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441
441화. 일치
방죽이 어찌 감히 그녀들의 절을 받겠는가, 그녀는 몸을 옆으로 틀어 피하며 연거푸 말했다.
“제가 어찌 감히 절을 받겠어요. 전 그저 주인께서 시키시는 일을 하는 것뿐인걸요.”
쌍복이 문간에서 고개를 안으로 들이밀자 임근용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낭들도 먼 길을 오느라 많이 피곤할 테니 더는 방해하지 않고 이만 가 보겠네.”
“이소부인, 잠시만요.”
아유가 소성에게 눈짓하자 소성이 얼른 안으로 들어가 보따리를 들고 나왔다. 그녀가 두 손으로 임근용에게 바치며 애원했다.
“이소부인, 이건 저희 자매가 대부인을 공경하는 마음을 담아 만든 신발 두 켤레예요. 이소부인께서 대부인께 좀 전해 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아요.”
방죽은 받지 말고 이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듯이 임근용에게 눈짓했다. 임근용은 웃으며 앵두에게 받으라고 지시한 뒤 직설적으로 말했다.
“내가 이낭들 대신 전해 주는 거야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지. 다만 요 근래 어머님께서 아주 바쁘시고 기분도 좋지 않으시니 나중에 좀 한가해지시고 난 후에 전해드리겠네.”
두 사람이 미리 알아본 바에 따르면 임근용은 임옥진의 친조카였다. 그녀가 이렇게 물건을 전달해 주겠다고 하는 것 만해도 이미 큰 선심을 쓴 것이나 다름없는데 어찌 다른 토를 달 수 있겠는가. 그녀들은 입이 닳도록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며 임근용을 공손하게 배웅했다.
“노비가 이소부인께 인사드려요.”
임근용을 데리러 온 방령이 임근용에게 인사를 한 뒤 담담한 눈빛으로 두 첩을 훑어보았다. 그녀는 얼굴을 홱 돌리고 임근용의 팔을 부축해 함께 밖으로 걸어 나가며 속삭였다.
“대노야께서 부르세요.”
육건신은 기절한 척하며 한참 자고 일어난 뒤 기력을 충분히 회복했다. 이제 막 집안일에 손을 대기 시작한 그는 정말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임근용은 숨을 들이마시고 빠른 걸음으로 임옥진의 집을 향하며 방령에게 물었다.
“어머님 쪽은 어때?”
총명한 방령은 그녀가 뭘 묻는 건지 바로 알아듣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소부인, 걱정 마세요, 노비가 나올 때까지는 대부인께서 대노야께 약술을 건네 드리며 무릎을 주물러주고 계셨어요.”
임옥진이 육건신의 무릎을 주물러 준 건 사실이었다. 물론 주무르다가 또 울음을 터뜨렸지만, 그렇다고 해선 안 되는 말까지 한 건 아니었다.
보아하니 전에 그녀에게 했던 충고가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임근용은 이 정도면 출발이 좋다고 생각하며 안도했다. 전생의 이맘때를 떠올려 보면 임옥진은 육건신이 돌아온 다음날 그와 크게 다툰 뒤 오랫동안 만나도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없는 사람 취급했다. 당시 그녀와 육함도 그런 사이였으니 육함 또한 육건신과 임옥진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장남가는 서로 서로 미워하며 마치 사방으로 흩어진 모래알처럼 제각각이었다. 임근용은 다른 건 둘째치고 의랑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런 사분오열(四分五裂)된 상황이 다시 발생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임옥진의 집에 도착하니 실내에 불이 환하게 밝혀져 조용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육건신은 허리춤에 삼줄을 매고 반질반질하게 빗어 틀어 올린 머리에도 삼끈을 맨 채 위엄 있는 태도로 아름다운 자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전 왕조부터 내려온 화려하고 우아한 청자 연잎찻잔을 손에 들고 고상하게 천천히 차를 음미했다. 임옥진은 조용히 그의 곁에 앉아 있었는데 미소까지는 짓고 있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전처럼 원한에 가득 차 화난 표정은 아니었다.
