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382
382화. 성격
장산랑이 허행랑과 조경랑을 부르러 가려던 사람들을 멈춰 세우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물러가라 손짓하자 영칠이 입을 열었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 괜찮겠지만, 혹시 제가 도와드리지 못하더라도 두 분이 이해해 주세요.”
집안의 늦둥이인 그는 어르신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고 아버지와 형제들의 기세까지 등에 업고 있어 아주 솔직한 성격이었다.
그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자 육함도 가게에서 있었던 일을 터놓고 말했다.
“내가 원래 남한테 폐를 끼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네만, 이대로 가다가는 소란이 끊이지 않을 것 같네. 결국 언젠가 남한테 부탁을 할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일찍 해 버리는 게 더 나을 것 같더군. 두 사람의 힘을 빌릴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힘들면 가능한 분을 좀 소개시켜 주게.”
육함은 잠시 생각해보다가 또 한 마디 덧붙였다.
“사실 우리가 돈이 부족해서 이 가게를 연 건 아닐세. 원래는 너무 번잡스러울 것 같아서 열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안사람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어서 이 가게를 열 수밖에 없었네.”
영칠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아니라 육함의 말을 듣자마자 무슨 말인지 바로 눈치챘다.
“그렇군요, 두 분은 이 경성 땅에 연고가 없으니 힘들긴 하겠네요. 평범한 가게라면 모르겠지만, 이런 귀중품 가게는 원래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곳이잖아요. 요즘 장사도 잘 되고 있으니 더 눈에 띄었겠죠. 황제께서 계신 이 경성 땅에서 감히 강제로 가게를 뺏는 짓은 못 하겠지만, 사람들 눈 밖에 나면 하루가 멀다 하고 시끄러운 일이 생겨 아주 골치가 아파질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가 너무 호탕하게 대답을 하자 육함과 임근용은 오히려 어리둥절해졌다. 그들이 막 감사 인사를 하려는데 장산랑이 빙긋 웃으며 영칠의 말을 이었다.
“살인이나 방화 같이 법을 어기는 일도 아니고 사소한 일들은 도울 수 있으면 도우면서 살아야죠. 그런데 용랑의 그 소원이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녀의 말뜻은 사소한 일이라면 도와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장산랑은 영칠보다 훨씬 현명한 사람이라 대충 얼버무리며 넘겨 버릴 수는 없었다. 임근용은 아예 얼버무릴 생각을 접고 태연하게 말했다.
“제 소원은 의장을 만들어서 주변에 있는 가난한 여인들이 의지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 주는 거예요.”
장산랑은 약간 놀란 듯하더니 이내 표정을 감추고 가볍게 웃었다.
“용랑이 아주 훌륭한 생각을 하고 계시네요. 한 가지 외람된 말씀을 드리자면, 세상에 가난한 여인이 한둘이 아니잖아요. 혼자 힘으로 도와봤자 얼마나 도울 수 있겠어요!”
임근용이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원하는 건 숫자가 아니라 마음의 안정이에요.”
임근용은 장산랑이 아마도 자신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굳이 해명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믿어 줄 사람이라면 가만히 있어도 믿어 줄 것이고 믿지 않을 사람이라면 무슨 해명을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장산랑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사람마다 품고 있는 뜻이 다 다른 법이니 남이 어찌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어요. 그럼 용랑은 우리가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요?”
영칠이 다가와 말했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하겠소? 그저 나중에 누군가가 찾아와서 생트집을 잡아대면 우리를 찾아오라고 하면 되는 거지.”
장산랑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은방울이 굴러가는 것처럼 맑은소리로 웃었다.
“아이고, 칠소야, 이 일이 남정네들끼리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거랑 같은 줄 알아요? 당신하고 육 이소야는 그냥 밖에 나가서 놀고 있어요. 여긴 용랑의 가게고, 여자들 일이니 내가 용랑이랑 이야기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네요.”
임근용은 장산랑의 수완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한 마디 말로 가볍게 법을 어기거나 규율을 어지럽히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원칙 없이 무조건적으로 자신들의 방패막이 역할을 해 주지는 않을 거라는 뜻 또한 분명히 드러냈다. 게다가 그녀는 영칠의 호탕함과 의리가 남에게 쉽게 이용당하지 않도록 단속했고, 동시에 말을 잘 돌려서 이 일을 남자들 사이의 체면과 의리에 관계된 일이 아니라 여자들 사이의 일로 바꿔 버렸다. 이러면 얘기가 잘 되지 않아 그녀가 임근용의 부탁을 거절한다 하더라도 육함과 영칠이 더 이상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임근용은 장산랑의 뜻에 따라 육함에게 눈짓했고, 이에 육함이 영칠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나가세, 밖에 나가서 구경이나 함세.”
