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452
452화. 한발 늦다
임근용은 온몸에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살며시 문을 열자 밖에서 자고 있던 앵두가 소리를 듣고 등불을 켰다. 그녀는 임근용이 밖으로 나오는 걸 보고 눈치껏 더는 묻지 않고 일단 문을 열어 방죽을 안으로 들인 뒤 말했다.
“아가씨 옷을 좀 더 챙겨 입으세요. 노비가 가서 화로를 바꿔 올게요.”
“한밤중에 무슨 화로를 바꿔와. 할머님께서 깨시면 어쩌려고.”
임근용이 그녀를 밀었다.
“옷을 챙겨 입고 문 앞을 지키고 있어.”
앵두가 두꺼운 솜옷을 입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임근용이 방죽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넌 따라 들어와.”
등불에 비친 방죽의 얼굴이 귀신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아무렇지 않은 척하다가 안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입술을 떨며 말했다.
“이소부인, 화거아가 죽었어요.”
임근용은 머릿속에서 윙 하는 소리가 들리며 잠시 온몸에 힘이 빠지는 듯싶더니 다시 뻣뻣하게 경직했다. 그녀는 무슨 표정을 짓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소부인?”
방죽은 그녀가 겁에 질린 것 같아 용기를 내어 그녀의 팔을 힘껏 꼬집었다. 임근용은 통증에 “씁” 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정신을 차렸다.
“어쩌다 그렇게 됐어?”
방죽이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이소야께서 어제 화거아한테 행화루 뒷골목에 가서 그 사람들이 있는지 확인해 보라 하셨어요. 따라붙을 수 있으면 따라붙고 힘들면 내버려두라고 하셨대요. 근데 그 아이가 돌아오지를 않았어요. 저희는 그 아이가 이소야께서 준 돈을 받고 어디론가 도망친 거라고 생각하고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근데 좀 전에 육적 공자가 와서 그 아이가 행화루 뒷골목 깊은 곳에서 죽어 있는 걸 발견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칼에 찔려 치명상을 입었다고 해요.”
순간 임근용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치솟았다. 그녀는 죄책감 때문인지 후회 때문인지 슬픔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결국 또 사람이 이렇게 죽었다. 임근용은 전생에 화거아가 죽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 아이는 임근용 하인의 아들로 일전에 그녀도 두어 번 본 적이 있었는데 아주 영리하고 착한 아이였다. 화거아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전부 임근용의 장원을 보살피고 있었다. 임근용은 그 아이에게 다른 길을 찾아 주고 싶어 이 집으로 불러들인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아이의 목숨을 앗아가게 만들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만약 그녀가 그 일을 모르고 육함에게 처리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면 화거아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을 이미 알고 있는 임근용으로서는 도저히 그냥 모른 척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전생에서는 그 일이 어떻게 밝혀지게 되었던 걸까? 아마 당시에도 누군가가 죽었을 것이다. 그때는 누가 죽었을까? 임근용은 망연자실하며 슬퍼했다.
그녀가 슬퍼하는 걸 본 방죽이 얼른 그녀를 위로했다.
“아이가 운이 나빴어요.”
벌써 이렇게 사람이 죽었으니 육륜의 그 일 역시 앞당겨질 것이 틀림없었다. 지금은 이렇게 슬퍼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임근용이 다급하게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이소야는 알아?”
방죽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르실 리가 있겠어요? 이런 큰일을 어찌 감히 숨기겠어요? 지금 노부인이 계신 영경거 쪽 사람들과 가문 어르신들, 삼남가 쪽을 제외하고 주인 어르신들께서는 다 알고 계세요. 어르신들과 이소야께서 전부 청설각에 모여서 육적 공자가 사건의 경과를 말씀하시는 걸 듣고 계세요. 노비는 이소부인께서 오공자와 관련된 일은 어떤 일이든 꼭 알리라고 하셔서 이렇게 늦은 시간인데도 찾아온 거예요.”
등잔에 남아 있던 등유가 거의 다 떨어져 불꽃이 점점 작아지며 빛이 어두워졌다. 불꽃이 거의 꺼질 때쯤 임근용이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오공자는 불려갔어?”
