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425
425화. 대조
임근용은 하나같이 신중하면서도 질서 있게 일하는 그녀들을 보고 한결 마음이 놓였다.
“잘했네, 바깥소식은 어때? 혹시 방죽이나 춘아가 소식을 전할 사람을 보내지 않았어?”
임근용이 대충 계산을 해보니 육씨 가문 고택 쪽의 사람들도 거의 도착할 때가 된 것 같았다.
두아가 말했다.
“좀 전에 춘아 언니가 왔었는데 대부인께서 아가씨 친정 부인들께서 남아서 저녁까지 드시고 갈 거라고 했대요. 외원 쪽의 빈소도 거의 다 차려졌고요.”
“이소부인, 식사를 가져왔어요.”
환아(环儿)가 큰 찬합을 들고 안으로 들어와 재빨리 밥상을 차린 후 임근용에게 공손하게 식사를 하라고 말했다. 전부 다 채식이긴 했지만 음식이 아주 정갈하고 깔끔했다. 임근용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단 배가 찰 때까지 밥을 먹었다. 남은 음식은 반씨와 두아에게 먹으라고 하고 환아에게 약간의 수고비를 준 뒤 그녀에게 앵두를 불러오라 지시했다.
그녀가 손을 씻고 육 노부인의 방으로 돌아가니 육 노부인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염불을 외고 있었다. 임근용은 의자를 찾아 한쪽 옆에 앉았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등롱을 켜는 시녀가 긴 복도를 따라 걸려 있는 하얀 등롱에 하나하나 불을 밝혔다. 이에 온 집안에 흰빛이 가득해져 맑고 시린 느낌이 들었다.
앵두가 경쾌하게 들어와 임근용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가씨, 가문 어르신들께서 다 모이셨어요. 대부인께서 이제 나오시래요.”
임근용이 육 노부인을 바라보니 반쯤 감겨 있던 눈이 지금은 완전히 감겨 있었고, 염불을 외는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그녀의 늘어진 피부와 처진 입꼬리에 근심이 가득해 보였다. 임근용은 육 노부인이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대체 얼마나 알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육 노부인의 모습은 너무도 처량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차마 육 노부인을 방해할 엄두가 안 났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 앞으로 나가 절을 했다.
“할머님…….”
육 노부인이 손에 든 염주를 빠르게 굴리며 눈을 뜨고 임근용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가 미약하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가거라!”
“손자며느리가 최대한 빨리 돌아와서 할머님을 모실게요.”
임근용은 처음에 자신이 무엇을 하러 가는지 육 노부인에게 말을 할 생각이었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되자 다시 생각이 바뀌어 그냥 무릎을 굽히고 절을 한 뒤 밖으로 나갔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육 노부인의 눈에 슬프고 비참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이내 다시 눈을 감고 염불을 외웠다.
* * *
임근용이 걸어가는 내내 공기는 차고 습했고, 청석판 길과 긴 복도는 온통 물때로 얼룩져 있었다. 흰 등롱이 바람에 따라 흔들렸고, 멀리서 스님의 독경하는 소리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와 한편으로는 쓸쓸하고 한편으로는 시끌벅적했다.
임근용이 정당 밖으로 나가 계단에 발을 디디자마자 육건중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는 이따금씩 몇 마디 하기도 했지만, 분위기에 맞게 아주 비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육건중이 울음을 그치자 이번에는 임옥진과 여씨가 울었다. 곧이어 육건립과 육경도 눈물을 터뜨리며 또 한바탕 울음바다가 시작됐다.
정당 안으로 들어가니 실내에 등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육씨 가문에서 가장 명망이 높은 어르신 4명이 차례대로 앉아 육건중을 비롯한 사람들을 애써 말리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려씨도 있었는데, 소금의 몸에 기대 비스듬하게 앉아 있는 걸 보니 아픈 몸으로 힘들게 버티는 것 같았다. 육경, 강씨, 원랑, 호랑 역시 빠지지 않고 전부 울상을 하고 앉아 있었다. 임근용도 그들을 따라 울상을 하며 조용히 려씨와 강씨의 중간 자리에 가서 섰다. 그녀가 자리를 잡고 서자마자 육경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임근용은 못 본 척했다.
겨우 눈물을 그친 임옥진이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삼노야, 아버님께서 어젯밤에 노야한테 뭐라고 당부하셨다 하셨죠? 이렇게 가문의 어르신들께서 다 모여계실 때 아버님께서 하신 말씀을 해 보세요.”
