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471
470화. 억울함 (1)
육건중이 계속 말을 이었다.
“제가 그때 어머니께 이건 온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이고 적은 돈으로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성공하기만 하면 온 가족이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돈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어요. 이 일은 둘째 조카며느리도 알고 있고, 또 참여도 했어요. 어머니한테 말씀만 안 드렸을 뿐이죠. 그런데 어머니께서 허락을 해 주지 않으셔서…….”
육건신이 담담한 눈빛으로 힐끗 육함을 보았다.
육 노부인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
“내가 허락도 안 했는데 감히 그런 짓을 하다니? 하고 싶으면 네 돈이나 가지고 할 것이지 왜 집안의 돈까지 탐을 낸단 말이냐? 그 돈에 네 몫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네 큰형과 셋째 동생의 몫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아야지! 대체 생각이 있는 게냐?”
그녀는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는지 짝 하고 육건중의 뺨을 후려쳤다.
“난 너 같은 아들을 둔 적 없으니 썩 꺼져라! 큰애야, 가서 가문 어르신들을 모셔 와서 이 불효자를 내쫓아버려라! 다시는 내 눈앞에 보이지 않게 해라.”
육건신도 당연히 육 노부인이 홧김에 한 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정말로 그런 짓을 한다면 나중에 후회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의 목표는 차남가를 이 집에서 쫓아내는 것이 아니었다. 육건신이 원하는 건 차남가가 횡령한 재물을 전부 토해내고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것이었다. 육건신이 열심히 육 노부인을 설득했다.
“어머니, 고정하세요. 뭘 잘못했는지 아는 사람은 고치기도 쉽잖아요. 둘째야, 네가 뭘 잘못했는지 이제 알겠어?”
정세를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이야 말로 똑똑한 사람이라 하지 않던가. 지금은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 때였다. 육건중도 화를 내며 일가족을 데리고 멀리 떠나버릴 수도 있었지만, 나이가 많고 자손도 한둘이 아닌 그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육건중이 울분을 삼키며 말했다.
“어머니, 아들이 정말 잘못했어요. 잘못을 인정하고 제가 가져간 돈은 전부 돌려놓을게요. 또 큰형님과 셋째한테도 사과할게요. 제가 잠깐 머리가 어떻게 됐었나 봐요.”
육건신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육건중은 화를 눌러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육건신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잘못을 빌었다.
“큰형님, 제가 잘못했어요.”
그는 육소와 육경, 송씨 등이 아직도 거기에 우뚝 서 있는 걸 보고 버럭 화를 냈다.
“어서 사죄하지 않고 뭐하는 게냐?”
육건신은 차남가 일가족이 굴욕적으로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걸 보고 아주 우쭐해하며 엄숙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훈계했다.
“큰형이 되어 가지고 동생한테 뭘 그리 따지겠느냐. 하지만 방금 네 형수가 억울한 일을 당한 건 사실이니 가족 간의 화목을 위해서라도 그 응어리는 풀어 주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육건중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예, 이따가 큰 형수께도 가서 사과를 드릴게요.”
그러더니 송씨를 밀치며 말했다.
“죽고 싶소? 큰형수는 왜 밀고 난리요?”
송씨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제가 가서 큰형님께 사죄드릴게요.”
그녀의 뒤에 서 있던 강씨는 굴욕감과 억울함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
육건중은 또 사람들을 데리고 가 육건립 부부에게 사과했다.
“셋째야, 셋째 제수씨, 우리가 못할 짓을 했어.”
육건립은 그가 잘못을 깨달았으면 된 거라 생각하고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그들의 사과를 받은 뒤 굳은 얼굴로 말했다.
“둘째 형님, 전부터 형님한테 한번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솔직히 형님 행동에 문제가 있어요. 계속 그러시면 아이들이 따라 배울 거예요.”
육건중은 속에서 천불이 올라 왔지만 필사적으로 참으며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이제 큰형수께 사죄드리러 가자.”
육건신이 말했다.
“서두를 필요 없어. 장부를 관리하는 사람이 누구냐? 일단 장부부터 깨끗이 정리하고 나서 다시 이야기하자꾸나. 범포 일은…….”
육건중은 원한 어린 눈빛으로 범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저자를 지목하는데 설마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어요! 저놈의 재산은 절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에요.”
육건신이 말했다.
“범포의 재산에 관해 조사해 보니, 아버지께서 일전에 범포의 아들에게 돈을 벌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고 하더구나. 그건 범포가 횡령해서 얻은 재산이 아니야.”
범포가 앞으로 나와 육 노부인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 절하며 말했다.
“범포가 사직을 청하오니 노비가 몸값을 치르고 떠날 수 있게 노부인께서 허락해 주십시오.”
육 노부인은 범포라는 핵심 증인을 보고 가슴이 답답해져 아무렇게나 손을 흔들었다. 육건신이 그녀를 대신해 대답했다.
“그렇게 해라.”
* * *
임근용은 임옥진이 넘어져서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다친 건지 확인하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전생의 임옥진은 이렇게 넘어진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얼마나 다쳤는지 예상할 수가 없었다. 방 마마가 옆에서 빠른 걸음으로 따라오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걸을 때마다 아프다고 하셔서, 일단은 가마에 태워 집으로 보내드렸어요.”
임근용은 이 말을 듣고 임옥진은 사실 그리 심하게 넘어지지 않았고, 그저 화가 나서 이걸 빌미로 송씨에게 복수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는 걸 알아챘다. 그녀가 임옥진의 집에 도착했을 때, 의원은 아직 오지 않은 상황이었고, 임옥진은 침상에 누워 넋을 놓은 채 창밖의 햇빛만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육건신이 하 이낭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한 이후로 늘 이런 표정이었다.