방죽이 잠시 멍해졌다가 말했다.
“그건 노비도 모르겠어요.”
임근용이 말했다.
“가서 한 번 알아봐. 그리고 삼소부인이 아직 깨어 있는지 확인해 봐. 그런 다음 다른 사람들 모르게 나한테 와서 조용히 보고해.”
그녀는 뜨거운 솥 안의 개미처럼 마음이 조급했지만, 지금 같은 때에 함부로 뛰쳐나가 물어보고 다닐 수도 없었다. 이 세상은 어쨌든 남자들 세상이라 그녀 같은 젊은 며느리가 이런 일에 관여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뛰쳐나간대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육함까지 욕을 먹어 오히려 행동에 제약이 생길 수도 있었다.
불빛이 조금씩 어두워지다가 마침내 꺼져 버렸다. 방 안이 어둠에 잠기자 앵두가 밖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가씨, 등불을 바꿔 드릴까요?”
임근용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그녀도 입을 다물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침상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기다리고 있던 임근용의 인내심은 거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마침내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고, 임근용은 황급히 방문을 열어 방죽을 맞이했다.
“어떻게 됐어?”
방죽은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오공자 댁은 어두웠고, 삼소부인 댁은 불이 켜져 있었어요. 노비가 또 청설각에 한 번 다녀왔는데, 이소야, 대소야, 삼소야는 육적 어르신과 함께 외출했는데 유능한 집사들 몇 명도 데려갔다고 해요. 노비가 한참을 기다려서 장안을 찾았는데 오공자께서 불려 가신 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대노야와 이노야께서는 문을 닫아걸고 이야기를 나누고 계세요.”
이 모든 사건에서 삼남가는 배제되어 있었고, 장남가와 차남가만 관여하고 있었다. 육함과 육소, 육경은 분명 화거아의 일을 수습하러 갔을 것이고 뭔가 실마리를 찾을 것이다. 이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확인을 하고 나면 그들은 틀림없이 육륜이라는 화근을 없애려 들 것이다.
방죽이 감정을 누르며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그리고 장수가 노비한테 행화루 뒷골목에 있던 그 기녀가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임근용은 긴장하며 침을 꿀꺽 삼키고 옷을 찾아 입었다. 그녀는 육륜을 찾아야만 했다. 더는 그를 이 집에 남겨 둘 수 없었다.
* * *
새벽의 어둠은 보통 어두운 정도가 아니라 손을 뻗으면 그 손끝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칠흑같이 어두웠다. 달은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고 별빛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스님들마저 모두 쉬러 간 뒤라 하인들도 이런 시간에 돌아다닐 이유가 없었다. 어둡고 적막한 가운데 공기는 또 유난히 살을 에는 듯이 차가워 몸이 절로 굳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임근용은 감히 등롱을 켤 수 없었다. 그녀는 누군가와 마주칠까 봐 걱정되면서도 동시에 마음이 너무 급했다. 임근용은 평소에 자주 다니던 익숙한 길이었음에도 지금은 왠지 모르게 가는 길이 훨씬 멀고 힘들게 느껴졌다. 그녀는 어기적거리며 걸으면서도 마음이 초조해 눈물이 다 나올 것 같았다. 다행히도 방죽이 아주 믿음직스럽게 그녀를 부축해 주며 경계도 늦추지 않고 사방을 살폈다.
임근용의 눈에 마침내 육륜의 집 앞에 걸려 있는 흰 등롱이 보였다. 그런데 뒤에서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임근용이 고개를 돌려보니 이쪽을 향해 흔들리며 다가오는 등롱이 보였다. 한발 늦었구나! 그녀는 방죽을 홱 밀치며 치마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달려갔다.
그녀가 두 발자국쯤 떼었을 때, 방죽이 그녀를 꽉 끌어안으며 길가에 있는 꽃나무 아래로 끌고 갔다. 방죽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이소부인, 안 돼요. 부인께서 가실 수는 없어요.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찌 해명하시려고 그러세요! 아직 대문이 잠겨 있고 안에서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이소부인께서 이렇게 다급하게 들이닥친다고 뭘 하실 수 있는데요? 일단 한 발짝 물러서서 천천히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
임근용이 방죽의 손을 있는 힘껏 풀며 말했다.