방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촛불이 흔들려 사람들의 얼굴도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했다.
임근용이 보기에는 상석에 앉아 있는 가문의 어르신들은 전부 엄숙하고 공평무사해 보였다. 육건중 부부는 두 사람 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임옥진은 눈에 환한 빛이 번쩍였고, 육건립은 미간을 찌푸린 채 반쯤은 망설이고 반쯤은 슬퍼하는 모습이었다. 여씨는 다소 불안한 듯 손에 든 손수건을 힘껏 쥐어짜고 있었고, 어린 세대들은 전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중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르신은 육 노태야보다 한 세대 위였다. 육함의 증조부뻘인 그가 낮게 기침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셋째야, 여긴 전부 가족들밖에 없으니 걱정 말고 말해라.”
육건립은 그제야 품속에서 유언장을 더듬어 꺼내 사건의 경위를 진술한 뒤 두 손으로 증조부에게 유언장을 바쳤다.
“작은 할아버님과 어르신들께서 이 봉랍이 온전한지 또 위에 찍힌 것이 저희 아버지의 개인 도장이 맞는지 확인해 주십시오.”
그 증조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유언장을 촛불 불빛에 비춰 이리저리 살폈다. 하지만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왼쪽에 앉아 있는 육충(陆冲)이라는 육함의 큰할아버지뻘의 어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큰조카야, 네가 볼 땐 맞는 것 같으냐?”
육충도 계속 살피며 시간만 끌고 명확하게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들보다 비교적 젊은 두 어르신들은 한쪽에 앉아 두 사람이 유언장을 건네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줄 생각을 안 하자 육함의 셋째 작은할아버지 벌인 육릉(陆凌)이 다소 언짢아하며 말했다.
“맞는지 아닌지는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눈이 침침해서 잘 안 보이시면 제가 볼 테니 이리 주십시오!”
또 육함의 큰아버지뻘 되는 육표(陆标)도 입을 열었다.
“1식 2부(*一式两份: 계약서 등을 작성할 때 똑같은 내용을 두 부로 나눠 각각 보관하는 것)라 하지 않습니까. 숙부님과 큰형님께서 그 상자를 열어 안에 있는 것과 대조해 보면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임근용은 분위기를 보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네 사람은 본래부터 하나로 뭉쳐있는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 이 증조부뻘의 어르신이 항렬이 제일 높고 나이도 많아 집안에서 가장 존중받았기 때문에 말에 힘이 상당했다. 또 육충이란 사람은 집안이 번성해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따라서 이 두 사람이 육씨 가문 내에서 가장 힘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었다. 육 노태야는 그 두 사람에게 상자를 맡기고 다른 두 사람을 증인으로 세운 것 같았다.
증조부뻘의 어르신이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육릉과 육표 두 사람을 노려보았지만 명확한 의사표시를 하지 않고 육건중과 육건립에게 물었다.
“너희 어머니는? 모시고 와서 같이 듣지 않고?”
이 말이 나오자 육건중이 또 눈물을 펑펑 쏟으며 주먹으로 가슴을 치고 발을 동동 굴렀다.
“어머니께서 이런 슬픔을 어찌 견디시겠습니까? 전 좀 시간을 가지고 어머니께서 회복하시고 큰형님과 밖에 나가 있는 조카가 돌아오면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는데…….”
이렇게 말하며 그는 또 입을 다물고 힘껏 눈물을 닦았다. 어쨌든 형편을 가장 많이 상각하는 사람은 육건중이고, 가산을 나누고 싶어서 안달이 난 건 장남가와 삼남가라는 뜻이었다.
임옥진이 같잖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육건립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전 아버지의 유언대로 했을 뿐입니다. 어르신들께서도 제 효심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그가 말을 마치고 깊이 절했다.
임옥진도 앞으로 나가 절을 한 뒤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작은 할아버님, 저희 아버님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는 바람에 저희에게 미처 많은 말씀을 남기지 못하셨습니다. 저희 같은 어린 세대들이 장례를 성대하게 치러 드리는 것이 마땅한 도리지만 혹시라도 아버님께서 따로 생각해 두신 것이 있는데 저희가 그걸 모르고 아버님의 뜻을 거역한다면 그것 역시 큰 불효가 아니겠습니까? 저희는 도저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어찌 아버님의 영전에서 떳떳하게 얼굴을 들겠습니까?”
