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427
427화. 착복
육 노부인이 말했다.
“그래서 네 생각은 어떠냐.”
육건중이 말했다.
“관과 묘지도 그렇긴 하지만, 이 불사가 제일 급해요. 우리 정도 되는 집안에서 아버지 같은 분의 장례를 치른다면 적어도 스님 천 명은 불러다 백 일 동안은 해야죠.”
그는 이렇게 말하며 육 노부인의 눈치를 살폈다.
누군가가 헉 하고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사람은 너무 사치스럽게 낭비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육건중이 뭔가 다른 속셈을 품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지만 누구도 감히 나서서 반대하지는 못했다. 결국 지금 세상의 풍조가 이랬다. 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에게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생전과 마찬가지로 효도를 다해야 했다. 죽은 사람을 위해 성대한 장례를 치러 주는 이런 풍조 때문에 가난해서 죽을 지경인 사람들마저도 자식이나 땅을 팔아가며 호화롭게 장례를 치르려 했다. 육씨 가문이 돈이 없는 집도 아니고, 더구나 돌아가신 분이 이 집안의 가장인 육 노태야이지 않은가.
그들 중에서 임근용이 가장 태연했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이런 일들을 한 번 겪은 적이 있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세세한 것까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지만 중요하고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아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뭐가 어찌 되든 천 명의 스님을 불러 백일 동안 불사를 하며 십만 관이 넘는 돈을 쓰게 될 것은 틀림없었다. 그래서 임근용은 뭔가 말을 하려 입을 여는 임옥진을 가로막았다.
“고모, 시간이 늦었는데 친정 어르신들께서도 이제 곧 돌아가시지 않을까요?”
임옥진은 아주 불만스러웠다. 그녀도 체면치레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육 노태야의 장례를 성대하게 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그렇대도 정도껏이어야 하지 않은가. 이건 너무 도가 지나쳤다. 불사 한 가지에 이렇게 많은 돈을 쓴다면 전체 장례비용이 얼마나 많이 들지는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쉽게 가늠할 수 있었다. 이 돈이 가문의 공금에서 나온다고 해도 결국 각 집에서 균등하게 분담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육건중이 못된 계략을 꾸미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육함과 육건신이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에는 외원의 일들을 전부 육건중 부자가 쥐고 흔들 수 있을 테니 딴 주머니를 차기 얼마나 좋겠는가!
그래서 임옥진은 임근용의 자신의 말을 막는 것이 매우 불쾌했다. 그녀가 언짢은 티를 내며 말했다.
“다들 우리가 바쁜 걸 알고 있지 않니. 아까 갈 때는 따로 알리지 않고 조용히 가겠다고 했다. 그리 걱정되면 너 혼자 가라.”
그녀는 짜증을 내며 쓸데없이 참견하는 임근용을 내쫓으려 했다. 그녀들이 이러는 사이에 육 노부인은 벌써 흔쾌히 승낙했다.
“알았다, 불사는 그렇게 하는 걸로 해서 둘째 네가 준비해라. 평생을 고생하며 사신 네 아버지한테 해 줄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는 없구나.”
육 노부인은 이렇게 말하며 또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승낙하자 아무도 감히 반대하지 못했고 임옥진도 달갑지는 않았지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차남가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육건립과 여씨 또한 눈을 내리깐 채 아무래도 괜찮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뭐가 어찌되든 임옥진 혼자서만 그 돈을 내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만히 참고 있기가 쉽지 않았다.
육건중은 기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아직 더 많은 계획들이 있지만, 지금은 이쯤에서 멈추는 것이 현명했다. 다음에 또 적절한 기회가 왔을 때 손을 써도 늦지 않을 것이다.
* * *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뒤 육 노태야의 장례가 마침내 정식으로 시작됐다. 장례와 관련된 모든 일은 육 노부인의 동의하에 육건중이 관리했다. 그들은 최대한 호화롭게 하면서 번거로운 예법도 모두 따르며 남들 눈에 최대한 보기 좋게 치르려 노력했다.
