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462
461화. 교환 (2)
임옥진은 하 이낭은 결코 그녀와 비교할 수 없고, 정실들과 소부인들도 하 이낭을 결코 존중하지 않을 것이며 그저 피상적인 관계만 유지하려 들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육건신이 아직 아들을 낳으려는 헛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아들을 잘 낳게 생겼다는 하 이낭을 엄선해 고른 것이라 생각했다.
육건신은 강남에서 임옥진을 대신해 하 이낭에게 여주인 노릇을 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미리 손을 써서 그녀의 눈과 귀를 속이고, 이제 와서야 그런 특별한 희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임옥진은 진심으로 기분이 나빴다. 그녀는 극도로 치욕스러워 증오심이 솟구쳤고 심지어 분노가 올라왔다. 그녀는 정실로서의 존엄성이 훼손되었다는 생각에 분개했다. 이건 돈을 쥐여 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대체 지금이 어느 때란 말인가? 임옥진은 육건신이 이 문제에 대해 절대 대놓고 말할 리는 없고 은근히 그녀를 압박하리라 생각했다. 그녀는 그가 아무리 압박을 해도 최소한 2~3년은 더 고생을 시킨 후에 천천히 허락해 줄 생각이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누군가가 이미 권력을 차지해 그 자리에 앉은 지 오래되었는데, 다른 누군가가 그걸 달갑지 않아 하며 절대 인정하려 하지 않으면 서로 사이가 어그러지게 될 것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방 마마는 이미 변한 남자의 마음을 이런 강압적인 방식으로 돌리려 하는 건 헛된 망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차라리 자기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해 챙길 건 챙기고 해야 할 일들은 하면서 실리를 챙기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었다. 이렇게 억지로 부딪쳐 봤자 득보다 실이 훨씬 많지 않겠는가.
방죽이 조심스럽게 임근용을 떠보았다.
“방 마마가 노비한테 이소부인께서 임 노부인께 말씀을 드려 대부인을 좀 설득해 주실 수는 없겠느냐고 물어보라 하더라고요, 부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임근용이 말했다.
“그래서 그렇게 해 주겠다고 했어?”
전생에서 임근용을 먼저 떠올렸던 사람은 방 마마가 아니라 육건신이었다. 육건신은 그런 말을 직접 하는 것도, 또 육 노태야를 땅에 묻기도 전에 그런 말을 꺼내는 것도 부끄러워 3개월이 지난 후에야 남몰래 임근용에게 사람을 보내 그녀가 중간에서 중재를 해 육건신이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을 전했다. 물론 그 말 속에는 어느 정도의 위협도 들어 있었다. 그 당시, 임근용이 무슨 대답을 하기도 전에 소문을 들은 임옥진이 방 마마를 보내 그녀를 호되게 꾸짖었다. 현생의 임근용은 임옥진에게 욕을 먹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런 쓸데없는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방죽이 얼른 대답했다.
“노비가 어찌 감히 이소부인께 묻지도 않고 먼저 대답을 하겠어요? 노비는 방 마마한테 윗사람들 일에 감히 노비가 나서서 참견하면 안 되는 거라고만 했어요.”
임근용이 담담한 눈빛으로 방죽을 힐끗 쳐다보았다.
“네 말이 맞아. 이건 어른들 일인데 나처럼 어린 며느리가 어찌 함부로 나서서 끼어들겠어? 또 어머님이랑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봐도 그런 일은 해 줄 수가 없지.”
임근용은 방죽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방죽을 꾸짖지는 않았다. 시녀들 사이에서 이런 식으로 서로 말을 주고받고, 떠보고, 도와주기도 하며 주인들이 직접 말하기 곤란한 일들을 완곡하게 전달하는 경우가 꽤 됐다.
