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46
46화. 투차(*斗茶: 차의 색과 거품으로 승패를 가리는 놀이)(1)
임근용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데 임옥진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럼 근음이를 탓할 수도 없겠구나.”
옆에 있던 양씨가 흥미를 느꼈는지 물었다.
“네 외숙부가 오셨다고? 누구누구 왔니?”
도순흠은 오씨 집안의 사위였다. 도씨가 아프지만 않았어도 도순흠 부자는 먼저 오씨 댁으로 가서 오씨 집안의 두 어르신에게 인사를 드리고 임 씨 댁으로 왔을 것이다.
임근용이 양씨를 향해 기분 좋게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외숙부와 큰 사촌 오라버니가 왔어요. 저희 어머니께서 건강이 안 좋으셔서 외숙께 의원을 불러달라고 부탁을 드렸거든요. 그래서 외숙께서 먼저 저희 집에 들러 의원을 보내 주셨어요. 아마 늦더라도 노태야와 노부인께 안부 인사를 드리러 오씨 댁으로 가실 거예요.”
“정말 세심하기도 하지.”
양씨는 미소를 지으며 임근용을 자세히 훑어보고 임옥진에게 말했다.
“임씨 가문의 아가씨들은 참 예쁘게 생겼네요.”
“과찬이세요.”
이 말을 들은 임옥진은 자기도 모르게 임근용을 자세히 관찰했다.
임근용은 오늘 해당화 같은 붉은색 구름무늬 비단에 회색 다람쥐 가죽을 덫 댄 옷과 파란색 주름치마를 입었다. 양쪽으로 틀어 올린 머리에는 구슬로 만든 꽃 몇 개를 꽂았고 귀에는 금정향(*金丁香: 라일락)을 꽂고 있었다. 유일하게 눈에 띄는 장신구는 치마에 걸려 있는 보석 수술 금보(*禁步: 여성들의 치마나 신발에 달았던 금옥 장신구)였다.
옷차림으로 말하자면 임근용은 임씨 가문의 다른 아가씨들보다 결코 더 나을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긴 눈썹과 수려한 눈매, 새하얗고 섬세한 피부, 차분하고 아름다운 표정이 옷과 함께 어우러지니 집안의 다른 아가씨들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눈에 띄었다.
임옥진은 갑자기 왠지 모르게 언짢은 기분이 들어 육운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렸을 때 너희 자매들이 우리 애들과 잘 지냈잖니, 남의 집이라 생각하지 말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시녀들한테 말하렴.”
임근용은 임옥진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일부러 대범한 척하는 것을 보면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 그녀의 기분이 나빠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임근용은 더는 그녀의 안 좋은 기분을 살피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마음 졸일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미소 지으며 예를 올리고 재빠르게 물러났다.
그녀가 자리에 앉으니 아가씨들이 누구 옷이 예쁘네, 팔찌가 특이하네, 어느 집 연지 분이 곱네, 어느 집 떡이 맛있네 하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육운이 임근지를 흘끗 쳐다보자 임근지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운아, 강남에서도 투차를 자주 한다던데 진짜야?”
육운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런 편이지요.”
임근지가 말했다.
“그럼 너도 강남에서 왔으니 분명 잘하겠네? 궁금해서 그러는데 강남은 여기랑 어떻게 달라? 소문에 네가 명사한테 가르침을 받았다던데 우리한테도 좀 보여줄 수 있어?”
어느 정도 눈치가 있는 사람이면 이건 육운이 사람들 앞에서 재능을 뽐내게 하려고 일부러 자리를 만들어 주는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양미는 오씨 가문 사람은 아니었지만 자주 오씨 댁을 드나들었기 때문에 비교적 임근용과 친했다. 그녀는 이 말을 듣고 짐작이 간다는 표정으로 임근용을 보며 미소 지었다.
임근용도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짓고 눈을 내리깔았다. 임옥진은 자신의 유일한 친딸을 위해 정말로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다도를 겨루는 놀이인 투차는 본 조에 들어 한창 성행하는 놀이였고 아주 우아한 취미로 여겨졌다.
문인과 선비, 규방의 귀족 아가씨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궁정과 민간에서도 즐겼다.
