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44
44화. 외숙부 (2)
임 노부인은 눈을 내리깔고 천천히 차를 마시며 말했다.
“모처럼 너희 외숙이 왔구나. 가족이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니 자주 모이는 것이 좋지. 하지만 너희 고모하고 이미 선약이 되어 있는데 갑자기 안 가면 신용을 잃게 되지 않겠니…… 그럼 이렇게 하자, 셋째는 가지 말고 넷째 너는 먼저 외숙한테 인사드리고 고모 댁으로 가려무나. 네 외숙도 아마 하루만 있다 가지는 않을 게다.”
임근용은 말을 듣고 임근음에게 도와달라는 듯 재빠르게 눈짓을 했지만 임근음은 그저 웃기만 했다.
임근지와 쌍둥이가 전부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본 임 노부인이 또 말을 이었다.
“이번 모임은 네 고모가 사촌 동생 운이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란다. 예의를 지키고 겸손하게 굴어야 한다는 걸 명심하도록 해라.”
이 말은 쌍둥이에게 주인집의 의도를 거스르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이었다.
아가씨들이 전부 웃으며 화답했다. 임근용은 신발 끝을 쳐다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남의 환심을 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 그런데 과연 남한테 미움을 사는 것도 어려울까? 이건 당신들이 나한테 강요한 거나 마찬가지야.
두 자매는 도씨에게로 갔다. 때마침 도씨가 공 마마와 춘아 등의 도움을 받으며 조금 더 활기차게 보이려고 열심히 단장을 하고 있었다.
임근용은 앞으로 나가 어머니의 팔을 안고 눈시울을 붉혔다.
“저 가기 싫어요. 고모 댁이 가깝긴 하지만, 외숙부는 한참 동안 못 뵈었잖아요.”
전생까지 포함해 계산해 본다면 그녀는 근 몇 년 동안 도순흠(陶舜钦)을 만난 적이 없었다.
도씨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것아, 지금 당장 고모 댁에 갈 것도 아니잖아. 외숙한테 먼저 인사하고 가면 되지, 뭐가 그리 급하다고 그러니?”
그녀는 또 임근용을 달래듯 말했다.
“아가, 자꾸 집에 숨어있으려고만 하면 안 되는 거야.”
갑자기 밖에서 공 마마의 말소리가 들렸다.
“노비, 삼노야께 인사 올립니다.”
이어서 옅은 청색 장포를 입은 임 삼노야가 허리를 살짝 굽히고 등을 움츠린 채 입구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그는 웃는 얼굴로 부채질하며 풍류를 즐기는 척하고 있었다.
“너희들 다 여기 있었구나.”
사실 그는 임 노태야가 다시 가서 도씨에게 사죄하고 화해하라고 명령해 온 것이었다. 노태야는 반드시 도순흠에게 부부가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 주어 도씨 가문 사람들을 안심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임 삼노야는 도씨와의 끊임없는 싸움에 진작부터 신물이 났지만 오지 않을 수도 없었다.
도씨의 얼굴이 즉시 어두워졌고, 눈에 분노의 불길이 빠르게 번져갔다.
임근음과 임근용은 임 삼노야가 무엇을 하러 왔는지 알아채고 예를 갖추며 인사를 한 뒤 한쪽 옆으로 비켜섰다.
임 삼노야는 도씨의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좀 당황했지만 금세 또 짜증이 났다. 그는 그녀의 화가 또 다시 폭발할까 봐 얼른 딸을 훈계했다.
“너희 외숙부와 사촌 오라버니가 오셨다. 곧 들어오실 거야. 남들이 우리 임씨 가문의 딸들이 버릇이 없다고 비웃지 않도록 예의를 잘 차리거라. 외숙부를 만났을 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뭘 해야 할지, 너희들도 잘 알고 있지?”
임근음과 임근용은 그가 도씨가 도순흠 앞에서 진실을 감추고 자신의 잘못을 덮어 줄 수 있게끔 두 사람이 도씨를 잘 설득해 달라는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들은 속으로 그를 경멸해 마지않으며 대답도 하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딸들의 거부 의사가 너무 뚜렷해서 임 삼노야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떻게 하면 체면이 상하지 않고 다시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고 머리를 쥐어짰다.
도씨가 옆에서 냉소했다.
