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476
475화. 징조
육건립은 진지하게 듣는 것 같았지만 확답은 하지 않고 “응응 아아” 소리만 내며 얼버무렸다. 하지만 여씨는 과장 섞인 육건중의 말을 듣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늘 가난했던 사람에게 갑자기 큰돈이 생겨버리니 그 돈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불안했다. 그녀는 자고 일어나면 갑자기 그 돈이 어디로 날아 가 버리기라도 할까 봐 걱정되어 감히 움직일 수도 없었다. 여씨는 장남가가 어떻게 하는지 보고 장남가에서 하는 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눈을 들어 육함을 힐끔 쳐다보았지만 육함은 눈을 내리깔고 가만히 있었다. 여씨는 임근용에게 가서 일의 내막과 정보를 묻고 싶었지만, 육건신이 두려워 그저 조바심을 내며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육건신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둘째야, 셋째까지 끌어들이지 마. 이 일은 좀 더 자세히 알아본 후에 다시 이야기하자꾸나.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다 뜬구름 잡는 소리일 뿐이야.”
임근용은 눈을 깜박였다. 그녀는 육건신이 사람들 앞에서는 이렇게 말을 하고 있지만 이미 마음이 움직였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매보청은 어쨌든 명성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고, 이 일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알아볼 생각이 전혀 없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일단 알아보기 시작하면 실패할 리가 없을 거라며 안심할 것이다. 돈을 벌 기회가 눈앞에 있고, 적은 밑천으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데 이런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만약 임근용이 이 일의 결말에 대해 알고 있지 않았다면, 그녀도 뿌리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해 줄 수 없었고, 설령 그녀가 말을 한다 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 뻔했다. 돈 앞에서는 친구 아니면 원수밖에 없다지 않은가.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가는 이미 장밋빛 노을에 물들어 있었고, 멀리 구름 몇 개가 천천히 움직이며 모양과 색깔을 달리 하고 있었다. 구름이 아무리 토끼나 솜뭉치 모양으로 보인대도 그것이 정말로 토끼와 솜뭉치인 건 아니지 않은가. 바람이 불어오면 구름은 바람을 따라 흩어져 버릴 것이다.
육함은 천천히 시선을 돌려 임근용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임근용의 표정을 보고 왠지 모르게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는 고개를 돌려 육건립의 망설이는 모습, 여씨의 초조해하는 모습, 육선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응시했다. 육함은 어찌 되었든 간에 육건립이 이 일에 참여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삼남가는 지금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다.
전형적인 행동파인 육건신은 사람을 시켜 알아보겠다고 말한 다음 즉시 그가 가장 신뢰하는 유능한 심복 집사 주견복에게 이 일에 대해 알아보라 지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씨 가문에서도 이 일에 투자했다는 소식이었다. 오씨 가문은 또 한 가지 천혜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오상이 화정현 쪽 관청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마 매보청은 곧 설립될 시박사의 중요한 자리에 오상을 앉히려 할 것이다. 시박사의 중요 위치에 자기 사람을 심어 두고 바다로 나가 물건을 가져와 팔면 얼마나 많은 이득을 챙길 수 있겠는가!
이 소식이 임근용의 귀에 전해졌을 때,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육씨 가문이 패가망신하는 걸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직감했다! 그 이후로 육건신과 임옥진은 더는 그녀에게 그 일에 투자하는 일에 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육건신은 그녀와 육함에게 변함없이 친절하게 대하며 허세를 부렸고, 가끔씩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임옥진은 계속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긴 했지만 끝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서로 사이가 벌어져 버리긴 했지만, 애초부터 임근용은 그들이 자신에게 금전적으로 무슨 이득을 주길 바라지 않았다. 또 아무리 상황이 나빠진다 한들 전생에서만큼 나빠질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육함은 오히려 살짝 초조해했다. 육건립은 육함과 육선 두 사람 다 장사에 능하지 않으니 그냥 가진 걸 지키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육함의 충고를 따르려 했다. 하지만 여씨는 이미 재물에 눈이 멀어 있었다. 장남가와 차남가가 이 일에 투자해 떼돈을 벌게 될 것이 너무도 뻔한데 그들만 놓칠 수 있겠는가! 그녀는 매보청에게 투자해 돈을 맡겨두면 돈을 버는 건 매보청이 그녀 대신 알아서 할 것이고, 그녀는 수익이 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걱정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육함이 여씨를 말리자 그녀는 무슨 싫은 소리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되도록 육함을 피하며 어떻게 해서든 그 일에 투자하려 했다.