임근용이 앞으로 나와 인사를 올리자 육건신은 그녀를 자세히 살펴본 뒤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어나라.”
임근용은 일어나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서서 말했다.
“아버님, 몸은 좀 괜찮으세요? 혹시 드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며느리가 만들어 드릴게요.”
“괜찮다.”
육건신은 다정하게 아래쪽에 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앉아라.”
만약 임근용이 육건신을 이번에 처음 만났다면, 그녀는 아마 육건신이 아주 다정한 사람이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임근용에게는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는 육건신이 그저 말로만 저러는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정말로 의자에 앉으면 육건신은 틀림없이 법도도 모른다며 꾸짖을 것이다.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아버님, 이렇게 배려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하지만 며느리가 어찌 감히 앉겠어요. 어르신께서 이렇게 앞에 계시는데 저 같은 어린 사람이 앉는 건 법도에 어긋나는 일 아니겠어요?”
역시나 육건신은 아주 흡족해하며 고개를 돌리며 임옥진에게 말했다.
“부인, 둘째 며느리가 역시 문인 집안 출신이라 그런지 법도와 예절이 다른 사람들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구려.”
임옥진이 임근용을 힐끗 쳐다보았다. 임근용은 그녀 앞에서는 절대 저러지 않았다. 임옥진이 일어나라 하지 않아도 알아서 일어나고 앉으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째서 갑자기 이렇게 법도를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단 말인가? 그런데 그녀는 문득 임근용이 일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만약 육건신이 임근용 때문에 의랑이까지 미워하게 된다면 득보다는 실이 많지 않겠는가. 그래서 임옥진은 그를 따라 웃었다.
“근용이가 원래 재능이 출중한 아이로 명성이 자자했어요. 아버님께서도 생전에 재능이 출중하고 용모가 단정한 데다 행실도 바르다며 예뻐하셨는걸요.”
육건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방금 네 시어머니한테 몇 가지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불명확한 부분이 있어서 너한테 좀 물어야겠구나.”
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방 안에 있던 시녀들이 싹 사라졌다.
임근용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님, 말씀하세요.”
육건신이 느리게 말했다.
“범포 사건에 대해 한 번 이야기해 보겠느냐? 재산을 분할한 건 또 어떻게 된 일이냐?”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은 서로 이익이 일치했기 때문에 임근용도 육건신에게 숨길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그날 찻집에 가서 범포가 추천해 준 여섯 사람을 만난 일까지 전부 다 말했지만 매보청이 투자자를 모아 배를 사려고 하는 일만은 숨겼다. 임근용은 말솜씨가 좋고 일의 경중도 구분할 줄 알아 몇 마디로 일의 경과를 조리 있게 설명했다. 육건신은 조용히 앉아 표정의 변화 없이 한 번도 말을 끊지 않으며 계속 그녀의 말을 들었다.
임근용이 육건신에 대해 알고 있는 바로는 그의 이런 태도는 만족스럽다는 뜻이었다. 두 번의 생을 살면서 육건신이 임근용의 말에 찬성한다는 듯한 표현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임근용은 그것 때문에 마음이 들떠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이야기를 끝낸 다음에는 즉시 입을 다물고 조용히 서서 육건신의 지시를 기다렸다.
육건신은 아주 흥미로운 듯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다가 임근용이 말을 마치고 다시 공손하게 서 있자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편안한 얼굴로 한쪽에 단정하고 우아하게 서서 그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쭐해하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봤을 때는 꽤 괜찮은 며느리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다른 면은 또 어떨지 아직 장담할 수 없었다. 육건신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말했다.
“둘째 며느리야, 네 생각에 범포는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으냐?”
