가져다주러 온 거라고만 말하고, 다시 돌아오지 말고 그냥 거기 있어.”
임근용은 이런 방법으로 그들의 체면만은 살려 주었다.
“아가씨, 감사드려요.”
하엽은 가망이 없다는 걸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깊이 절을 했다. 송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임근용에게 물었다.
“그럼 가기 전에 소인에게 시키실 일은 없으세요?”
임근용이 그제야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신년 선물을 준비하려면 아직 시간이 좀 필요하니까 한가할 때마다 가서 요 집사를 좀 도와줘. 그 사람을 데리고 중개인을 찾아가서 적당한 가게 자리를 다시 찾아봐. 이번에는 물건을 보관하고 사람도 묵을 수 있게 뒤에 후원이 있는 곳으로 알아봐.”
송붕의 대답을 들은 사 마마는 내심 깜짝 놀랐다. 설마 육함이 동의했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녀가 감히 임근용에게 나서서 물어볼 수는 없었다. 사 마마는 잠시 고민하다가 아마도 두 부부가 상의해서 내린 결론일 거라 생각했다. 그게 아니면 임근용이 자기 앞에서 이렇게 대놓고 일을 처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임근용은 하엽 부부를 내보내고 나서 두아, 앵두, 쌍전, 쌍복 등 네 사람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는 전부 어릴 때부터 날 모신 아이들이잖아. 쌍전이랑 쌍복이는 들어 온 지 얼마 안 됐지만, 두아 너는 벌써 7, 8년이나 됐고, 앵두 너도 5, 6년은 됐어. 내가 너희들 성격을 아는 만큼 너희도 내 성격을 잘 알 거야.”
그녀가 여기까지 말하는 걸 들은 사 마마가 갑자기 이마를 탁 치며 말했다.
“이소부인, 죄송해요. 노비가 주방에 냄비를 올려놓고 찬모한테 말도 안 하고 그냥 왔네요. 주방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빨리 가서 확인을 해 봐야겠어요. 음식을 태우면 안 되잖아요.”
이건 임근용이 시녀들에게 위세를 부리며 훈계하려 한다는 걸 눈치채고 괜히 자리를 지키다가 분위기만 어색해질 것 같아 핑계를 대고 자리를 피하려는 것임이 분명했다. 임근용도 내심 짐작했지만 겉으로는 티 내지 않고 친절하게 말했다.
“마마가 수고가 많네.”
사 마마가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나가는 걸 보고 임근용은 다시 네 명의 시녀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너희들에게 이소야를 공경하지 말라거나, 이소야를 속이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니야. 그저 어떤 일들은 나와 이소야 사이의 문제이니 이런 일에 너희들이 끼어들면 안 된다는 걸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는 말을 하는 거야. 너희들은 너희가 맡은 일만 성실하게 잘 하면 돼. 너희들이 자기 본분을 다하면 설령 뭔가 잘못되더라도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하엽이는 잘못돼도 돌아갈 곳이 있지만 너희는 어디로 갈래?”
이 말의 의미는 더없이 명확했다. 그녀들이 자기 본분을 다하고 자기 주인이 누구인지 똑똑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만약 그녀의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듣고 또 다시 하엽과 같은 실수를 한다면 더 이상 봐 주지 않겠다는 경고였다. 두아를 포함한 모두의 표정이 확 어두워졌는데, 특히 앵두의 안색이 아주 안 좋아졌다. 임근용은 한 명 한 명 눈여겨본 뒤 입을 열었다.
“내가 할 말은 다 했으니 특별한 일 없으면 그만 가 봐. 앞으로는 날 실망시키거나 난처하게 만들지 마.”
두아가 앞장서서 시녀들을 데리고 무릎을 굽히며 절을 한 뒤 물러갔다. 임근용은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으로 화창하고 짙푸른 하늘에 높게 떠 있는 밝은 태양이 보였다. 잎이 거의 다 떨어진 포도나무에 아직 떨어지지 않은 잎 몇 개가 햇살을 받아 황금빛을 찬란하게 뿜어대며 미풍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포도 받침대 꼭대기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세상이 참 아름답구나.’
임근용은 문득 여지와 임세전이 그리워졌다.
* * *
송붕은 희망이 완전히 사라지자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는 육량의 면전에서 여봐란듯이 요탁을 찾으러 간다고 말하며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은 소속이 달랐지만 이 작은 집의 대집사라는 같은 위치를 노리고 있었다. 평소에는 화목하게 지냈지만 내심 서로 경쟁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육량은 그가 좋은 결론을 얻지는 못할 거라는 걸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갑자기 이렇게 홀가분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오히려 깜짝 놀랐다.
“송씨, 어디 가는 거야?”
송붕은 임근용이 사 마마의 면전에서 그에게 이런 일을 분부한 건 육함이 알아도 상관없다는 뜻이라고 생각하고 태연하게 말했다.
“이소부인께서 요 집사를 찾아가서 일을 도우라고 하셨어.”
육량은 깜짝 놀라 재빨리 자기 안사람에게 사 마마를 찾아가 확인해 보라 시켰다. 그는 확인을 마치고도 집을 지킬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당장 육함에게 달려갈 수 없었다. 그는 그저 대문 앞에 서서 육함이 오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그는 육함이 돌아오자마자 황급히 마중을 나가 그의 말을 끌어 주며 작은 목소리로 그 일에 대해 보고했다. 그가 말을 하며 슬쩍슬쩍 육함의 표정을 훔쳐보았지만 육함의 표정은 아주 평온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육함이 차분하게 말했다.
“알았다.”
그러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육량은 이런 그를 보고 아마도 이소부인의 말을 들어주기로 마음을 바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소부인도 전혀 숨기려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에 육량은 몇 마디 더 덧붙였다.
“이소야, 이소아께서 아직 젊으시니 소인이 감히 몇 마디 올릴게요. 예전에 제 마누라가 큰딸을 가졌을 때, 특별한 일도 없는데 툭하면 소인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울더라고요. 소인도 처음에는 많이 짜증이 났는데 마누라 말을 잘 들어주고 했더니 나중에는 점점 좋아지더라고요.”
육함은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힐끗 쳐다보고,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중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아무도 없는 곳에 이르러서야 표정이 확 굳었다. 육함은 동쪽 곁채에 있는 서재로 들어가 혼자 화를 삭였다.
임근용이 지금 쓰고 있는 방법은 처음에 육함이 썼던 방법과 동공이곡(*同工异曲: 방법은 다르지만 결과는 같음)이었다. 그때 육함은 그녀의 하인들을 압박해 자신을 도와 그녀를 속이는 방법을 썼다. 하지만 그건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었다. 임근용은 지금 오히려 이렇게 당당하게 드러냄으로써 집안의 하인들이 그가 이미 이 일에 동의했다고 오인하게 만들고 있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육함이 언짢은 기색을 보이거나 반대한다고 말한다면 하인들 앞에서 임근용이 그의 의사를 무시하고 그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는 걸 대놓고 드러내는 꼴이었다. 그러면 육함의 체면 역시 상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더니 딱 그 짝이 아닌가.
육함은 몹시 짜증이 나서 머리가 다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