* * *
이날은 모처럼 육 노부인의 기분이 좋아 특별히 임근용에게도 쉬라며 휴가를 주었다. 임옥진 쪽의 상황도 안정되어 밖에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 임근용은 의랑을 안고 자기 집으로 향했다. 그녀는 먼저 사람을 불러 방에 있는 침상을 치우라고 한 뒤 병풍으로 삼면을 둘러싸고 언제든 의랑이 그 침상 위에서 놀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그녀와 육함은 그 침상 옆에 앉아 햇볕을 쬐며 한가로이 대화를 나눴다.
육함은 침상의 가장자리까지 기어올라 하마터면 밖으로 떨어질 뻔한 의랑을 안아 다시 안쪽으로 내려놓으며 여씨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무슨 말을 해도 말릴 수가 없소. 혹시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소?”
임근용이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무슨 방법이 있겠어요? 당신 말도 안 들으시는데 내 말은 더 말할 것도 없죠. 혹시라도 셋째 숙부께서 완강하게 반대하시면 숙모께서도 들으실지도 모르겠네요.”
육함이 가서 말리는 것까진 괜찮지만, 임근용이 가서 말렸다가는 여씨에게 괜한 욕을 먹을 수도 있었다. 장남가와 차남가가 전부 그 일로 돈을 버는데 왜 삼남가만 못 하게 하느냐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사서 욕먹을 짓이 뻔하지 않은가? 적어도 임근용에게 심보가 못됐다는 누명을 씌우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그녀는 이제 막 조금 누그러진 관계를 이 일 때문에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더구나 삼남가가 재산을 분할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로 여씨의 친정에서 뻔질나게 드나들며 그녀의 귀에 끊임없이 바람을 불어대고 있어서 그녀를 말리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정말로 쉽지 않았다! 육건립과 여씨는 육씨 가문에서 가장 특이한 부부였다. 육건립은 육 노태야의 총명함과 강인함은 물려받지 못하고 고집스러운 성격만 물려받았다. 그는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온화한 태도로 침묵하며 쓸데없이 나서지 않고 저자세로 참을 수 있는 한 참으며 평온을 추구했다. 하지만 정말로 심한 압박을 받으면 폭발하듯 고집스러운 면모를 드러냈다. 하지만 어쨌든 그의 성격이 육건신이나 육건중에 비해 많이 유약한 건 사실이었고, 여씨 또한 그의 이런 성격에 아주 익숙해져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두 사람 사이에 형성된 습관이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는 상태라면, 시끄러워지는 걸 피하기 위해 참고 양보하는 길을 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육함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당신이 세전 형님한테 충고한 것 정도로 절충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소.”
만약 삼남가에서 그 일에 참여하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은 거라면, 육함은 막을 수도 없고, 막을 입장도 되지 못했다. 육선도 아무 말 안 하는데 그가 무슨 자격으로 막는단 말인가? 그러니 육함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녀가 임세전에게 했던 것처럼 최대한 적은 돈을 투자하라고 설득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네요.”
임근용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빛을 발산하는 태양을 응시했다. 몸에 와 닿는 햇볕은 정말로 따스했지만, 그녀는 한 편으로 이런 따스함이 아주 무섭게 느껴졌다. 그녀가 나지막이 말했다.
“새해가 다가오는데 정말 눈이 한 번도 안 오네요……. 장두한테 나중에 임시변통을 할 수 있도록 우물을 좀 파 두라고 했어요.”
그녀의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내년에는 큰 가뭄 후에 또 큰 홍수가 들어 작황이 매우 나쁠 것이다. 큰 홍수는 미리 수로를 파서 막아야 하는데 지금 당장 이 일을 하라고 할 수는 없었다.
