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47
47화. 투차 (2)
일은 그녀가 계획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양미는 역시 그녀에게 참가하라고 강요했다. 하지만 임근용은 그녀의 말에 잠시 멍해졌다. 남들 눈에 예전의 나는 답답해서 짜증이 날 정도였던 건가? 그녀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양미가 그녀를 잡아당기더니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저희도요. 이런 재미있는 놀이에 저희가 빠지면 섭섭하죠! 여분의 다구가 준비되어 있을는지 모르겠네요?”
임옥진은 처음부터 양미가 참가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임근용까지 참가할 줄은 몰랐다. 임옥진은 조금 놀란 눈빛으로 자신의 조카딸을 보았다. 하지만 양미에게 꼭 붙잡혀 약간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임근용을 보고 양미가 억지로 그녀를 끌고 나온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이 조카딸이 고훈을 잘 불고 다도를 좋아한다고 듣긴 했지만 재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임옥진은 그녀가 오랜 시간 집 안에서만 갇혀 살았고 접촉하는 사람도 많지 않으니 보고 들은 것도 그리 많지 않아 아마 그다지 뛰어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말했다.
“있어, 있어, 없을 리가 있나? 얼른 가져오너라! 참가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즐겁고 좋지, 또 참가하고 싶은 사람 있니?”
더 이상 대답이 없자 그녀는 양씨를 향해 말했다.
“양미 저 아이는 정말 성격이 시원시원하네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져요.”
양씨가 웃음을 머금고 조카딸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아이가 천방지축이라 그래요. 오늘 아운이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걸 제대로 알려주면 저 교만함도 좀 사그라들겠지요.”
임옥진은 육운의 실력에 자신만만해 하면서도 오히려 겸손을 떨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이건 그냥 어린아이들끼리 장난치며 노는 것이니 진심으로 여기시면 곤란해요.”
그녀들이 이런 대화를 하는 사이에 누군가가 무대에서 설창을 하던 여자 예인을 내려보내고, 비단 의자 금석, 영자목(瘿子木) 다기상, 대나무 다구, 은차롱(*茶笼: 차를 우리는 망), 금침추(*砧椎: 차를 다듬는 다듬잇돌과 방망이), 토끼 문양 찻잔, 금 주전자, 은차연(*茶碾: 차를 빻는 돌맷돌과 같은 기구), 거위 그림이 그려진 비단 차라(*茶罗: 차를 걸러내는 데 쓰는 체), 금 찻숟가락, 금병 등의 물건과 물을 가지고 와 대청 정중앙에 놓았다.
육운은 시녀가 받쳐 들고 있는 작은 백자 대야에서 손을 깨끗이 씻고 청자 향로에 향을 피우며 입에는 적당한 미소를 띠고 육양아, 양미, 임근용을 향해 말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임근용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누군가 옷자락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고개를 숙이고 보니 임근주가 미소를 머금고 그녀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넷째 언니, 내가 방금 일곱째랑 누가 이길지 내기를 했는데, 설마 내가 지는 건 아니겠죠?”
임근옥이 해바라기 씨를 입에 던져 넣으며 말했다.
“넷째 언니, 얘 말은 무시해요, 얘 지금 언니가 지는 쪽에 걸었어요. 언니 꼭 이겨서 코를 납작하게 해 줘요.”
임근용이 쌍둥이의 똑같이 생긴 얼굴을 훑어보았다. 임근옥은 여느 때와 같이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고 임근주는 늘 하던 대로 부드러운 말 속에 뼈를 숨겨 도발하고 있었지만 그 둘의 목적은 동일했다. 임근용이 이기게 만들어 이 연극 무대를 망치는 것이다. 하지만 임근용은 무슨 억울한 일을 당한 적도 없는 임근주까지 왜 이러는 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임근용은 대답 없이 담담하게 웃으며 임근주의 손에서 옷자락을 잡아 빼고 앞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이 자리에 앉자 임근용은 다기와 물, 찻잎 등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앞에 놓인 다기와 물품은 전부 최고급이었다. 물은 혜산의 샘물이었고 차는 최상등급의 용봉단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가씨들에게 준비해 준 물건은 전부 동일했고 어떤 속임수도 보이지 않았다. 이를 보면 임옥진 모녀가 얼마나 자신감에 차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육운은 이미 한참 전부터 그녀의 적수가 되지 못했고, 지금은 더더욱 그랬다. 임근용은 육운의 분을 바른 풋풋한 얼굴을 보며 속으로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 그녀가 손을 살짝 흔들자 여지가 앞으로 나와 그녀의 시중을 들었다. 임근용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앞에 있는 것들에 집중하면서 오직 차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차를 덖고, 갈고, 거르고, 물을 끓이고, 차를 우리는 일련의 기구가 다 구비되어 있었고 한쪽에는 다선(*茶筅: 가루차를 탈 때 젓는 기구)과 가루를 옮기는 수저까지 있었다.