임근용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육건신은 육함과는 달리 그녀의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니었다. 육건신은 사람들이 자신을 옹호하며 추켜 세워주는 걸 좋아했고, 늘 독단적으로 행동했다. 그런데 그녀 같은 며느리의 의견을 귀담아들을 리가 있겠는가? 이건 그저 떠보는 것에 불과했다. 임근용이 태연하게 말했다.
“며느리같이 식견이 좁은 사람이 어찌 아버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놀리겠어요. 저는 그저 범 대집사가 할아버님께 충심이 깊고 이소야에게도 잘하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할 뿐이에요. 이번 일에서 범 대집사의 공도 작지 않고요.”
육건신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범포를 어떻게 처리하겠다고는 말하지 않고 그저 손을 내저었다.
“그만 가보아라, 의랑이는 내일 아침에 데려오너라. 오늘은 할 일이 많아 아이를 볼 시간이 없구나.”
“예. 며느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임근용은 인사를 하고 나오며 남몰래 임옥진에게 조급하게 굴지 말고 기다리라는 눈빛을 보냈다. 임옥진은 살짝 조바심이 나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오히려 마음은 한결 편안해졌다.
밖으로 나온 임근용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방 마마를 불렀다. 그녀는 추화원 쪽 상황을 방 마마에게 이야기하고 그 보따리를 건네주며 말했다.
“어머님께서 기분이 좋으실 때 전해드려, 마마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 내가 감시할 사람을 붙여두긴 했는데 마마도 잘 지켜봐. 괜히 밖에 나와서 돌아다니게 하지 말고 심보가 못된 인간이 함부로 들어가서 허튼소리 하지 못하게 해.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다투시게 하면 안 돼.”
방 마마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명심할게요.”
* * *
임근용이 영경거로 돌아가니 육 노부인은 이미 잠자리에 든 상태였고 의랑도 반씨가 데리고 자고 있었다. 임근용을 하루 종일 따라다닌 앵두도 상당히 피곤했다. 앵두는 마음고생까지 한 임근용은 더더욱 피곤할 거라 생각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아가씨 일찍 잠자리에 드시겠어요?”
“괜찮아.”
임근용은 오히려 육함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녀는 먼저 두아에게 육 노부인의 작은 주방으로 가서 뜨거운 국수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런 다음 과자와 말린 과일들을 들고 사 마마를 찾아가 미안해하며 말했다.
“말로는 내가 할머님을 모신다고 하면서 고생은 사 마마가 다 하네. 내가 밖에서 일하고 효를 다할 때도 마마가 우리 의랑이를 돌봐주고 있잖아.”
사 마마가 웃으며 말했다.
“이소부인, 우리 사이에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노부인께서 이소부인이 세심하고 눈치도 빠르다며 아주 좋아하세요. 의랑 공자는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노비가 직접 받은 아이나 마찬가지인걸요. 그래서 그런지 노비도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사 마마와 임근용, 육함이 경성에서 함께 보낸 2년 동안 이 젊은 부부는 늘 그녀를 존중했고 또 잘 보살펴주었다. 그래서 그녀 또한 지금 같은 중요한 시기에 누구를 도와야할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근용이 원했던 것이 바로 그녀의 이 한 마디였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사 마마에게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했다.
“사 마마가 그렇게 말을 해주니 정말 마음이 놓이네.”
사 마마가 있기 때문에 임근용은 안심하고 의랑을 여기에 둘 수 있었다.
두아가 들어와 말했다.
“아가씨, 국수가 다 끓었어요.”
임근용은 사 마마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녀는 앵두에게 찬합을 들리고 쌍복에게 등롱을 들려 영경거를 나섰다. 세 사람이 밖으로 나가자 방죽이 급히 달려와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이소부인, 대노야께서 방금 남몰래 범 대집사가 수감된 곳으로 가셨어요.”
임근용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육건신은 원래 이런 성격이었다. 오늘 저녁에 범포를 만났으니 내일은 아마도 그 친척 어르신들을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