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446
446화. 명성
날씨가 좋아서인지 육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육 노태야의 부고가 전해졌던 날과는 다르게 해가 지기 전에 도착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하늘 끝에는 아직 석양빛이 남아 있었고, 찬바람도 불어 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육씨 가문에서는 저녁 통곡이 막 끝난 참이었다.
육건신은 육씨 가문 남자들을 데리고 나가 대문 앞에서 가문의 어르신들을 맞이했다. 그는 어르신들에게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인사하며 네 명의 어르신들을 정중하게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가문의 어르신들은 육건신을 예우하긴 했지만 그의 비위까지 맞추려 하지는 않았다. 특히 증조부 어르신은 그와 인사를 한 뒤 늙은 티를 내며 거드름을 피웠다.
“늙어서 그런가, 뭘 조금만 해도 영 기력이 딸리는구나…….”
육충이 말했다.
“요즘 날씨도 안 좋은데 이상하게 가문에 이런저런 일이 많이 생기는구나. 큰조카야, 무슨 일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얼마든지 우리한테 찾아와서 이야기를 해라.”
어쨌든 육충과 증조부 어르신은 아무 짓도 한 것이 없었다. 설령 육건신에게 뭔가 불만이 있다고 하더라도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뭘 어쩌겠는가? 괜히 먼저 나서서 호들갑을 떨어대며 육건신의 비위를 맞추려 들면 오히려 더 의심스럽기만 하지 않겠는가?
다른 두 어르신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육건신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고 체면을 세우고 있었다. 육건중은 살짝 우쭐해졌다. 그는 육건신이 가문의 어르신들을 초대했다는 말을 듣고 나서 약간 불안했었지만, 이제는 그 불안감마저 싹 사라져 버렸다. 육건신이 관직에 나가 있다고 한들 뭘 어쩌겠는가? 무슨 일이든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법이고 인간관계는 특히 더 그랬다. 사람들의 미움을 사지 않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추켜세워서도 안 됐다. 누가 누굴 건드린단 말인가? 이 육씨 가문에서 장남가 부자만 관직에 나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가세가 기울어 평소에는 거의 기를 펴지 못하고 항렬을 내세워 겨우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던 몇몇 어르신들이 육건신과 육함에게 유독 친근하고 정중하게 대하며 그들에 대한 호감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육건신은 평온한 태도로 겸손하게 사양하며 상대를 높이고 자기를 낮췄다. 그는 불만을 드러내거나 나중에 두고 보자고 벼르는 듯한 기색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또 교만하게 굴거나 자신감에 차서 우쭐해하지도 않았다. 그는 연회석상에서 술 대신 차를 들고 다니며 한 사람도 빼먹지 않고 인사를 했다. 육건신은 오랜 시간 집을 비운 그를 대신해 집안의 여러 가지 일들을 보살펴 주어 감사하다고 인사했고, 육 노태야의 장례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했다.
그는 또 육 노태야와 관련된 여러 일화와 선행들을 이야기하다가 울먹였다.
“자식이 효도하고 싶어도 부모님께서 기다려 주시지 않는다고 하더니……. 아버지께서는 병이 위중하신데도 혹시라도 저와 제 아들의 앞길을 망칠까 봐 집안 사람들에게 저희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의 병도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런 불효자식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조상님들 앞에서 차마 고개도 못 들겠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제 수명을 10년 떼어 아버지께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말하는 도중에 몇 번이나 울먹이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슬퍼했다.
육건립이 따라 울기 시작했고, 육건중 역시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좌중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들은 육씨 가문 자손들이 다들 효심이 지극해 이렇게 성대하게 장례를 치름으로써 나름대로 효도를 다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육건신이 때맞춰 울음을 멈추고 말했다.
“어르신들 앞에서 제가 추태를 부렸습니다, 어서 드시지요.”
그는 다시 웃으며 사람들에게 식사를 하라고 친절하게 권했다. 육건신은 연회석상에서 재산 분할에 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종학을 재건해 선생을 초빙하고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는 한 끼의 식사를 제공하겠다는 말을 꺼냈다. 또 10경의 양전을 마련해 제전으로 바칠 것이라 말했다.