점잖은 사람치고 자기의 다도 기술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육운이 정말로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라면 평주 문인들 사이에서 유명해지는 건 시간 문제였다.
그런데 육운이 겸손한 척하며 거절했다.
“에이, 난 그냥 조금 할 줄 아는 거지 이런 고상한 자리에서 선보일 정도는 아니에요. 사람들 앞에서 망신이나 당하면 어쩌라고요?”
임근지가 말했다.
“운아, 뭘 그리 겸손을 떨어? 자, 얼른, 자매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잖아. 한 번만 보여줘.”
임근옥은 지난번에 육륜이 자기를 못된 계집애라고 욕했을 때 육운 역시 그녀를 비웃었던 걸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금족령이 풀린 후 그녀는 육운과 임근지가 아주 가깝게 지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육운과 임근지가 임 노부인 앞에서 그녀의 자리를 차지한 뒤로 그 둘을 미워하였다. 임근옥은 그녀들이 뭘 하든 다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임근옥은 임근주의 팔을 툭 치며 작은 목소리로 경멸하듯 말했다.
“어우, 쪽팔려. 또 저렇게 아첨하는 것 좀 봐. 쟤가 세상 제일이라도 되는 것마냥 말하네. 그냥 차나 끓이는 거 아니야? 그걸 명사한테 지도까지 받았다며. 넷째 언니는 명사한테 배운 적 없어도 차 잘만 끓이던데? 허세 부리기는.”
임근옥보다 조금 더 교활한 임근주가 그녀의 팔을 꼬집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조용히 해.”
“흥, 눈꼴사나워서 더 보기도 싫어, 됐지?”
임근옥은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숙인 채 호박씨를 까먹으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임근용이 속눈썹을 떨며 눈을 들고 한 마디 끼어들었다.
“운아, 모처럼 자매들이 모두 모인 즐거운 자리니 내키지 않더라도 우리를 생각해서 좀 보여줘.”
이렇게 육운을 또 한 번 추켜세우자 임근지가 일어나 임옥진 앞으로 가더니 웃으며 말했다.
“고모, 운이가 강남의 다도 기술에 조예가 깊다고 들었어요. 저희가 구경하면서 차 맛도 좀 보고 싶은데 부끄러운지 안 하려고 하네요. 고모께서 빼지 말라고 한 마디 해주세요.”
임옥진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사람이 바로 임근지 같은 사람이었다. 임옥진은 얼른 눈웃음을 지으며 한사코 아니라고 겸손한 척을 했다.
“할 줄 알긴 뭘 할 줄 안다고 그래? 고모 낯부끄럽게 하지 마.”
이 말이 나오자 양씨와 송 씨가 모두 권하며 말했다.
“우리도 견문을 좀 넓히게 해 줘요. 이렇게 딸의 재능을 숨기려 쩨쩨하게 구는 걸 보니 우리가 딸을 훔쳐 갈까 봐 겁이라도 나나 봐요?”
임옥진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쩨쩨하다니 그게 무슨 당치도 않은 말씀이세요. 알았어요. 그냥 어린아이 소꿉장난 같은 거니 진짜인 줄 알고 비웃으시면 안 돼요.”
사람들이 말했다.
“누가 비웃겠어요? 우린 그 정도도 못 하는데요. 그저 구경이나 좀 하면서 차나 마시려는 거죠.”
육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귀밑머리를 만지고 반짝거리는 자신의 금박 석류 치마를 정리했다. 그녀는 치마 가장자리에 단 순백색의 양지옥 옥패를 어루만지며 미소를 머금고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제 기량이 많이 부족하지만 여기 계신 큰어머니, 작은어머니, 자매들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나서는 것이니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사람들이 웃으며 말했다.
“누가 널 비웃는다 그래, 걱정 말고 편하게 해.”
붉은 꽃은 푸른 잎으로 받쳐 주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육운이라는 붉은 꽃만 있고 받쳐 줄 푸른 잎이 없으면 그녀가 돋보이지 않고 오히려 너무 튀기만 할 수 있었다.
임옥진이 사람들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다른 아이들도 함께하는 게 어때요. 우리가 다 같이 심판을 봐요. 누구든 제일 먼저 물 자국을 남기는 사람이 지는 거예요. 투차를 하는데 포상이 빠지면 섭섭하겠죠. 제가 이 수정연꽃비녀를 내놓을게요.”