첫 번째로 따뜻한 물 한 국자를 찻잔 주변에 부어 잔을 데우고 소량의 물을 부어 가루를 고루 섞었다. 그다음 차의 양에 맞춰 뜨거운 물을 계량해 차에 부으면서 손으로는 차롱을 가볍게 들고 약간 기울어진 상태로 손목을 돌려 거품이 마치 밝은 달 옆에 드문드문 반짝이는 별과 같이 보일 때까지 우렸다.
두 번째로는 찻잎에 물을 조금 부어 적시고 뜨거운 물을 둥글게 굴려가며 빠르고 힘 있게 부으면 찻잎의 색이 점점 올라오면서 거품이 마치 구슬처럼 생겨났다. 세 번째는 물을 두 번째와 동일한 방식으로 붓되 가볍고 균일하게 부어 표면에 좁쌀 모양의 게눈 같은 거품이 사방에서 올라오게 만들었고, 이쯤 되면 차의 색은 이미 6, 7할 정도는 우려 나온 셈이었다.
네 번째로 뜨거운 물을 적게 붓고 차롱을 넓은 범위로 천천히 흔들어 찻잎의 다채로운 색깔이 올라오게 하면, 점점 가벼운 구름 같은 거품이 따라왔다. 다섯 번째는 물을 조금 더 많이 하여 경쾌하고 거침없이 차롱을 흔드는 것으로 마치 안개가 응집하여 눈이 되는 것 같이 거품이 올라오고 차의 향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여섯 번째로는 물을 부드럽게 돌리며 붓는데 그러면 갑자기 우유 같은 거품이 올라왔다. 일곱 번째로 가볍고 묽은 거품과 탁하고 무거운 거품이 뒤섞여 부연 안개같이 세차게 치솟아 올라 잔에 넘쳐 오를 정도까지 우리면 찻잔 주위에 거품이 응축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임근용은 온 정신을 집중하여 단숨에 해치우고 손을 살짝 들어 이미 끝냈다고 표현했다. 찻잔에는 거품으로 만든 매화 한 송이가 찬란하게 피어 있었다. 부연 안개 같은 김이 피어오르는 가운데 마치 진짜 국화처럼 보였다. 장내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순간 낮은 경탄이 흘러나왔다. 육양아는 이미 움직임을 멈추고 집중하며 임근용을 바라보고 있었다. 양미가 하하 웃더니 다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내가 졌어.”
육운만이 얼굴을 붉히며 자기 앞에 놓여있는 찻잔을 고집스럽게 바라보면서 찻잔 안의 꽃이 빨리 흩어지지 않고 조금 더 버텨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임옥진이 처음에 말했던 규칙은 물 자국이 먼저 난 사람이 지는 것이었지 거품으로 그린 그림이 얼마나 오랫동안 남아 있는가는 아니었기 때문에 모두들 선뜻 누가 이기고 졌는지 평가하기 어려워했다.
잠시 후 임근용의 찻잔에 있던 매화가 점점 사라지고 하얀 거품만 남았다. 또 얼마 안 있어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물 자국이 생겼어!”
이어서 육운 쪽에서 옥패가 부딪치는 맑은소리가 났다. 육운은 고개를 들고 살짝 붉어진 눈으로 처량하게 웃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졌어요, 넷째 언니가 다도 기술을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었는데 수준이 정말 높네요!”
임근용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전생에서 이 나이대의 그녀는 거품으로 매화를 그릴 수 없었기 때문에 약간의 속임수가 없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물 자국을 내는 것만큼은 육운보다 오래 버틸 수 있었다. 그래서 임근용은 전혀 부끄러운 기색 없이 약간 불안한 얼굴로 작지만 또렷하게 말했다.