그가 이렇게 말하자 좌중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깜짝 놀랐다. 이건 결코 일반적인 지출이 아니었다. 만약 그가 정말로 그렇게 한다면 육씨 가문 사람들 모두가 덕을 볼 수 있게 되는 셈이니 아주 기쁜 소식이었다. 그렇게만 되면 앞으로는 육씨 가문 자손들에게는 능력이 있지만 집안이 가난해서 앞길을 망치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집이 가난한 사람들이 제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허덕일 필요도 없어질 것이다. 그가 이 말을 하자 갑자기 연회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증조부 어르신을 비롯한 가문의 어르신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비교적 가난한 집안의 어르신들 몇몇이 진심으로 감동한 듯 찻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남들 들으라고 칭찬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존경심을 드러냈다. 육건립 또한 흥분해서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육건신을 열심히 추켜세웠다.
어찌 집에 오자마자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매수한단 말인가. 육건중은 질투심과 증오심이 솟구쳤다. 두 사람은 그에게 이런 계획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한 적이 없었다. 그를 일부러 배제시킨 게 아니면 뭐겠는가? 육건중은 속으로 생각했다. 육건신이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정확하게 언제까지 하겠다고 약속을 한 건 아니었다. 아주 교활한 늙은이였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육건신이 밖에서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긁어모았기에 이러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문의 공금에 포함되지 않는 돈이 아주 많으니 이렇게 선뜻 큰돈을 내놓겠다고 나서는 것이 아니겠는가. 육건중은 이런 생각을 하다가 점점 가만히 앉아 있기가 불편해졌다. 삼형제 중 장남과 막내가 이렇게 나서고 있는데 가게를 제일 많이 물려받고 자손도 제일 많은 그가 아무 성의 표시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건 너무 속이 보이지 않은가. 이건 두 사람이 육건중에게 자신들을 따라 피를 흘리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지금이 어떤 때란 말인가?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절대로 움츠러든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육건중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형님, 동생인 저는 잊으셨어요? 제 몫도 있잖아요.”
네 몫도 있다고? 낯가죽도 두껍구나, 그래, 네 뜻대로 해주마. 육건신은 가소롭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둘째야, 이 두 가지 일은 나랑 셋째가 이미 결정해서 세세한 부분까지 다 상의를 마쳤어. 너도 그럴 마음이 있다면 의전(*义田: 일족 또는 한 마을 중의 극빈자를 구제하기 위한 공동 소유의 전답)을 좀 사서 가문의 빈곤한 어르신들을 부양하도록 해라! 내 생각엔 그렇게까지 많을 필요는 없고 양전 10경 정도면 충분할 것 같구나.”
육건중은 정말 피를 토할 것 같은 심정이었다. 육건신은 진즉에 함정을 파놓고 그가 빠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 이리 남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란 말인가? 하지만 가문 어르신들이 늑대 같은 눈빛으로 그의 입만을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육건중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연히 그래야죠.”
육건신은 빙긋 웃으며 육건중에게 아낌없이 칭찬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부 이런 좋은 일은 육건신이 돌아온 이후에 생긴 것이고, 육건신이야말로 이 일의 일등공신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던 이 육 대노야는 이런 방법으로 아주 손쉽게 일족의 존경을 얻었고, 널리 명성을 떨쳤다.
* * *
“우리 큰아주버님께서는 계산이 어찌나 정확하신지 모르겠어요!”
송씨는 밤이 깊어 인기척마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참지 못하고 육건중에게 한바탕 퍼부었다.
“장남가랑 삼남가에서 하는 건 얼마나 남들 보기도 좋아요. 결국 이득은 그쪽에서 보고 우리는 손해만 보는 거네요. 종학을 재건한다고 해 봤자 전에 아버님께서 한 번 수리하신 적이 있으니 지금은 반 정도만 더 하면 될 거고 돈이 들어봤지 얼마나 들겠어요. 선생을 모신다는 것도 그래요. 뭐 얼마나 유명하고 대단한 선생을 모셔오겠어요. 끽해봐야 가게에 경력 많은 관리인 하나 들이는 정도밖에 더 되겠어요?