두 사람이 나가자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전 여기서 정당하게 장사를 하고 있어요. 그저 평소에 댁에서 뒤를 봐 주시면 쓸데없는 시비가 좀 덜 붙지 않을까 해서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임근용은 장산랑의 안색을 살피며, 만약 그녀가 도와준다면 앞으로 약간의 배당금을 나누어 주겠다고 완곡하게 돌려 말했다. 그리고 또 만약 뭔가 불미스러운 큰 사건이 발생한다면, 그건 별도의 일로 취급해 두 부부에게 손해가 가는 일은 없게 하겠다고 특별히 강조했다.
장산랑은 마음의 결정을 내리기 힘든 듯 여전히 말없이 망설이고 있었다.
임근용은 망설이는 장산랑을 보고 재촉하지 않고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그녀와 같은 명문가 사람들은 매사에 체면을 중시해서 겉치레 하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수입은 많지 않을 수 있어도 지출은 클 것이 틀림없었다. 지금이야 가문에 의지하고 있으니 그나마 괜찮겠지만, 앞으로 이 어린 부부의 몫으로 돌아올 재산이 얼마나 될지 누가 알겠는가? 장산랑이 살림을 할 줄 아는 여자라면 이렇게 공으로 얻을 수 있는 재물을 마다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참 후에 장산랑이 살짝 미소 지었다.
“용랑은 대체 날 뭘로 보는 거예요? 용랑이 의장을 만들어 선행을 베풀겠다는데 내가 무슨 배당금이나 탐이 나서…….”
임근용은 분명 그녀의 마음이 움직였고 지금 이렇게 버티는 건 그저 체면치레에 불과하다는 걸 알아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경멸할 마음은 없었다.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그 돈이 뭐 거저 주는 건가요. 내가 두 사람한테 그런 도움을 청하면 두 사람도 이런저런 접대를 할 일들이 생기지 않겠어요? 접대할 때 쓸 찻값만큼도 안 될까 봐 걱정이죠. 내 일을 도와주는 건데 산랑의 돈을 쓰게 할 수는 없잖아요. 만약에 산랑이 힘들 것 같으면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좀 소개시켜 줘요. 이 가게를 유지하지 못하면, 의장이라는 것도 다 뜬구름 잡는 소리가 되어 버리는 거니까요.”
장산랑이 입을 가리고 웃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용랑 말이 맞아요, 사업을 확장하려면 사방을 두루 살피고 평소에도 사람들과 친분을 잘 맺어둘 필요가 있죠. 그리고 제가 이 일을 맡으면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용랑을 도울게요. 이런 일은 거절하는 것도 실례죠.”
장산랑이 앞에 늘어놓은 말들은 그저 체면치레에 불과하고, 중요한 건 그녀가 승낙했다는 사실이었다. 임근용이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춰 감사 인사를 했다.
“폐를 끼치게 되었네요.”
장산랑이 얼른 그녀를 부축했다.
“별말씀을요, 동향 사람이 힘들어하는데 당연히 도와야죠.”
그녀가 예쁜 눈을 들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각자 필요한 것을 취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날 재물이나 탐하는 욕심쟁이로 보진 말아요. 난 남이 공짜 돈을 준다고 함부로 받는 사람 아니에요.”
만약 그녀가 육함과 임근용의 사람 됨됨이와 취미, 주변 사람들과의 친분 등을 이미 알고 있지 않았다면 그녀 역시 감히 이런 일을 수락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알아요.”
목적을 달성한 임근용은 기분이 매우 좋아서 웃는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경랑과 행랑을 부를까요?”
“당연하죠, 그게 바로 인간관계를 맺는 첫걸음인걸요.”
장산랑이 가볍게 박수를 치자 예쁘장하게 생긴 노비 하나가 대답하며 들어왔다. 그녀는 장산랑의 명령을 받고 밖으로 나가 조경랑과 허행랑에게 사람을 보내 초대의 말을 전하라 지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허행랑이 그녀의 남편인 위 삼랑(三郎)과 함께 왔다. 조경랑이 오지 않자 장산랑이 그녀를 대신해 해명했다.