“뻔뻔하기도 하지! 능력만 있으면 세상 두려울 게 뭐 있겠어요! 이제는 딸 앞에서 얼굴 들기도 부끄럽겠네요. 나 같았으면 수치스러워서 진작 죽었을 거예요. 벽에 머리를 부딪쳐 죽으면 깔끔하고 좋을 텐데요.”
임 삼노야가 분노했다.
‘이 여자가 정말 미쳤나, 딸들 앞에서 죽어야 하네 어쩌네 하며 저주를 퍼붓다니, 세상에 이런 악처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도 악에 받쳐 말했다.
“도채령! 당신이 부녀자의 미덕 중에 제대로 지키는 게 있긴 하오? 내가 당신한테 평생 무슨 빚을 졌다고 착각하지 마시오, 내가 당신 같은 사람을 평생 참아 주고 있는 것이니. 설마 당신 오라버니와 조카를 불러다 날 한 대 치고 싶어서 그러는 거요? 자! 어디 불러보시오! 무서워한다면 내 임(林) 자를 거꾸로 쓰겠소!”
도씨는 몸이 좋지 않아 크게 움직이지 못하고 눈만 흘기며 냉소적인 목소리로 비웃었다.
“임 삼노야께서는 정말 학식이 깊으시네요. 임(林)자를 거꾸로 쓰면 못 알아본다 쳐도, 그까짓 거 뒤집기만 하면 바로 알아볼 수 있는데, 그게 임(林) 자가 아니란 말인가요? 아니면 학문이 깊으신 임 삼노야한테는 또 다른 고견이 있으신 건가요? 소첩이 상세히 들어보고 싶군요.”
임근음, 임근용은 재빠르게 한 사람은 아버지를 붙잡고 한 사람은 어머니를 부축하며 말렸다.
“그만 하세요!”
임 삼노야는 화가 나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이 간사한 계집! 딸을 이따위로 가르치면서 부끄럽지도 않느냐!”
도씨가 대꾸했다.
“이 등신 같은 놈아! 가문의 명성을 망치고 있으면서 부끄럽지도 않느냐!”
“풋!”
누군가가 밖에서 참지 못하고 낮게 웃었다.
이어서 공 마마가 굳은 표정으로 차남가의 사공자 임범지(林凡之)를 데리고 들어왔다.
조카 앞에서 망신을 당한 임 삼노야는 나이에 비해 별로 늙지 않은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 그리고 도씨가 자신의 체면을 세워 주지 않는 것에 더욱 분노하며 소매를 털고 자리를 떠나려 했다.
임범지는 웃음을 참으며 도씨 부부에게 허리를 굽히고 한참 동안 예의를 차린 후 큰 소리로 말했다.
“조카가 셋째 숙부와 셋째 숙모께 인사 올립니다. 큰아버지께서 두 어른께 도 대인과 수(水) 의원을 데리고 오실 거라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넷째 오라버니가 수고가 많으셨네요, 오라버니도 바쁠 텐데 얼른 가 보세요.”
이 넷째 오라버니는 시녀를 건드려 친모가 약을 먹여 자신의 아이를 낙태시키는 걸 뻔히 봤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오히려 이에 안심하며 정식으로 아내를 맞아들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임근용은 그런 그에게 아무런 호감이 없었다. 그가 임 삼노야 부부가 싸우는 것을 보고 비웃자 더욱 마음에 안 들어 얼른 말을 보태 그를 쫓아냈다.
임 삼노야가 아무리 못났다고 해도 아무나 그녀의 면전에서 대놓고 그를 무시하고 비웃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두 사촌 자매에게 인사를 하려 했던 임범지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했다. 다시 보니 임근용과 임근음의 얼굴에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즉시 분위기를 파악하고 대강 얼버무리며 한 마디 한 뒤 얼른 자리를 떴다.
밖에서 말소리가 들려오자 임 삼노야는 비로소 분노한 기색을 거두고 빙그레 웃으며 입구로 달려가 도순흠과 사람들을 맞이했다.
도씨가 침상에 눕자 임근음은 비단 휘장을 내리고 임근용을 끌고 병풍 뒤로 숨었다.
두 자매는 병풍 틈으로 훔쳐보았다. 수 의원은 수염과 머리카락이 모두 하얗고 맑은 얼굴에 침착한 표정이었다. 그녀들은 조금 안심이 되어 자기도 모르게 기대를 품었다.
수 의원은 왼쪽 맥을 짚더니 또 오른쪽 맥을 짚었다. 또 휘장을 걷고 도씨의 안색과 혀를 본 후 수염을 쓰다듬으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곁에 있던 임 삼노야가 서둘러 물었다.