그녀는 말을 끝내자마자 정말로 머리에서 수정연꽃비녀를 뽑았다. 그 비녀는 조각이 정교하고 투명하며 반짝반짝 빛나는 것으로 보아 평범한 물건 같지는 않았고 적어도 몇 만 문의 가치는 있어 보였다.
그녀가 이렇게 화통하게 포상을 내놓았다는 건 육운의 다도 기술에 아주 자신이 있다는 걸 드러내는 것이었다.
지주 부인 송 씨는 본래 경성 출신이라 보고 들은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 말을 듣고 자신의 머리에서 자금(*紫金 자색을 띤 순수한 황금, 품질이 가장 좋은 황금을 이름)봉황진주비녀를 뽑아 호기롭게 앞의 다과상에 내려놓았다.
“전 이 자금봉황진주비녀를 내놓을게요. 이 비녀가 그리 비싼 건 아니지만 경성의 당가 금은방의 나이든 장인이 만든 거예요. 별건 아니고 새로운 물건이니 아가씨들 놀이에 보탤게요.”
양씨도 웃으며 머리에서 윤기가 흐르는 옥연비녀를 뽑아 내놓으며 가볍게 말했다.
“난 이걸 보탤게요.”
함께 앉아 있던 다른 여자 가족들도 하나 둘씩 주머니를 털었다. 물건의 종류는 달랐지만 모두 정교하고 작은 소품들이었다.
그러나 아가씨들은 서로 눈만 마주치며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았다.
임근용은 아주 태연했다. 임옥진이 일찌감치 다 계획을 세워 놨을 텐데 무슨 일이 생기겠는가?
잠시 후, 육씨 가문 방계 친척인 육양아(陆扬儿)라는 아가씨가 한쪽에서 일어나더니 웃으며 말했다.
“저도 한가할 때 투차를 하며 노는 걸 좋아하거든요, 제가 참가할게요.”
임근용이 가볍게 양미를 찔렀다.
“너도 다도에 소질 있잖아, 안 낄 거야?”
전생에서는 양미도 육운과 투차 놀이에 참여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녀들은 모두 육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양미는 가풍의 영향을 받아 고상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었다. 더구나 자기 집안 고모의 비녀도 걸려 있으니 다른 사람이 쉽게 그걸 가져가게 둘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임근용이 권하지 않더라도 진작부터 참여할 생각이었다. 다만 임근용이 이렇게 권하고 떠밀어 주면 다른 사람을 이기고 싶어서 주제넘게 나서는 게 아니라 추천에 의해 자연스럽게 참가하는 것이 돼서 모양새가 더 좋을 뿐이었다.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도 있다 하지 않았던가! 그녀 역시 임근용에게 권했다.
“너도 다도 좋아하잖아. 우리 같이 참가할까?”
전생의 임근용은 가뜩이나 부모님 사이도 안 좋은데 자기마저 화를 자초할까 두려워 항상 말과 행동을 조심했다. 이런 자리에서 그녀는 늘 말없이 한쪽에 앉아 구경만 했다.
그래서 전생에서 그녀는 육운의 수준으로는 자신의 적수가 될 수 없다고 자신하면서도 굳이 남의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아 참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그녀는 육운을 위해 마련된 이 무대를 망가뜨려 임옥진과 육운이 자신을 미워하게 만들어야겠다는 나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임근용은 고개를 아래로 늘어뜨리고 웃으며 말했다.
“강남에는 풍류를 아는 문인이 많다는데 운이가 강남에서 왔으니 본 것도 많을 거 아니야. 게다가 명사에게 가르침도 받았다잖아. 내 기술은 그렇게까지 뛰어나지도 않은데 감히 어떻게 참가하겠어. 괜히 망신이나 당하지.”
양미가 이 말을 듣고 더욱 승부욕이 불타오르는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넌 남들보다 뒤쳐지는 것도 아닌데 꼭 해 보기도 전에 먼저 고개 숙이고 진 것처럼 굴더라. 아주 한심해 죽겠어! 너 그러는 거 사람을 얼마나 답답하게 만드는 줄 알아? 진짜 참을 수가 없네. 너 이번에는 하고 싶든 하기 싫든 무조건 참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