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436
436화. 허점 (2)
임근용이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방령이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그녀는 아마도 임옥진이 육 노부인에게 울며 하소연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화롯가에 앉아 육함의 무릎 보호대를 꺼내 꼼꼼히 바느질 했다.
또 차를 한 잔 마실 시간쯤 지나자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쌍복이 문발 밖에서 말했다.
“이소부인, 대부인께서 오셨어요.”
임근용이 얼른 바느질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임옥진을 맞이했다.
임옥진은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여전히 화가 난 얼굴로 말없이 안으로 들어왔다. 방 마마가 그녀의 뒤를 바짝 따라 들어오며 임근용에게 필사적으로 눈짓했다.
임옥진이 화로 앞에 앉아 눈으로 주변을 훑자 방 마마가 한숨을 내쉬고 시녀들에게 말했다.
“전부 나가 있어라.”
그런 다음 그녀 자신 역시 밖으로 나가 문을 지켰다.
임근용이 임옥진에게 직접 차를 올리며 말했다.
“고모님 무슨 일이세요?”
임옥진이 말했다.
“안 마실란다. 방금 어머님께서 주시는 차를 배 터지게 먹고 왔어.”
임옥진은 육 노부인에게 육건신이 사리 분별도 못 하고 아버님의 장례를 치르러 오면서 희첩들까지 데리고 온다며 불평했다. 그녀는 그가 남들이 비웃든 말든 신경도 안 쓰는 것 같고 더구나 이낭들이 묵을 곳도 마땅치 않다며 하소연을 해댔다. 육 노부인은 별로 듣고 싶지 않아 계속 그녀에게 차만 권했다.
임근용은 그녀가 마시지 않겠다고 하자 찻잔을 놓고 조용히 한쪽 옆에 서서 그녀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임옥진은 꾸물거리며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내가 전생에 죄가 많은 모양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임근용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지 얼굴을 한쪽으로 돌리고 조용히 손수건으로 눈물만 닦았다.
임근용은 직접 뜨거운 물에 적신 손수건을 가져와 말없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뜨거운 수건을 받아든 임옥진은 두어 번 눈물을 닦더니 더는 참지 못하고 손수건에 얼굴을 묻은 채 이를 악물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임근용은 잠시 망설이다가 임옥진의 등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그녀는 정말 뭐라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이런 일은 그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었다.
방 마마가 이 소리를 듣고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빼꼼 디밀더니 다시 밖으로 물러났다.
강한 성격의 임옥진은 금세 눈물을 그치고 민망해하며 임근용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임근용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그녀에게 다시 뜨거운 손수건을 건네주고 말했다.
“민행도 곧 도착할 것 같아서 좀 전에 집을 청소해 두라 했어요.”
임옥진이 코를 훌쩍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네 시아버지도 곧 돌아오실 것 같구나.”
임근용은 임옥진이 다 쓴 손수건을 건네받으며 말했다.
“그럼 사람을 시켜서 방을 청소해 둘게요.”
임근용이 이렇게 눈치껏 자기 할 일을 하며 꼬치꼬치 캐묻지 않자 임옥진의 엉망이었던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그녀가 나지막이 말했다.
“사람을 시켜서 추화원을 좀 치워두라는 말을 하러 왔다. 방 세 개를 치우고 안방은 비워두려무나.”
임근용은 세 첩실의 방을 만들어 두라는 뜻이라는 걸 알아채고 얼른 대답했다.
임옥진은 또 잠시 동안 말없이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의랑이가 이가 나고 있다고?”
“예, 그래서 요 며칠 좀 칭얼대더라고요.”
임근용이 임옥진과 함께 아이에게 다가가니 의랑은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 아이는 희고 보드라운 두 손을 불끈 쥐고 분홍빛 얼굴로 작은 입을 삐죽 내밀고 있었는데 땀에 젖은 가는 머리카락이 이마에 붙어 있었다. 어찌나 귀여운지 보면 볼수록 더 귀여운 것 같았다.
임근용은 이런 의랑을 보고 있으면 세상 모든 걱정이 다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웃으며 손수건으로 의랑을 땀을 닦아 주려는데 임옥진이 먼저 손을 뻗어 땀을 닦았다. 임옥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의랑을 응시하며 말했다.
“아이를 잘 보살펴야 해, 이 아이야말로 우리 집 기둥이다. 괜한 잔소리 한다고 싫어할지는 모르겠다만, 그래도 응석을 너무 받아주면 안 돼. 이런 날씨에 데리고 나가면 감기에 걸릴 수도 있잖니.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어. 둘째도 내가 매일 보살피고 가르친 덕에 오늘날 이렇게 잘 자란 거 아니겠어?”
두 사람의 생각이 일치하든 아니든 간에 어쨌든 지금 임옥진이 하는 말은 확실히 호의에서 나온 것이었다. 임근용은 그녀의 말을 그냥 들어주는 것과 실제로 행하는 건 별개라고 생각하며 부드러운 표정으로 온화하게 대답했다.
“예.”
임옥진이 의랑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아운이도 임신했다고 하더구나.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안타까워 죽겠어. 네 어머니는 참 복도 많구나.”
임근용이 집에 돌아온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임옥진은 육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었는데 지금에서야 그녀에 대한 말을 하고 있었다.
“아가씨는 잘 지낸대요?”
임옥진은 꽤나 복잡한 표정을 지었지만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당연히 잘 지내지.”
임근용은 그녀가 길게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아 하는 것 같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는 임옥진을 배웅한 후 방죽과 함께 추화원을 정리하러 갔다.
