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449
449화. 몰아붙이다
전생에 임근용은 거의 투명인간이나 다름없어서, 육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그녀가 꼭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경우에만 사람을 보내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많은 경우에 그 현장에 없었고, 그런 일들의 경과와 진상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임근용은 대부분의 일들에 대해서 그저 대략적인 상황만 알뿐 그 내막까지 상세히는 알지 못했다.
임근용은 전생에 육륜의 일이 어떻게 들통이 났는지, 오늘 이 일이 전생에서도 일어났었는지, 또 결국 어떤 결말에 이르렀는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걱정이 되더라도 그냥 육건신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육함은 임근용에게 자기가 있으니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는 눈빛을 보냈다. 어쨌든 육함이 있으니 육륜이 육체적인 고통을 받는 건 막아 줄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사실상 육건신이 노리고 있는 사람은 육륜이 아니라 육건중이었다.
사람들이 육륜의 집 부근에 다다를 때쯤, 임근용은 조용히 오솔길 쪽에서 돌아 나와 슬그머니 대열에 합류하는 강씨를 발견했다. 그녀는 송씨가 강씨와 눈빛을 주고받은 뒤 마침내 안도하는 걸 보고 덩달아 마음이 놓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육륜의 집에 도착했고, 육건신이 곧장 본채를 향해 걸어갔다. 그가 두 걸음쯤 떼었을 때, 사람들이 그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대노야, 오공자께서는 본채가 아니라 왼쪽 곁채에 계십니다.”
아마도 술 냄새를 감추기 위해 임시로 왼쪽 곁채로 옮긴 모양이었다.
육건신은 잠시 멈춰 섰다가 미소 지으며 왼쪽 곁채로 걸음을 옮겼다. 왼쪽 곁채 입구에서 어린 시동 하나가 약을 달이고 있었고, 그래서 사방에 약 냄새가 진동했다. 육륜은 이미 잠에서 깨 있었지만, 얼굴과 입술이 다 하얗게 질려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는 멍한 눈빛으로 침상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있다가, 사람들이 들어오는 걸 보고 사람들에게 인사하려 황급히 일어났다.
“큰아버지…….”
육건신이 얼른 다가가 그를 말렸다.
“아프다면서 괜히 힘들게 일어날 필요 없다. 그래, 의원은 뭐라고 하더냐?”
육륜이 무슨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육경이 재빨리 나서며 대답했다.
“풍한이라고 했어요.”
육건신이 말했다.
“심해 보이네. 혀를 좀 내밀어 보거라.”
육건중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큰형님이 진찰도 하실 줄 아세요?”
육건신이 말했다.
“어쩌다 보니 우연히 의학 쪽으로도 좀 공부를 하게 되었어. 감기에 걸리면 보통 혀에 설태가 하나도 없거나 있더라도 아주 얇게 끼지. 다섯째야 입을 좀 벌려 봐라.”
육륜은 제 발 저린 듯 육함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육함은 어두운 얼굴로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육륜은 하는 수 없이 살짝 혀를 내밀었다가 사람들이 보기 전에 얼른 도로 집어넣었다.
육건신이 웃음을 터뜨리며 가볍게 그의 머리를 툭툭 치더니 꾸짖었다.
“이 멍청한 녀석아, 앞으로는 좀 조심해라. 네가 우리 집안 혈육이었으니 망정이지 남이었으면…….”
그는 말을 하다 말고 뒤돌아 밖으로 나갔다.
“그만 쉬어라.”
송씨는 육건신이 육륜을 이렇게 그냥 놓아준 걸 믿을 수 없어 하며 식은땀을 닦았다. 육함은 방에 남아 냉랭한 눈빛으로 육륜을 응시하고 있었고, 육륜은 반쯤 눈을 내리깐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밖에서 육건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보자, 지금 달이는 게 무슨 약이냐? 설마 해장국은 아니겠지? 어, 이건 풍한약이 아니지 않느냐! 뭐가 이렇게 엉망진창이야, 대체 어느 돌팔이 의원이 이따위 약을 처방해줬단 말이냐!”
육건중이 분노하며 말했다.
“큰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육건신이 담담하게 말했다.