그 제전을 만들겠다는 것도 그렇죠. 두 집은 물려받은 땅이 많으니 거기서 대충 조금씩 떼서 내놓으면 되는 거고 그래 봤자 한 집에 5경씩밖에 안 돼요. 근데 우리는요? 우리가 10경의 땅을 내놓으려면 생돈을 내서 사야 한다고요. 지금은 땅값도 엄청 많이 올라서 몇 년 전에 비하면 서너 배나 뛰었어요. 또 학당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한테 한 끼씩 제공하겠다면서 우리 의전으로는 뭘 하라고 했나요? 가문의 가난한 어르신들을 도우라고 했죠?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우리한테는 손해밖에 없다고요! 큰아주버님께서 계산을 어찌나 완벽하게 하셨는지! 이득은 그분이 다 보고 있는데 우리는 이걸 왜 하고 있는 거죠?”
송씨가 이렇게까지 끙끙 앓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녀는 말을 하면 할수록 더 화가 났다.
“두 집구석이 합심해서 우릴 골탕 먹인 거라고요! 그 뿌리는 바로 육함이고요!”
육건중은 처음에 느꼈던 분노와 원망 이미 가라앉아 마음이 평온해진 상태였다. 그는 희고 뚱뚱한 두 다리에 조심스럽게 약을 바르고 손으로 누르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큰형님은 요즘 들어 점점 더 음흉하고 교활해지고 있소. 난 나중에 가산을 정리해서 돌아온다던 그 첩이 대체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지고 돌아올지 궁금하다오. 그것들은 다 아버지께서 살아 계실 때 번 것이고, 그때는 아직 재산을 나눈 상태가 아니었으니 그것도 다 가문의 공금으로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니겠소?”
송씨가 냉소했다.
“꿈도 야무지시네요. 좋은 물건은 다 숨겨놓고 허름한 물건만 들고 오면 당신이 뭘 어쩔 건데요?”
육건중은 똑바로 누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오늘 육함이랑 육륜이가 싸웠다던데, 왜 싸웠는지 아시오?”
육륜은 아직까지도 집에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이 사실을 감히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던 송씨가 에둘러 말했다.
“아니요, 다섯째가 몸이 안 좋은지 자면서 계속 땀을 흘리더라고요.”
육륜은 빈소에서 곡을 하고 가문의 어르신들과 저녁 식사를 할 때에도 줄곧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송씨는 육륜이 병이 났다고 거짓말하며 상황을 얼버무렸다.
육건중은 별로 개의치 않아 하며 말했다.
“그 녀석도 병이 날 때가 다 있소? 몸뚱이가 무슨 황소처럼 튼튼한 녀석 아니오. 그날도 때린 사람은 난데 그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고 나만 이틀을 앓아누웠지 않소.”
송씨는 다시 한 번 육륜이 앞으로 공과 업적을 세워 차남가를 대신해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아름다운 꿈을 꾸었다. 육륜은 그녀의 친아들이자 막내아들이었다. 아이 때문에 화가 날 때도 있긴 했지만, 그녀 역시 어머니로서의 모정은 어쩔 수 없었다. 송씨가 부드럽게 말했다.
“고집이 좀 세긴 하지만 정직한 아이잖아요. 모처럼 집에 왔고 얼마 안 있다 다시 돌아갈 건데 당신도 아이한테 너무 뭐라 하지 말아요! 남들이 보면 괜히 망신스럽기만 해요.”
육건중은 살짝 경멸하는 듯한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고 말했다.
“망신?! 그놈은 자기 친형들이 아니라 육함이와 육선이랑 더 친하게 지내고 있소. 어디에 붙어야 할지도 모르는 멍청한 놈! 내가 전생에 그놈한테 큰 빚이라도 졌던 거 아닌가 싶소!”
송 씨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했다.
이때 가볍게 두어 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밖에서 시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노야, 이부인, 대소야가 오셨어요.”
육건중이 콧방귀를 뀌자 송씨가 재빨리 큰 소리로 대답했다.
“들어오라 해라.”
육소가 안으로 들어와 공손하게 부모에게 인사했다. 그가 아직 허리도 펴지 않았는데 육건중이 입을 열었다.
“또 무슨 일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