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403
403화. 각자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와 육함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이 문제에 대한 느낌과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임근용은 말을 많이 할수록 육함과 싸울 확률이 높아지리라 생각해 말을 아꼈다. 육함은 의랑의 아버지이자 육 노태야가 가장 아끼는 손자였다. 하지만 임근용은 의랑의 어머니였다. 만약 육함이 휴가를 내면서까지 두 모자를 꼭 데리고 가야겠다고 고집한다면 임근용도 그와 한바탕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임옥진은 정말 쓸데없는 문제를 만드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재촉해야 할 때는 재촉하지 않고 재촉하지 말아야 할 때는 쓸데없이 재빨랐다. 전생에 육 노태야가 위독했을 때에는 거의 돌아가실 때가 임박해서야 느지막이 육함에게 서신을 보내 육함이 육 노태야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현생에서는 왜 벌써부터 이렇게 난리란 말인가. 전생의 임옥진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그래도 희망이 있으니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임근용은 짜증이 일었지만 풀 곳이 없어 동편 곁채로 가서 의랑의 요람을 지켰다. 깊이 잠든 작은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녀의 마음도 점점 차분해졌다. 무슨 일이 있든 그녀가 이 아이를 지켜 주면 되는 것이다.
육함은 길게 늘어진 해 그림자를 밟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육량이 그를 맞이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소야, 오늘 집에서 또 편지가 왔어요.”
육함이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발걸음이 좀 무거워졌다. 그 편지는 오상이 그에게 보냈던 편지처럼 그의 책상에 놓인 채 그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임근용이 먼저 뜯어보았을 것이 틀림없었다. 육함은 그 편지를 빨리 보고 싶지도, 임근용을 빨리 맞닥뜨리고 싶지도 않아 천천히 본채를 향해 걸었다.
날씨가 너무 더운 탓에 사람들도 피곤하고 기운이 없었다. 쌍복과 쌍전도 복도에 앉아 졸고 있다가 육함이 오는 걸 보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육함은 내심 짜증이 일어 그녀들이 입을 열기 전에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눈을 마주친 두 사람은 괜히 무슨 말을 했다가 재수 없는 일이 생길까 봐 그저 문 발 밖에 서서 귀를 쫑긋 세우고 안의 동정을 살폈다.
육함이 방에 들어서니 임근용은 없고 편지만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편지를 다 읽은 육함은 이마를 짚었다. 임옥진에게서 끊임없이 편지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육 노태야에게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육함은 임옥진과 육 노태야의 성격이 어떤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옥진이 육 노태야를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녀는 평소 이렇게까지 육 노태야에게 효심이 깊은 사람도,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도 아니었다. 이건 아마 이익 다툼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컸다. 임옥진은 콩알만 한 사건도 수박만 하게 부풀리는 사람이었고, 육 노태야는 반대로 수박만 한 일도 콩알만 하게 축소시키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육 노태야는 웬만하면 그에게 자신의 병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고, 그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육함은 도대체 일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기에 임옥진은 이렇게 다급하게 졸라대고 육 노태야는 아무런 동정이 없는 건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그가 육 노태야에게 편지를 보내긴 했지만, 그 편지는 빨라도 보름 후에나 평주에 도착할 것이고, 답장 역시 다음 달이나 되어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길고, 변화는 빨라서 조심하지 않으면 많은 걸 놓칠 수도 있었다.
육함은 이가 다 아픈 것 같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물었다.
“이소부인은 어디 가셨느냐?”
그는 시녀들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또 직접 문밖으로 나가 곧장 동편 곁채로 향했다. 안방에 없다면 틀림없이 의랑의 곁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이제 겨우 절반쯤 가고 있는데 사 마마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표정으로 맞은편에서 육함을 향해 걸어왔다. 마음이 복잡한 육함은 지금 이 나이든 마마까지 돌볼 여력이 없어서 그저 고개만 살짝 끄덕이고 가려 했다. 그런데 사 마마가 그를 불렀다.