증조부의 눈에 어떤 빛이 반짝 스쳐 지나갔다. 그는 망설이는 듯한 눈빛으로 육충과 눈을 마주치더니 다시 육건중을 바라보며 웅얼거렸다.
극도로 초조해진 임옥진이 입을 열었다.
“저희 아버님을 대신해 어르신들께서 물건을 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유언장은 어느 어르신께서 가지고 계십니까?”
이 말에는 물건을 보관만 하기로 한 사람들이 주인이 물건을 달라고 하는데 안 주려 하는 법이 어디에 있냐는 뜻이 담겨 있었다.
육건립은 갑자기 얼굴색이 변해 앞으로 나가 육충의 손에서 그 유언장을 뺏으려 하며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말했다.
“이러시는 걸 보니 작은할아버님과 큰숙부께서 제 말을 믿지 않으시나 보군요. 그럼 제가 이 유언장을 뜯을 테니 저희 아버지의 자필인지 아닌지 다 같이 확인해 보십시오. 아마 보시자마자 아실 겁니다.”
그가 말을 끝내고 유언장을 뜯으려 했다.
육충이 얼른 말했다.
“셋째 조카야, 왜 이리 화를 내고 그러느냐? 언제 널 안 믿는다고 했느냐?”
육건립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다 덕망 높은 어르신들이시고 그저 맞다 아니다 한 마디만 하시면 될 일인데 이렇게 시간을 끄시는 건 절 못 믿으셔서 이러는 것 아닙니까?”
임근용이 얼른 앞으로 나가 말렸다.
“셋째 숙부, 고정하세요, 어르신들께서도 모두를 위해서 신중하게 생각하시느라 그러신 걸 거예요.”
증조부가 숨을 헐떡이다 입을 열었다.
“난 그저 너희들이 이제 막 슬픈 일을 겪었으니 이런 이야기는 한고비 넘기고 냉정을 되찾은 다음에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해서 그랬던 것뿐이다. 꼭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 같이 구는구나. 내가 이 일로 무슨 이득이라도 볼 게 있는 줄 아느냐? 됐다, 너희 같이 어린아이들과 시시콜콜 따져서 뭘 하겠느냐, 큰조카야, 가져와라.”
육충이 손을 흔들자 시동 하나가 길이가 1척에 너비가 5치쯤 되는 놋쇠 자물쇠가 채워진 황리목 상자 하나를 들고 왔다.
육건중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그 상자를 주시했다.
육충은 사람들에게 상자에 채워져 있는 세 개의 구리 자물쇠를 보여주었다.
“자 보게, 처음이랑 똑같이 멀쩡하다네.”
상자에 채워져 있는 놋쇠 자물쇠는 겉으로 보았을 때는 아주 견고하고 처음과 다르지 않게 멀쩡해 보였지만, 사실 모두들 속으로는 다 알고 있었다. 만약 육 노태야가 유언장을 두 개로 나눠서 남겨두지 않았다면, 이 상자가 통째로 바뀌었거나, 마음먹고 이 자물쇠를 따는 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일이 이미 여기까지 온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해 봤자 괜한 갈등만 불러일으킬 것이 뻔하니 다들 입을 다물고 있는 것뿐이었다.
증조부 어르신이 제일 먼저 품에서 열쇠를 꺼내 첫 번째 자물쇠를 열었고, 이어서 육충도 열쇠를 꺼내 두 번째 자물쇠를 열었다. 그다음 열쇠는 이상하게도 항렬이 더 높은 육릉이 아니라 항렬이 제일 낮은 육표의 손에 있었다. 집안의 네 어르신들 중에 유일하게 육릉 한 사람만이 열쇠가 없다는 사실이 아주 놀라웠지만, 임근용은 이내 왜 육릉이 제일 먼저 나서서 증조부 어르신과 맞섰는지 알 것도 같았다. 임근용은 이것이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육 노태야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안배한 것인지 절로 궁금해졌다. 하지만 이제는 진실이 무엇인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것이다.
상자가 열리자 증조부 어르신이 안에 있는 서신을 꺼내 육씨 가문 사람들에게 봉투의 봉인이 완벽한지 확인해 주었다. 그런 다음 육건립에게 동시에 각자의 손에 있는 편지를 뜯고 내용을 대조한 후 사람들에게 발표하라 지시했다.
대문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대문을 등지고 서 있던 육씨 가문 사람들의 몸이 차갑게 식었다. 임옥진은 극도로 분노했고, 육건립은 눈물을 글썽였으며, 육건중은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