“그 친구 친정에 일이 좀 있어요. 기분 전환을 해 주고 싶었는데 오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요.”
허행랑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사실 그 일이 전부 다 조씨 가문 큰 오라버니의 탓은 아니잖아요. 천재지변을 누굴 탓하겠어요? 성벽이 튼튼하기만 했어도 이 지경까지 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저 담이 작아서 민란이 일어났을 때 바로 보고하지 못한 것뿐이고, 그 재난이 설마 이렇게까지 크게 번질 줄 알았겠어요?”
그녀가 무심코 하는 말에 임근용은 즉시 귀를 쫑긋 세웠다.
“무슨 일이에요? 무슨 민란이요?”
“못 들었어요?”
장산랑은 살짝 의아해하다가 곧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용랑이 이런 것 때문에 괜한 걱정할까 봐 육 이소야가 일부러 말을 안 해줬나 보네요. 그런데 사실 이게 뭐 그렇게 특별한 일인가요? 요 몇 년 동안 각지에서 천재지변이 끊이지 않아서 민란은 벌써 여러 번 있었잖아요, 그 때문에 화를 당한 집도 수없이 많고요…….”
그리고 그녀는 자기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일들에 대해 임근용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임근용은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 절로 평주의 그 재앙이 떠올랐다.
장산랑은 그녀가 넋을 놓고 있는 걸 보고 황급히 말했다.
“혹시 놀란 거 아니죠?”
임근용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그냥 좀 한숨이 나와서요. 이렇게 앉아서 잡담만 하지 말고 내기하면서 놀아요.”
임근용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을 불러 이런저런 물건을 가져오라 한 뒤 꺼내놓았다. 장산랑과 허행랑도 자기가 준비한 물건들을 꺼내놓고 내기를 하기 시작했다.
임근용은 같이 놀면서 장산랑과 허행랑의 성격을 자세히 관찰했다. 두 사람은 놀이에 열중하긴 했지만 탐욕스러운 사람들은 아니었다. 장산랑은 자제력이 뛰어났고, 허행랑은 살짝 경망스럽긴 했지만 천진난만하게 느껴지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임근용은 한층 더 마음이 놓였다.
육함을 비롯한 일행들은 밖에서 한참 구경을 하다가 나중에 들어와 합류했다. 그들은 함께 재미있게 놀다가 거의 사경(*四更: 새벽 1~3시)가 다 되어서야 돌아갔다.
임근용은 진 것도 이긴 것도 아닌 딱 본전이었다. 그녀는 장산랑한테 이겨서 붉은 산호 비녀를 따고, 허행랑을 이겨서 수정 쌍기러기 부채를 땄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한 번씩 지기도 해서 그녀의 가게에서 가져온 진주 향낭과 비녀를 각각 한 쌍씩 내줬다. 하지만 육함은 영칠과 위삼에게 꽤 많이 졌다. 집으로 돌아온 임근용은 잠도 오지 않아 등불 밑에 앉아서 육함이 뭘 얼마나 잃었는지를 장부에 기입했다.
육함은 졸린지 침상에 비스듬히 기대 하품을 하며 말했다.
“이미 진 건데, 그렇게 적어서 뭐 할 거요?”
임근용이 진지하게 말했다.
“이것도 다 비용에 포함되는 거예요.”
육함은 그녀가 이 내기판을 준비할 때 웬만한 건 전부 자기 가게에서 조달하려고 하면서 돈을 아끼려고 백방으로 노력했던 걸 떠올리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계산이 너무 철저한 거 아니오.”
임근용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육함에게 말했다.
“그 영칠 부부 말이에요. 한 사람은 덜렁대고 한 사람은 세심하잖아요. 한 사람은 호탕하면서 의리 있는 성격이고 다른 한 사람은 총명하면서 진중한 성격이라 서로 보완되고 참 좋은 것 같아요. 두 집안 어르신들께서 어쩜 그렇게 잘 골라서 인연을 맺어 주셨는지 모르겠네요.”
육함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침묵하더니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성격은 별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성격은 아니지?”
표정을 보니 임근용이 자신의 말을 부정해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임근용은 그의 그런 표정도 개의치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런 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