천 명의 스님이 와서 불사를 하면 얼마나 시끄러울지는 굳이 상상해 보지 않아도 너무나 뻔했다. 거기에 정식으로 조문하러 온 조문객과 이런저런 명목으로 돈을 뜯어먹기 위해 온 친척과 친지들까지 더해져 임옥진에서부터 강씨까지 집안의 모든 사람들은 엉덩이를 붙일 새도 없이 바쁘게 뛰어다니며 고생했다.
이와 비교하면 육 노부인의 영경거는 육씨 집안에서 가장 조용한 곳이라 할 수 있었다. 임근용은 육 노부인의 병 수발을 한다는 핑계로 편하게 쉬면서 한가롭게 일을 처리했다. 그녀는 그저 잠깐씩 빈소에 가서 무릎을 꿇고 울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임근용은 육씨 가문 사람들이 이 장례를 어떻게 치르는지, 얼마를 쓰는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 덕에 그녀는 곧 기력을 회복했고, 먼 길을 오느라 살이 빠졌던 의랑도 살이 포동포동하게 올라 목소리마저 우렁차졌다.
반면 임옥진은 피로가 극에 달했다. 그녀는 늘 차남가가 무슨 소란을 피우지는 않을까, 돈을 착복해 딴 주머니를 차지는 않을까, 손님과 친척들 앞에서 허장성세하며 장남가의 기세를 누르려 하지 않을까 하며 전전긍긍했다. 임옥진은 최선을 다해 장남가의 맏며느리 노릇을 하면서도 차남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녀는 차남가가 함부로 손을 쓰지 못하게 감시하면서 손님들 앞에서 효도하는 모습까지 보여야 했기 때문에 정말로 피곤했다.
임옥진은 얼굴이 환해진 임근용을 보며 질투 어린 표정으로 불만스럽게 말했다.
“넌 아주 여유만만한가 보구나.”
임근용은 대답 없이 앵두가 오랫동안 끓인 제비집 죽을 그녀에게 건넸다.
임옥진은 제비집 죽에 무슨 원한이라도 맺힌 사람처럼 이를 갈며 한 그릇을 다 먹어 치우더니 씩씩거리며 말했다.
“뭐 하나 물어보자, 오늘 그 늙은 땡중이 어머님께 경전을 베끼고 탑을 세워야 한다며 사기 치는 거 너도 봤지?”
임근용은 의랑의 통통한 작은 손을 가져다 뽀뽀한 뒤 아이를 보며 자애롭게 웃었다.
“예.”
임옥진이 화를 내며 말했다.
“그 늙은 중놈을 누가 데려왔는지 몰라? 경전을 베끼고 탑을 짓는다며 또 얼마나 많은 돈을 뜯어 가려 들겠어? 네 시아버지랑 둘째가 없는 동안 외원의 일들을 전부 그것들이 도맡아 하고 있는데 어떻게 될지 정말 몰라서 그래? 그런데도 넌 어머님을 말린 생각도 안 하고 대체 뭐하는 거야? 그 돈에 앞으로 의랑이한테 돌아갈 몫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아야지!”
육건중은 정말 가증스러운 인간이었다. 육건신과 육함이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육 노부인을 꾀어 이런 일을 맡은 다음 기회를 틈타 돈을 착복하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임근용이 눈을 들고 임옥진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지금 쓰는 돈은 다 할머님 거잖아요. 어떻게 쓰시든 그건 할머님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지요. 제가 말씀드린다고 해서 할머님을 설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괜히 불효한다는 오명만 쓰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고모도 괜히 이 일에 왈가왈부 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이 아무 말 안 하면 우리도 가만히 있어야 해요. 괜히 약점 잡힐 짓을 뭐 하러 하세요.”
육건중이 무슨 짓을 해서든 육씨 가문의 밑천을 털려 하고, 육 노부인과 육건립도 아까워하지 않는데 임근용이 뭐 하러 참견한단 말인가? 어떻게 하든 결국에는 망하게 될 텐데 조금 빨라지거나 느려진다고 해서 뭐가 그리 달라지겠는가. 육건중이 지금 더 많이 챙기면 챙길수록 앞으로 더 많은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임옥진이 씩씩대며 말했다.
