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391
391화. 손님
또 다른 대추 하나가 세로로 서는 걸 보고 허행랑이 얼른 한 손을 비스듬히 뻗어 그 대추를 잡으려 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녀의 손가락 틈새에 있는 대추를 억지로 빼앗아갔다. 허행랑은 원래도 동그란 눈을 한층 더 동그랗게 뜨고 대추를 빼앗아간 부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주 잘 차려입은 30대 중반 정도 된 부인이었는데 굳은 얼굴로 눈을 내리깐 채 천천히 대추를 씹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귀까지 다 빨개져 있었다.
허행랑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 부인을 한 번 쳐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입안에 있는 대추를 힘껏 씹으며 그 부인을 노려보았다. 조경랑이 부채로 그녀의 머리를 때리며 속삭였다.
“그러니까 왜 욕심을 부려! 하나만 먹어도 충분한데 혼자 다 먹으려는 심보야? 남들이 위삼랑이 너한테 대추도 못 사주나 보다 하고 비웃으면 어쩌려고?”
조경랑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절로 그 부인 쪽으로 시선이 갔다. 그 부인은 얼굴이 한층 더 빨개져 한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입안에 있는 대추를 여전히 고집스럽게 씹어 넘기고 있었다.
장산랑이 부채로 입을 가리고 작은 목소리로 임근용에게 물었다.
“저 사람 누구예요?”
이 방 안에 있는 부녀자들은 친하든 안 친하든 대부분 임근용이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대추를 빼앗은 그 부인만큼은 낯설었다. 임근용이 손을 흔들어 춘아를 불러 물었다.
“저 부인은 누구야?”
춘아가 입을 열기도 전에 옆에 있던 육함 동료의 부인이 속삭였다.
“저분은 집영전(集英殿)에서 작문과 책 편찬을 담당하는 유자앙(柳子昂)의 부인이에요. 저 집 부부가 혼인한 지 십 년도 넘었는데 슬하에 딸 하나밖에 없고, 첩을 몇 명 들였는데도 아들을 못 낳았대요. 저 사람은 조카를 양자로 들여 후계자를 삼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든 자기 자식을 낳고 싶어 한다더라고요. 세아 때 남의 대추를 빼앗아 먹으면 효험이 있다는 말이 있잖아요. 솔직히 불쌍한 여자죠.”
임근용은 한숨을 내쉬고 더는 그 유 부인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방금 대야에서 건져 올려져 엉엉 울며 머리가 밀리고 있는 의랑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산파 마씨가 덕담을 하고 한 손으로는 의랑의 머리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예리하게 간 면도칼을 쥔 채로 의랑의 배냇머리와 눈썹을 깔끔하게 깎았다.
계속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구경을 당한 의랑은 몹시 화가 났는지 큰소리로 울어댔다. 그는 작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우렁차고 낭랑한 목소리로 울었다. 이미 아이에 익숙한 사람들은 키득키득 웃으며 의랑이가 건강해서 목소리도 정말 우렁차다며 떠들어댔다.
임근용은 눈썹도 없이 벌거벗고 있는 아이가 우습기도 했지만, 아이가 우는 건 또 마음이 아파 얼른 품에 안고 달랬다. 하지만 의랑은 그녀가 너무 늦게 안아준 것이 마음에 안 드는지 더 우렁차게 울어댔다.
장산랑이 임근용을 대신해 의랑의 배냇머리가 담긴 작은 은상자를 받아들고 웃으며 의랑의 작은 귀를 잡아당겼다.
“쪼그만 것이 성질 한 번 대단하구나.”
의랑은 화가 나는지 더 크게 울었다. 이렇게 성질을 부리는 아이를 보고 임근용은 머리가 아파졌다. 그녀는 내심 아이의 성질이 보통이 아니라 앞으로 가르칠 때 좀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육함은 의랑이 이렇게 성격이 강한 걸 보니 남한테 쉽게 휘둘리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며 속으로 좋아했다. 그가 기뻐하며 사람들을 연회 장소로 안내하려는 데 누군가가 품위 있게 안으로 걸어 들어오더니 육함에게 인사하고 웃으며 말했다.
