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418
418화. 사나운 성미
육 노태야가 숨을 거두는 것을 보고, 육 노부인은 손으로 옷깃을 잡으며 두 눈을 까뒤집고 몸을 쭉 뻗고는 쓰러졌다. 방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다행히 곁에 있던 의원이 즉시 침을 놓아 그녀를 깨웠지만 육 노부인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육건중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얼른 판단을 내린 뒤 범포에게 지시했다.
“즉시 나가서 사람을 배치해 상복을 만들고, 빈소를 차리고, 휘장이나 장막 같은 것들도 바꿔야 할 것은 다 바꿔라. 날이 밝으면 바로 부고를 알리고 대노야와 이소야 쪽에도 역참에 사람을 보내 최대한 빨리 부고를 전해라.”
범포는 육건중이 그를 따돌리려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대집사로서 그런 임무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는 고민스러운 눈빛으로 말끝마다 불효자라고 외치며 울다 죽을 것처럼 울어대는 육건립을 바라보다 다시 무거운 눈빛으로 무표정하게 서 있는 임근용을 바라본 뒤 고개를 숙였다.
육건중은 그가 나가는 것을 보고 두어 번 훌쩍인 뒤 입을 열었다.
“지금은 큰 형님이 집에 안 계시고 어머니께서도 쓰러지셨으니 이 막중한 책임을 내가 지는 수밖에 없구나.”
방 안의 울음소리가 순간 확 줄어들자 육건중이 육경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형과 동생들이 전부 집에 없으니, 외원의 자질구레한 일들은 네가 맡아라.”
육경이 얼른 대답했다.
“예.”
육건중은 또 송씨를 가리키며 말했다.
“큰형수께서 건강이 좋지 않으니 당신이 큰 형수를 도와 집안일을 좀 맡아 주시오.”
그러더니 또 고개를 돌려 강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셋째 며느리 너는, 지금 네가 맡고 있는 일들을 제대로 해야 한다, 아랫것들을 잘 관리하고, 할머니를 잘 돌봐야 해. 가족들의 식사를 잘 챙기고 네 큰형님과 아이들도 잘 보살펴라. 혹시 무슨 문제가 생기면 너한테 책임을 물을 테니 그리 알아라.”
강씨가 얼른 일어나 대답했다.
육건중은 그제야 비로소 임옥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수님, 물론 너무 슬프지만 아버지의 장례는 제대로 격식을 갖춰서 해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수고스럽겠지만 형수님께서…….”
임옥진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 명령하지 말아요. 내가 알아서 해요.”
육건중은 체면이 상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임근용에게 지시했다.
“둘째 며느리 너는 이제 막 집에 돌아와서 하룻밤도 제대로 못 쉬었으니 도리 상 좀 쉬게 해 주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너도 고생을 좀 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수고스럽겠지만 네가 어머니를 좀 보살펴다오. 이 일은 아주 중요하고 효도와 관련된 일이라 다른 사람한테 맡기기에는 마음이 안 놓이는구나. 너한테 맡겨야 안심이 될 것 같다.”
이건 공개적으로 임근용을 집안일의 범위 밖으로 내쫓아 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로써 향후 장례와 관련된 모든 일은 임근용과는 무관해졌다. 임옥진은 화가 치밀었다. 강씨가 저런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는데 임근용은 어째서 뒤에 숨어 육 노부인만 모시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육건중이 효도라는 두 글자를 내세웠기 때문에 뭐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임근용이 왜 노부인이나 모시고 있어야 하느냐며 권력을 잡고 집안일을 지휘하는 게 마땅하지 않느냐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임근용은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녀가 전생에서 할 수 있었던 일은 분명 지금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은 그때보다 할 수 있는 일도 더 많았다. 임근용이 흔쾌히 대답했다.
“둘째 숙부, 무슨 말씀이세요. 어른을 돌보는 건 본래 조카며느리의 본분인데 그게 무슨 수고라고요? 설마 절 육씨 가문의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으셔서 이렇게까지 예의를 차리시는 건 아니시겠지요?”