“참 마음도 넓구나.”
임옥진이 재빨리 계산해 보니, 그 많은 비용을 세 집이 똑같이 나눈다면 장남가에서 부담해야 할 돈만해도 벌써 몇 만 관이었다. 그녀는 아무래도 한 마디 해야지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임근용이 한숨을 내쉬었다.
“차남가는 물론이고, 셋째 숙모와 숙부께서도 아무 말씀 안 하고 계시잖아요. 고모께서 그렇게 말씀하고 싶으시면 가서 하세요. 전 그저 나중에 고모부께서 돌아오셔서 체면 상해하시지는 않을까 걱정돼서 드린 말씀이에요.”
이런 일을 빌미로 소란을 피우며 별것 아닌 것도 크게 부풀리는 것이 차남가의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임옥진은 자신이 이미 여러 번 차남가의 이런 수법에 당해 교만하고 방자하고 포용력이 없다는 욕을 먹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것들이 날뛰는 걸 그냥 이렇게 보고만 있으란 소리냐?”
임근용이 한참을 침묵했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에요. 만약 고모께서 잠시 그들을 놓아준 뒤에 그들이 만든 가짜 장부와 빼돌린 돈을 찾아내신다면, 설령 그 돈을 쓰더라도 헛된 일은 아니겠죠.”
임옥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생각이야 진작에 했다만, 그게 어디 쉽니?”
임근용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바로 범포였다.
임옥진은 침묵했다.
문 쪽에서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쌍복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삼부인.”
임옥진은 언짢은 듯 눈썹을 들어 올렸다. 여씨는 탐색하듯 문 앞에 서서 의랑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약간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큰형님.”
임옥진이 정색하며 말했다.
“들어와 앉아.”
여씨는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왔지만 임옥진의 곁에 앉지 않고 오히려 임근용 옆에 붙어 앉으며 웃는 얼굴로 손을 뻗어 의랑을 안았다.
“우리 보배, 작은할머니가 한 번 안아보자.”
의랑이 입을 벌리고 웃으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씨가 몹시 기뻐하며 웃자 임옥진은 질투심에 화가 치밀었다. 의랑은 집으로 돌아온 지 벌써 보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그녀에게 낯을 가리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 여씨와 저렇게 친해졌단 말인가? 임옥진은 부러워서 질투가 다 났지만 자기 감정을 절대 인정하지 않으며 정색하고 여씨에게 물었다.
“셋째 동서, 무슨 일로 왔어?”
여씨는 당황하지 않고 의랑의 얼굴에 연신 입을 맞추며 말했다.
“육소가 우리 육선이랑 같이 돌아왔어요. 그리고 태명부 고모님도 오셨더라고요. 지금 빈소에서 울고 계세요. 곧 이리로 오실 거예요.”
임옥진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가 봐야겠네.”
임옥진은 송씨가 그녀를 대신해 거기서 손님들을 접대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여씨는 황급히 나가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은 눈빛을 하고 임근용에게 다가왔다. 여씨의 태도가 그다지 우호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쁘다고도 할 수 없었다.
“육소가 손님을 한 분 데리고 왔어, 육선이 말로는 매보청이라는 사람인데 둘째랑 구면이라고 하더구나. 내가 기억하기로는 예전에 우리 집이랑 모직 거래를 했던 사람인 것 같은데, 맞지?”
임근용은 조금 놀랐다. 그녀 역시 육 노태야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매보청이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면 들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했었다. 그녀가 놀란 건 그것 때문이 아니라 그가 육소와 함께 왔다는 것 때문이었다. 여씨가 이렇게 의뭉스럽게 구는 걸 보니 두 사람이 보통 이상으로 친밀해 보인 것이 틀림없었다.
여씨는 임근용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너스레를 떨었다.
“네 셋째 숙부께서 너한테 가서 알려주라고 하더구나.”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재산 분할은 이미 끝났으니 무슨 큰 파란이 일지는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