방죽은 즉시 임근용의 말뜻을 눈치챘다. 방 마마가 임씨 가족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서 하라는 뜻이었다. 임근용은 이 일에 관여할 생각이 추호도 없는 것 같았다. 방죽은 얼른 화제를 바꿔 차남가의 추태와 계략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쪽에서는 오늘 대소야와 삼소야를 보내서 이소야께서 사람들과 이삿짐을 나르는 걸 도왔다고 하더라고요. 대소야께서 육공자가 정자에 멍하니 앉아 있는 걸 보고 와서 도우라고 불렀는데, 육공자께서 가도 도움이 안 될 거라고 거절하셨다고 해요.”
임근용은 조소를 참지 못했다. 차남가는 아마 이참에 육건신이 최근 몇 년간 강남에서 얼마나 많은 사재를 축적했는지 알아보고 조금이라도 자기들이 더 챙길 것이 없는지 확인해 보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육건신이 어떤 사람이던가, 그가 집으로 챙겨온 짐이 양도 많고 크기도 컸지만, 그가 어디 값나가는 물건들을 그리 쉽게 보여줄 위인이던가? 이 집안에서 육건신을 당해낼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어느 누구도 하늘의 뜻은 거스를 수 없었다.
임근용은 이런 생각을 하다가 또 다시 슬퍼졌다. 육륜이 집안에서 쫓겨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육씨 가문 사람들은 마치 처음부터 육륜이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재산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방죽은 그녀가 별로 흥미 없어 하는 걸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을 고했다.
“이소부인, 추화원 쪽은 전이랑 동일하게 하면 될까요?”
임근용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잘 챙겨 주긴 해야겠지만 어머님 심기도 거스르면 안 돼. 그러니까 전이랑 똑같이 해. 알겠어?”
그녀들 사이에 특별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임옥진이 입을 열지 않는 한 진정한 이낭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방죽이 무릎을 굽히며 인사를 한 뒤 물러갔다.
* * *
저녁 무렵, 임근용이 의랑에게 국수를 먹이고 있는데 밖에서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처럼 한바탕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앵두가 밖에 나가 확인하더니 임근용에게 말했다.
“대노야께서 강남에서 가져온 값나가는 물건들을 노부인께 보여드리려고 이쪽으로 가지고 오셨어요. 노부인께서 확인하시고 난 다음에 문중의 재산 목록에 추가하라 하시면서요. 능라비단이랑 금, 은으로 만든 그릇들이 아주 많더라고요. 또 이노야, 이부인, 삼노야, 삼부인을 비롯해 소야들 소부인들까지 전부 모셔오라 하셨어요.”
임근용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문단속 잘하고 쓸데없이 밖에 나가서 어슬렁거리지 마. 만약 누가 와서 물으면 난 병이 나서 혹시라도 어른들한테 옮길까 봐 못 간다고 해.”
역시나 임근용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바깥의 소란스러움이 잦아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그녀를 부르러 왔다.
“이소부인, 본채로 오시랍니다.”
앵두는 임근용이 지시한대로 대답했다.
“이소부인께서 병이 나셨는데 혹시라도 어르신들께 옮길 수도 있어서 함부로 나가실 수가 없어요.”
부르러 온 시녀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대노야께서 걸으실 수만 있으면 오시라고 하셨습니다.”
아마 실제로 한 말은 이것보다 훨씬 더 듣기 거북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임근용에게 죽지 않았으면 오라는 소리였다.
임근용은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투덜댔다. 아프다는 소리를 듣고도 이렇게까지 괴롭혀대는 걸 보니 육건신은 역시나 그녀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보니 임옥진이 얼굴을 비추지 않아 화가 난 육건신이 그녀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더니 딱 그 짝이 아닌가. 임근용이 맥없이 대답했다.
“마마는 가서 아버님께 곧 간다고 말씀드려.”
시녀가 대답하고 나가자 춘아가 임근용에게 옷을 입혀 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아가씨께서 이 일을 중재해 주길 바라는 사람이 방 마마 하나는 아닐 거예요. 아마 대노야께서도 그래 주길 바라고 계시겠죠.”