임근용이 한숨을 내쉬고 임옥진의 침상 쪽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모, 어디 편찮으세요? 제가 한 번 볼까요?”
임옥진은 그녀를 속이려 하지 않고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별로 심하지는 않아. 팔꿈치와 무릎에 멍이 들고 허리를 삐끗해서 좀 아픈 것뿐이야.”
그녀가 바지를 걷어 올리며 임근용에게 무릎을 보여 주었다. 그녀의 왼쪽 무릎은 크게 멍이 들고 부기도 있었다.
임근용이 말했다.
“움직이지 마세요. 의원이 와서 봐야 뼈가 상했는지 알 수 있어요.”
임옥진이 다시 누우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쪽 상황은 어때?”
임근용은 중요한 것들만 짚어 그녀에게 한 번 이야기했다. 그녀는 육건중이 기둥뿌리에 머리를 받아 죽겠다며 소란을 피웠다는 대목을 이야기하며 세상사 돌고 도는 것이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전생에서 죽음으로 결백을 밝히겠다고 했던 사람은 범포였지만, 현생에서는 육건중이 그 주인공이 된 것이다. 사소한 한 가지 일이 많은 사람과 사건을 변화시켰다는 생각이 들어 임근용은 절로 감탄했다.
임옥진은 이야기를 듣고 허허 웃다가 상처가 당겨지는 바람에 통증을 느꼈다. 그녀가 숨을 훅 들이마시고 말했다.
“이노야는 그래도 싸. 그래도 아마 어머님께서는 싸고도실 거야. 어머님은 불쌍한 사람만 보면 가만히 못 계시는 유약한 성격이시잖아. 그것들이 어머님 무릎을 끌어안고 울면 아마 또 마음이 약해지시겠지.”
임옥진이 요 며칠 우울했던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잘 알고 있는 방 마마가 얼른 그녀를 위로했다.
“이번에는 아닐 거예요. 대노야께서 대부인께서 넘어지셨다는 말을 듣자마자 이부인께 버럭 화를 내시며 육씨 가문의 며느리가 될 자격도 없다고 꾸짖으셨어요. 저희가 나올 때까지도 이부인께서 노부인의 무릎을 안고 울고 계셨는데, 노부인께서 이부인을 거들떠보지도 않으셨어요.”
그러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노야께서도 속으로는 여전히 부인을 생각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임옥진은 그다지 기뻐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개나 고양이를 키워도 정이 들게 마련인데, 하물며 본처인 내게 정이 한 점도 없을 수가 있겠니. 이건 대노야의 체면을 짓밟은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지 않느냐? 그런데도 대노야가 가만히 있으면, 누가 대노야를 두려워하겠어.”
임근용과 방 마마는 전부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은 어떤 일은 일단 일어나면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때 방죽이 살짝 기뻐하며 잰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왔다.
“대부인, 이소부인, 이노야께서 횡령한 돈을 전부 다 뱉어내셨어요!”
* * *
정당에 끌려온 뚱뚱한 스님은 평소 자비로운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온 얼굴이 땀과 개기름 범벅이었다.
“불탑을 수리하는데 전부 20만 전이 들었다 했는데, 실제로 든 돈은 10만 전입니다. 그걸로 식비, 지전, 향초 등을 샀고…….”
육건신은 아주 흥미진진해하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육건중이 돈을 횡령하는 방법을 이렇게 많이 알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육건중은 정말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돈을 긁어모았는데, 만약 임근용이 초기부터 제대로 대비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들은 정말 아무 단서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육 노부인이 피곤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피곤하니, 너희 형제들끼리 알아서 처리해라. 괜히 나까지 힘들게 하지 말고.”
육건신이 손을 흔들자 뚱뚱한 스님이 바로 말을 멈췄다. 육건신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육 노부인을 부축하려 했다.
“아들이 배웅해 드릴게요.”
육 노부인은 굳은 얼굴로 그의 손을 뿌리쳤다.
“누가 감히 육 대노야를 귀찮게 하겠느냐.”
육건신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육건중이 그 모습을 힐끗 곁눈질하며 속으로 냉소했다. 이럴 줄은 몰랐지! 어디 한 번 당해 보라지. 오늘 일은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육 노부인도 나이를 허투루 먹은 사람은 아니었다. 육건중이 먼저 잘못하긴 했지만, 육건신이 최선을 다해 함정을 판 것 역시 사실이었다. 이런 사람을 정말 후덕한 사람이라 칭할 수 있겠는가? 그들 중에 제일 멍청한 건 육건립이었다. 육건중은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육건신은 씁쓸하게 웃으며 손을 거두고 억울해하며 말했다.
“어머니께서 아들을 탓하시는 거 알아요. 제가 형 노릇을 제대로 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진 않았겠지요……. 뭐 어쩔 수 없네요.”
그가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
“셋째야, 네가 어머니를 좀 배웅해드려.”
일찌감치 육 노부인의 곁에서 기다리고 있던 육건립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어머니,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마음에 상처를 입은 육 노부인은 지금 아들들이 전부 눈에 거슬렸다. 그녀가 담담하게 말했다.
“너희는 너희들한테 급한 계산부터 끝내 거라. 늙은이야 죽든 말든 무슨 상관이겠느냐?”
강씨가 말없이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 육 노부인은 강씨를 힐끗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딱, 딱, 딱” 하고 지팡이를 짚으며 밖으로 나갔다.
육 노부인이 밖으로 나가자 육건신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담담하게 말했다.
“계속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