“무슨 소리긴, 너희도 다 알고 있지 않느냐, 둘째 너도 이제 연극은 그만해라. 약을 달이고 방을 옮긴다고 그런 일을 덮을 수는 없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너나 나나 다 알고 있지 않느냐. 난 그저 우리 순진한 조카가 간사한 인간들의 꾐에 넘어가 분별력을 잃은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난 이런 일로 괜히 우리 육씨 가문의 명성에 흠집이 가지 않았으면 하고, 혹시라도 어머니께서 이 일을 아시고 슬퍼하시는 건 더더욱 바라지 않아. 아이를 쥐 잡듯이 잡는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모른 척하는 건 큰아버지로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겠느냐. 그럼 너도 날 용서하지 않을 거고. 그래, 넌 이제 어쩔 생각이냐?”
밖은 순간 정적이 흘렀고 잠시 후 “짝” 하는 소리가 들렸다. 뺨을 맞은 것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송씨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이노야!”
그러더니 또 “쨍그랑” 하며 약탕기가 깨지는 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육륜은 그제야 당황해 얼굴색이 변했다.
뒤이어 사방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육건중이 다시 방안으로 들어오더니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육륜을 향해 돌진했다. 육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불을 들어 올린 뒤 홑옷을 입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하!”
육건중은 소리를 지르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는 문에 거는 빗장을 집어 들고 원한 가득한 눈빛으로 육륜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임근용이 놀라서 소리를 지르자 육함이 재빨리 달려가 육건중의 허리를 확 껴안고 있는 힘껏 그를 뒤로 당겼다.
“둘째 숙부, 다섯째가 잘못을 알면 된 거잖아요.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빗장이 허공을 가른 뒤 땅바닥에 부딪치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육륜은 피하려고도 하지 않고 고개를 빳빳이 든 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둘째 형님, 마음은 고맙지만, 이건 다 내 잘못이에요. 아버지께서 때리고 싶으신 거면 그냥 때리시게 두세요.”
육건중은 장남가의 두 부자에게 정말 이가 갈렸다. 하나는 나쁜 역할을 맡고 다른 하나는 착한 역할을 맡으며 위선을 떨고 있었다. 그가 냉소하며 말했다.
“이거 놔라! 이건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날 이렇게 몰아세운 게 네 아버지인데, 그 아들인 네가 날 막으면 안 되는 것 아니겠느냐?”
그는 이렇게 말하며 험상궂은 표정으로 빗장을 휘두르며 버둥거렸다.
임근용은 깜짝 놀라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그녀는 육건중이 이때를 틈타 혹시 육함에게 보복이라도 하려 들까 봐 걱정이 되어 다른 건 생각할 겨를도 없이 큰 소리로 육소와 육경을 불렀다.
“빨리 가서 말려요, 잘못하면 사람 죽겠어요!”
육소와 육경도 황급히 육건중에게 달려들었다.
“아버지, 좋게 말로 하세요!”
육건중이 두 사람 얼굴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꺼져라! 그 어미에 그 자식이라더니, 이런 불효한 짓거리를 한 걸 감히 나한테 숨겼단 말이냐! 다 무릎 꿇어!”
두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한 걸음 물러나 무릎을 꿇더니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육건신이 거듭 충고했다.
“둘째야, 내 말 좀 들어봐라. 내가 너더러 아이를 때리고 욕하라고 이런 말을 한 줄 아니? 아이가 자기 잘못을 깨달았으면 된 거야. 어쨌든 네 친자식이잖아.”
원래도 온화한 성격인 육건립은 이렇게 아이를 때리고 욕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 또한 한 마디 거들었다.
“둘째 형님, 다섯째가 잘못했다고 하잖아요. 어릴 때 실수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가문의 어르신들께서도 아직 집에 계시잖아요. 형님이 이렇게 소란을 피우다 소문이라도 나게 되면 그땐 정말 곤란해져요.”
가문의 어르신들이 육건신이 이렇게 사람들을 전부 끌고 조카의 병문안을 온 이유까지 신경이나 쓰겠는가? 그는 육건신이 이렇게 사람을 몰아붙이자 화가 나서 뒷목을 잡을 지경이었다. 육건중은 가슴속에서 천불이 올라오고 목구멍에서는 단내가 나는 것 같았다. 그는 화를 억누르며 분노를 담아 욕설을 퍼부었다.