하 이낭은 이미 실질적으로는 이낭 대접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필요한 건 임옥진의 인정이나 묵인뿐이었다. 아무리 육건신이라도 그런 일을 육 노부인에게 직접 부탁할 수는 없을 테니 임근용에게 시키려 들 것이 뻔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그녀에게 대놓고 하는 것 또한 체면상 불가능해서 완곡하게 암시하거나 그도 안 통하면 강요하려 들 것이 틀림없었다.
육건신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본 임근용은 거울을 보고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버텨봐야지.”
육함이 지금 그녀의 편에 서 있는데 육건신이 그녀에게 뭘 또 어쩌겠는가? 아마 그녀에게 좀 쩨쩨하게 굴며 괴롭히는 정도밖에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맞아요, 절대로 관여하시면 안 돼요…….”
도씨를 가장 가까이에서 모신 춘아는 오래전부터 임옥진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임옥진과 관련된 일 때문에 임근용이 피해를 보지 않기를 바랐다. 더구나 그녀는 육건신이 아들도 못 낳는 임옥진을 지금까지 참아 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마땅한 상황이니 이 일은 임옥진이 양보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춘아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또 다른 각도에서도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자식도 없는 하 이낭이 이렇게까지 총애를 받고 있으니, 탈상한 후에 혹시라도 그녀가 아들이라도 낳게 된다면 임근용과 육함의 신분이 난처해질 가능성도 있지 않겠는가. 이런 이유로 그녀는 이 일을 도와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임옥진을 도와 하 이낭을 최대한 압박하며 그런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싹을 잘라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임근용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춘아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아챘다. 그녀는 전생에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 육건신이 아들은커녕 딸도 한 명 낳지 못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현생에서 그녀와 육함은 둘 다 멀쩡했기 때문에 장남가의 후계자라는 신분을 빼앗길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춘아는 임근용의 입장에 서 진심으로 그녀를 위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임근용이 살며시 춘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넌 아무것도 할 필요 없고 그냥 평소처럼 행동해. 대신 남들한테 괜한 꼬투리 잡히지 않게 뭘 하든 신중하게만 하면 돼.”
육건신은 수완이 좋은 사람이라 완곡하게 위협하는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주변 사람을 모함하거나 임옥진이나 임근용의 약점을 찾아내 압박하며 원하는 걸 얻어내려 할 가능성이 있었다. 춘아는 요 며칠 동안 본 대노야의 수법들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여담은 거기까지 하고 임근용은 얼른 몸단장을 했다. 그런 다음 춘아와 앵두의 부축을 받으며 영경거의 본채로 향했다. 병풍을 돌자마자 상자 예닐곱 개가 전부 뚜껑이 열린 채 방 한 가운데에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안에는 대부분 고급 능라 비단이 들어 있었다.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들이 한 상자, 각종 장식품이 한 상자 있었으며 옥, 마노, 수정, 도자기, 청동 그릇이 들어있는 것들도 있었다. 또 다른 상자에는 여러 가지 진귀한 약재들이 들어 있었고, 그 옆의 상자에는 각양각색의 귀중품들이 들어 있었지만 그다지 값나가는 물건은 없어 보였다.
육 노부인의 아랫목에 앉아 있던 육건신이 두꺼운 장부 두 권을 들고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여기에 가져온 건 자잘한 것들이고 큰 자개 책상과 의자 같은 것들은 창고에 가져다 놨어요. 어머님께서 사람을 보내 장부랑 맞춰서 확인해 보세요. 제 녹봉이 너무 적어서 부끄럽게도 이것밖에 안 되네요…….”
육 노부인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육건립이 입을 열었다.
“형님 무슨 말씀이세요, 명절 때마다 챙겨 보내신 선물만 해도 어디 한두 푼인가요?”
육건신이 칭찬하는 듯한 눈빛으로 육건립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