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455
455화. 결정
육건신은 무슨 말을 한 것 같기도, 또 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육건중은 자업자득이었다. 그가 아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에 지금 그의 아들이 한 짓 때문에 온 가족이 연루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가장 깨끗한 처리 방법은 당연히 그 근원을 없애 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육륜도 그의 친아들이었다. 육건중은 육륜이 자라나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보았고, 아이가 어렸을 때 그의 품에서 애교를 부리던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도 육륜을 진심으로 아꼈던 적이 있었고, 육륜이 자라서 가문을 빛내기를 바랐던 적도 있었다……. 육건중은 코가 막히고 눈이 시큰거려 고개를 홱 돌렸다.
“네가 알아서 처리해. 네가 뭘 어떻게 한 대도 난 상관없어. 난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도와주마. 우리 둘째도 아마 자기가 힘 닿는 데까지는 도와줄거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일은 우리 모두와 우리 가문 전체를 위한 일이야.”
육건신은 가볍게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그는 창문을 열고 폐로 스며드는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셨다. 차가운 공기가 몸속으로 들어오자 꽉 죄는 것 같았던 머리와 미친 듯이 뛰던 심장도 그제야 좀 누그러들었다.
하늘가에 희뿌연 여명이 보이기 시작하는 걸 보니 이제 곧 동이 틀 것 같았다. 꽃망울이 맺힌 매화 숲은 희끄무레한 아침 햇살로 가득 차 있었다. 상복을 입은 누군가가 고개를 숙인 채 빠른 걸음으로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사람은 육경이었다. 육건신이 다시 돌아와 자기 자리에 앉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셋째가 돌아왔다. 우리가 괜한 걱정을 한 것이고 그 사람이 곽해가 아니었으면 정말 좋겠구나. 곽해만 아니면 다 괜찮아.”
곽해가 아니라면 정말 좋겠지만, 만약 맞다면……. 육건중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팔걸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육건중은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다 육건신이 강요했기 때문이고, 또 이 가문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육건중의 마음도 금세 편안해졌다.
육경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긴장한 얼굴로 문을 꼭 닫았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방 한가운데로 와 육건신과 육건중 앞에 무릎을 꿇고 입술을 떨며 말했다.
“십, 십중팔구 곽해예요. 거기 사는 기둥서방이 그러는데 그 사람 등에 새겨진 교룡 한 쌍을 봤대요!”
육씨 가문 형제들은 각각 맡은 임무가 달랐는데, 육경의 임무는 육륜과 함께 있었던 사람들, 그중에서 키가 크고 건장하며 화려한 옷차림을 했던 사람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곽해의 특징은 등에 두 개의 구슬을 문 교룡 한 쌍을 그린 문신이었다.
이런 특징은 곽해의 수배 전단을 본 적이 있던 육건신이 알려준 것이었다. 이쯤되자 육건신은 더 이상 물을 것도, 의심할 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곽해가 아니면 자기를 미행했다는 이유로 이렇게 사람을 깔끔하게 죽여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겠는가? 육건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나지막이 육경을 꾸짖었다.
“넌 뭘 그리 당황하는 게냐? 혹시 함부로 묻고 다니며 사람들 이목을 끈 건 아니지?”
육건중은 이런 말을하며 지금 스스로를 속이는 건지 위로하는 건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창백해졌다를 반복했다. 육건중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더웠지만 눈을 부릅뜬 채 육경을 응시했다.
“아니에요, 어찌 감히 그러겠어요? 정말로 조심히 조사해서 무슨 짓을 해도 우리한테까지 닿지는 못할 거예요.”
육경도 공포가 극에 달한 듯 눈을 부릅뜨고 육건중을 똑바로 응시했다. 두 부자는 서로의 눈빛에서 두려움과 절망을 보았다.
육건신은 눈을 반쯤 뜨고 이들 부자의 안색을 살피다가 육건중이 결국 어떤 선택을 했는지 눈치챘다. 그는 이럴 때 자신이 여기에 남아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가문의 어르신들께 가서 이 일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하마.”
육건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육경은 평소에 약삭빨랐던 것과는 다르게 그가 가는 걸 보고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큰아버지, 이제 어떡해요?”
육건신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걱정하지 말거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이지 않니.”
그는 말을 끝내고 육경을 지나쳐 문 쪽으로 걸어갔다.
“아버지, 큰아버지께서 설마 아무것도 안 도와주진 않겠죠?”
육경이 그의 두 허벅지를 힘껏 붙잡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어떡해요? 정말 어떡해요? 만약에 소문이라도 나면 이건 가산을 몰수당하고 멸족을 당할 대역죄예요!”
육경은 죽고 싶지 않았다. 그의 인생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육경은 뽀얗고 토실토실한 아들을 낳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이제야 사람들에게 육 삼소야라 불리며 조금 체면도 세울 수 있게 된 상태였다. 그는 아무 짓도 한 것이 없는데 이렇게 젊은 나이에 한 번 펴 보지도 못하고 죽어야 한단 말인가? 그는 정말 받아들일 수 없었다!
육건중이 눈물 콧물 쏟으며 우는 차남을 바라보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긴 뭘 어째? 이 아비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니.”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온화하게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지. 다섯째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너희들까지 전부 죽게 만들 수는 없지 않겠니. 그만 일어나! 넌 가서…….”