“이 짐승만도 못한 놈을 때려죽일 거다! 죽여 버리면 깔끔하겠지!”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빗장을 육륜에게 던졌다.
이게 바로 모성 본능일까! 송씨가 황급히 달려들어 육륜을 껴안았다. 결국 빗장은 그녀의 등에 부딪혀 떨어졌고, 그녀는 육륜을 안은 채로 바닥에 쓰러졌다. 육륜이 소리쳤다.
“어머니!”
송씨는 고통을 참으며 손을 들어 올려 그의 따귀를 올려붙이고 눈물을 머금은 채 그를 꾸짖었다.
“어머니라고 부르지도 말거라! 난 너 같은 짐승을 낳은 적이 없어!”
예상치 못하게 따귀를 얻어맞은 육륜은 창망하게 넋이 나간 채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강씨와 려씨가 황급히 다가가 송씨를 일으켜 세우고 이것저것 물어댔다. 하지만 육륜에게는 누구도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 한쪽에서 지켜보고 있던 임근용은 그저 한숨만 내쉴 수밖에 없었다. 한 다리 걸러 있는 형수가 사람들 면전에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다들 그만해!”
육건신이 위엄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언제까지 소란을 피우려는 게야! 아이가 철없는 짓을 해서 잘 가르치라고 한 마디 한 것뿐인데, 왜 이렇게까지 난리를 쳐? 정말 아이를 죽이기라도 할 셈이야? 솔직하게 말해 봐, 둘째 네가 원하는 게 저 아이 목숨이냐? 아니면 내 목숨이냐? 대체 누구 보라고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둘째야, 나한테 무슨 불만이 있는 거면 그냥 솔직하게 털어놓고 풀면 되는 거지 왜 쓸데없이 아들과 며느리를 들들 볶는 게냐! 가자, 가서 어머니 앞에서 이야기를 해 보자! 마침 가문의 어르신들도 계시니 사람들 앞에서 시시비비를 따져 보자꾸나!”
육건중은 서두르는 것 같은 육건신의 기색에 오히려 뭔가 의심스러워졌다. 그는 육건신이 뭔가 자신의 약점을 잡은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그를 몰아세우는 것이다. 육건신은 그가 당황해서 미처 손을 쓰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이 일에는 분명 뭔가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육건중은 눈을 굴리다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눈물을 흘렸다.
“큰형님 대체 저한테 뭘 어쩌라는 거예요?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렇게까지 트집을 잡고 그래요. 제 자식이 잘못하면 아비인 제가 가르치고, 제가 잘못하면 큰형님인 형님이 가르치는 것이 맞는 도리잖아요……. 큰형님이 말을 그렇게 하니 정말 마음이 아프네요…….”
그는 이렇게 말하며 자기 옷깃을 잡아 뜯더니 눈을 까뒤집으며 육함을 향해 풀썩 쓰러졌다.
임옥진은 육함에게 기절하는 척하는 그 살찐 돼지가 땅바닥으로 고꾸라지도록 손을 놓고 비키라는 듯 눈짓했다. 육함은 그녀를 힐끗 보고 눈을 내리깔며 육건중을 단단히 붙잡았다. 임옥진이 육함을 쏘아보았지만 그는 못 본 척하며 침착하게 육소와 육경을 지휘해 육건중을 침상에 데려다 눕혔다.
육륜도 일어나 도우려 하자 육소가 발길질하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저리 꺼져! 사고만 치고 다니는 쓸모없는 자식!”
육건신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둘째야, 이게 다 무슨 고생이냐? 나이가 들었는데 어찌 성격에 전보다 더 거칠어졌어? 그냥 몇 마디 훈계하고 넘어가면 될 일을 이렇게 크게 벌여서 수습하기도 힘들게 만들다니, 나도 정말 마음이 안 좋구나.”
그는 이렇게 말하며 눈가를 훔치고 육함에게 지시했다.
“어서 가서 의원을 불러오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