“동생이 날 봐줘서 그런 거지! 내가 운이 좀 더 좋았을 뿐이야.”
육운은 마지못해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남한테 뒤쳐지는 실력은 아니에요. 언니는 그렇게까지 겸손해 할 필요 없어요.”
아직 어린 나이인 육운이 자기가 주인공인 무대를 다른 사람이 망쳐놓은 걸 보면서도 이 정도로 포용력을 발휘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보며 약한 연민의 감정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감탄했다. 승부의 승패는 그저 정한 규칙에 따른 것일 뿐이었다. 육운의 실력은 확실히 임근용과 비교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임근용의 실제 나이를 감안해서 생각해보면 육운이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이미 재능이 있다 할 만 했고 실상은 육운이 이긴 거나 다름없었다.
모두가 임옥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임옥진은 임근용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뼈아픈 웃음을 짓더니 천천히 말했다.
“정말 대단하구나!”
임옥진은 애써 감추려 했지만 사람들의 귀에는 그녀의 목소리가 경직된 것이 너무나 분명하게 들렸다.
쌍둥이는 흥분한 듯 눈을 깜박였고, 임근지와 문씨는 고개를 돌려 육운의 무대를 뺏은 임근용을 나무라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임근용은 눈을 내리깔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처럼 불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속으로 은근히 기뻐하고 있었다. 자신이 임옥진의 일을 망쳤으니 이번에는 임옥진이 정말로 그녀를 미워할 것이다.
‘육씨 가문에서는 분명 나중에 또 사람들을 초대할 거야. 그땐 내가 오든 말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겠지. 정말 잘 됐어.’
갑자기 지주 부인 송 씨가 “하” 하고 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다들 수고가 많았어! 임씨 가문 넷째는 기량이 한 수 위인데도 겸손하구나. 육씨 가문 셋째도 기량이 대단하니 시간이 지나면 분명 대성하게 될 거야. 양씨 가문 아가씨도 호탕하고 시원시원하니 다들 좋은 숙녀가 될 재목들이네!”
그녀의 이 말로 인해 어색한 분위기가 다소 완화되었다. 양씨도 따라 웃으며 양미를 질책했다.
“아이가 철이 없어서 기량도 뛰어나지 않으면서 함부로 나서는 바람에 사람들한테 폐를 끼치고 비웃음만 사게 되었네요! 그런데도 이렇게 칭찬을 하시다니요. 얘는 좀 혼나야 돼요.”
그녀의 이 말에는 약간의 죄책감이 담겨 있었다. 양미가 임근용을 억지로 끌어들여 투차에 참가하게 해 임옥진 모녀의 계획을 망쳤기 때문에 양씨는 임옥진이 들으라고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
임옥진은 이미 마음을 다잡고 임근용을 직시하며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자애롭게 웃었다.
“우리 착한 조카 이리 와! 고모가 비녀를 직접 꽂아 줄게.”
임근용은 처음부터 포상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쯤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그녀는 사뿐사뿐 앞으로 걸어가 예를 올리고 웃으며 말했다.
“비록 오늘 이기긴 했지만, 정말 운이 좋았을 뿐이라서 어르신들의 물건을 받기에는 부끄러워요.”
‘분수도 모르고 주제넘게 설치다니! 그 어미에 그 딸이라더니 조금도 손해 볼 줄도 모르고 남한테 양보할 줄도 모르는구나. 정말 이런 아이일 줄은 몰랐네.’
임옥진은 입꼬리에 약간의 비웃음이 담긴 미소가 걸렸지만 말투는 아주 친절했다.
“이것아, 어쨌든 네가 이겼잖아. 이미 너희들 주려고 내놓은 물건을 어찌 다시 가져가란 게야? 네가 이렇게 재능이 출중한 걸 보니 이 고모가 아주 기쁘구나. 꾸물거리면서 좀스럽게 굴지 말고 얼른 와서 가져가라.”
만약 임근용이 다른 사람을 이겼다면 임옥진은 틀림없이 아주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이긴 사람은 임옥진의 소중한 친자식이었다. 임옥진은 속이 좁은 사람이라 이 친절한 웃음만큼 마음속으로 그녀를 미워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임옥진이 포상을 가져가지 않으면 좀스러운 거라는 말까지 하니 임근용 역시 더 이상은 거절할 수 없었다. 이 물건들은 자그마치 몇 만 문의 가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