“선생? 안사람의 병이 어떤가?”
수 의원이 말했다.
“밖에서 말씀하시지요.”
밖으로 나가자 밖에서 차를 마시면서 기다리던 임 대노야와 도순흠이 일제히 물었다.
임근용은 그가 한참 동안 심오한 말을 늘어놓는 것을 듣고 나서 간결하게 정리했다. 그는 도씨의 병이 가볍지 않으니 반드시 안정을 취하며 몸을 보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더 이상 자극을 받지 않게 해야 하며 지나친 걱정으로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종이와 먹을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임 삼노야가 약을 구해 오라며 여러 번 사람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후 임 대노야가 수 의원을 데리고 나갔다.
외부인들이 사라지자 도씨가 낮은 기침을 했다.
“외숙께 들어오시라고 해라.”
“채령아!”
황토색 족제비 가죽을 덫 댄 비단 상의를 입고 사슴 가죽 장화를 신은 도순흠이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문발을 젖히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그의 눈매는 도씨와 약간 닮아있었고, 그 나이의 다른 남자들처럼 길게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의 행동에는 다수의 서생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호탕하고 쾌활한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도씨는 큰 오라버니를 보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억지로 눌러 참았다. 그녀가 막 거짓 웃음을 짜내려는데 웃자마자 기침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도씨가 참으려 하면 할수록 기침은 더욱 심해져 숨이 찬 나머지 얼굴이 다 빨개졌다.
임근용 자매가 얼른 물을 건네며 도씨의 가슴을 어루만졌고 두 자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도순흠의 안색이 순간 확 변하더니 이를 악물고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는 도씨가 기침을 멈추자 비로소 웃음을 지었다.
“방금 노태야를 뵈러 갔다가 신지를 만났는데, 아이가 그새 철이 많이 들은 것 같아 내 아주 기뻤다. 지금 보니 두 조카딸들도 이제 다 큰 것 같구나.”
임근용과 임근음이 얼른 그를 불렀다.
“외숙!”
외숙부와 조카들은 눈을 마주치며 서로의 마음을 읽었다.
몇 마디 인사를 나누고 나서 도씨는 그들을 쫓아냈다.
“어미가 네 외숙한테 할 말이 좀 있단다. 아음이는 공 마마한테 가서 외숙이 제일 좋아하는 닭 자라 탕을 준비하라고 전하렴. 우리 귀염둥이는 초대를 받았으니 이제 가야지. 시간이 늦었어, 얼른 가! 사람들이 기다리겠어!”
* * *
임근용은 어쩔 수 없이 여지, 계원을 데리고 임근지 등과 합류하여 눈이 펑펑 오는 가운데 마차를 타고 육씨 가문으로 갔다.
임근지와 임근용은 같은 마차를 탔다. 임근지는 임근용이 차에 오르자마자 다정하게 팔짱을 끼며 아첨하였다.
“넷째 언니, 드디어 우리랑 같이 외출할 수 있게 돼서 너무 기뻐요. 지난번에 육함 오라버니가 오상 오라버니를 초대했었는데 그때 오상 오라버니가 고훈을 불었거든요. 내가 볼 땐 언니보다 더 잘 부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근데 근주랑 근옥이는 오라버니가 더 잘 분다고 하더라고요. 오늘 기회가 되면 언니랑 오상 오라버니가 우열을 다퉈볼 수도 있겠네요.”
임근용은 다른 생각을 하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원래 오상 오라버니가 나보다 더 잘 불어.”
이건 그녀가 겸손한 척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재능이 뛰어나다는 오상의 명성은 정말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전생에서 그녀는 정말로 오상보다 잘 불지 못했다. 두 사람이 여러 번 대결을 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그녀가 이겨본 적은 없었다.
설사 다시 태어나 몇 년을 더 살았다 해도 그녀는 오상을 능가할 자신이 없었다.
임근지는 곁눈질로 임근용의 도자기 같이 하얀 피부와 그림처럼 가늘고 긴 두 눈썹을 바라보며 무언가 말을 하려다 말았다.
‘아니에요, 육함과 육륜은 언니가 오상 오라버니보다 잘 분다고 주장했어요.’
임근지는 육륜의 평가는 그가 편파적이기 때문이라 생각했지만 육함의 평가는 틀림없이 그 나름의 이유가 있으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임근용에게 이 말을 전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녀는 늘 임근용이 육함에게서 멀어질수록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