“육 이소야, 늦어서 미안하네, 축하하네.”
바로 매보청이었다. 매보청은 푸른색 상의에 머리에는 옥비녀를 꽂고 청포신을 신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몸에는 아무런 장신구도 없었다. 그는 서생들과 관료들 사이에 서 있었지만 그 누구보다 출중해 보였다. 좌중에도 그와 안면이 있는 사람이 많이 있었지만, 그가 상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를 경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다들 그와 정중하게 인사를 나눴다. 매보청은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눈 뒤 임근용 쪽을 바라보며 마치 전부터 안면이 있었던 것처럼 내색하지 않고 그녀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임근용은 내심 아주 의아했다. 두 사람은 매보청과 줄곧 사업상의 왕래가 있었기 때문에, 경성에 도착한 후, 매보청이 경성 집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매번 명절마다 빼먹지 않고 선물을 챙겨 보냈고, 매씨 가문에서도 늘 답례를 보냈다. 하지만 매보청이 이렇게 직접 얼굴을 드러낸 건 처음이었다. 육량이 선물을 배달할 때 알아 온 바에 따르면 매보청은 작년 여름 그들과 저강에서 만났을 때 이후로 집에 돌아온 적이 없고 동지와 섣달 그믐날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그가 이 세아회에 참석할 줄 누가 알았으랴.
장산랑이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저분은 그 유명한 매보청 아니에요?”
임근용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산랑도 저분을 알아요?”
장산랑이 말했다.
“저분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반루가에서 제일 크고, 제일 장사가 잘 되는 가게들이 다 저분 건데요. 금, 은, 향약, 비단 품목도 겹치는 게 하나도 없는걸요. 게다가 유일한 친여동생을 왕가로 시집보내서 안팎으로 친분을 쌓고 같이 취미를 즐기기도 한다니 정말 수완이 대단한 분이죠. 근데 용랑네는 저분을 어찌 알아요?”
반루가에 매보청의 가게가 있다는 건 임근용도 알고 있었지만, 친여동생을 왕가에 시집보냈다는 건 처음 듣는 소리였다. 임근용은 장산랑에게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말하고 싶지는 않아 웃으며 말했다.
“우리 외삼촌과 사업상으로 친분이 있는 분이에요. 저랑은 친분이 있다고 하기도 애매하고 없다고 하기도 뭐한 그런 사이죠.”
장산랑이 그녀를 힐끗 보더니 더는 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용랑은 청화원(清和园)으로 안 가요? 솔직히 우리도 별로 안 가고 싶은데 그냥 술상이나 한 상 봐서 가져다줘요. 우리 자매들은 용랑네 정원 포도밭에서 먹으면 될 것 같아요.”
임근용은 그러자고 한 뒤 다른 여자 손님들에게 차례로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런 다음 나이가 좀 있고 친절한 평주 출신의 부인에게 자신을 대신해 다른 여자 손님들을 문 앞까지 좀 배웅해 달라고 부탁했다. 임근용은 춘아와 앵두를 불러 이것저것 지시하고 나서 장산랑과 그 일행을 데리고 정원으로 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녀들은 차와 과일 등을 먹으며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조경랑이 말했다.
“풍속에 따르면 오늘 아이 거처를 옮겨야 하잖아요.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임근용이 말했다.
“아이 외가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요.”
아이의 거처를 옮긴다는 건 생후 한 달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가서 며칠 지내다 오는 걸 의미했다. 하지만 육함을 따라 멀리 타지에 와 있는 임근용이 어찌 친정에 간단 말인가? 이 풍속은 생략할 수밖에 없었다.
허행랑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나중에 고향에 돌아가고 나서 하면 되죠. 그런데 아이가 정말 얌전하네요.”