“이소야…….”
사 마마는 약간 불안해하면서도 결국 그에게 물었다.
“노태야의 병세는 어떠세요? 노부인은 괜찮으신가요?”
육함은 마치 공기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는 사 마마에게 뺨이라도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녀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
“할머니께서는 평안하시고, 할아버지께서는 선량하신 분이니 하늘에서 돌봐 주실 거야.”
사 마마는 말없이 길을 비켰다.
육함은 거의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동편 곁채로 향했다. 두아와 반씨가 얼른 일어나 그에게 인사를 했다. 임근용은 그를 등진 채 알록달록한 천으로 만든 호랑이 인형을 들고 품에 안은 의랑이와 놀아 주고 있었다. 그녀는 소리를 들었는데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육함이 기침을 했다.
“아용, 당신하고 상의할 일이 있소.”
두아와 반씨가 얼른 밖으로 나갔다.
임근용이 뒤돌아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담담하게 미소 지었지만 눈에는 웃음기가 하나도 없었고, 목소리는 아주 차분했다.
“말해요.”
육함은 그녀의 품에 안겨있는 보드라운 의랑을 보고 있자니 말이 입가에서 맴돌기만 할 뿐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임근용도 재촉하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의랑의 작은 손을 잡더니 아이의 입가에 입을 맞추고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를 웃게 만들었다. 아이의 해맑은 웃음이 육함의 마음을 한없이 부드럽게 풀어 주는 것 같았다. 그는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아용, 난 어떻게 해서든 휴가를 내서 집에 한 번 다녀올 생각이오.”
역시 그녀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임근용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길게 휴가를 낼 수 있어요? 휴가를 초과해서 쓰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육함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소, 그래도 한 번 시도는 해 볼 생각이오.”
그가 다가와 의랑의 작은 손을 조심히 잡고 말했다.
“나 혼자 다녀올 테니 당신하고 의랑이는 경성에 남아 있으시오. 혼자 가면 훨씬 빨리 갔다 올 수 있을 거요.”
임근용은 잠시 멍해졌다. 그녀는 한참 동안 고민하며 준비해 두었던 말을 한 마디도 할 수가 없어서 가만히 넋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육함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말이 맞소. 의랑이는 너무 어려요. 내…….”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약간 곤란해 하며 말했다.
“내 생각에는 할아버지께서도 분명히 의랑이를 아끼실 테니 아이가 고생하는 걸 바라지는 않으실 거라고 생각하오. 이참에 내가 가서 할아버지께 효를 다하는 게 좋을 것 같소.”
지금이 6월 말이니 여정이 아주 순조롭더라도 평주에 갔다가 경성으로 돌아오면 적어도 8월 말은 될 것이다. 그럼 경성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육 노태야의 부고가 전해질 것이고 그는 또 한바탕 난리를 치러야 했다. 임근용은 잠시 침묵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고모님의 생각과 방법은 우리랑 달라요. 할아버님께서 정말로 위독하신 거라면 이런 편지를 보내지는 않았을 거예요. 아니면 좀 더 기다려 보는 건 어때요? 며칠 내에 방죽이한테서 소식이 올 거고, 그러면 상황이 어떤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거예요. 안 그러면 괜히 왔다 갔다하며…….”
육함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용, 이게 그렇게 계산할 일이 아니지 않아요.”
육함도 그녀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임근용은 육함이 말로 이렇게 찔렀음에도 미소를 지었다.
“당신 말이 맞네요.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해요.”
육 노태야는 임근용의 친혈육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렇게 이성적으로 계산하며 득실을 따져댈 수 있었다. 하지만 육함에게 육 노태야는 친혈육이기 때문에 설령 임옥진이 그에게 하는 말이 전부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임근용에게 그녀가 지켜야 할 사람과 일이 있듯이 육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 각자가 원하는 대로 하면 그만이지 굳이 육함을 막을 이유는 또 뭐란 말인가?