* * *
추화원은 아주 외진 곳에 있었다. 육씨 가문 저택 북쪽 연못 부근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저택의 외벽과 나무 한 열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평소에는 사람이 살지 않던 곳이라 도대체 몇 년이나 비어 있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비파나무 한 그루가 가지와 잎이 무성하게 자란 채로 정원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담벼락 부근에는 마른 들풀이 한 자 남짓 자라 있었고 담벼락에는 물 얼룩까지 얼룩덜룩해서 집이 아주 황량해 보였다.
임근용이 사람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안방은 그런대로 상태가 괜찮아서 열심히 치우면 그럭저럭 쓸 만해 보였다. 하지만 좌우의 곁방은 심하게 파손되어 치워도 사람이 살 수 있을지 의문이 가는 상태였다.
임근용은 애교가 철철 넘치는 첩들이 집에 들어와 육건신 앞에서 불평을 늘어놓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첩들은 아마 임근용과 임옥진을 하나로 싸잡아 묶고 제일 먼저 임근용을 공격할 것이다. 그녀들이 임근용의 사람 됨됨이가 글러 먹었다며 비난하면 육건신은 그녀들과 함께 임근용에 대한 어떤 선입견을 갖게 될 것이 분명했다.
이건 처리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방죽이 절로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이소부인, 이 방은 칠을 새로 하고 창호지랑 휘장을 비롯해서 전부 다 바꿔야 겨우 모양이 좀 잡힐 것 같아요.”
임근용이 안팎을 한 바퀴 돌아보고 말했다.
“바로 사람을 데려와서 정리해.”
방죽이 아주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새로 칠을 하면 당분간 사람이 살긴 힘들 거예요.”
이낭들이 와서 벽이 아직 마르지도 않은 걸 발견하면 이렇게 추운 날에 얼어 죽으라는 거냐고 불평을 해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칠을 안 하자니 벽에 몇 년 동안 낀 물때가 얼룩덜룩했고, 어떤 곳은 심지어 칠까지 벗겨져 안의 푸른 벽돌이 다 보일 정도라 누가 볼까 망신스러웠다. 정말로 진퇴양난인 상황이었다.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양쪽 곁방 중에 어느 쪽이 더 나은 것 같아?”
방죽이 둘러보고 말했다.
“오른쪽 곁방은 연못에 가까워서 여름에는 햇빛이 비치지만 겨울에는 습기가 차서 더 추워요. 그러니 왼쪽이 나을 거예요.”
임근용이 말했다.
“그럼 왼쪽 방은 벽을 새로 칠하고 창호지를 다시 발라. 오른쪽 방은 깨끗이 청소한 뒤에 창호지랑 휘장을 바꾸고. 나중에 이낭들한테 와서 직접 고르라고 하면 되지 않겠어?”
만약 벽이 보기 흉해서 싫다면 새로 칠한 방을 택하라 하면 되고, 벽이 덜 마른 것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오른쪽 곁방을 택하라 하면 되는 것이다. 어쨌든 집의 상태가 이래서 아무리 세심하게 준비를 한대도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탓하려면 임옥진이 마련해준 집의 상태가 좋지 않은 걸 탓해야 하지 않겠는가. 방죽이 절로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이소부인, 정말 현명하세요.”
임근용은 책자를 들고 구비해 두어야 할 가구들을 명확하게 짚어준 뒤 방죽에게 지시했다.
“다 치우고 나서 나한테 보고해. 혹시라도 중간에 누가 와서 간섭하거든 일단 손대지 말고 나한테 보고 먼저 해.”
임옥진을 빼면 중간에 와서 간섭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방죽은 이것이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잘 알았지만, 임근용이 그녀의 위에 있기 때문인지 오히려 별로 걱정이 되지 않았다.
임근용이 앵두와 함께 연못가를 지나치는데 앵두가 놀라며 정자 쪽을 가리켰다.
“아가씨, 저기 좀 보세요, 이 추운 날에 정자에 사람이 앉아 있네요?”
임근용이 힐끗 보니 그녀들을 등지고 앉아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상복을 입은 덩치가 우람한 남자였는데 그런 몸매를 가진 사람은 육륜 밖에는 없었다. 임근용이 막 아는 체를 하려는데 갑자기 육륜이 벌떡 일어나더니 걸음을 옮겼다. 그의 앞에 다른 누군가가 서 있었는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 사람의 얼굴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연청색 장포를 입고 있다는 것만큼은 아주 또렷하게 보였다.
지금 육씨 가문 사람들은 전부 상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임근용은 이 사람이 육씨 가문 사람이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 도와주러 온 친척이나 친구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이 추운 날 누가 할 일 없이 사방에서 바람이 세차게 불고 사람의 그림자조차 없는 이곳에 와서 육륜과 이야기를 나눈단 말인가? 정말로 할 말이 있었다면 앞 정원에서 했을 것이다.
임근용은 심장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처럼 입이 바짝 마르고 발이 차갑게 식었다.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재빠르게 뒤를 돌며 낮은 목소리로 앵두를 불렀다.
“가자.”
앵두 역시 육륜을 알아보고 절로 의아해하며 말했다.
“이상하네요, 오공자께서 대체 무슨 일이실까요? 이렇게 추운 날…….”
임근용이 차갑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
“주인이 뭘 하든 그게 너하고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앵두는 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를 보고 다소 억울해하며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노비가 쓸데없이 입을 놀렸네요.”
임근용이 말했다.
“나한테 하는 건 괜찮지만, 다른 사람한테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도 있다는 걸 명심해. 쓸데없이 입을 놀리다가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나도 널 지키기 어려울 수도 있어.”
앵두는 자신이 육운에게 갈 뻔했던 일을 떠올리며 진지한 표정으로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명심할게요. 늘 입조심 할게요.”
임근용이 고개를 돌려 정자 쪽을 바라보니 육륜이 현관 기둥에 기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