세 사람 다 아이 엄마인지라 임근용에게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출산 후 살은 어떻게 빼야 하는지 등에 대해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다. 허행랑과 조경랑은 이런 이야기 끝에 자기 자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말을 하면 할수록 더욱 흥분하며 대놓고 하지만 않았을 뿐이지 자기 자식이 남의 자식보다 잘났다는 식으로 거의 자랑에 가까운 말들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장산랑은 여태껏 밖에서 자기 자식 자랑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가볍게 부채를 부치며 임근용이 울다 지쳐 잠든 의랑의 땀을 닦아 주는 걸 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용랑, 벌써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수주 화정현에 시박사를 설치하는 일을 지금 논의중 이라고 하더라고요. 아마 틀림없이 설치가 될 거예요.”
“저도 살짝 전해 듣긴 했어요.”
임근용이 일전에 육함에게 알아보라 했었기 때문에 그도 얼마 전에 한두 번 그 이야기를 꺼냈었다. 하지만 이건 그들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손을 댈 수 없는 큰일이었다. 그저 점점 더 돈을 벌기 힘들어지는 상황에 대해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장산랑이 속삭였다.
“매보청한테는 좋은 방법이 있을 거예요.”
임근용은 문득 청주 각장에서 매보청이 어떤 명성을 가지고 있는지가 떠올랐다. 그는 청주 각장에서 제일 담력이 세서 가장 악독한 수법으로 밀수를 하는 대상인으로 유명했다. 일전에 그녀가 도순흠에게 곡식과 향약을 사서 비축하자 했을 때, 도순흠은 재력이 풍부하고 수완이 뛰어난 구매자를 찾으려 했고, 당시 그가 제일 먼저 떠올렸던 사람이 바로 매보청이었다. 임근용은 장산랑이 갑자기 지금 매보청을 언급하며 그에게는 좋은 방법이 있을 거라고 말하는 것에 왠지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산랑이 앞으로 가게의 이윤이 적어져 그녀에게 분배되는 배당금이 적어질까 봐 걱정되어서 이러는 건지 아니면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든 임근용은 속내를 그녀에게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그녀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앵두가 쌍전과 쌍복 등을 데리고 손을 재게 놀려 한쪽에 술상을 차린 뒤 임근용에게 와서 준비가 다 되었다고 말했다. 임근용이 자리에서 일어나 세 사람을 안내하자 장산랑도 입을 다물고 더는 그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앞으로 있을 백일잔치를 어떻게 준비해야 더 성대하게 치를 수 있을지 열정적으로 토론하며 임근용에게 이것저것 건의했다. 부인들은 서로 부어라 마셔라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고 손님과 주인 가리지 않고 모두들 마음껏 즐겼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때쯤 되자 장산랑을 비롯한 부인들은 벌써 반쯤 취해 뺨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들은 시녀들의 부축을 받으며 웃는 얼굴로 작별인사를 했다. 임근용은 그녀들을 대문까지 배웅한 뒤 마차가 멀어지는 걸 보고 나서야 방으로 돌아와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고 나서 창가에 있는 평상에 기대앉아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앵두가 안으로 들어와 그녀에게 해장국을 권한 뒤 얇은 담요를 덮어 주었다. 그녀는 여지와 두아가 그랬던 것처럼 살며시 의자를 들고 나가 문발 밑에 앉아서 조용히 임근용을 지켰다. 쌍복과 쌍전은 할 일을 다 끝내고 복도에 앉아 실타래를 가지고 실뜨기를 하며 놀고 있었다. 쌍복이 기뻐하며 하하 웃자 앵두가 고개를 밖으로 내밀고 눈을 크게 뜨며 매섭게 그녀를 노려보았다. 쌍복은 깜짝 놀라 목을 움츠리고 실타래만 만지작거리며 더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밤바람이 정원을 스치고 지나가자 온 정원 가득 포도 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따금씩 초록색 진주알 같은 시든 청포도 알갱이 몇 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담장 구석에 심은 만향옥(晩香玉) 향기가 바람결을 따라 점점 더 짙게 풍겨왔고, 둥지를 찾아 돌아온 지친 새들이 담장 위에서 지저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반쯤 눈을 뜨고 조용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임근용의 마음속에는 마치 작은 개울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