“아니야, 내가 가서 돌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면 될 거야.”
육륜이라면 틀림없이 위험하다는 걸 알아채고 도망갈 것이다. 그에게 담장을 넘는 일 따위는 식은 죽 먹기일 테니 일단 도망부터 치게 한 후 그다음 일은 또 차차 생각해보면 그만이었다.
방죽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이렇게 제멋대로 구시면 안 돼요! 아마 지금은 그냥 오공자를 불러다 물어보시려는 걸 거예요. 아직 제대로 상황 파악도 안 됐는데 누가 무슨 짓을 하겠어요? 이소부인께서 이렇게 야심한 밤에 잠도 안 자고 여기 달려와 있는 걸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이러시는 거예요!”
임근용이 낮게 소리쳤다.
“이거 놔,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네가 정말로 날 위한다면 빨리 이 손 놔!”
방죽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임근용은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서 도박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전생에 자신이 우유부단하게 굴었던 걸 후회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으니 당분간 큰일이 날 일은 없을 거라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임근용은 사전에 정확하게 정보를 파악한 후에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육함이 뭔가 방법을 강구해 육륜을 호적에서 내쫓아 서로 왕래하지 않고 따로 살면 다른 사람들도 육륜을 그냥 놓아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사건이 이렇게 벌어지고 나니, 임근용은 자신이 생각했던 모든 것이 그저 허상에 불과했음을 깨닫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을 거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힘이 어찌 이리 미약하단 말인가!
여태껏 임근용이 이렇게까지 당황해하는 걸 본 적이 없던 방죽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뭐라 하셔도 이소부인을 놓아드릴 수는 없어요. 정 그러시다면 노비가 가서 전할 말이 있다든지 뭔가 핑계를 대서 한 번 막아 볼 테니까 이소부인께서는 여기서 기다리세요. 노비가 가볼게요!”
임근용이 무슨 대답을 하기도 전에 가볍게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상복을 입은 육륜이 안에서 나왔고, 육건중을 모시는 집사가 한쪽 옆에서 따라 나오고 있었다.
임근용은 역시나 한발 늦은 것이다. 육건중이 벌써 사람을 시켜 육륜을 데려오라 한 것 같았다. 임근용은 온몸이 차갑게 식었다. 그녀는 그늘에 몸을 숨긴 채 방죽의 곁에 바짝 붙어 그녀들 곁을 스쳐지나 육륜을 향해 다가가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임근용이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보니 선두에 서 있는 사람은 육건신이 집으로 데리고 온 집사 주견복(朱见福)이었고 그 외에 덩치가 큰 장정도 몇 명 더 있었다. 아마도 육륜이 말을 듣지 않고 도망칠까 봐 노파심에 보낸 것 같았다.
육륜은 계단 위에 우뚝 서서 임근용이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냉담하고 스산한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주견복은 계단 아래에 서서 만면에 웃음을 띠며 그에게 인사를 했다.
“오공자, 죄송합니다. 대노야와 이노야께서 청설각으로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육륜은 담담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흰 등롱의 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자 창백하게 빛나는 그의 얼굴에 쓸쓸함이 가득했다. 육륜의 목소리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평온하면서도 또렷했다.
“주 집사가 수고가 많네.”
지금은 확실히 그녀가 나설 때는 아니었다. 임근용은 방죽의 손을 잡고 돌아서 꽃나무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고양이처럼 그림자를 밟으며 재빨리 쫓아갔다. 마치 위기의식이 그녀의 몸속에 잠재되어 있던 능력을 각성시키기라도 한 것 같았다. 임근용은 나뭇가지가 튕기며 그녀의 몸을 긁어대는데도 하나도 통증을 느끼지 못했고, 그걸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녀는 방죽보다 더 빨리 걸었고, 동작도 더 민첩했다. 방죽은 소리 없이 그녀의 뒤를 쫓으며 묵묵히 그녀를 위해 나뭇가지들을 헤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