다 타버린 초에서 불꽃이 가볍게 두어 번 뛰더니 촛농 속으로 점차 사라지며 한 줄기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희미한 아침 햇살이 창호지 안으로 스며들어와 방은 어슴푸레했다. 육경은 어둠 속에서 육건중의 입술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육건중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대답은 아주 또렷하게 했다.
“예.”
방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아마 숨을 몇 번 내쉴 정도의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마치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방 안은 너무 덥고 답답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육건중은 온몸의 힘이 다 빠진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 봐!”
육경은 기계적으로 몸을 돌려 발을 질질 끌며 밖으로 나갔다. 그가 몇 걸음 떼기도 전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매화림을 가로질러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제일 앞에 키가 크고 건장한 사람이 서 있었는데 육륜이 틀림없었다. 육경은 얼른 다른 길로 꺾어 매화나무 뒤에 숨고는 멀리서 육륜이 지나가는 걸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넌 내 탓하면 안 돼.”
* * *
육건중은 지친 듯 비스듬히 의자에 앉아 여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제어가 되지 않았던 처음의 떨림은 겨우 잦아들었지만, 그 대신 허탈함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는 누군가 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가슴이 떨렸다. 육건중은 없는 척하고 싶었지만, 밖에서 끈질기게 문을 두드렸다. 그가 어쩔 수 없이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누구냐?”
주견복이 밖에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노야, 오공자께서 오셨습니다.”
육건중이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들어오라 해라.”
문이 열리자 육륜이 침착하게 걸어 들어왔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상의를 젖히고 무릎을 꿇었다.
육건중은 그를 노려보았다. 그는 상심, 원망, 분노, 괴로움 등등 온갖 감정이 솟구쳐 올라와 한참 동안 숨만 거칠게 몰아쉬었다. 육건중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육륜에게 달려들어 그를 후려치고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온 화를 내뿜었다.
“이 짐승만도 못한 놈,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 줄 아느냐!”
육륜은 말없이 머리를 땅에 묻고 피하려 하지 않으며 그가 욕하고 때리게 내버려두었다. 그는 지금에 와서 무슨 말을 한들 아무 소용없고,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이 목숨은 육씨 가문에 되돌려 주어야 했다.
주견복은 방 안을 훑어보다가 육건신이 없는 걸 보고 얼른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그는 뒤돌아서 육건중의 심복에게 말했다.
“난 대노야께서 또 시키신 일이 있어서 이만 가 봐야겠네. 자네가 잘 지키고 있게.”
그는 상대의 대답도 듣지 않고 바로 자리를 떴다.
* * *
아침 햇살 아래, 육함은 손을 뻗어 아직 반쯤 눈을 뜨고 있는 화거아의 눈을 감겨 주며 암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한테 이런 일을 맡기는 게 아니었는데, 다 내 잘못이다. 네가 억울하게 목숨을 잃게 되었구나. 그래도 걱정하지 말거라. 네 부모는 네 대신 내가 잘 돌봐주마.”
“내가 또 뭐 해야 할 일 있어?”
육소의 목소리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억지로 버티고 있긴 했지만 등줄기가 서늘해서 최대한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도 육륜이 한 짓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 버릴 수가 없었다.
육함과 육소는 사실 별로 할 말이 없었다. 그저 화거아의 뒷일을 잘 수습하고 성가신 일이 생기지 않게 처리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이미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들을 다 했기 때문에 더 이상 머물 이유도 없었다. 육함은 육소를 쳐다보고 싶지도 않아 담담하게 말했다.
“형님은 편할 대로 하세요.”
육소는 뒤돌아 가다가 채 두 걸음도 떼기 전에 고개를 돌리고 차갑게 말했다.
“네가 그날 다섯째를 건드리지만 않았어도 다섯째가 뛰쳐나와 밖에서 어슬렁거릴 일은 없었을 거야! 그럼 이런 일도 생기지 않았겠지!”
그럼 육륜이 그날 집을 나선 다음에 그 사람들과 알게 되기라도 했단 소린가? 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궤변이란 말인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장수가 앞으로 나서며 육소에게 사실관계를 따지려 했다.
“대소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분명히…….”
육함이 그를 가로막고 고개를 저었다.
“더 말해 봐야 소용없어.”
육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류오가 말 한 마리를 끌고 헐레벌떡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이소야, 빨리 돌아가셔야 해요!”
* * *
육건중은 너무 지쳐서 의자에 주저앉아 숨을 헐떡였다.
육륜의 코와 입에서는 피가 흘렀고, 머리카락도 헝클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방 한 가운데 꼿꼿하게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는 무표정하게 계속 바닥의 청석판만 응시하며 다른 곳은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한테 할 말 없어? 너랑 같이 있다는 사람이 대체 누구냐? 대체 뭐하는 사람들이야? 말 안 해?”
육건중은 육륜이 뭔가 그럴듯한 변명을 한다면, 혹시 결론이 좋은 방향으로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며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육륜은 계속 침묵으로 일관했고, 계속 몰아붙이자 가볍게 한 마디 했다.
“그 사람은 제 큰형님이고 생명의 은인이에요. 이것 말고 더 할 말은 없어요.”
육건중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육륜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날이 이미 밝아 육륜의 눈썹도 또렷하게 보였다. 그의 눈썹은 정말로 육 노태야와 똑 닮아 있었다. 육건중은 한숨을 내쉬고 의자에 머리를 기댄 채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