육함도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을 응시했다.
“우물을 파두는 것도 좋지. 다들 날씨 때문에 걱정이 많소.”
임근용이 말했다.
“우리 친정에는 벌써 말해 뒀으니까, 당신도 아버님과 셋째 숙부님께 가서 미리 말씀을 드려요.”
그녀는 햇빛 때문에 졸음이 몰려왔다. 운명으로 정해진 일을 인력으로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니 그녀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은 그냥 내버려두고 그녀는 또 평소처럼 자기 인생을 살아야 했다. 의랑은 임근용에게 달라붙어 잠시 놀다가 이내 졸린지 작은 몸을 웅크리며 그녀의 품에 파고들었다. 아이는 마치 새끼 돼지처럼 임근용의 가슴께에서 손을 뻗어 그녀의 귀를 잡고 잠이 들었다.
이날 오후는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햇볕도 따뜻했다. 육함은 침상에서 달콤하게 잠들어 있는 두 모자를 응시하다 갑자기 마음속에 막중한 책임감이 들었다. 그는 앵두에게 천을 가져오라 한 뒤 병풍 위에 얹어 두 모자의 얼굴에 햇볕이 내리쬐지 않도록 살뜰히 보살폈다. 그런 다음 가장 좋아하는 책을 한 권 골라 한쪽에 앉아 책에 집중했다.
육건신은 결국 육건중을 통해 매보청과 접선을 했다. 그는 자기가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모든 일의 처리를 주견복에게 맡겼다. 육건립은 육함의 충고를 받아들여 이 일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여씨가 며칠 동안 죽기 살기로 사정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육건중이 토해내서 나눠 받은 돈을 육건신에게 건네주고 육건신에게 대신 돈을 투자해달라고 부탁했다.
이 사실을 안 육함은 탄식했지만, 이제는 그저 매보청의 일이 순풍에 돛단 듯 순조로워 무사히 선단을 조직하고 또 장사도 잘 되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 * *
황제의 경우 보통 사후 7일째 되는 날 시신을 매장했고 제후는 5일 후에 매장했다. 대부(*大夫: 사(士)보다는 높고 경(卿)보다 아래인 고대 관직명), 서생, 평민들은 3일 후 매장했고, 3개월 동안 상을 치렀다. 조부모와 부모의 장례는 고위 관료의 장례 예법을 따랐고, 신분이 낮은 사람은 일반적인 장례 예법을 따랐으며 부인의 장례는 한 등급 더 낮게 진행했다.
이런저런 소란스러운 일들이 지나고 육 노태야를 매장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 표면적으로는 육건신의 관품에 따라 장례를 치르는 것처럼 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높은 등급의 장례 예법을 따르고 있었다.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는 경성이든 지방이든 막론하고 대부분의 자손들이 ‘효’ 라는 미명을 얻기 위해 예법을 어기는 것도 개의치 않고 더 높은 등급의 의식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비록 육씨 가문에서 드러내놓고 예법을 어기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는 꽤 많은 공을 들였다. 발인하는 날은 아주 떠들썩해서 거리가 온통 구경꾼들로 가득했다. 육씨 가문의 효성 지극한 자손들은 상복을 입고 목청껏 울었다.
육 노태야의 묘소는 육씨 가문 선산이 아니라 따로 구한 이른바 회란무봉(*回鸾舞凤: 봉황이 나는 것처럼 아름답고 날렵한 형세)이라 하는 길지였다. 그곳은 멀리 봉시산 아래에 있었는데, 육 노태야가 살아있을 때 준비해 둔 곳이었다. 깜짝 놀랄 정도로 비쌌지만, 육씨 가문 사람들이 지금 그 돈을 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봉시산과 평제사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또 몇 십 만 전의 돈을 들여 평제사에서 제도(*超度: 불교에서 죽은 이의 영혼을 위해 드리는 제)를 하고 또 그곳에 한 일가를 배치해 묘를 지켜야 했다.