육함은 그녀의 담담한 미소를 보고 자기가 방금 말을 심하게 했다는 걸 깨닫고 얼른 해명했다.
“그런 뜻이 아니라, 너무 걱정돼서 그런 것뿐이오. 만약……. 이번에 가서 얼굴을 뵙고 오면 좀 나도 좀 마음이 놓일 것 같소. 내가 아직 할아버지께 효도를 다하지 못했잖소.”
임근용이 말했다.
“길게 말할 필요 없어요. 일단 가서 휴가부터 내요. 내가 당신 짐을 싸 줄게요.”
육함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용…….”
임근용이 그의 팔을 토닥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마음은 나도 다 알아요. 일단 가서 밥부터 먹어요. 기왕 돌아갈 생각이라면 준비를 잘 해 둬야죠. 밤에도 좀 일찍 자고요. 몸이 건강해야 길을 재촉할 수 있을 거예요.”
육함은 잠시 침묵했다가 그녀와 의랑을 한꺼번에 품에 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집에 없으면 당신이 혼자 고생을 많이 해야 할 거요. 사람들한테 두 사람을 잘 돌봐주라고 부탁해두겠소.”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말아요.”
임근용은 더 이상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지금의 임근용은 육함이 없어도 충분히 그녀 자신과 의랑을 잘 돌볼 수 있었다.
* * *
임옥진은 단숨에 세 통의 편지를 보낸 뒤, 어쨌든 임근용이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송씨 고부를 바라보는 눈빛도 전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이런 변화를 눈치챈 송씨는 그녀가 한 짓을 알고 배가 찢어질 정도로 웃었다.
한쪽 옆에 앉아 있던 려씨가 커다란 배를 받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머님, 왜 웃으시는 거예요? 이럴 때 그 여자가 돌아오면 안 되잖아요. 그 여자가 오면 정말 피곤해질 거예요.”
지금 차남가는 온 가족이 합심해 전에 했던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노력하고 육 노태야에게 잘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반면에 임옥진 쪽은 점점 패퇴하며 어리석은 행동과 포용력 없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임근용이 돌아온다면 어떤 예상치 못한 변화가 생길지 누가 알겠는가?
송 씨가 웃으며 말했다.
“어찌 그리 눈치가 없느냐? 그래봤자 두 사람 사이에 다시 원한만 생기게 될 게다. 둘째 며느리는 절대 돌아오지 않으려 하며 자기 고모를 원망하겠지! 그러니 당분간은 큰 형님이 들들 볶게 내버려두거라.”
정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 육함이 친자식이 아니라는 걸 이렇게 티를 냈다. 임근용이 자기의 외아들에게 그런 고생을 시키려 하겠는가? 육 노태야가 그러라고 했을 리도 만무하지만, 설령 그러라 했다 하더라도 임근용은 무슨 방법을 써서든 더는 미룰 수 없을 때까지 최대한 미룰 것이다. 이런 고부 관계와 모자 관계에서는 서로 미움이 생기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이쯤 되면 저쪽의 젊은 부부 사이도 이미 틀어지지 않았겠는가?
임근용도 이제 어머니가 되었으니 갓 태어난 아이를 고생시키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육함의 성격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반드시 효를 다하려 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임근용이 돌아온다면 속으로 임옥진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혹시라도 길에서 무슨 위험을 만나거나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육함까지도 그 원망의 대상이 될 것이 분명했다. 만약 임근용이 오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뒤에서 불효한다고 수군댈 것이다. 그럼 임옥진은 또 마음속으로 원한을 품고 육함이 철이 없어서 이렇게 불효하는 것이라 말할 것이다. 뭘 어떻게 해도 결론이 좋게 날 수가 없었다. 임옥진은 지금 자승자박하고 있었다. 이렇게 한 치 앞도 제대로 못 보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