임근용은 이런 말로 그를 한 번 찔렀다. 습관적으로 온화한 미소를 지으려던 육건중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이런 말을 듣고서도 웃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얼른 미소를 거뒀다.
“내가 말을 잘 못 해서 그래.”
임근용은 이렇게 한 방 먹이고 고개를 홱 돌리며 밖으로 나갔다.
육건중은 또 앞으로 나가 처절하게 울며 자책하고 있는 육건립을 위로했다.
“셋째야, 그만 울어라. 널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는 눈물을 왈칵 쏟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상복을 준비하는 일은 너와 셋째 제수씨가 수고를 좀 해 줘야겠구나.”
육건립이 더욱 심하게 울기 시작하자 여씨가 심드렁하게 한 마디 던졌다.
“둘째 아주버님, 뭘 그렇게까지 예의를 차리세요? 이건 모두의 본분이고 모두의 일이지 아주버님 개인의 일이 아니잖아요. 근데 왜 말끝마다 수고한다며 예의를 차리고 그러세요?”
여씨 또한 그에게 불만을 품은 지 오래였다. 그녀는 육건중이 마치 이 집안의 가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구는 것이 정말로 꼴 보기 싫었다. 여씨는 임근용이 육건중에게 한 방 먹이는 걸 보고 참지 못하고 그녀를 따라했다.
육건중은 또 한 방 먹었지만 따지지 않고 뒤돌아서 사람들을 지휘하며 육 노부인을 가마에 태워 영경거로 돌려보냈다. 임근용은 육 노부인을 방에 모셔다 놓고 영겅거의 왼쪽 곁방을 정리해 의랑을 거기에 데려다 놓으라고 지시한 뒤 그녀 역시 겸사겸사 그 방에서 머물기로 결정했다. 육 노부인이 병이 난 상황이라 영경거는 사 마마가 지휘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미 정이 두터운 사이라 사 마마는 임근용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그녀는 두 모자가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왼쪽 곁방을 편안하게 꾸며 주었다.
* * *
날이 밝을 무렵이 되자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해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육 노부인이 울다 잠이 들자 사 마마가 임근용을 재촉했다.
“이소부인도 가서 좀 쉬세요. 여기는 노비가 지키고 있을게요.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이소부인께 사람을 보낼게요.”
임근용도 그녀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임근용은 사 마마가 무슨 수작을 부릴 거라는 걱정 따위는 하지 않고 왼쪽 곁방으로 가서 침상에 비스듬히 누운 뒤 앵두를 불러 물었다.
“뭐라 하더냐?”
앵두가 말했다.
“대집사 말로는 노태야께서 돌아가신 후의 일들을 미리 다 안배해 두셨대요. 아가씨께 전할 중요한 말이 있다며 꼭 한 번 만나 뵀으면 한다고 했어요.”
임근용이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지금 밖에서는 뭐 해?”
앵두는 이미 바깥에서 뭘 하는지까지 다 확인을 하고 온 터라 바로 대답이 나왔다.
“지금 소렴(*小殓: 운명한 다음 날, 시신에 수의를 갈아입히고 이불로 싸는 일)하는 중이에요.”
임근용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임옥진에게 향했다.
집현각에서는 소렴이 막 끝나 온 집안 사람들이 통곡하는 중이었다. 임옥진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숨이 넘어갈 정도로 울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걸 느끼고 벌컥 화가 났다.
“뭐 하는 게냐?”
송씨가 즉시 고개를 들고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이쪽을 쳐다보았다. 임근용이 담담한 얼굴로 임옥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중요한 일이 있어요.”
임옥진은 울음을 그치고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임근용이 말했다.
“범 대집사가 할아버님 사후의 일과 관련해서 고모님께 드릴 말씀이 있으니 꼭 만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했어요. 너무 늦으면 못 만날지도 모른다면서요.”
기둥 하나로 집을 지탱할 수 없고, 한 손바닥으로 박수를 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계속 양보만 하는 건 좋은 계책이 아니었다. 임근용은 고의로 더 위급한 척을 했는데 이건 임옥진의 그 사나운 성미를 돋우기 위해서였다. 횡포를 좀 부리면 어떤가? 억지를 부리면 또 뭐가 어떤가? 이렇게 해야만 차남가와 대적할 수 있었다.
임옥진은 역시나 정신을 번쩍 차리고 송씨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송씨는 그녀의 흉악한 기세에 흠칫 놀라더니 이내 눈을 내리깔았다.
임옥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런 말도 없이 임근용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송씨는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의 뒷모습을 매섭게 노려본 뒤 고개를 돌리다가 여씨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얼른 슬픈 표정을 지으며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고 한탄했다.
“셋째 동서, 가서 삼노야 좀 말려봐! 저렇게 울다가 기절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여씨는 뭔가 계속 꺼림칙했지만 송씨의 말을 듣고 눈을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육건립이 저쪽에서 거의 기절할 지경으로 울고 있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다른 건 제쳐 두고 일단 그쪽으로 달려가 육건립을 위로했다.
송씨가 고개를 돌리고 누군가에게 지시했다.
“얼른 따라가서 지켜봐.”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육건중에게 눈짓했다.
범포는 한참 동안 안팎을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임근용 쪽에서 자신을 부르러 오는 사람이 없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의 심복 중 하나가 간신히 그에게 와서 상전들이 어떻게 일을 분배했는지 알려주었다. 범포는 이 말을 듣고 속이 쓰렸다. 원래 이런 일은 대집사인 그가 한쪽에서 듣고 있다가 그의 입을 통해 아래 것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육건중은 그에게 빨리 가서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라고 지시했을 뿐, 그 후로 다시는 그를 부르지 않았다. 지금 이렇게 아래 것들까지 전부 자기 할 일을 부여받았는데 대집사인 그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게 무슨 뜻이겠는가?
범포는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직감했다. 그는 더 이상 이 집안의 대집사가 아니었다. 설령 아직까지 그 명목은 유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육씨 가문 차남가에게 그는 이미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그는 초조하게 임근용을 기다리며 자꾸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그 앵두라는 시녀가 말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걸까? 만약 정말 그렇다면 그 또한 운명일 것이다. 그가 낙담하며 불안해하고 있는데 방죽이 다가와 말했다.
“대집사, 대부인께서 물어볼 것이 있으니 속히 화청으로 오시라네요.”
범포는 얼른 정신을 차렸다. 임근용은 지금 집안일에서 손을 뗀 상태여서 자기처럼 바깥일을 담당하는 집사를 따로 만날 명분이 없었다. 그래서 임옥진의 이름을 빌려 부른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자신의 측근에게 몇 마디 당부하고 서둘러 화청으로 향했다. 그가 열 발자국쯤 내디뎠을 때 육건중을 모시는 두 집사가 그를 가로막았다.
“범 대집사, 이노야께서 부르세요.”
범포는 본능적으로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고 웃으며 말했다.
“대부인께서 일이 있으시다며 날 찾으시네. 일단 대부인부터 뵙고 가겠네.”
두 사람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저희는 벌써 말을 전했으니, 갈지 말지는 대집사가 스스로 결정하세요.”
범포는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그래도 대부인께 먼저 들렀다 가야 할 것 같네. 이노야께서도 그것 때문에 날 무례하다고 탓하지는 않으실 걸세.”
육건신이 아직 집에 돌아온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육건중이 임옥진을 대놓고 무시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장유유서라는 법도는 엄연히 존재했다. 설령 육건중이 무슨 계략을 꾸미더라도 망신을 당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감히 그에게 화를 내지는 못할 것이다. 더구나 범포는 이미 차남가와는 같은 배를 탈 수 없는 운명이었다. 조만간 그들과 등을 돌리게 될 것이 분명한데 자기에게 불리한 짓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